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87화 (487/892)

487화. 선인들이 술법을 논하다 (1)

계연은 노염생의 성격은 물론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 것 같았기 때문에, 무척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덧붙였다.

“과찬이라니요, 사실 그대로를 말한 것뿐이에요. 그 술법은 한 생명을 창조하는 신묘함을 담고 있다고 일컬을 만합니다!”

노염생은 양종에게 새 육신을 만들어준 후로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연의 평가를 들어야만 모든 것이 완벽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때마침 계연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자 그는 무척 기뻐했다.

“하하하하……. 과찬이십니다, 부끄럽군요!”

칭찬도 누가 해주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른 법이었다. 설령 황족이나 귀족이 그에게 아첨한다 해도 노염생은 분명 코웃음 치고 말 것이다. 하지만 계연의 간단한 몇 마디는 그 무게가 달랐다. 이에 그는 선유대회에 올 때보다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참, 이왕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신다니 그럼 이 늙은이를 따라오십시오! 원래는 혼자 가보려고 했는데, 이왕 선생님께서 오셨으니 같이 가면 되겠군요. 가십시다!”

“무슨 구경인데요?”

계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자 노염생은 이미 구름 위에 올라선 상태였다. 이에 계연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구름 위에 올라섰다.

“하하하하……. 선유대회인데 구경이라면 뭐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선인들끼리 논쟁하는 것이지요. 아니, 싸움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군요! 그럼, 옥회산 도우분들은 여기서 편히 수행하고 계시지요, 저와 계 선생님은 잠시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들이 탄 구름은 이미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만이 상공에 메아리쳤다.

거원자는 자신이 머무는 정수각(靜修閣)에 서서 이를 지켜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 늙은 거지는 수행이 높아, 계 선생님 말고 다른 이는 그의 눈에 별다른 존재감이 없는 게 분명했다.

이왕 옥회산 수선자를 초청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거원자를 비롯한 다른 이들도 구태여 그들을 따라가려 하지 않고 사라지는 빛무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 * *

구름 위에는 계연과 만면에 희색이 가득한 노염생이 서 있었다. 옥회산 사람들에 비하면 노염생이 구봉산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게 분명했으므로 계연이 그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노 선생께서는 구봉산에 대해 잘 아시겠지요?”

그러자 노염생이 하늘을 향해 솟구친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리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옥회산 사람들보다는 제가 좀 더 잘 알겠지요.”

“아, 그렇군요.”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 구름 아래로 뻗어나간 산맥을 바라보았다.

“이 구봉산 동천은 대체 얼마나 큰 건가요? 이 안에 평범한 사람들도 살고 있나요?”

“정확히 얼마나 큰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이 안에 평범한 사람들도 산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기에 여러 나라를 세워 살고 있지요. 물론 선문의 동천에 자리한 덕분에, 요사한 것들이 살고 있지는 않고 구봉산에서 출입을 허락한 정괴(精怪)들만이 토지신 같은 신령으로 살고 있습니다.”

계연은 다시 한번 길게 ‘아하’ 하며 맞장구쳤다.

“그럼 구봉 동천 안은 꽤 평화롭다고 할 수 있겠군요?”

계연의 물음에 노염생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세운 나라끼리 전쟁이 끊이지 않았거든요. 시간이 흐를수록 원한이 깊어져, 결국은 구봉산에서 개입해 거대한 통일 왕조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노염생이 이렇게 묻자 계연이 즉시 이렇게 되물었다.

“다시 무너졌나요?”

“그렇습니다. 천하에 큰 혼란이 일어 왕조가 다시 여러 개로 나뉘었지요. 게다가 그전에도 얼마나 많은 재난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결국 지금에 와서는 여러 나라가 서로 균형을 이루는 형세로 자리 잡혔고, 전보다는 많이 안정된 상태지요. 구봉산에서 여러 번 시도해본 결과, 수선자들이 계속 나서서 통제하지 않는 이상 혼란은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러는 동안 수선자들의 원기(元氣)가 크게 상하기도 했지요. 이에 지금은 그저 손을 놔버린 상태입니다.”

계연은 자신도 그런 가능성을 떠올리긴 했었으나, 노염생의 말에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선생님께서 너무 깊이 파고들 필요는 없습니다. 구봉 동천의 일은 구봉산에서 알아서 하겠지요. 저희는 그저 구경이나 하면 됩니다.”

그 말과 함께 노염생은 법력을 이용해 발밑의 구름을 한 줄기 흰빛으로 변화시켜 삽시간에 구봉산의 진법을 향해 날아갔다. 보아하니 구경거리라는 게 동천 바깥에 있는 모양이었다.

계연은 소매 안쪽 오른손으로 구봉산의 영패를 쥐었다. 노염생은 아무런 법기(法器)나 신표도 쥐고 있는 것 같지 않았지만, 곧바로 진법을 향해 부딪혔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회색 안개가 사방을 뒤덮으며 그들은 곧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었다. 구봉 동천을 나온 그들은 외부 세계의 바람을 맞으며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계연이 고개를 돌려보니, 아홉 개의 거대한 봉우리가 구름 위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에 계연은 법력이 없는 보통 사람은 설령 이 정도 높이에 도달한다 해도 결코 구봉산에 들어올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사막 위의 신기루처럼 구름 위의 봉우리만 볼 수 있을 것이다.

“2, 3일만 가면 됩니다!”

“그렇게나 멀다고요?”

2, 3일이나 걸린다는 말에 계연이 깜짝 놀랐다.

‘그렇게 오래 걸리면 진작 말했어야지! 도대체 얼마나 먼 곳이길래?’

“도대체 어디인데요? 성하(*盛夏: 한여름. 음력 6월을 뜻함.)이면 선유대회가 시작하는데, 시간 맞춰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려고요?”

그러자 노염생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이제 겨우 4월 말 아닙니까. 게다가, 계 선생님께서는 선유대회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노염생이 이렇게 묻자 계연은 그제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선자들이 모이는 선유대회의 목적은 대회가 아니라 수선자들이 모이는 데에 있고, 중대한 일을 의논하기 위함이 아니라 도를 논하기 위함이니 이미 시작되었다고 봐야겠네요……. 그렇다면 지금 저희는 ‘회장(會場)’에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로군요?”

“하하하하하……! 옳으신 말씀입니다! ‘회장’이라니 그보다 정확할 수가 없는 표현입니다! 저희는 지금 선유대회에 참석하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하하하…….”

기분이 좋아진 탓인지 노염생의 통쾌한 웃음소리는 멀리까지 전해져 적지 않은 수선자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완산 나루터의 귀가 밝은 수선자들은 어느 고인(高人)이 대단한 경지에 도달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 * *

황량하고 인적이 없는 해안가의 산맥에는 수백 장(丈)에 이르는 높이에 꼭대기가 평평한 높은 봉우리가 하나 있었다. 이 높고 험한 봉우리는 힘이 좋고 경험이 풍부한 등산객이라 해도 오를 수 없을 정도였고, 무공이 높은 강호인이라 해도 엄청난 힘을 들여야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봉우리의 평평한 꼭대기 위에는 양쪽으로 나뉜 사람들이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한쪽은 색색의 옷에 분위기가 자유로워 보이는 열 몇 명의 수선자들이었는데, 남녀노소가 모두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다른 한쪽은 모두 흰색 장포를 입고 테두리에 금을 두르고 별 모양을 뚫어새긴 관을 쓴 수선자들이었다. 그들도 다른 무리와 마찬가지로 열 명이 넘는 인원이었으며 남녀노소가 모두 있었다.

“첫째, 이곳 산세(山勢)를 무너트리지 않는다. 둘째, 상대를 모욕하지 않는다. 셋째, 이치를 따질 뿐 힘을 겨루지 않는다. 동의하십니까?”

제각각 옷차림이 다른 이들 쪽의 한 수선자가 이렇게 말하자, 양측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예, 이 정도 규칙은 당연히 세워야지요. 저희는 도를 논할 뿐이니까요.”

“맞습니다, 평상심을 갖추는 것(心平氣和)이야말로 우리 수선자들이 마음을 수련하기 위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이지요!”

양측의 수선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고 있었다. 표정과 태도가 주위에 부는 산들바람처럼 맑고 가벼웠다.

“그럼, 이제 시작하시겠습니까?”

“음, 옛말에도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지요. 여름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오늘 바로 시작합시다.”

“찬성합니다!”

양측의 우두머리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서로 공손히 차례를 양보했다.

“도우께서 먼저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도우께서 먼저 말씀하시지요!”

“아닙니다, 저희 대풍곡(大風谷) 수선자들은 모두 인내심으로 유명하지요. 그러니 저희가 먼저 듣겠습니다.”

“저희 건원종(乾元宗)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기운과 마음을 수양하는 것입니다. 인내심으로 따지자면 저희와 비교하실 수 없을 겁니다. 도우께서 먼저 말씀하시지요!”

두 사람은 미소 띤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제가…….”

“그럼…….”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가 상대의 말에 놀라 다시 한번 서로 차례를 양보했다.

“말씀하십시오!”

“도우께서 먼저 하십시오!”

“하하하하…….”

“하하하하…….”

결국 건원종 수선자가 먼저 손을 펼쳐 빛으로 이루어진 도안을 만들었다. 그 안에는 바람이 휘몰아쳐 구름이 흩어지고, 벼락과 폭우가 거세게 퍼붓고, 따사로운 햇살과 맑은 바람이 불었다가, 북풍한설(北風寒雪)이 부는 풍경이 차례로 나타났다.

“일갑자(一甲子: 60년) 전에 대풍곡의 도우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람은 그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바람을 제대로 다루려면 사계절(四季)과 천시(*天時: 밤낮, 더위와 추위 등과 같이 때를 골라서 돌아가는 자연현상)를 모방하여야 한다고 하셨지요. 천지의 변화를 따라 강할 때는 천지를 뒤집어엎을 듯 약할 때는 만물을 쓰다듬듯 해야 하며, 그 외에는 모두 사도(*邪道: 종교·학술의 정통이 아닌 길)라고요?”

그러자 대풍곡 수선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반면 건원종의 도우께서는 물이 일정한 형태가 없듯 바람도 일정한 세(勢)가 없다고 하셨지요. 마음으로 뜻을 조종하듯, 법력으로 바람을 다루는 것이 올바르다고 하셨지요. 그 외에는 바람을 다룬다고 할 수 없다고요?”

“그렇습니다!”

양측의 수선자들은 서로 간에 다시 미소를 주고받았다.

“드리기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희 건원종에서는 도우분들의 생각이 틀렸으며 저희 측의 논리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냈습니다.”

“하하, 그거참 우연이군요. 저희 대풍곡에서도 도우분들의 말씀에 따라 검증을 해본 결과, 건원종 측의 논리는 완전한 헛소리라는 것을 증명해냈습니다!”

그러자 건원종 측의 우두머리가 입술을 삐죽이더니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이렇게 물었다.

“도우, 완전한 헛소리라는 말은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아, 그렇군요. 그럼 그다지 쓸모가 없다는 말로 바꾸겠습니다.”

수선자들은 대개 호방하고 소탈한 이들이었지만, 도를 논하다가 의견 충돌이 생기면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 따지고 들었고, 결론적으로는 둘 중에 옳고 그름과 위아래를 나눠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말이 통하지 않으면 서로 매운 손맛을 보여주기도 했다.

계연과 노염생이 아직 동남쪽 해안가에 가까워지기도 전에, 그곳에는 이미 광풍이 불고 천둥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이에 노염생은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휘이이잉-!

우르릉……!

먹구름이 잔뜩 몰려와 하늘을 빛 한 점 없이 뒤덮었고, 그 사이로는 번개가 언뜻 비쳐 보였다.

광풍이 어지럽게 몰아치는 와중에 허벅지 굵기만 한 나무가 한쪽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연 날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 더욱 긴장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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