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81화 (481/892)

481화. 해각경현(海閣鏡玄)

음양 돛이 부풀어 올라 바람에 가볍게 펄럭였다. 승객들의 몸이 약간 뒤로 밀리는 듯한 느낌이 듦과 동시에 비행선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비행선은 하늘에 금빛 궤적을 그리며 저 멀리 어른어른 보이는 해중경각을 향해 날아갔다.

승객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 초승달 모양의 섬이었다. 각기 산맥이 솟은 두 섬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큰 섬에는 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하나 있었다. 비행선에서 보이는 쪽은 가파른 낭떠러지였는데, 한 면이 마치 커다란 도끼로 베어낸 것처럼 평평했다.

계연이 법안을 열어 살펴보자 섬 위로 법광이 흐르고 있는 걸로 보아, 선도를 수행하는 선문(仙門)이 자리한 듯했다. 섬의 모양보다 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초승달 모양의 섬으로 둘러싸인 거울 같은 해수면이었다.

고여있는 물처럼 평온하고 깊은 남색을 띠는 수면은 어떤 특이한 요소로 인해 은은하게 다채로운 색깔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는데도 계연은 자신의 두 눈으로 풍경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비행선이 초승달 모양의 두 산맥으로 다가가자, 비행선 위의 사람들은 바깥쪽 절벽 위에 커다란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각이 날카롭고 검의(劍意)가 느껴지는 걸로 보아, 검도(劍道)의 고인(高人)이 남긴 것인 듯했다.

“해(海), 각(閣), 경(鏡), 현(玄).”

계연이 그 글자들을 소리 내서 읽자, 계연은 그 안에 담긴 검의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 흐트러짐 없이 단단한 필체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동시에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여러분, 조금만 조용히 해주세요. 이곳은 경현해각(鏡玄海閣)의 수선자들이 조용히 수행하는 곳입니다. 저희가 이곳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분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맙시다.”

현심부의 한 지사가 비행선 곳곳으로 목소리를 전한 후 비행선이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곧 해수면을 가르며 절벽을 지나 거울을 닮은 바다로 향했다.

물은 아주 맑고 수면은 거울처럼 고요했다. 수면 위로 햇빛이 쏟아져 내렸으나 해저까지 보이지는 않았고, 해수면 아래에는 각종 색채를 띤 빛이 흘렀다.

다른 승객들은 물론이고 계연조차 넋을 잃고 쳐다볼 정도의 풍경이었다. 계연은 밤이 되면 지금보다 바다가 훨씬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여정이 조금 지체되었기 때문에 승객 여러분의 의향을 먼저 여쭙겠습니다. 만약 급하지 않다면, 여기서 오늘 밤을 보내고 아침에 출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여정을 서두르길 원하신다면 잠시 후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급하지 않소!”

“맞습니다, 하루 이틀 늦어지는 정도는 누구도 큰 지장이 없을 겁니다.”

“여기서 하루만 있다 가십시다!”

과연 계연의 예상대로 승객들은 이곳에 더 머물고 싶어 했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 초승달 모양의 두 섬 사이에 있는 ‘경면해(鏡面海)’는 사실 그리 작지 않았다. 현심부의 비행선이 그 안으로 들어서자, 대접을 가득 채운 물 위에 떠 있는 참깨처럼 보일 정도였다.

비행선은 거울 바다 중앙에 도착하자 멈춰 섰다. 황해(荒海)에서 며칠 정박했던 것을 제외하면, 비행선이 정봉 나루터를 떠난 후로 계획대로 정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구역에는 물살에 조금의 파문도 일지 않았기 때문에, 수면에서 3장(약 9m) 정도의 공간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계연은 그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예전에 자신이 어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봉도를 떠올렸다.

다만 정봉도는 수면에 파문조차 없는 이 고요한 경면해(鏡面海)와는 자연히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에 철판을 좀 깔고 말하자면, 정봉도 쪽이 좀 더 하늘의 이치에 부합하는 장소였다.

비행선이 정박한 후, 현심부의 지사 중 하나가 갑판 위를 날아올라 큰 섬 쪽으로 향했다. 보아하니 경현해각의 수선자들에게 인사를 전하러 간 모양이었다. 그는 차 한 잔 마시지 않았는지 금방 돌아왔는데, 그 후로는 별로 이렇다 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편 갑판 위에 있는 주루의 3층 난간 옆에는 계연과 옥회산 수선자들이 술과 각종 요리가 차려진 식탁 세 개에 나눠 앉아 있었다.

그들은 식사하며 바깥의 풍경을 감상했다. 이것도 남다른 운치가 있었다.

식탁 위의 요리는 옥회산 사람들이 주문한 것이었는데, 이곳의 음식은 가격이 비싼 편인 만큼 맛도 무척 좋았다. 어디서나 쉽게 만족할 줄 아는 계연은 곧 기분이 흡족해졌다.

“어, 저기 낚시하는 사람이 있네요!”

위원생은 부드러운 고기 한 점을 삼키다가, 유리처럼 잔잔한 수면 위에 떠 있는 작은 배를 발견했다. 그 위에는 한 사람이 낚싯대를 들고 있었다.

상의의가 고개를 빼서 살펴보니 마찬가지로 낚시꾼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에 물고기가 사나?”

이곳은 물이 무척 맑았는데, 속담에도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는 말이 있었다. 수면 위로 흐르는 은은한 빛 때문에 깊은 곳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척 보기만 해도 물고기가 없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게다가 만약 있었다면 물이 이리 맑으니 한 마리쯤은 보일 법도 했다.

“있을지도 몰라.”

“그럼 이곳에 사는 물고기는 분명 보통 물고기가 아니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

계연은 잔을 들고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생각에 잠긴 얼굴로 저 멀리 있는 낚시꾼을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자신도 낚싯대가 하나 있었는데 아주 오랫동안 사용한 적이 없었다.

이를 떠올린 계연은 보기에는 우아하지만 실은 무척 빠른 속도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현심부 수선자들에게 물을 것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현심부 수선자들은 난간에 가까운 곳곳에 있었지만, 아무래도 비행선의 지사를 만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잠시 후, 계연은 2층 갑판의 한 뜰 안에서 두(杜)씨 성을 가진 지사에게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두 지사는 그의 말을 듣더니 표정이 이상해졌다.

“낚시를 하고 싶으시다고요?”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경현해각의 사람들도 낚시가 금지라고 하지는 않았잖아요?”

“예, 그런 말은 없었지요, 하지만…….”

만약 다른 이가 이런 요청을 했다면 두 지사는 그를 만나주지 않거나, 정중한 태도로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계연이라면 달랐다. 물론 조금 귀찮은 일이긴 했으나 어쨌든 시도는 해볼 수 있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경현해각에 가서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제가 번거롭게 해드렸네요!”

계연은 낚시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으므로 두 지사를 귀찮게 하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어쨌든 예전에는 물 아래에 뭐가 있는지 다 아는 상태에서 한 낚시였으므로 계연으로서는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래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계연은 기대감을 숨길 수 없었다.

“아닙니다, 번거롭다니요! 가서 물어보기만 하는 건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렇게 말한 지사는 계연과 함께 갑판으로 나간 뒤, 다시 섬을 향해 날아갔다.

이번에는 처음에 갔을 때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 전에는 얼굴만 비추고 돌아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난간에 서서 지사가 날아간 방향을 바라보던 계연은 곧 두 수선자가 바람을 부려 거울 바다 위의 낚시꾼에게 날아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때로 비행선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기도 했다.

그들은 잠시 낚시꾼과 대화를 나눈 뒤 다시 섬으로 돌아갔고, 그로부터 잠시 후, 현심부의 두 지사가 갑판 위로 돌아와 계연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예를 취했다.

“다행히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왔습니다. 원하시면 언제든 낚시를 하셔도 된다고 합니다. 혹시 배와 낚싯대가 필요하십니까?”

“아뇨, 이 배 위에서 하면 돼요. 낚싯대는 제가 가지고 있는 게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두 지사!”

계연이 기쁜 얼굴로 그를 향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하하, 천만의 말씀입니다. 또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 주세요.”

“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두 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다. 그러다가 갑판 위의 한 건물을 도는 순간 이들은 걸음을 늦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계연의 소매 안에서 물기를 흠뻑 머금은 듯한 푸른 대나무 낚싯대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고기를 낚으려면 미끼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계연은 낚싯대를 꺼냈지만 대체 무엇으로 미끼를 삼아야 할지 생각하는 중이었다. 아래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쓰는 쌀알을 뭉친 미끼로는 아무것도 낚을 수 없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던 계연은 다시 소매 안에서 대추 씨를 꺼내 들었다.

일반적인 대추는 씨를 부순다 해도 살구씨처럼 안에 핵은 들어있지 않았다. 얇은 막에 감싸인 달콤한 즙만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거안소각에서 자란 대추의 대추 씨는 다른 대추와는 달랐다.

하지만 계연은 대추 씨 안의 핵을 쓸 생각은 없었고, 그저 낚싯바늘을 씨에 통과시켜 그 향기를 퍼뜨릴 생각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이렇게 중얼거린 계연이 가볍게 낚싯대를 던지자, 대추 씨가 달린 낚싯바늘이 저 멀리 날아갔다.

비행선의 갑판은 수면에서 아주 높이 떠 있었지만, 계연의 낚싯대는 끝도 없이 뻗어나갔다. 그러다 마침내 ‘퉁’ 하는 소리와 함께 낚싯바늘이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계연은 슬며시 미소 지으며 뱃전에 앉아 한 손으로 낚싯대를 든 채 고요한 수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멀리 시선을 돌리니 작은 배 위의 낚시꾼도 계연 쪽을 보고 있었다.

낚싯바늘이 물에 들어간 후에도 낚싯줄은 멈추지 않고 늘어났다. 줄은 계연이 원하는 대로 수면 아래 30장(약 90m) 정도 되는 위치까지 뻗어나갔다.

이 낚싯줄은 누에 치는 사람이 여러 가닥의 고치실을 비벼 만든 후 서늘한 곳에 말린 것이었는데, 원래는 후세에 만들어진 가느다란 대나무 이쑤시개 정도의 굵기였다.

그러다 계연이 이 낚싯대를 제련하기 시작하며 낚싯줄도 수많은 변화를 거쳤다. 낚싯줄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듯했으나, 고치실 하나만큼 가늘어지며 끝없이 늘어날 수 있었다. 정확히 얼마나 늘어날 수 있는지는 계연도 아직 몰랐다. 그렇게 만들어놓기만 하고 쭉 사용해볼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이 낚싯줄이 고작 30장 정도의 깊이까지 내려가는 건 계연의 낚싯대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낚싯줄이 얼마나 튼튼한지는 이제 법기(法器)나 마찬가지인 낚싯대 자체에 달려 있었지만, 사용자인 계연에게 달려 있기도 했다. 계연의 법력만 계속 제공된다면 낚싯줄은 결코 끊어질 일이 없었다. 정 안되면 지난 생에 배웠던 릴(reel)낚시(*낚싯대에 장치한 릴의 손잡이를 돌려 줄을 풀었다 감았다 하면서 물고기의 힘을 빼는 낚시질)를 하면 된다.

잠시 후, 위원생은 호기심에 찬 소년처럼 혼자 살그머니 계연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계연의 낚싯대와 부표도 달리지 않은 낚싯줄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계 선생님, 낚시하세요?”

“당연한 말을 묻는구나.”

그러자 위원생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에 물고기가 사나요?”

그의 물음에 계연이 멀리 작은 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물고기가 없으면 저 사람이 뭘 낚고 있겠니?”

위원생이 계연이 가리킨 방향을 보며 대답했다.

“하지만 반나절이 됐는데도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던데요.”

“그물을 던지더라도 얼마간 기다려야 하는 법인데, 하물며 낚시는 어떻겠느냐.”

이렇게 말한 계연은 그 순간 낚싯줄과 낚싯바늘을 통해 수면 아래의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수면 위는 여전히 거울처럼 파문 없이 잔잔했지만, 그 아래의 파동을 보니 무언가 살아있는 것이 낚싯바늘 근처를 지나친 게 틀림없었다.

‘정말 물고기가 있네!’

계연은 가만히 미소 지으며 물고기가 바늘에 걸리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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