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72화 (472/892)

472화. 무서운 요물의 깃털

옥회산 수선자들은 각자 짝을 이루어 정봉 나루터의 상점가를 구경하며 거닐었다. 계연은 거원자, 구풍과 함께 구경하고 있었는데, 이들보다 좀 더 일찍 도착한 구풍이 두 사람을 이끌고 곳곳을 소개해주었다.

그가 소개해주는 곳은 주로 수선자들이 운영하거나 수선자들을 대상으로 한 가게였는데, 대부분은 각종 영물(靈物)이나 보물을 팔고 있었다. 그중 어떤 수선자들은 선연(善緣)을 얻고자 하는 목적으로 자신의 넓은 식견과 도행을 이용해, 다른 이들이 지닌 물건의 가치를 판별해주는 일을 해주기도 했다.

어떤 곳은 그저 거리에 자리를 깐 노점이었고, 어떤 곳은 따로 건물을 내기도 했는데 그런 곳은 이미 어느 정도 ‘브랜드 효과’를 지닌 곳이었다.

이곳은 계연이 구봉산의 비행선에서 방문했던 상점가보다 훨씬 번화한 모습이었다. 사고파는 물건의 양도 풍부하고, 희귀하고 오래된 물건들도 부지기수였다.

계연은 심지어 한 수선자가 각종 희귀한 정괴(精怪)를 파는 곳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정괴들은 모두 작고 약해 보였는데, 그중 어떤 것들은 평범한 사람(凡人)들의 작은 실수로도 목숨을 잃을 정도로 연약했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계연이 노점 한 곳을 지나가며 살펴보니, 한 나이 든 수선자가 남색 빛이 도는 정괴를 팔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정괴는 엄지손가락 정도 크기의 작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등에는 투명한 남색의 날개가 한 쌍 달려 있었다. 정괴는 검은색의 금속 새장에 갇혀 있었는데, 새장 위에는 검은 천이 덮여 있었다. 하지만 새장 위로 술법이 걸려 있어, 손님들은 검은 천을 통과해 새장 안에 한데 뭉쳐있는 세 정괴를 볼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안쪽의 정괴들은 바깥을 보지 못했다.

수선자들의 노점이 속세의 시장과 가장 다른 점은, 주인장이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노점 주인들은 그저 자리에 조용히 앉아 수양하다가 누군가 흥미를 보이는 손님이 다가오면 그제야 손님을 응대했다.

계연과 옥회산 수선자들이 자신의 노점 앞에 멈춰 서자, 그 나이 든 수선자도 그제야 입을 열어 자신이 파는 정괴에 관해 소개해주었다.

“여러 도우(道友) 분들, 새장 안에 있는 것은 남몽매(藍夢魅)입니다. 이들은 사람이 깊이 잠을 잘 때 귓구멍 근처로 다가가 꿈을 훔치는 걸 좋아합니다. 즉 사람의 정신력을 훔치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때로 잠을 충분히 잤는데도 깨어나고 나서 계속 정신이 몽롱하다면, 이들이 한 짓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 외에 또 다른 용도가 있나요?”

계연이 이렇게 묻자, 노점 주인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대답했다.

“만약 저들이 원한다면, 사람을 다시 꿈속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꿈을 다시 한번 꾸거나, 같은 꿈을 쭉 이어 꾸는 것도 가능하죠. 하지만 저들은 무척 연약한 존재라서, 잠을 자던 이가 갑작스레 자던 자세를 바꾸면 깔려 죽기도 합니다.”

이들은 정신세계와 꿈의 경계에서 탄생한 정괴였으므로, 죽은 후에도 약간의 핏자국만 남기고 형체를 잃고 사라져 버린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베개에는 작은 핏방울이 묻어있고, 자신은 다친 곳이 없다면 간밤에 이 정괴를 깔아뭉갰을 확률이 높았다.

“어떻습니까, 세 분 도우께서는 남몽매에 혹 흥미가 생기십니까? 원하신다면 이 새장도 같이 드리겠습니다. 값으로는 오행(五行) 중 목(木)의 정수(精髓) 한 냥(兩)이면 됩니다. 그 외에 원기를 보하는 단약(丹藥)도 받습니다.”

그러자 구풍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정괴가 있어봤자 어디에 쓰겠습니까? 정괴보단 오히려 이 물건이 더 특이해 보이네요.”

그와 동시에 구풍이 매대에서 사람 팔 정도의 길이에 금빛이 나는 붉은 깃털 하나를 집어 들었다. 깃털에 영기를 불어넣자 그 주위로 열기가 느껴졌다.

“이 깃털은 저도 어느 요물이 남긴 것인지는 모릅니다. 일반적인 요기(妖氣)도 느껴지지 않고요. 예전에 동해에서 주운 것인데, 가끔가다 열기가 흘러나오곤 합니다. 그래봤자 방금 도우께서 끌어낸 정도의 열기라서 무슨 법기(法器)를 제련할 수도 없고, 수행에 도움이 되지도 않지요. 혹시 무언가 다른 용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계연은 원래 그 깃털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는데, 구풍이 영기를 불어넣자마자 깃털에서 열기가 흘러나오며,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감각이 깃털 안에서 느껴졌다. 깜짝 놀란 계연은 무의식적으로 몇 발짝 물러서려다가, 그간 길러온 인내력 덕분에 겨우 움직이지 않을 수 있었다.

‘저게 무슨 말이야? 요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니? 그야말로 요기가 충천(沖天)하고 있는데!’

계연은 법안을 열어 구풍이 든 깃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구풍과 노점 주인이 여유롭게 깃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주위로는 피처럼 어두운 붉은 색채를 띤 요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기운은 무척 희미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계연은 충분히 두려웠다.

계연은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진정한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깃털 하나가 이럴진대, 이 깃털의 주인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어떨까?’

계연은 그게 도대체 어느 경지의 요괴일지 상상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설마……?’

홀로 깊은 생각에 잠긴 계연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마치 1년 내내 정봉 나루터를 뒤덮은 운무(雲霧)를 꿰뚫고 그 위의 태양을 바라보는 듯했다.

“계 선생님, 계 선생님?”

“예에?”

누군가 자신을 부르자 계연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저 깃털이 뿜어내던 요기 때문에, 정신도 산만해져 계연으로서는 무척 드물게도 넋을 놓았던 것이다.

거원자와 구풍은 계연에 대해 잘 아는 수선자들이었으므로, 계연의 반응에 이미 이 깃털이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상태였다. 노점 주인만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저, 계 선생님, 깃털이 아주 아름다우니 사서 장식으로 쓰면 어떻겠습니까?”

구풍이 느닷없이 이렇게 묻자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하지만 장식용으로 쓰지 않을 거예요. 이 깃털이 영기를 흡수할 수 있는 걸 보니, 무언가 다른 용도가 있을 수도 있겠어요. 가지고 돌아가서 한번 연구해봐야겠네요. 참, 그래서 이건 가격이 얼마입니까?”

나이 든 수선자가 세 사람을 쭉 훑어보더니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목행(木行)의 정수 두 근(斤), 혹은 오행 중 다른 것의 정수로 두 근하고 여덟 냥을 받겠습니다. 또는 원기를 보충해주는 단약도 됩니다!”

“그렇게 비싸다고요? 본인 입으로도 이건 달리 쓸 데가 없다고 하셨잖아요?”

구풍이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묻자 나이 든 수선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물건은 희귀함으로 귀해지는 법이지요. 저는 이 깃털이 쓸 데가 없지만, 두 분 도우께서는 도행이 무척 높은 듯 보이니 어쩌면 달리 쓸 데가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이건 너무…….”

구풍이 다시 반박하려던 순간 계연이 그를 제지했다.

“도우의 말씀에도 이치가 있네요. 그럼 저도 굳이 가격 흥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는 목행의 정수나 단약을 갖고 있지 않아서요. 혹시 이걸로도 값을 치를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한 계연이 소매 안에서 얼마 전 만들어낸 법전(法錢) 두 개를 꺼냈다.

법전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위의 영기가 천천히 법전으로 모여들었다. 뒤이어 황동색의 빛이 법전 위를 흐르고 지나가며, 심오한 도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에 나이 든 수사가 고개를 쭉 빼고 물었다.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겠습니까?”

“가져가세요.”

계연이 법전 하나를 그에게 건네자, 나이 든 수선자가 법력을 이용해 그 안에 담긴 기운을 느꼈다. 그러자 그 안의 현묘함이 조금씩 느껴졌으나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이건 제가 직접 만들어낸 것인데, 이름은 법전이라 하고 용도가 무궁무진합니다. 이 법전 두 개로 값을 치를 수 있을까요?”

구풍이 법전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급히 손을 들어 그를 말렸다.

“계 선생님, 제게 목행의 정수가 있습니다! 이 법전은 그냥…….”

“네, 팔겠습니다! 법전 두 개면 됩니다. 이제는 목행의 정수를 준다 해도 안 받겠습니다, 이 법전을 주십시오!”

노점 주인은 수선자임에도 이 순간에는 마음이 다급해져 혹여 법전을 도로 가져갈까 경계 섞인 눈길로 구풍을 바라보았다.

“하하, 알겠어요. 그럼 이것도 받으세요.”

계연은 다른 법전도 마저 건넨 뒤 깃털을 받아 갔다.

구풍이 불어넣은 영기(靈氣)가 사라지자 깃털은 더는 빛나지 않았고 색깔도 어두워졌다. 게다가 이제는 주위로 열기를 뿜어내지도 않았는데, 그러자 계연조차 두려움을 느끼게 했던 요력(妖力)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야생 조류의 깃털에 염료를 칠한 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 깃털은 이제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았지만, 계연은 여전히 조금 전에 느낀 감각을 떠올리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계연은 깊이 숨을 내쉰 뒤 다시 깃털에 영기와 자신의 법력(法力)을 주입했다.

그러자 은은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며 깃털의 색깔이 더욱 선명해졌다. 금색이 섞인 붉은 깃털의 표면에는 은은한 광채가 흘렀지만, 그 외에 특별한 점은 없어 보였다. 이 정도의 열기로는 겨울에 온기를 얻기도 충분치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요기(妖氣)가 없는’ 이 깃털로 인해 계연은 현재 손이 델 듯한 뜨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깃털에서는 금방이라도 손을 떼고 싶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요기가 뿜어져 나왔다. 만약 계연이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인내심과 침착함을 지니지 않았다면, 곧바로 이에 반응했을 것이다.

십여 초 정도를 견뎌낸 계연은 즉시 깃털 위의 영기를 흩뜨려버렸다.

“휴우…….”

깊이 한숨을 내쉰 계연은 깃털을 소매 안에 넣었다. 하지만 심리적인 작용 때문인지 소매가 좀 더 무거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구풍은 노점 주인이 들고 있는 법전(法錢)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주인장은 자신의 법력을 이용해 법전을 세세히 관찰하고 있었다. 한편 거원자는 줄곧 계연을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방금 계연이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모두 눈에 담고 있었다.

계연은 언제나 초연하고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저토록 딱딱한 표정은 거원자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저 깃털에 무언가 문제가 있군?’

거원자는 이런 결론을 도출해냈으나 지금 이곳은 이야기를 나눌 만한 장소가 아니었으므로, 나중에 다시 물어보기로 했다. 편히 대화를 나눌만한 곳에서는 계 선생도 분명 자신에게 대답해줄 것이다.

계연이 깃털을 소매 안으로 넣고 나자, 거원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노점 주인이 든 법전으로 향했다.

구풍은 이 노점 주인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한 것을 보고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 법전은 방금 얻은 데다 계 선생님도 정확한 용도를 말해주지 않으셨는데, 어찌 그리 기뻐하십니까? 이미 그 용도를 파악하신 겁니까?”

노점 주인은 도행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조원(*朝元: 다섯 가지 기운이 한곳으로 모이는 도교의 고급 경지)의 경지는 물론이고, 진인(眞人)이라 불릴 자격조차 얻지 못할 수준이었다. 나이도 구풍보다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하하, 보아하니 도우께서도 이 법전을 오늘 처음 보는 모양이군요. 음, 그나저나 법전이라니, 알맞기 그지없는 이름입니다!”

나이 든 수선자는 동전 하나를 가슴팍의 작은 주머니에 넣고서 다른 하나를 손바닥에 쥐고 문지르며 대답했다.

“이름으로 미루어 그 뜻을 알 수 있듯, 이 법전은 법력을 품은 돈입니다. 돈은 속세의 개념으로, 원하는 물건을 얻기에 편리한 수단이지요. 또한 법이란 수행의 오묘함을 담은 것으로, 신통함을 드러내지요. 제가 잠깐 관찰해본 결과, 이 안에는 순수한 영기와 법력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제 마음먹기에 따라 그 용도가 무궁무진하지요. 이것으로 술법의 효력을 극대화할 수도 있고, 수행 중 주화입마(*走火入魔: 수행 중 욕심을 내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도를 닦다가 심마(心魔)에 빠지는 것)에 빠지더라도, 제 영혼에 한 줄기의 맑은 기운이라도 남아있다면 이 법전을 사용해 삿된 기운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계연은 감탄하는 눈길로 나이 든 수선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도행이 그리 출중하지 않았으나 안목만은 뛰어난 것 같았다.

“보아하니 제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도우께서는 이미 이 법전의 사용법을 알고 계시는군요. 그럼 딱 한 가지만 더 알려드릴게요, 이 법전은 중첩해서 사용할 수 있어요.”

이에 나이 든 수선자는 얼떨떨한 얼굴로 품속의 법전을 꺼낸 뒤 두 개를 동시에 손안에 감싸 쥐고 잠시 그 안의 기운을 느꼈다. 그런 뒤에 그는 다급히 계연을 향해 말했다.

“도우, 아니, 어르신! 혹시 법전을 몇 개만 더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파는 모든 영물은 무엇이든 법전만 주시면 팔겠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손을 저었다. 법전을 제련하는 것 자체는 그리 고된 일은 아니나, 이 정도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계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게다가 쓸모도 없는 물건을 굳이 살 필요도 없었고, 정괴라면 당장 자신한테도 잔뜩 있었다.

계연을 비롯한 세 사람은 노점 주인의 아쉬운 눈길을 받으며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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