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80화 (480/892)

480화. 진작 멸종됐어야 하는 것

“이게 무슨 벌레인지 아시나요?”

계연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한 수선자가 법기를 이용해 벌레들을 붙잡아놓고 있었다. 그것들은 법광 안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괴충들은 크기가 다양했는데, 작은 것은 새끼손가락의 굵기와 길이 정도였고, 큰 것은 성인의 팔 만큼 굵었다. 총 서른여 마리가 붙잡혀 있었는데, 종류만 해도 십여 종이 넘어 보였다. 구불거리는 기생충처럼 생긴 것은 단단한 주름과 무늬가 잡혀 있었고, 갑충(甲蟲)처럼 생긴 것은 입으로 보이는 것이 빽빽하게 달려 있었으며 거머리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어쨌든 그것들 전부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정도의 생김새였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그 종류가 다양해 보였지만, 계연은 민감한 후각을 통해 이 벌레들이 전부 같은 종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붉은 교룡의 시선이 그 법광에 닿자 그의 동공이 살짝 수축했다.

“황해에 삿된 존재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런 벌레들은 저도 처음 보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결코 여기로 헤엄치지 않았을 겁니다!”

이때 주변의 수선자들은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어떤 이는 왜 저 벌레들이 용의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용시충(龍尸蟲)! 저것들은 용시충입니다!”

그때 거원자가 선창에서 나오더니 벌레들을 보자마자 이렇게 소리쳤다.

“저 벌레는 용의 사체에서 번식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용의 위엄이 통하지 않지요. 아주 삿된 성질을 가진 존재로, 사해(四海)의 용족들은 저것들을 발견하는 즉시 전부 죽여버립니다.”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보배가 있는 것과 같다(有一老如有一寶)는 속담처럼, 거원자는 수행한 세월만 8백 년이 넘는 자였다. 그는 비록 옥회산의 ‘집돌이’로 유명했지만, 그래도 그 견식만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이에 계연도 그의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었다.

그러자 이를 들은 붉은 교룡이 극렬한 반응을 보였다.

“예? 용시충이요? 그 삿된 것들은 이미 멸종되지 않았습니까? 그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용의 포효가 사방에 쩌렁쩌렁 울리자 주위의 수선자들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고, 구경하러 모여든 간 큰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놀라 귀를 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거원자가 교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뭐 하러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저것들은 예전에 큰 강에서도 가끔 발견되곤 했었습니다. 그중에는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요괴가 된 것들도 있었지요.”

계연은 거원자의 말에 담긴 다른 뜻을 알아들었다. 즉 용시충(龍尸蟲)이란 것들은 완전히 말살하기가 어렵다는 말이었다. 천지가 이토록 넓으니, 용족(龍族)들의 세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모든 부분을 살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오래 수행을 닦아 둔갑마저 할 수 있게 된 용시충이 어딘가에 숨어 살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용족의 세력이 크고 널리 퍼진 만큼, 둔갑한 용시충들은 다른 용시충들과 모든 관계를 끊고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몸을 사려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높은 수준에 이른 용시충을 비롯해 일반적인 용시충을 모두 죽였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는 언제나 딴마음을 품는 이들이 있는 법이었다. 용족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이 벌레들을 누군가 일부러 키워왔을 가능성도 있었다.

계연도 이런 가능성을 떠올렸을 정도니, 용족들도 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모든 가능성을 막을 수는 없으니, 그저 용시충을 발견할 때마다 깔끔히 처리하는 방법뿐이었다.

거원자의 말에 교룡도 냉정을 되찾고 다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계연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이렇게 물었다.

“조금 전 본인이 용왕 수하의 수족(水族)이라 하셨는데, 어느 용왕 밑에 계십니까?”

계연의 말에 교룡이 즉시 빠릿빠릿한 태도로 대답했다.

“조금 전에는 상황이 급박해 제가 용왕님을 모시는 교룡이라고 헛된 말을 뱉었습니다. 실은 동해 밖 광승(廣勝) 용왕께서 관할하는 해역에 사는 교룡일 뿐으로, 용왕님의 수하가 아닙니다. 부디 선장(仙長)께서 한 번만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눈빛이 특이한 이 수선자는 척 봐도 용왕을 알고 있는 듯했으므로, 그는 감히 거짓을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사실대로 고했다.

“아……. 광승 용왕이시라고요…….”

물론 계연으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용왕인 것으로 보아 분명 진룡(眞龍)일 것이다.

“계 선생님, 이 용시충들은 어찌할까요? 보아하니 이 황해(荒海) 아래에 잔뜩 사는 듯한데요.”

옥회산 수선자들은 계연과 통천강 용왕의 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용족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었으나, 이 용시충에 대해서는 천하의 모든 용족이 만장일치로 혐오하는 터였다.

그러자 계연이 붉은 교룡을 향해 말했다.

“이 일은 용족들에게 있어 무척 중대한 일이니, 잠시 쉬신 후에 다른 이들에게 알리러 가세요. 이 해역 아래의 용시충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은 선장께서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어쨌든 저희 용족의 일이니, 제가 가서 알리기만 하면 용왕께서 이곳을 기점으로 주변 해역을 샅샅이 조사하실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그대로 놔둬도 됩니다.”

교룡의 말에 일리가 있었으므로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럼 저희는 관여치 않겠습니다.”

교룡은 용시충 십여 마리를 붙잡고 있던 수선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교룡의 뜻을 알아듣고 곧바로 벌레들을 불태워 잿가루로 만들었다. 괜히 미적거리다가 자신이 이런 것을 기르고 싶어 한다고 오해라도 받으면 큰일이었다.

교룡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다치지는 않았으므로, 놀란 마음을 잠시 진정시킨 뒤 머뭇거리지 않고 다시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다만 이번에는 폭풍을 뚫고 지나가야 하더라도 결코 바다 가까이로는 날지 않을 생각이었다.

붉은 교룡이 떠나자 현심부의 비행선은 항해를 이어가지 않고 정박했다.

이미 교룡을 구하기도 했으므로, 이참에 용족들에게 빚을 하나 더 지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이에 그들은 이곳에 멈춰서 대신 수면 아래의 용시충을 감시하기로 했고, 지체된 여정은 후에 속도를 더 내서 따라잡기로 했다.

* * *

3일 뒤, 용의 울음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더니 하늘에 빛이 퍼지기 시작하며 주위의 폭풍이 잠잠해졌다.

뒤이어 거대한 황색(黃色) 용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뒤를 십여 마리의 교룡이 따르고 있었다. 황룡의 전체 길이는 대략 수백 장(丈) 정도로 보였고, 그 수염만 해도 백 장(약 300m)이 넘어 보였다. 다른 교룡들은 그에 비하면 미꾸라지 정도로 보였다.

“용왕이 친히 왔군요. 보아하니 용족들에게 있어 용시충을 처리하는 것은 확실히 중차대한 일인 듯합니다.”

계연을 뒤이어 즉시 교룡에게 도움을 베풀었던 늙은 수사(修士)가 이렇게 말하자, 함께 있던 다른 이도 그의 말에 동감했다. 이 두 노인은 3일 내내 계연과 거원자 곁에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그날 밤 은하수를 만들어낸 것이 계연과 거원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에 계연은 다시 그 거대한 황룡을 올려다보는 동시에 용왕이 직접 온 것이 무척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용시충은 용족들에게 있어 조상의 묘를 파낸 도굴꾼이나 다름없었으니, 그 혐오가 뼛속까지 사무칠 만했다.

게다가 일전의 상황으로 보건대, 용시충은 용의 사체만 먹는 게 아니라 기회만 있다면 살아있는 것도 가리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진룡과 교룡들이 이곳으로 채 가까워지기도 전에, 하늘에서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전해졌다.

“여러 선장께서 도움을 베풀어주어 무척 감사하는 바이오. 하지만 이건 용족의 일이니, 그만 떠나 주시지요!”

쿠구구궁……!

그 천둥 같은 기세에 주위 해역의 파도가 더욱더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진룡의 목소리와 함께 용의 위엄이 전해져왔다. 그러자 현심부 비행선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무언가에 짓눌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진룡이 수선자들에게 이렇게 말을 건 것만으로도 실은 무척 정중한 태도를 보인 터였다.

현심부의 두 지사(知事)는 선미의 갑판 위에 서 있다가 진룡의 말을 듣고 계연에게 물었다.

“계 선생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계연이 점점 가까워지는 황룡과 교룡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원래부터 이 일에 끼어들 생각도 없었고, 저들이 우리의 도움을 바라지도 않으니 굳이 남아있을 이유는 없지요. 아직 갈 길도 많이 남았잖아요.”

“맞습니다, 저희도 어서 출발하도록 하죠.”

“그렇게 합시다!”

용족들이 이 일을 외부에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했으므로 계연의 말에 다른 수선자가 즉시 동의를 표했다.

곧이어 선체에 법광(法光)이 반짝이더니 비행선 아래에 천천히 파도가 일었다. 그 물살은 비행선 아래를 받쳐 들고서 천천히 원래의 항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인들은 황룡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행동으로 대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떠나달라는 요구에 따른 것뿐이니 우리더러 예를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수십 초 후, 황룡은 교룡들과 함께 비행선이 있던 해역에 도착했다. 용왕에게 용시충이 있다고 보고한 그 붉은 교룡은 황룡의 곁에서 점점 멀어지는 선광(仙光)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황룡이 이렇게 입을 열었다.

“여기로구나, 이미 그 구역질 나는 것들의 냄새가 느껴지는군. 자네들은 여기서 해류를 따라 곳곳을 순찰하도록 하게. 나는 이곳 먼저 처리할 테니!”

이렇게 말한 황룡은 ‘펑’ 소리와 함께 곧장 바닷물 속으로 잠수했다.

주변 바다의 해저가 밝게 빛나며, 그 사이로 모호한 용의 형체가 보였다.

지지직……!

뒤이어 해저를 헤엄치던 은빛 뱀 같은 형체의 주위로 번갯불이 퍼져나갔다.

계연을 비롯한 수선자들은 떠나온 방향을 바라보며, 황룡이 대체 그 벌레들을 어찌 처리할까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 순간 주변 해역 전체가 밝게 빛나더니 사방에 번개의 기운이 퍼져나갔다. 그 엄청난 살상력에 바다의 물살이 위협적으로 넘실거렸다.

‘과연 진룡이야, 저런 수단을 쓰다니.’

계연은 자신의 벗인 늙은 용이 비록 내륙 수역에 머물고 있지만, 그곳도 실은 동해에 속한 지역이므로 저 황룡과도 아는 사이일 거라 짐작했다. 그러니 후에 응굉을 만나면 이 일이 어찌 되었는지 물어보면 될 것이다. 이 정도의 일이라면 최소한 동해에 사는 진룡끼리는 서로 소식을 전할 테니 말이다.

* * *

며칠이 지나자 주위의 하늘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행선은 어느 날 밤 다시 해수면에서 떠올라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제는 폭풍이 불고 해류가 불안정한 구역을 벗어나 정상 해역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그날 아침은 날씨가 맑아서, 잠에서 깨어난 승객들은 자신들이 어느새 그 어두컴컴한 황해 구역을 지나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수선자들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한창 답답해하던 평범한 사람들과 몇몇 정괴들은 모두 갑판 위로 뛰쳐나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비행선 주위에는 원래 옅은 운무(雲霧)가 끼어 있었는데, 태양이 높이 솟아오르자 천천히 흩어져 마침내 아래쪽의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여러분, 전방 백 리(약 40km)에는 해중경각(海中鏡閣)이라는 명소가 있습니다. 비록 저희는 계역 나룻배를 타고 있지만, 상황이 허락하는 내에서라면 아름다운 풍경도 놓칠 수 없겠지요. 만약 일행 가운데 선창에서 아직 쉬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얼른 깨워서 유리 바닥이 있는 선창으로 가시거나 갑판 위로 올라오십시오. 그 풍경을 보지 못하면 반드시 후회하실 겁니다!”

비행선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제외한 사람 대부분은 계역 나룻배에 자주 타는 이들이 아니었다. 어쩌다 타게 되더라도 평생에 한 번 정도였으니, 어떤 광경은 한번 놓치면 정말로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곧 선창 안 투명한 유리 주위에 승객들이 몰려왔고,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갑판 위로 올라와 뱃전에 기대어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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