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70화 (470/892)

470화. 탄천수(呑天獸)

계연과 거원자가 떠들썩한 거리를 걷는 동안, 주위의 어느 정도 눈치 빠르고 안목 있는 이들은 두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한 사람은 소박한 차림새이지만 풍모가 비범했고, 기다란 수염을 기른 노인은 백발홍안(*白髮紅顔: 노인의 혈색이 좋은 것을 뜻함)인 것을 보니 척 봐도 도행이 높은 자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서는 마치 보통 사람처럼 아무런 특이한 기운을 느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느긋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때때로 주위의 풍경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러니 아마도 저 두 사람은 도행이 무척 높지만, 바깥세상에는 잘 나오지 않는 ‘어르신’들임이 분명했다. 저런 이들은 수행의 깊이를 짐작할 수도 없고, 법안으로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이들이었으므로 어느 정도 머리가 돌아가는 이들이라면 모두 존경하는 태도를 보였다.

“거 진인(眞人)님, 계 선생님!”

위원생의 목소리와 함께, 구풍과 양명을 비롯한 옥회산 수선자들이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위원생은 체면 차릴 것 없이 재빨리 두 사람을 향해 뛰어왔다.

“계 선생님, 수선계에도 이렇게 번화한 곳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저는 옥회산 같은 풍경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하, 나도 깜짝 놀랐단다!”

그들이 이렇게 대화하는 동안 구풍을 비롯한 이들이 다가와 계연과 거원자를 향해 인사했다. 옥회산에서는 이번에 진인에서부터 제자에 이르기까지, 총 열 명이 넘는 이들이 동행하기로 했다. 계연은 그들 중 몇 사람만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계연을 알고 있었다.

“거 진인, 그리고 계 선생님, 이왕 두 분께서 일찍 도착하셨으니 현심부(玄心府)의 비행선을 타는 게 어떻겠습니까? 만약 중간에 별일이 없다면, 이틀 후에 정봉 나루터에 도착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걸 타면 북경(北境) 항주(恒洲)까지는 약 두 달 반 정도가 걸릴 겁니다.”

“계 선생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거원자의 물음에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하, 여러분께서 결정하는 대로 따를게요. 저는 촌뜨기라 세상 물정을 잘 모르거든요.”

계연의 성격이 털털하고 아무리 그들을 허물없이 대한다고 해도, 옥회산 사람들은 누구도 감히 웃지 못했다.

계연이 동의하자 거원자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계 선생님께서도 이견이 없으시니, 그럼 현심부의 비행선을 타도록 하지요.”

계연은 저도 모르게 늙은 용 응굉이 떠올랐다. 만약 그가 여기에 있었다면, 자신이 저 말을 했던 순간에 가장 먼저 너털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옥회산의 수선자들은 때로 너무 딱딱한 면이 있었다.

휘이잉…… 휘익-!

그때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던 구름안개가 돌연 흩어지더니, 기류가 변하며 광풍이 불어왔다. 하지만 그 바람이 시장이 있는 곳까지 왔을 때는 이미 미풍으로 변한 후였다. 그런데도 계연을 포함한 많은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곧이어 구름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오오-!”

아득한 울음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몸 양쪽과 머리에 지느러미 같은 것이 달린 거대한 요수(妖獸)였다. 그건 마치 커다란 산 하나와 비슷한 크기였는데, 우뚝 솟은 정봉 나루터보다 더 컸다.

“저건 위미종(巍眉宗)의 탄천수(呑天獸)입니다. 가장 유명한 계역 나룻배 중 하나지요!”

거원자가 거대한 요수가 바깥쪽 봉우리를 향해 날아가는 것을 보며 계연을 위해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그 크기만으로도 이 거대한 요수(妖獸) 혹은 선수(仙獸)에게서는 사람을 짓누르는 듯한 기운과 파괴력이 느껴졌다. 게다가 하늘을 날 수 있기까지 하니, 날 때부터 지닌 신통력 외에도 필시 그 영기와 법력이 대단할 것이다.

지금의 도행 수준에 이르러 어느 정도 자제력을 갖췄다 자부하는 계연조차 탄천수를 보자 저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릴 정도였다.

“탄천수라……. 생긴 건 곤(*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오는 크기가 수천 리에 이른다는 거대한 물고기)을 닮은 듯한데…….”

물론 계연도 진짜로 곤을 본 적은 없었지만, 물속 생물의 특징을 가진 외관에 저토록 거대한 몸집, 게다가 탄천(*呑天: 하늘을 집어삼키다)이라는 이름까지, 어떻게 봐도 곤이 연상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계연은 지난 생에 ‘곤 키우기 게임’의 광고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저 탄천수의 모습이 어느 각도에서 보면 게임 속의 화면과 무척 비슷했다.

계연의 혼잣말을 들은 거원자는 잠시 주저하는 듯하다가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님, 곤이 무엇입니까? 저것처럼 거대한 요수입니까?”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커다란 물고기예요.”

주위에는 흥분한 사람들이 저마다 감탄을 내뱉고 있었는데, 그들 중 대다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탄천수를 처음 본 것이 아닌 이들조차 감탄을 금치 못했다.

* * *

계연의 일행이 있는 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는 푸른 유리 벽돌을 쌓아 만든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앞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탄천수의 모습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있었다.

“숙, 숙부…… 저게 대체 뭔가요……?”

“나, 나도 모르겠구나!”

“세상에 저렇게 큰 게 있다니!”

“하마터면 바지에 지릴 뻔했어!”

그들과 함께 있던 한 젊은 수선자도 거대한 탄천수의 모습에 또 한 번 전율을 느끼긴 했지만, 그는 이들이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 퍽 웃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어서 일어나세요. 그리 놀라실 필요는 없어요. 저건 선인(仙人)이 돌보는 선수(仙獸)라서 사람을 공격하지 않거든요.”

그러자 한 소년이 멍한 얼굴로 그 수선자를 향해 물었다.

“저 동물은 성(城) 한 곳의 사람들 정도는 전부 먹어야 배가 차겠지요?”

“저 선수는 영기만 흡수해도 살아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무언가 먹는다고 해도, 흉악한 마귀나 요물만 먹지, 사람들은 절대 먹지 않아요.”

젊은 수선자가 무척 침착한 태도로 설명해주었다. 그는 이 여섯 사람을 데리고 오는 임무를 맡았는데, 한동안 이곳에서 기다려도 오지 않아 택남국에 직접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드디어 이들이 온 것이다.

중년 남자는 조상 중 누군가가 영패를 잃어버려 하마터면 들어오지 못할뻔했으나, 길에서 다른 수선자를 만나 그들을 따라왔다고 그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이들은 누군가 자신들을 주시하는 것을 보고, 아직도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이곳은 선인들이 이용하는 나루터인 만큼 너무 눈길을 끌지 않는 편이 좋았다.

“할아버님, 저희…….”

중년 남자가 하려던 말은 젊은 수선자에 의해 끊겼다.

“휴우, 제가 이미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저는 정말로 그쪽 조상님이 아닙니다. 나이도 여러분과 크게 차이 나지도 않고요. 저는 그저 사숙(師叔)을 도와 여러분을 맞이하러 나온 것뿐입니다…….”

이쯤 되자 젊은 수선자는 정말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전 이들과 막 만났을 때도, 대뜸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신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할아버님을 뵙습니다’라고 하여 어안이 벙벙해졌었다.

젊은 수선자의 말에 중년 남자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다시 말을 이었다.

“예, 예. 선장(仙長), 선장 어른. 제가 물으려던 것은…….”

꼬르륵…….

그가 채 말을 끝맺기도 전에, 그의 위장이 입이 하려던 말을 대신했다. 뒤이어 다른 다섯 명의 위장에서도 뱃고동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꼬르륵-!

“…….”

“아, 그러니까, 제가 물으려던 게…….”

“하하하하! 범인들은 정말 재밌구나. 사람이 배가 고프면 저렇게 큰 소리가 나는군! 하하하하……!”

근처에서 돌연 누군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자의 겉모습은 나이 어린 소년처럼 보였는데, 손에는 복숭아나무의 가지를 들고 있었다. 그가 배를 움켜쥐고 크게 웃는 통에, 나뭇가지도 그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그러자 젊은 수선자가 그자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도우(道友), 이분들은 제 사숙의 후손들입니다. 만약 저희가 실례한 부분이 있다면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젊은 수선자는 여섯 사람을 향해 다시 이렇게 말했다.

“산길을 헤매느라 체력 소모가 심하셨던 모양이군요. 배고프시죠? 제가 아는 곳이 있으니 어서 따라오시지요!”

이렇게 말한 수선자는 재빨리 걸음을 뗐고, 여섯 명의 범인들도 그의 뒤를 후다닥 따라갔다. 그들은 이런 장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므로, 안내해주는 사람을 바짝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반면 복숭아나무 가지를 들고 있던 소년은 웃음을 그쳤지만, 그들을 향해 같은 예를 올리지는 않았다. 소년은 그저 가만히 서서 멀어지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별안간 무언가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사방이 어두워지며 그 위로 수면처럼 파문이 일더니, 잠잠해진 다음 밝은 달이 떠오르는 환각을 보았다. 그 환각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지만, 소년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이쪽을 마주 보는 회백색의 눈 한 쌍이 있었다.

그 주위로는 한 무리의 수선자들이 느긋한 걸음으로 이쪽 푸른 유리 기와를 얹은 건물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자 복숭아나무 가지를 든 소년은 얼른 시선을 거두어들인 후, 재빨리 그곳을 벗어났다.

계연과 마찬가지로 거원자의 시선도 다급히 떠나는 소년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가까워진 푸른 기와의 건물을 바라보며 이렇게 설명했다.

“계 선생님, 저곳은 계역을 건너는 나룻배의 소식을 알아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다른 승객을 태울 수 있도록 미리 소식을 전하는 이들도 있고, 어떤 선문에서는 아예 정해진 시기마다 이곳에 들르기도 합니다. 나루터의 풍경은 많이 변했지만, 이 건물만은 예전 그대로군요.”

“음, 그럼 저희도 가서 한번 보죠!”

탄천수가 이곳에 온 것을 보고도, 계연은 굳이 바깥쪽 봉우리의 선항(*仙港: 선부에서 운영하는 항구)에 올라 그것을 구경할 생각은 없었다. 그의 법안으로는 고개만 돌리면 언제든 짙은 안개를 뚫고 공중에 떠 있는 탄천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오히려 다른 선문이 운영하는 나룻배에 더욱 흥미가 생겼다. 마침 푸른 기와를 인 건물에서는 다른 선부의 나룻배를 알아볼 수도 있고, ‘예약’도 할 수 있었다.

계연이 건물 안에 들어서기 전 다시 살펴보니, 복숭아나무 가지를 든 소년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소년의 시선이 여전히 자신을 따라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 * *

계연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떨어지자, 저 멀리 도망친 소년은 그제야 자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사라진 것을 느끼고 크게 안도했다.

‘세상에, 저자는 어디서 온 괴물이지!’

다른 한쪽에서는 젊은 수선자가 안 씨와 종 씨 두 집안 사람을 데리고 보통 사람이 운영하는 주루로 향하고 있었다. 적당한 거리가 되자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뒤를 살펴보았지만, 그 괴이한 소년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안도하며 미소 지었다.

“여기서 식사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이곳 요리가 맛있다고 느낄 정도니, 여러분께서도 마음에 드실 겁니다.”

그러자 여섯 사람이 고개를 들어 무척 호화로워 보이는 주루의 외관을 살폈다. 그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곧 젊은 수선자의 뒤를 따랐다. 선인과 함께 먹는 밥이니, 돈이 없다고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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