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85화 (485/892)

485화. 타향에서 옛 인연을 만나다

한편 항구 근처의 주루에서는 한 무리의 수행자들이 햇빛으로 반짝이는 현심부의 비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곳곳에서 날아오는 비행선과 현도(*懸島: 떠 있는 섬)를 오르내리는 승객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건 어느 선문의 계역 나룻배입니까? 내뿜는 빛만 봐도 무척 비범하군요.”

“저건 현심부의 음양(陰陽) 비행선입니다. 저 돛은 현심부에서 제련한 거대한 음양 돛으로, 태양과 달빛의 힘을 끌어모아 태음(太陰), 태양(太陽)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무척 대단한 물건이지요.”

“오, 그렇군요.”

“어, 저기 좀 보십시오. 온몸이 황토색인 커다란 정괴들이네요. 보아하니 황석(*黃石: 누런빛의 방해석(方解石))에서 태어난 듯합니다.”

“하하하, 사람처럼 몸에 천 조각을 두르고 있군요.”

그들처럼 몸담은 곳이 따로 없는 수행자 중에는 도행이 얕지 않은 고인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선유 대회는 사회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출신이나 계층을 보는 편이었다. 그래서 도행이 어느 한계를 넘을 정도로 대단한 자가 아니라면 따로 초대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여러분, 혹 어느 고인이 내리는 걸 보신 분이 있습니까?”

“기운이 은밀하게 숨겨진 이들은 몇 있었지만, 딱 봐도 개인으로 참석한 도우들 같았습니다. 유명한 선문의 도우들이 하선하는 건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저기, 저쪽! 비행선에서 어떤 이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수행자들이 시선을 돌리니, 비행선과 이어진 두 번째 다리 위에서 계연 일행이 항구로 내려서고 있었다.

“맨 앞의 두 사람은 평범한 사람인가?”

“하하,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저 우리의 도행이 너무 얕아, 고인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뿐이겠지요. 하지만 조(趙) 도우께서는 어느 정도 볼 수 있으시겠지요?”

그러자 자리한 이들 중 가장 도행이 높아, 조원(*朝元: 다섯 가지 기운이 한곳으로 모인다는 도교의 고급 경지)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불리는 조씨 성의 수선자가 고개를 저었다.

“저 두 분은 아무리 저라고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요. 만약 속세에서 길을 지나다 마주쳤다면, 그저 풍모가 남다른 이들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겁니다.”

* * *

그 시각, 누가 봐도 고인(高人)이 분명한 계연과 거원자를 비롯한 옥회산 일행은 복잡 미묘한 심경을 느끼고 있었다.

계연은 선유대회의 날짜가 마침내 목전에 다가온 것을 깨달았다. 이에 계연은 비행선 안에서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비행선에서 내림과 동시에 기대감과 흥분이 점차 커지는 것을 느꼈다.

수선계(修仙界)에서는 무척 유명한 대회이니만큼, 진선(眞仙)에 도달한 고인이나 <운중유몽>의 저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각종 기이하고 신묘한 술법을 보게 될 수도 있었다. 계연은 이런 희망 사항을 떠올리며 기대감을 품었다.

옥회산 수선자들은 심경이 복잡했다. 옥회산은 이전에는 선유대회에 몇 번이나 참가한 적이 있었지만, 옥회산의 한 수사가 도를 논하는 도중 큰 소동을 일으킨 후로는 참석한 적이 없었다.

옥회산의 양명, 구풍 등의 진인(眞人)들은 거원자에게는 전부 후배들이었다. 이들조차 한 번도 선유대회에 참석해본 적이 없었으니, 이들의 제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에 옥회산 수선자들은 흥분과 기대감뿐만 아니라, 처음 참석한 이들 특유의 낯섦과 예전에 일으킨 소동으로 인한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반면 거원자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데다, 옥회산에서는 첫손에 꼽히는 도행을 지닌 자였으므로 옛 소동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도 별 감정이 없어 마음이 잔잔한 상태였다. 또한 계연은 겉보기에도 실제로도 정말로 담담한 상태였다.

“계 선생님, 일단 구봉산 사람들을 만나러 가시지요. 이미 저희 숙소를 안배해 두었을 겁니다. 만약 그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깥의 다른 숙소를 따로 잡아도 됩니다.”

거원자의 말에 계연은 당연히 아무런 이견이 없었으므로 일행은 곧 그를 따라갔다.

완산 나루터의 상점가를 따라 걷던 그들은 곧 무척 눈에 띄는 건물 하나를 발견했다. 건물의 지붕에는 빨간 깃발이 떠 있었는데, 그 위에는 ‘등선각(登仙閣)’이라는 글자가 법광(法光)을 내뿜으며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주위의 구경꾼들은 계연의 일행이 그곳으로 다가가고, 입구에 있던 구봉산 수사가 밖으로 나와 응대하는 것을 보고서 이들이 선유대회의 초대장을 지닌 정통 선문의 수선자들임을 알아보았다.

잠시 후, 남색 장포를 입은 구봉산 수사가 계연과 옥회산 일행을 이끌고 등선각을 나섰다. 그 수사가 소매를 휘두르자 거대한 버들잎이 나타나더니, 모두의 눈앞에서 작은 나룻배처럼 변했다.

“도우(道友) 분들, 어서 청엽주(靑葉舟)로 오르시지요. 구봉산 도장(道場)은 완산에 있으나, 동시에 완산에 있지 않기도 합니다. 혹 길을 헤매실 수도 있으니, 제가 여러분의 숙소까지 모셔 드리겠습니다.”

“음, 수고가 많소이다!”

거원자가 정중히 대답하며 먼저 푸른 잎사귀 위로 올라섰고, 계연과 다른 일행도 그의 뒤를 따랐다.

이 구봉산 수선자는 계연을 옥회산의 수선자라고 여겼고, 계연도 따로 증명할 초대장이 없었으므로 일부러 해명하지 않았다. 물론 예전에 계연을 초대한 구봉산 비행선의 지사(知事)를 찾으면 되긴 할 테지만, 굳이 번거로움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계연이 막 청엽주에 올라서던 순간, 멀리서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계 선생님……! 계 선생님! 혹 계 선생님이십니까?”

이 목소리는 무척 낯익기도 하고 동시에 낯설기도 했다. 그건 계연에게 있어 무척 괴이쩍은 일이었다. 계연의 귀는 한번 들은 소리는 절대로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개들이 짖는 소리도 마찬가지였으므로, 계연은 자신이 만난 모든 개의 짖음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번처럼 귀에 익기도 하고 동시에 낯설기도 한 목소리를 듣는 것은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계연은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져 계연에게도 무척 또렷하게 보이는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옅은 황색의 장포를 입고서 머리에는 작은 관에 금비녀를 꽂고 있었고, 만면에 기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구봉산의 수선자와 옥회산 일행들도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계연 가까이 뛰어와서 두 손을 이마에 닿게 끌어올린 채 깍듯하게 인사했다.

“계 선생님을 뵙습니다! 정말 선생님일 줄은 몰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선생님이 오지 않으실 거라 하셨거든요. 하하하, 선생님이 오신 걸 아시면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계연은 그의 말에 곧 정체를 깨달았으나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저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러자 남자가 웃으며 예를 거둔 뒤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누군지 모르시겠지요?”

“하하!”

계연이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따로 신통력을 부리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예전에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음에도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이는 온 천하에 단 한 사람뿐일 것이다.

“폐하, 새로 얻은 거죽이 꽤 괜찮군요!”

그러자 중년 남자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더욱 환하게 웃었다.

“과연 계 선생님이십니다. 이렇게 곧바로 알아보시다니, 이 양종(楊宗) 탄복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더는 그렇게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감히 당치도 않습니다!”

양종이 중년의 모습을 한 것을 보고 계연은 남몰래 안도했다. 만약 그가 정말로 두두(*肚兜: 가슴과 배만 가린 마름모 모양의 중국 전통 속옷)를 입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되었다면, 계연은 결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우스운 상상을 머릿속에서 밀어낸 뒤, 계연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양종이 여기 있다는 건 노염생도 이 근처에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같이 오지 않은 것을 보니,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사부는요?”

“사부님께서는 구봉산에 계십니다. 저와 사형은 완산 나루터를 구경하러 나온 것이고요. 이곳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평생 선생님의 은혜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선생님과 제 은사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양종도 없었을 테니까요!”

이 선황제는 그야말로 환골탈태한 모습이었다. 죽기 전 큰 깨달음을 얻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 되었고, 그에 더해 신비한 연뿌리로 새로운 육체를 얻기까지 했다. 그러니 계연이 그의 목소리를 처음에 판별해내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상대가 연뿌리로 새 육신을 얻었다는 걸 새삼 깨달은 계연은 양종의 관절 곳곳을 살피며 혹시 자주 손발이 부러지지는 않을까 궁금해했다.

“저, 계 선생님. 이분은 누구십니까?”

거원자는 눈앞의 남자가 누군지 몰랐고, 왜 계 선생님이 이자를 ‘폐하’라고 부르는지도 궁금해했다.

그러자 계연은 웃으며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 양종을 손짓하며 소개했다.

“거 도우, 이쪽은, 예전에 대정국 황제였던 원덕제 양종입니다.”

“예? 원덕제요?”

“원덕제라고?”

“네에?”

“원덕제는 붕어(崩御)하지 않았습니까?”

거원자와 옥회산 일행은 모두 경악하며 소리쳤다. 반면 구봉산 수선자는 그들을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이 장면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양종이 서둘러 그들을 향해 예를 올렸다.

“양종이 여러 선장을 뵙습니다. 원덕제는 이미 붕어한 게 맞으며, 지금의 저는 그저 양종일 뿐입니다!”

거원자는 그의 말에 눈을 반짝 빛내더니, 그가 새로 육신을 얻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청난 실력이구나!’

“사제……! 사제……! 어딜 그리 급하게 뛰어가?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했네!”

그때 뒤쪽에서 계연이 아는 또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위원생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소년이 이쪽으로 다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소년의 손에는 연잎으로 감싸여 김이 폴폴 나는 무언가가 들린 채였다.

키도 크고 옷도 전보다 깨끗해졌지만, 계연은 그가 예전에 만났던 어린 거지 소유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사제, 한 번만 더 그렇게 뛰어가면 다음번에는 안 데리고 올…….”

소년은 이렇게 소리치다가 계연을 발견하고는 ‘꿀꺽’하고 입 안에 있던 것을 삼켰다.

“소유, 날 못 알아보겠니?”

“계 선생님! 선생님도 선유대회에 오셨습니까? 정말 잘되었습니다! 저와 사제도 드디어 아는 사람을 만났네요!”

노소유는 그렇게 말하며 연잎으로 감싼 것을 계연에게 건넸다.

“선생님, 이것 좀 맛보세요. 산사자(*山楂子: 산사나무 열매) 찹쌀 경단인데 금방 솥에서 나온 거예요!”

그러자 계연도 거절하지 않고 손으로 한 움큼 떼어 입에 넣었다.

“도우분들, 일단 구봉산에 가서 자리를 잡은 뒤 다시 이야기를 나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구봉산의 수선자가 그제야 입을 열어 이렇게 건의했다. 선유대회 기간에는 이처럼 지인을 마주치는 경우가 흔했다. 게다가 수선자 대부분은 수명이 길었으므로, 수십 년 혹은 몇백 년 만에 만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계 선생님, 그럼 어서 가보시지요. 저와 사형은 사부님께 돌아가 선생님이 오셨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녹엽주에 올라탔다. 그러자 구봉산 수선자가 술법을 부려 앞으로 비행선의 고도를 높이는 동시에 앞으로 향했다.

계연이 자신들이 날아가는 방향을 향해 법안을 열어보니, 짙게 낀 운무 사이로 9좌(座)의 거대한 산봉우리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래쪽 완산 나루터에서는 노소유와 양종이 공손한 자세로 인사를 올리다가, 계연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허리를 폈다.

“사부님께서 아시면 무척 기뻐하시겠……지?”

“음, 그건 좀 복잡하지…….”

“휴우…….”

이 사형제는 함께 지낸 기간이 꽤 되었으므로, 이미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들도 사부님이 대체로는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