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화. 사청수(四聽獸)가 느낀 것
승선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는데, 계연 일행이 교두보에 가까워지자 현심부의 몇몇 수선자가 옥회산 수선자들의 특징을 알아보았다. 옥회산은 운주 남쪽에 있는 복지(*福地: 신선이 사는 곳)였지만, 그래도 이름 있는 정통 선문이었다. 게다가 일행 중에 고인(高人)도 섞여 있었던 터라, 현심부 수선자들은 계연 일행이 가까워지자 먼저 다가와 인사했다.
“오랜만에 옥회산 도우(道友) 분들을 뵙는군요, 승선을 환영합니다!”
“현심부 도우분들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계연과 옥회산 수선자들은 현심부 수선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런 상황에 굳이 자신은 옥회산 제자가 아니라고 나서서 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계연은 한쪽에 앉은 선수를 바라보며, 만약 호운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저 개와 비슷한 선수를 무척 싫어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계연이 자신을 바라보자 귀가 네 개 달린 선수는 감고 있던 한쪽 눈을 마저 뜨고 계연을 마주 보았다. 그와 동시에 선수의 귀가 쫑긋하고 일어서더니 살짝 움직였다. 계연 일행을 바라보는 시선마저 반짝였다. 선수는 거원자와 계연을 잠시 바라보다가 계연에게 시선을 고정했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계연의 일행이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멀어지자, 높다란 관(冠)을 쓴 현심부의 수선자가 선수에게 물었다.
“사청(四聽) 도우, 무언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러자 계연 일행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던 선수가 입을 열었다.
“옥회산 일행 중 옥패를 차지 않은 선장(仙長)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서 무척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수많은 목소리가 서로 입씨름하거나 경탄을 내뱉고 있었는데, 아마 작은 정괴들을 많이 기르고 있는 듯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의 등 뒤에는 검의(劍意)를 전혀 드러내지 않은 선검(仙劍)이 한 자루 떠 있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만 빼면 그 선장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흐르는 샘물 같기도 하고 부드러운 봄바람 같기도 했으며, 티 없이 깨끗하고 맑았습니다. 그런 감각은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청’은 이 선수의 이름이 아니라 성(姓)씨였고, 그처럼 희귀한 요수(妖獸)를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했다. 그래서 현심부의 사청수(四聽獸)들은 모두 ‘사청’을 성씨로 사용했고, 외자를 하나 선택해 이름으로 썼다. 지금 이 선수의 이름은 사청수(四聽修)였다. 수선자들은 이들을 ‘사청 도우’라고 불렀는데, 옥회산의 ‘학(鶴) 도우’와 마찬가지의 의미였다.
“티 없이 깨끗하고 맑았다고요?”
현심부의 수선자가 고개를 돌려 그들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듯하자 사청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비록 저들의 진정한 실력은 꿰뚫어 보지 못했지만, 저도 그동안 도행이 높은 이들은 꽤 많이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저 선장에게서 느껴진 감각은 그중에서도 무척 특이했습니다. 수선자 중에서도 진선(眞仙)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수행계에서는 진선이라는 말을 자유롭게 쓰는 경향이 있었는데, 여기서 사청수가 말하는 의미는 당연히 진정한 의미의 진선을 뜻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선장이 지닌 선기(*仙器: 선도가 서린 물건)는 설령 어느 선문에 있다고 하더라도 대대로 모시는 보물이 될 만한 것이었다. 모든 선기에는 자기만의 생각과 기호가 있었고, 수선자들에 비해 선기에 깃든 영성(靈性)도 절대로 뒤지지 않았다. 심지어 선기의 영혼이 형체를 갖추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선기는 주로 자신이 처음으로 인정한 주인 말고는 다시는 주인을 섬기지 않았다. 주인이 죽고 나면 옛정을 생각해 주인이 속했던 선문을 비호해 주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선기를 지니고 길을 나선 이가 있다면, 그자의 정체는 분명 ‘비범하다’는 말만으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이리라.
사청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현심부의 수선자는 계연을 기억에 새겼다.
* * *
비행선 위쪽도 무척 번화한 풍경이었는데, 이곳 역시 나루터와 마찬가지로 각종 점포며 작은 시장이 열려 있었다. 게다가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섞여 있었으므로 색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비행선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각지의 사투리가 섞인 독특한 말투로 앞다퉈 손님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오랜 세월 수행자들의 노력 덕분에 이 세상의 문자는 서로 통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표준어로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질수록 말에 사투리가 섞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그렇더라도 사람들은 표준어에 크게 의존하는지라, 계연도 사람들의 말을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비행선 위의 사람들이 구사하는 사투리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전에는 계연도 대부분의 지방이 서로 비슷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을 거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동해에서 선하도를 찾아다니는 먼 나라의 함대를 만났을 때도, 함대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말에 사투리가 섞여 있긴 했지만,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위원생과 상의의를 비롯한 다른 젊은 수선자들도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며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위원생이 곁에 있던 구풍을 향해 물었다.
“사부님,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요. 저도 사투리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운주를 떠나본 적 없는 구풍도 실은 그들과 별 다를 바가 없었으므로, 자신의 사형(師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도 구풍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결국 이를 지켜보던 거원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운주는 아주 오랜 옛날에 신도(神道)까지 함께 다스리던 커다란 왕조가 자리한 곳이었다네. 그 왕조가 운주를 점차 개척하던 중, 오랜 세월 쌓인 갈등으로 인해 결국 내란이 일게 되었지. 하지만 그렇게 나라가 사분오열되었다고는 해도 운주의 백성들은 사실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데다, 천여 년 동안 같은 곳에서 통치되고 있었으므로 언어가 서로서로 비슷할 수밖에 없네. 하지만 운주를 벗어나면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사투리가 심해진다네. 물론 표준어로 여겨지는 말 자체는 비슷하겠지.”
이는 위원생을 비롯한 제자들뿐만 아니라 계연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전에는 어디서도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자신들에게 배정된 객사(客舍)로 향하는 길에도 거원자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줄곧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구경했다. 사실 계연도 마찬가지였지만, 계연은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비행선 같은 법기(法器)는 그 안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거대했다. 이는 현심부의 비행선도 마찬가지였는데, 비행선 내부는 바깥에서 보던 선체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여러 층으로 나뉜 선창에는 각기 다른 용도와 목적이 있었고, 사람이 묵는 구역은 선체 주위를 감싼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일행은 마침내 옥회산에 배정된 숙소를 찾아냈다. 계연은 그제야 이들이 왜 이곳을 객실이 아닌 객사라 부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은 담장에 둘러싸인 작은 저택이었는데, 거안소각보다 훨씬 컸다.
계연이 이번에 처음 만난 옥회산의 한 진인이 발급받은 영부(令符)를 저택을 향해 흔들자, 일행 주변에 몽롱한 법광(法光)이 반짝 빛났다가 사라지며 대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러자 저택 안쪽에 있는 아름답게 꾸며진 나무와 화초가 보였다.
“꽤 괜찮구나. 다들 들어가서 각자 방을 찾아 쉬렴. 출입할 때는 꼭 영부를 들고 다녀야 한다.”
“네!”
“네!”
제자들은 고분고분 대답한 뒤, 흥분한 기색으로 방을 찾아 달려갔다. 그들은 각자 사형제(師兄弟)끼리 짝을 지어 방을 골랐는데, 무척 예의 있게도 바깥쪽의 방을 고르고 안쪽은 어른들을 위해 남겨두었다.
* * *
다음 날, 자신의 방에 누워 수행 중이던 계연은 희미한 진동을 느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치챌 수도 없을 만큼 미약한 움직임이었으나 계연에게는 또렷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설명하는 바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현심부의 비행선이 드디어 출발하려는 것이었다.
그러자 계연은 즉시 침상에서 일어나 방문을 나섰다. 거원자를 비롯한 옥회산의 진인(眞人)이라 불리는 몇몇 이들도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구풍은 위원생이 묵는 방을 향해 소리쳤다.
“원생아, 비행선이 곧 출발하려나 보다. 나가서 보고 싶지 않으냐?”
“네? 지금요? 갈게요!”
“나도, 나도 갈래!”
이를 들은 다른 제자들도 줄지어 밖으로 나왔고, 그들은 축지법과 비슷한 술법을 이용해 비행선의 갑판 위에 도착했다.
약간 멀리 떨어진 정봉 나루터의 상점가는 여전히 북적였고, 비행선은 천천히 상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아래의 운무(雲霧)가 파도처럼 비행선 밑바닥을 때리며 서서히 흩어졌다.
그러자 안개가 자욱하게 낀 월록산의 산세(山勢)가 드러나며 비행선이 점차 고도를 올렸다. 비행선에 있던 이들은 가벼운 중압감을 느끼며 곧 그림 같은 풍경을 벗어났다.
이 순간에는 계연의 일행뿐만 아니라 수많은 승객이 갑판으로 나와 비행선이 나루터를 떠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비행선을 처음 타본 이들은 비행선의 신기함과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연신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현심부에서는 비행선을 만들어낼 때처럼 보물인 음양번(陰陽幡)을 제련하는 기술을 이용해 비행선의 돛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 시각 태양이 내리쬐는 기운이 모두 돛으로 모여들어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게다가 바람이 불지 않았는데도 비행선의 돛은 천천히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돛이 크게 펄럭이며 비행선이 고도를 높이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비행선에 탄 수선자들의 수준이 각기 다르고, 승객 중에는 평범한 사람들도 섞여 있다 보니 속도를 내는 과정이 무척 부드러웠다.
그에 더해 비행선에는 진법(陣法)까지 설치되어 있었지만, 하늘을 날고 있는 만큼 위에 탄 사람들은 비행선의 추진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승객들은 이 감각을 낯설어하지 않고 오히려 무척 신기해했다. 이에 보통 사람들이나 아이들은 흥분하여 크게 소리치기도 했다.
“와아…… 와! 우리가 날고 있어요…… 배가 날아가요!”
한 아이가 점점 멀어지는 정봉 나루터를 내려다보며 크게 소리쳤다. 아이의 얼굴은 흥분으로 인해 온통 새빨갰고, 소리를 들은 계연 일행도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즉시 아이의 입을 손으로 막고서, 사투리가 심하게 섞인 말투로 아이를 꾸짖었다.
“쉬, 쉬! 여그는 다 선장(仙長)님들 뿐이여, 시끄릅게 허다간 혼난다!”
말뜻을 알아들은 옥회산 수사들은 남자가 긴장한 기색으로 이쪽을 바라보자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아무래도 아이의 부친은 걱정이 너무 과한 듯했다. 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도행이 얕은 정괴들조차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비행선에 탄 승객은 대부분 ‘촌놈’이라 할 수 있었으므로, 누가 누굴 꾸짖을 처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