469화. 아래쪽 봉우리의 상점가
“선생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거원자의 물음에 계연이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 기다려보죠. 무슨 일이 생긴 걸지도 모르니까요.”
멀리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춰서서 자신들을 기다리는 것을 보고, 서둘러 내려오던 이들은 약간 안심한 얼굴을 했지만 속도는 조금도 늦추지 않은 채였다.
‘산이 보인다고 채찍질만 해 대면 말 죽는 줄 모른다(望山跑死馬)’는 속담처럼, 보기에는 가까워도 일행 사이의 거리는 꽤 멀었다. 게다가 산길도 험하고, 관목이며 수풀이 걸음과 시야를 방해했으므로, 그들이 계연과 거원자 가까이 왔을 때는 반각이 훨씬 지난 뒤였다.
그들은 총 여섯 사람이었는데, 그중 중년의 남자가 대략 16~17세 정도 되어 보이는 남녀 다섯을 이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고된 산행의 흔적이 보였다. 흙이며 나뭇잎 같은 게 옷자락에 묻어 있었고, 어떤 이들은 피부에 긁힌 자국이 있기도 했다.
중년의 남자는 계연과 거원자의 태도에 기품이 있고 풍모가 남다른 것, 또한 이런 험준한 깊은 산길을 걸으면서도 전혀 피곤해하거나 의복이 더러워지지 않은 것을 보고서 어느 정도 그들의 신분을 확신한 상태였다.
“너희들, 어서 나와 함께 인사 올리자꾸나.”
이렇게 말한 중년 남자는 가장 먼저 양손을 맞잡고 허리를 숙인 뒤 인사했다.
“두 분 선장(仙長)을 뵙습니다!”
그러자 다른 젊은이들도 서둘러 그를 따라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두 분 선장을 뵙습니다!”
거원자와 계연은 그들의 인사를 듣고서도 반박하지 않았지만, 곧이어 거원자가 이렇게 물었다.
“왜 저희를 선장이라고 부르신 겁니까?”
“하하, 그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지금 저희 꼴 좀 보십시오. 게다가 저는 무공을 좀 닦은 몸인데도 이런 모습이 되었습니다.”
남자는 군데군데 더러워진 옷자락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조금도 더러움도 묻히지 않은 채 유유자적하게 산을 오르시는 걸 보고 바로 알아차렸지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는 이 월록산에서 이미 3일 동안 헤매고 있었습니다. 부디 저희를 정봉 나루터까지만 데려다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중년 남자가 이렇게 말하며 다시 장읍례(*長揖禮:두 손을 마주 잡고 눈높이만큼 들어 올리며 허리를 굽히는 인사)를 올렸다.
선인들이 이용하는 나루터라고 해서 범인(凡人)들의 출입을 금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적당한 이유만 있으면 계역을 오가는 수단을 무료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문의 나루터를 찾는 것 자체가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계연은 그들을 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이왕 여러분이 정봉 나루터를 알고 있으니 데려가도 되겠지요. 따라오세요.”
계연이 순순히 동의하자 중년 남자가 감격한 얼굴로 연신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장(仙長)!”
곁에 있던 소년 소녀들도 그를 따라 함께 감사 인사를 올렸다.
“뭘요, 그럼 따라오세요. 여기서 정봉 나루터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요.”
계연이 이렇게 말하며 거원자와 함께 정봉 나루터 방향으로 걸음을 뗐고, 그들의 뒤로 여섯 사람이 따라붙었다.
그들은 두 사람 뒤에 너무 가까이 붙을 엄두를 내지 못했으므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계연과 거원자가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유유자적 걷는 것을 보고, 그들을 따르던 다른 이들은 조금 전 자신들이 손발을 모두 쓰면서 올라야 했던 산길을 떠올렸다.
잡초나 넝쿨 등의 식물은 계연과 거원자가 지나가면 옷자락 주위를 부드럽게 훑고 지나갔고, 그들을 뒤따르는 여섯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그들은 더 이상 잡초나 넝쿨, 가시나 고목 등의 방해를 받지 않고 산길을 오를 수 있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정봉 나루터에 대해 알게 되셨나요? 그곳엔 왜 가시는 거고요?”
계연이 자신을 뒤따르는 여섯 사람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중년 남자가 다시 한번 공손히 예를 올리려 했고, 이를 본 계연이 그를 만류했다.
“산을 오를 때는 손발을 모두 써야 하니, 그리 예의 차리실 것 없어요. 그러다 넘어지면 안 도와줄 거예요.”
“예, 예!”
중년 남자는 부지런히 산을 오르는 동시에 연신 소매로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선장께 아룁니다. 저희 안(晏), 종(宗) 두 집안의 선조는 원래 항주(恒洲) 낭명국(琅明國)출신이었습니다. 그러다 조상들께서 큰 재난을 맞닥뜨리고 수 개월간 도망치다가, 산 깊은 곳에서 실수로 선경(仙境)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어느 선문의 나루터였는데, 그 후부터 그곳 나루터와 계역을 오가는 나룻배 위에서 생계를 이어가셨지요. 그분들의 후손 중 일부는 아직도 그곳에 남아 살아가고 있고, 저희는 평화로운 곳을 찾아 내려온 몇몇 분들의 후손입니다.”
남자가 공손한 태도로 두 집안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자 거원자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럼 왜 이제 와 다시 정봉 나루터에 가는 것이오?”
“선장께 아룁니다. 저희는 그동안 택남국에서 나름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백 년 전쯤 저희 조상 중 어떤 분께서 선문에 들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쪽에서 저희 후손 중에서 자질이 출중한 이들을 뽑아 보내면 선도(仙道)를 닦을 기회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뽑히기만 하면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이지요. 택남국에 사는 저희 안 씨와 종 씨의 열 몇 가구들은 모두 흥분하여 적당한 인선을 추렸습니다. 그런 후에 제가 아이들을 이끌고 정봉 나루터를 찾아가도록 했지요. 하지만 조상께서 남겨주신 지도가 있음에도 선문의 나루터는 찾기가 힘들더군요. 만약 두 분 선장을 만나지 못했으면, 저희는 아직도 헤매고 있었을 겁니다.”
실은 아주 옛날에 월록산의 선인이 준 이들 조상에게 준 영패(令牌)가 있었는데, 그건 안타깝게도 이미 소실된 후였다. 듣기로는 몇 세대 전 어떤 망나니가 도박 빚을 크게 졌다가, 사당에 들어 그 영패를 훔쳐다 팔았다고 한다.
그 후로 두 집안 사람들은 다시는 월록산으로 가지 않았다. 혹은 누구도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들의 조상뻘 되는 누군가가 서신을 보내왔기에 이렇게 온 것이었다. 드디어 그들 집안에도 좋은 날이 오려는 것이다.
그의 대답을 들은 계연은 ‘한 사람이 도를 깨치면 그가 기르던 닭과 개도 승천한다(一人得道, 鷄犬升天: 한 사람이 득세하면 주변 사람도 그 덕을 본다는 뜻)’는 속담이 떠올랐다. 물론 이 상황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어쨌든 이는 두 집안의 자손들에게 큰 이익이 되는 일임은 틀림없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이들을 배려하기 위해 계연과 거원자는 일부러 속도를 조금 늦췄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두 시진(네 시간) 정도가 지나자 길이 약간 넓어지고 가시덤불이나 흙 속에 박힌 넝쿨도 보이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주위의 풍경도 점차 수려해졌고, 중년 남자를 비롯한 일행은 그들이 들이마시는 공기조차 더욱 청량해졌다고 느꼈다. 그때 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졸 들려오더니, 눈앞에 보통 사람 키 정도 되는 너비의 계곡이 나타났다.
“물이다!”
중년 남자의 뒤에 서 있던 한 소년이 흥분한 얼굴로 이렇게 소리쳤다.
계연과 거원자는 계곡 근처에 멈춰 섰고, 다른 이들은 단번에 계곡을 향해 뛰어갔다.
“얼른 물 마셔!”
“물이 엄청 맑네!”
“이건 샘물이니 괜찮아, 마셔도 되는 거야!”
“꿀꺽, 꿀꺽, 꿀꺽…….”
그들은 곧바로 계곡물 옆에 쭈그리고 앉아 손으로 물을 떠 마시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아예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기도 했다.
“와, 물이 정말 달다!”
“마시지만 말고 어서 담아!”
“아, 맞다!”
그들은 양껏 물을 마신 다음, 매고 있던 죽통을 끌러 계곡물을 담기 시작했다.
“다 왔네요.”
그들이 바삐 물을 퍼담고 마시던 순간 계연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몽롱한 안개가 점차 흩어지더니, 원래는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산체(山體)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봉우리가 윗부분에 구름이 뒤덮인 높은 봉우리를 받치고 서 있었는데, 이는 마치 높은 봉우리가 무너지려던 순간 낮은 봉우리가 그것을 떠받친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이런 기묘한 모습을 한 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저 산은 방금 계곡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다 마셨나요? 충분히 마셨으면 다시 가죠.”
“예, 예. 어서 가시지요!”
중년 남자가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선문의 나루터에 처음 방문하는 것이었고, 그를 따르는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자신들과 함께 걷는 두 사람도 선인(仙人)이었지만, 그들은 자기들처럼 보행으로 산을 올랐기 때문에 그리 신비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계곡을 지나자 길이 좀 더 걷기 편해졌다. 게다가 이곳까지 오자 다른 이들을 마주치기도 했다. 그중에는 수선자들도 있었고 보통 사람들도 있었다.
이곳에 온 계연과 거원자는 중년 남자와 다섯 명의 젊은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천천히 산봉우리를 향해 오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정봉 나루터는 원래도 산세가 험준하지 않았고, 널찍한 길도 나 있는 데다 길 양쪽으로 정자와 상점들이 서 있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도 충분히 스스로 오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과 헤어진 지 반각(7~8분) 만에 계연과 거원자는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나루터 자체는 위쪽 산봉우리에 있었고, 이곳 아래쪽 산봉우리에는 건물이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상점가에 늘어선 수십 채의 건물 중에는 주루나 객잔도 있었고, 보통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과 수선자들이 운영하는 곳이 섞여 있었다. 어떤 건물은 일반적인 모습 그대로였는데, 또 어떤 건물은 표면에 빛이 반짝이기도 했다.
이 거리는 인파로 북적였다. 계연은 그중에서 확실히 정괴(精怪)처럼 보이는 이들을 몇 명 발견하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보면 멀찍이 피하기도 했다.
외곽 쪽에 서 있던 계연은 약간 놀란 듯한 얼굴로 이런 광경을 바라보았다. 비록 구봉산의 비행선을 탄 후에 나루터가 대충 이런 광경이지 않을까 그려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북적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하하, 오랫동안 오지 못한 사이에 여기가 이토록 번화할 줄은 몰랐군요!”
거원자가 추억에 젖은 얼굴로 웃으며 감탄했다.
“계 선생님, 어서 가시지요. 아마 수선계(修仙界)에서 이런 광경은 계역 나루터에서밖에 못 보실 겁니다.”
이렇게 말한 거원자는 가느다란 빛줄기를 흩뿌리며 계연과 함께 ‘장터’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장사하는 가게들은 평범한 이가 운영하는 곳이라 하더라도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가게는 어디나 무척 친절했으며, 먹는 것이나 파는 상품이나 모두 정교함의 극치였다. 아무리 성격 나쁜 사람들도 이곳에서는 소동을 일으키지 못했다.
한편 어느 대가의 서화나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물건처럼, 속세에서도 귀중한 보물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은 이곳에도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창작자의 정신이 깃든 예술 작품에는 특별한 운치가 있어, 계연처럼 수선자들 중에도 흥미를 느끼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뛰어난 안목을 가진 이들은 일부러 속세에서 선인(仙人)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물건을 구해다 오고는 했다.
그러다 어느 범인이 이런 선인을 만나 그 대가로 신비로운 물건이라도 얻게 된다면 정말로 운이 트인 것이다.
하지만 수선자들이 정말로 속세와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살지는 않았기 때문에, 수선자들 대부분은 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속세에서 통용되는 화폐로 거래를 했고, 이 때문에 범인들이 선문의 물건을 얻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었다.
수선자들은 때때로 물물교환을 하기도 했지만, 오행(五行)의 정수나 영약(靈藥)처럼 누구나 가치를 인정하는 물건으로 값을 치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