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84화 (484/892)

484화. 완산 나루터(阮山渡)

밤의 경면해(鏡面海)는 낮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승객들은 다시 한번 갑판 위로 나와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이 풍경을 가득 눈에 담았다.

육민은 뱃머리 쪽의 갑판 위에 누워 깊이 탄식하고 있었다. 비록 옥회산 객사가 있는 범위를 벗어나긴 했지만, 이미 맡아버린 향긋한 냄새를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머릿속으로 그 냄새에 어울리는 요리의 맛을 상상하고 있었다.

“에휴…….”

그가 다시 한번 깊이 한탄하던 순간, 계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 도우,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마세요. 경현해각에서 제가 낚시를 할 수 있도록 동의해 주었으니, 이건 그에 대한 답례입니다.”

그 말에 육민이 몸을 벌떡 일으켜 계연이 건넨 물건을 두 손으로 받았다. 계연이 그에게 건넨 것은 과실의 씨였는데, 무슨 과일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바로 이것으로 금빛 철갑상어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뇌법은 가르쳐드릴 수 없으니 잊으시고요.”

그러자 육민이 얼른 계연을 향해 예를 올렸다.

“이리 귀한 걸 제게 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반드시 잘 사용하겠습니다! 아, 그나저나 냄새가 아주 좋던데 맛은 대체 어땠습니까?”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신선하고, 향긋하고, 맵고, 달콤하고, 간도 적당했죠. 한마디로, 아주 맛있었어요.”

이렇게 대답한 계연이 몸을 돌려 떠났다.

그러자 대답을 들은 육민은 더욱 괴로워했다.

‘만약 다음에 금빛 철갑상어를 낚게 된다면 누가 뭐라 해도 먹어야겠어!’

이렇게 다짐한 그는 손안에 든 과일의 씨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씨에서 은은한 향기가 나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다가, 법력을 이용해 안팎을 샅샅이 살폈다. 그런데도 그 위에 무슨 금제(禁制)가 걸린 흔적은 찾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 향기와 특이한 기운이 모두 씨 자체적으로 내뿜는 것이라고?’

영기(靈氣)를 가진 과실은 그도 많이 보아왔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영기는 흩어지고 과실은 부패한다. 하지만 이것은 척 보기에도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지 오래된 것이었는데도, 아직 순수하고 짙은 영기를 가진 데다 안쪽에는 따뜻한 열기가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무슨 신묘한 술법을 쓴 것도 아니었으니, 그럼 대체 뭐란 말인가?

육민의 생각이 점차 생선에 대한 갈망에서 이 과실에 정체에 대한 의문으로 옮겨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에선가 이와 비슷한 묘사를 읽은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한참 후,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영근목(*靈根木: 영과(靈果)를 맺는 초목을 이름)이구나!”

이를 깨달은 순간 그는 씨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육민은 작고 단단한 씨를 코에 대고 조심스레 냄새를 맡았다. 과연 이것은 영기(靈氣)를 품고 있다는 말 한마디로만 간단히 묘사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영근목(靈根木)에서 열린 과실의 씨란 말인가?’

계연은 이미 사라진 후였지만, 육민은 다시 계연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계 선생님께서 쓰신 것도 바로 이 과실의 씨였고?’

어쩐지 까다롭기 짝이 없던 계수(癸水)의 금빛 철갑상어가 단번에 미끼를 물더라니. 영근목에 열린 과실의 씨라면 과연 끌릴 만도 했다.

그것만 봐도 이 씨 안에는 영성(靈性)이 남아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걸 낚시에 쓰라니? 말도 안 되지!”

육민은 다시 계연을 찾아가 좀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자신이 계연에게 남긴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경거망동하고 싶지 않았다.

육민은 씨를 잘 보관한 뒤 다시 바람을 몰아 초승달 모양의 섬으로 날아갔다.

영근목 과실의 씨와 영근목 자체는 서로 다른 개념이었다. 영근목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였다. 그러니 영근목의 수를 늘리고 싶다고 해서, 그 과실의 씨를 심으면 또 다른 영근목이 자라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육민은 여전히 손안에 든 씨를 무척 진귀하게 여겼다. 최소한 원래의 과실이 어떤 신묘한 힘을 지녔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영근목의 과실이라면 단지 영기를 품고 있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공에 떠 있던 육민은 고개를 돌려 현심부의 비행선을 바라보았다. 경면해(鏡面海)는 하늘의 별빛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었고, 그 위에 뜬 비행선은 법광(法光)에 둘러싸여 밝은 달처럼 반짝여 무척 아름다웠다.

“계연이라……. 수행계는 과연 와호장룡(*臥虎藏龍: 누워있는 호랑이와 숨어 있는 용, 은거한 고수를 뜻함)이로군!”

현심부 비행선 위의 승객들에게 있어 바다에 비친 경면해(鏡面海)는 실망스러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전율을 느낄 정도로 아름다운 수준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선상의 한 고인(高人)이 부린 술법으로 인해 일찍이 은하수가 쏟아지는 기이한 풍경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경면해(鏡面海)의 풍경은 무척 신기하긴 했지만, 같은 별이 뜬 풍경이 아래위로 맞닿은 것보다는 별 무리 속에서 항해하는 쪽이 훨씬 아름다웠다.

이는 현심부 비행선을 관리하는 수선자들이 이 풍경을 보고도 동요하지 않는 승객들을 목격한 첫 사례였다. 심지어 평범한 사람들조차 평정을 유지할 정도였다.

* * *

다음 날 비행선은 다시 항해를 시작해, 고요한 바다를 떠나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하지만 육민을 비롯하여 경현해각의 어느 수선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육민은 계연에게 있어 수행 생활 속에서 마주친 작은 점 중의 하나였다. 사람은 인생을 살다 보면 각양각색의 나그네를 마주치게 되는 법이었다. 하지만 경면해의 풍경은 계연에게도 무척 특별한 감상으로 남았다.

비행선이 상공에 뜬 후에도 계연은 뱃전에 서서 유리처럼 평온한 해수면을 내려다보았다. 양쪽에 자리한 초승달 모양의 섬을 빼면, 경면해는 바깥쪽의 해역과 서로 물길이 단절되지는 않았지만 기이하게 서로 섞이지는 않은 형태였다.

경면해(鏡面海)의 투명함과 다채로운 유광(流光)이 흐르는 해수면은 결코 자연현상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경현해각의 바깥쪽 해역에는 진법(陣法)과 금제(禁制)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경면해(鏡面海) 자체에는 아무런 술법도 걸려있지 않으니 이는 무척 기이한 현상이었다.

계연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채로 시시각각 빛이 변하며 유리처럼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도 풍랑이 일지 않으니, 어쩌면 진짜 거울보다 더욱 평온한 상태일지도 몰랐다.

‘경면해(鏡面海)에 금제가 걸리지 않은 게 아니라, 경면해(鏡面海) 자체가 보기 드물고 엄청난 힘을 지닌 금제일지도 몰라. 금빛 철갑상어는 그 금제에서 태어난 계수(癸水)의 정수일 뿐이고.’

계연은 이렇게 생각하며 경면해(鏡面海) 양쪽에 늘어선 초승달 모양의 두 섬을 바라보았다. 산중에는 빛이 번쩍이는 건물이 보일 듯 말 듯 늘어서 있었다. 비록 여기서 보이지는 않지만, 저 반대쪽 산의 절벽에는 강렬한 검의(劍意)가 담긴 날카로운 글자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만약 내 추측이 사실이라면, 경현해각은 엄청난 실력을 지닌 곳이야. 그리고 금제 그 자체인 경면해(鏡面海)는…….”

계연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말을 끝맺지 않고 가슴 깊이 기억해두었다.

* * *

망망대해를 건너고 폭풍을 뚫고, 태양의 힘과 달과 별빛의 힘을 받으며 항해를 시작한 지 어느새 3개월이 되었다. 정봉 나루터에서 시작한 여정이 어느새 계연 일행의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동안 현심부의 비행선은 총 네 군데에 정박했다.

경현해각 외에 다른 세 곳은 모두 선항(仙港)이었다. 세 곳의 선항은 각기 다른 선도(仙道)의 세력이 관할하는 곳으로, 이곳에 비행선은 각각 하루씩 머물렀다. 그사이에도 많은 이가 비행선에서 내리고 승선하길 반복했다.

선항은 구름 속 속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거원자의 기억 속에서보다 훨씬 더 번화한 모습이었다. 그중에는 일반 백성들이 운영하는 점포도 적지 않았는데, 이는 오히려 선항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4월 중순부터 비행선 아래의 풍경은 점차 산맥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육지로 바뀌었다. 그렇게 북경(北境) 항주(恒洲)에 들어선 비행선은 4월 말 마침내 완산 나루터에 도착했다.

그날은 햇살이 내리쬐는 맑은 날씨였다. 비행선 갑판 위에는 내리려는 이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특히 교두보가 설치될 위치에는 일반 백성들이 몰려들었다. 반면 수선자를 비롯한 요물들이 서 있는 곳은 비교적 한산했다.

다른 선문의 나루터처럼 완산 나루터의 바깥에도 금제가 걸려있었고 항상 운무(雲霧)에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내부에서 보면 이 안개는 무척 옅어서, 비행선에서 내리는 사람들에게도 산길이 또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멀리 상공에서 보면 완산 나루터는 거대한 산봉우리가 평평하게 깎여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만약 그 특색에 따라 이름을 짓는다면, 평정(平頂) 나루터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루터에는 각종 건물이 밀집해 있었고 인파로 북적여 이전에 들린 몇 곳의 나루터보다도 훨씬 번화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다른 선항과 달리 이곳은 산봉우리 전체에 건물이 빽빽이 세워져 있었는데, 나룻배가 정박하는 위치에도 주루나 상점 등이 즐비할 정도였다.

계연과 옥회산 일동이 풍경을 감상하며 기다리는 동안, 두씨 성을 가진 현심부의 지사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이곳 완산 나루터는 구봉산에서 관할하는 곳입니다. 구봉산은 이번 선유대회를 주관하는 선문(仙門)이기 때문에, 이곳 나루터도 자연히 인파로 북적이는 상태입니다. 올해 여름 각지의 선인(仙人)들이 모이는 이 대회를 위해, 벌써 십여 년 전부터 수많은 수행자가 모여들고 있었지요.”

그의 설명에 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유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은 처음에는 선문들 사이에서만 돌았을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떻게든 이러한 소식은 퍼져나가게 되어 있었다. 이에 선문에 몸담지 않은 수행자들이 이 소식을 알게 된 것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다. 다만 대회에 열리는 곳에는 들어갈 수 없을 뿐이었다.

그렇게 선유대회가 열리는 곳 바깥에는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게 누구든 얻고 싶은 물건이 있고, 호기심도 있는 법이었다. 그런 수선자와 요물들은 귀한 물건이나 선인지로(仙人指路)를 얻기 위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이곳에 모여들었다.

비행선이 천천히 하강함에 따라, 갑판 위로 몰려든 사람들은 흥분 혹은 우려가 섞인 얼굴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중에는 계연이 탄 비행선 말고도 다른 비행선과 작은 섬 하나가 떠 있었는데, 기다란 현수교가 몇 개나 움직이며 항구와 그들 사이를 잇고 있었다.

비행선이 멈춰서자 여러 개의 발판이 떠오르더니, 발판이 공중에서 서로 연결되며 다리 세 개가 만들어졌다. 진작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은 일렬로 서서 비행선에서 내리기 시작했고, 이에 항구에 있던 인파들도 새로 도착한 현심부의 비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연과 옥회산 일행은 서두르지 않고 거의 마지막에 비행선에서 내렸다. 그들이 내리기 전, 현심부의 지사 두 명이 와서 그들을 향해 작별 인사를 했다.

“계 선생님, 그리고 여러 옥회산의 도우분들. 그럼 훗날 다시 뵙겠습니다. 만약 10년 안에 다시 현심부 비행선을 타신다면, 그때도 저희가 이 비행선을 담당하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들의 표정은 담담했으나 작별 인사에서는 무척 성의가 느껴졌다. 이들은 비행선의 지사이기에 이번 선유대회에는 당연히 참석할 수가 없었다.

계연과 옥회산 수선자들도 그들을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기회가 닿으면 또 뵙겠습니다!”

“우리 수선자들은 궁극적으로 소요(逍遙)를 추구하고, 긴 세월을 사는 존재이니만큼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두 분 모두 몸조심하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여러분!”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그들은 계연과 거원자의 뒤를 따라 완산 나루터로 내려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