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화. 대수황조(大秀皇朝)
“어이쿠, 정말 대단하군요. 계 선생님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양측의 어풍술 모두 신묘한 수준이네요. 저건 어풍술이라는 간단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바람의 움직이면 다른 술법이 뒤따라 펼쳐지는 정도의 경지예요. 난폭함과 섬세함이 모두 담겨있으니, 정말 대단하네요!”
“음, 확실히 대단한 경지군요. 저 술법이 미치는 범위가 넓으니 저희도 좀 더 떨어지는 게 좋겠습니다.”
노염생은 이렇게 말하며 구름의 고도를 높이는 동시에 저들에게서 좀 더 거리를 벌렸다. 육안으로는 이미 양측의 싸움이 보이지 않는 거리였지만, 그들은 법안을 통해 여전히 저쪽을 낱낱이 관찰할 수 있었다.
“별일 없겠죠?”
계연이 약간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이렇게 묻자 노염생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별일 없을 겁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리 큰일도 아닐 겁니다. 선유대회 도중 도를 논하다가 양측이 공격을 주고받는 건 무척 흔한 일이거든요. 게다가 저들도 다 정도를 아는 이들이…….”
쿠구궁……!
쾅!
쏴아아……!
바람이 검은 바닷물을 감싸고 들어 올리면 번개가 곧 그 주위를 감쌌고, 그렇게 바람, 번개, 물이 거대한 채찍처럼 천지(天地)를 내리쳤다. 그러자 주변 해역도 손오공의 여의봉에 맞은 것처럼 위협적으로 넘실댔다.
그러자 이때 노염생이 하던 말을 끝맺었다.
“겠죠…….”
* * *
계연과 노염생이 온 뒤로도 내리 이틀 내내 싸움이 이어졌기 때문에, 계연과 노염생은 사실 그리 늦게 도착한 것이 아니었다. 양측이 부리는 어풍술은 시시각각 변화를 달리하며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고, 이는 계연에게 있어 크게 견문을 넓히게 된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러던 셋째 날, 마침내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양측이 피곤해지거나 화해를 한 것이 아니라, 중재자가 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재자는 계연이나 노염생이 아니라 선유대회의 주최 측인 구봉산이었다.
하늘 저편에서 세 갈래 빛이 나타나더니 이쪽 해역에 구봉산 측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우분들, 공격을 멈추십시오! 그만 공격을 멈추세요!”
“싸움을 멈추세요! 이런 일로 서로 감정이 상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선유대회도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백성들이 모는 배가 이곳을 지나다가 해일을 만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게다가 바닷속에 사는 물속 생물들도 분명 이번 일 때문에 괴로웠을 겁니다. 북해(北海)의 용족(龍族)이 이번 일로 따지고 들면 또 어쩌란 말입니까?”
세 사람은 술법으로 각자의 몸을 보호하며 조심스럽게 양측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은 다시 한참 논리를 설파하며 마침내 양측의 풍세(風勢)를 진정시켰다.
이를 지켜본 노염생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보아하니 저희가 나설 필요는 없겠습니다. 하하, 저 구봉산 놈들도 아직은 기세등등하지만, 곧 선유대회를 연 선문에서 왜 두 번 다시 선유대회를 주최하려 하지 않는지를 깨닫게 되겠지요.”
계연은 바람을 다루는 기술의 현묘함에 깊이 빠져있다가 노염생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저도 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구봉산 수선자들은 그렇게 해서 겨우 양측을 화해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 충분히 분풀이를 한 데다, 한쪽은 다른 쪽의 어풍술이 신묘하고 강력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른 쪽도 결국은 상대를 굴복시키지 못해 마음이 허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노염생은 저쪽의 상황이 진정된 것을 보고 계연에게 말했다.
“계 선생님, 서로 적당히 분풀이도 했고 구봉산에서 중재자도 왔으니 더는 구경할 싸움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저희도 이만 가죠. 굳이 모습을 드러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 순간, 양측 수선자와 구봉산 수선자들이 계연과 노염생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기운을 숨기고 있었고, 싸우는 도중에는 광풍이 몰아치고 벼락이 내리꽂히는 터라 쉽게 발견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구름이 흩어지고 하늘이 맑아지니, 저쪽에 흩어지지 않고 멈춰있는 작은 구름이 무척 눈에 띄었다. 게다가 그 구름 위에는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사숙조(*師叔祖: 스승의 스승인 사조(師祖)와 같은 항렬의 어른)! 사숙조!”
노염생이 구름을 몰아 떠나기 전, 멀리서부터 누군가 그를 이렇게 불렀다. 그와 동시에 이렇게 소리친 사람이 여러 사람을 데리고 우르르 몰려왔다.
건원종의 우두머리인 늙은 수사가 다른 이들을 이끌고 노염생과 계연 가까이 날아와 정중히 양손을 맞잡으며 예를 올렸다.
“건원종의 후배(後輩)가 사숙조를 뵙습니다!”
노염생은 몸을 돌려 그들의 예를 받지 않고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어이쿠, 나처럼 나이 든 비렁뱅이에게 이리 인사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나한테 건원종은 감히 오를 수도 없이 까마득한 경지인데, 아마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오. 계 선생님, 저 부드러운 비단옷 좀 보십시오, 선생님보다도 더 잘 차려입지 않았습니까? 그에 반해 이 늙은이는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으니, 사람을 잘못 본 것이 분명하군요.”
건원종의 나이 든 수사가 허리를 펴더니 그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숙조, 오랫동안 뵙지 못했는데 다행히 아직 정정하시군요. 사조(師祖)께서도…….”
“그만, 그만하시오. 계 선생님, 저희는 이만 갑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숨어야 했는데…….”
노염생은 즉시 몸을 돌려 구름을 움직여 떠나려 했다. 하지만 어찌해도 구름이 움직이지 않아, 노염생은 계연을 바라보다 계연이 막 손을 움직이던 장면을 포착했다. 이에 노염생은 이것이 계연이 한 짓임을 알아차렸다.
계연이 살짝 미소 지으며 노염생을 향해 솔직하게 말했다.
“예, 제가 멈췄어요. 노 선생님은 원래 건원종에 계셨었군요? 후배가 저리 정중히 인사를 하는데, 인사말 정도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사실 계연은 건원종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간 노염생이 자신이 속한 선문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무언가 숨겨진 사정이 있는 듯했다.
“대체 무슨 방법을 쓴 것입니까?”
한편 노염생은 계연이 대체 무슨 수단을 부렸는지를 더 궁금해했다. 조금 전에 계연은 자신이 멈췄다고 했는데, 노염생은 계연이 술법을 부리는 법력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어 번 다시 법력을 운용해 구름을 움직이려 했으나 그럴 때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노염생은 일부러 건원종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으며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다.
“저희 사숙조를 만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우(道友).”
건원종 수선자는 먼저 계연에게 감사를 표한 뒤 다시 노염생에게 정중히 양손을 맞잡고 예를 취했다.
“사숙조, 사조께서 비록 말은 안 하시지만, 속으로는 사숙조께서 어서 산문(山門)으로 돌아오셨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이왕 선유대회에 오셨으니, 끝난 뒤 저희와 함께 돌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일단 가보셨다가 언제든 다시 떠나시면 되지 않습니까.”
노염생은 원래 그들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으나, 이 순간 돌연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잠깐, 방금 뭐라고 했지?”
그러자 건원종의 늙은 진인(眞人)이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기뻐하며 말했다.
“사조께서 비록 말은 안 하시지만…….”
“아니, 아니! 그 전에!”
“그 전 말씀입니까?”
건원종의 늙은 진인은 눈썹을 찡그린 채 곰곰이 생각하더니 계연을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이쪽 도우께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노염생이 ‘짝’하고 손뼉을 치더니, 영문 모르는 얼굴을 한 계연에게서 건원종 노진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는 뭐라고 불렀지?”
“사숙조라고 불렀습니다.”
“이분은?”
“어, 도우……?”
“하하, 그렇지!”
그러다 노염생은 갑자기 웃음기를 거둬들이더니 짐짓 그를 꾸짖었다.
“버릇없이 이분을 함부로 도우라고 부르다니! 하하, 계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놈이 감히 선생의 항렬을 저보다 낮게 불렀습니다. 부디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주십시오.”
그러자 계연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돌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늙은 거지는 정말 희한한 사람이야, 고작 남들이 부르는 호칭조차 비교하려 들다니.’
“노 선생께서 괜찮으시면 저야 상관없어요. 애초에 남들이 어떻게 부르든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고요. 같은 수행자끼리 도우라고 부르는 게 틀린 것도 아니니까요.”
“음, 너희들도 좀 보아라. 이게 바로 선생의 도량이다!”
노염생은 자신이 계연에게 이득을 취했다고 생각해 무척 흡족해했다. 비록 계연은 이를 개의치 않아 했지만, 그건 노염생에게 별로 중요치 않았다.
기분이 좋아진 노염생은 특별히 몇 마디 해주기로 했다.
“되었다, 네 이놈들 아주 싸우느라 사방에 난리를 쳤더구나. 그래도 수행은 꾸준히 한 모양이지. 방금 계 선생님께서도 너희와 대풍곡 수선자들의 어풍술이 신묘하다 칭찬하셨으니 말이다. 그럼 어서 돌아가거라. 나는 계 선생님과 먼저 돌아가 보겠다.”
“아니, 사숙조…….”
건원종 수선자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으나, 노염생이 부리는 법운(法雲)은 이미 한 줄기 빛이 되어 날아간 뒤였다.
한편, 구름 위에 서 있던 계연은 노염생을 바라보며 그가 겉으로는 차가운 태도를 고수했지만 실은 건원종에 여전히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계연은 자신이 없었더라도 노염생은 분명 이곳에 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말로는 싸움 구경을 한다지만, 실은 행여 무슨 큰일이 날까 걱정되어 와본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반나절 동안 구름을 타고 날면서 서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노염생이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제게 물어볼 것이 있으십니까?”
그러나 계연은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구름 아래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연의 눈에는 풍경이 모호하게 보였지만, 대신 계연에게는 그간 단련해온 자신만의 특별한 방식이 있었다. 아래에 모여있는 기운을 읽어보면 상공에서도 꽤 정확하게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여러 기운이 섞인 와중에 화기(火氣)가 가장 많이 느껴지고, 규칙적이고 눈에 띄는 사물이 있는 것으로 보니 사람이 모여 사는 곳 같았다.
“이 아래는 무슨 나라인가요?”
노염생은 계연을 한번 쳐다본 뒤 다시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왕 계연이 전에 있었던 일을 캐묻지 않을 생각이라면 그로서도 환영이었다. 이에 노염생은 자세히 아래쪽을 둘러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이쪽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유명한 나라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지리적인 위치로 보자면 이 아래는 대수국 황실과 조정이 있는 땅일 겁니다. 북경 항주 남부에서는 첫손에 꼽히는 나라지요.”
노염생은 자신의 설명이 불충분하다고 느꼈는지 다시 이렇게 덧붙였다.
“민간 백성들은 여기도 비슷하지만, 대신 운주의 대정국과 달리 이곳 대수국에는 진짜 수선자가 국사(國師)로 있습니다. 신도(神道)와도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으니, 인간이 세운 나라 중에는 꽤 대단하지요.”
그러자 계연이 무언가 깨달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여기가 바로 대수국이 자리한 곳이군요! 그럼 혹시 이 나라 국사가 누군지 아시나요?”
그의 물음에 노염생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꽤 대단하다고 평하긴 했지만, 저희 둘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신경 쓸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대수국의 패업(霸業)이 얼마나 대단하든 저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니까요. 조정의 국사가 누군지도 모르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요.”
“아, 그렇군요. 노 선생님은 그럼 먼저 돌아가세요. 저는 들를 데가 있어서요. 구봉 동천으로 돌아가는 길은 저도 아니 걱정하지 마세요.”
계연은 이렇게 말한 뒤 자신이 타고 있던 구름에서 걸어 나가 천천히 아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계연이 십여 장(10장은 약 30m) 정도 아래로 하강하다가, 발밑에 맑은 바람이 모이자 그것을 타고 도시가 보이는 곳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