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0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계 선생님, 무얼 하려 하십니까? 은밀한 일입니까? 저도 따라가도 됩니까?”
“오고 싶으면 따라오세요.”
“그렇게 말하시면 되는 걸 혼자 가버리시면 어떡합니까.”
노염생이 웃으며 얼른 계연의 뒤에 따라붙었다. 그는 얼른 구름을 흩트리고는 계연처럼 바람을 몰아 아래로 내려갔다.
계연은 원래 가장 가까운 도시로 가서 궁금한 것을 먼저 물어보려 했었는데, 아래로 내려가던 중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이에 약간 멀리 떨어진 황야 쪽을 쳐다보니, 그의 뜻에 반응한 바람이 방향을 바꿔 그를 그쪽으로 데리고 갔다.
노염생은 살짝 눈썹을 찌푸린 채 원래 향하려던 도시가 있는 방향과 지금 계연이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뒤따라갔다.
잠시 후, 계연의 귓가에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저 멀리 황야에 솟구치는 흙먼지가 계연의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꽤 많은 기수(騎手)가 말을 타고 달리고 있는 듯했다. 노염생도 그제야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 * *
파자산(坡子山) 근처 수풀에서는 어림잡아 2백 명은 되는 기수들이 커다란 준마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원기 왕성한 젊은 병사들이었는데, 쇠를 두른 가죽 갑옷에 등에는 활을 매고 장창을 들고 있었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은빛이 나는 갑옷을 입은 무관(武官)이었다.
다다다다!
우레와 같은 말발굽 소리와 함께 지면으로부터 진동이 느껴졌다. 장군이 뒤를 따르는 병사들에게 커다란 목소리로 각기 분부를 내렸다.
“이랴! 이랴! 모두 쫓아가라, 한 놈도 도망치게 하지 마라!”
“넌 부대를 데리고 우익(右翼)으로 가라! 너는 전방에 그물 덫을 설치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뒤를 따르던 기수들이 좌우로 갈라져 나갔다.
무관은 전방을 바라보며 ‘흥’하고 코웃음 친 뒤, 등에서 만듦새가 정교한 활을 풀어내려 말 한쪽에 달린 화살통에서 화살 하나를 뽑았다.
“감히 도망을 치겠다? 꿈도 크군!”
무관은 두 다리로 단단히 말 등을 감싸 균형을 잡은 뒤, 두 손으로 활을 잡고서 있는 힘껏 당겼다. 그러자 온몸의 진기(眞氣)가 화살 끝으로 모여들었다. 그는 목표를 좌측 전방으로 정확히 조준한 뒤 손을 놓았다.
“받아라!”
휘익!
화살이 활을 떠나는 동시에 파공음을 내며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화살 위로는 은은한 빛이 흘렀다.
“아악!”
다음 순간, 백 장(약 300m) 정도 떨어진 전방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무관은 냉정한 표정을 유지한 채, 다시 화살을 한 대 뽑아 활시위에 맞춰 올려놓았다. 뒤이어 활이 다시 한번 동그랗게 휘더니 좌측 전방을 향해 발사되었다.
휘익-!
“악!”
이번에도 예외 없이 전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화살 두 대가 목표가 명중하자 무관은 세 번째 화살을 꺼내 다시 활시위에 올렸다.
쉬익-!
세 번째 화살은 더욱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그것은 이번엔 좌측 전방의 흰 여우를 향해 날아갔다.
“안 돼!”
흰 여우는 비명을 지르며 요기(妖氣)를 폭발시켜 모습을 투명하게 만든 뒤 화살을 피했다. 그러자 엄청난 기세의 화살이 화살 끝의 깃털만 남기고 지면 아래에 콱 박혔다.
여우들은 이때 극심한 공포에 떨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뒤쫓는 병사들을 피해 달아날 생각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두머리인 무관은 연속으로 화살을 세 발 쏘았는데, 비록 마지막 화살은 아무도 맞히지 못했지만, 여전히 여우들을 두렵게 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무관이 왼쪽으로만 화살을 쏘았기 때문에, 여우 무리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쪽을 향해 도망쳤다.
‘다다다’하는 말발굽 소리가 대지를 울리는 가운데 병사들은 여우 무리를 뒤쫓았다. 그중 체격이 우람한 병사 두 명이 말을 달리는 와중, 지표면을 향해 휙 몸을 기울였다. 그들이 다시 말 위로 돌아왔을 때는 화살에 맞은 여우가 각각 한 마리씩 손안에 들려 있었다.
“궁술이 대단하십니다, 장군! 두 마리 다 요법(妖法)을 펼칠 새도 없이 한 번에 즉사했습니다.”
“흥, 진작 힘이 빠진 상태였겠지. 게다가 저것들이 요법을 부린다고 해도 우리 병사들이 능히 상대할 수 있다. 오늘 저것들을 전부 잡아들여라! 이랴!”
쫓기고 있는 여우 무리는 대략 3, 40여 마리였다. 그중에는 붉은 여우와 회색 여우가 제일 많았고 보기 드문 흰 여우가 한 마리 있었다.
병사들은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여우들을 추격하며 때때로 화살을 쏘았다. 여우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있는 터였다. 한편 무관은 세 번째 화살이 땅에 박힌 후로는 다시 화살을 쏘지 않았다.
“허억, 허억…….”
“언니, 우리 인제 어쩌지?”
“헉……. 몰라, 나도 모르겠다…….”
“일단 빨리 뛰어, 파자산으로 가자! 산으로 들어가면 말을 탄 채로는 들어오기 힘들어. 그러면 재빨리 골짜기나 동굴 안으로 숨으면 돼!”
“아악!”
그때, 또 다른 여우 한 마리가 병사가 쏜 화살에 맞았다. 여우는 다친 다리를 끌며 힘겹게 걸음을 떼면서 곁으로 스쳐 지나가는 다른 여우들을 향해 말했다.
“안돼! 구해줘, 나 좀 구해줘! 제발 버리고 가지 마!”
당장 자기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구도 그 곁에 멈춰 서지 않았다. 게다가 설령 멈춘다 해도 다친 여우를 구할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여우 무리는 이를 악물고 뒤처진 동료를 버리고 도망쳤다. 병사들에게 잡히면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여우 무리는 자그마한 언덕을 넘게 되었다. 그러자 진작부터 그곳에서 대기 중이던 다른 부대가 그들을 습격했다.
“죽여라!”
“이 요괴들을 모두 죽여라!”
“순순히 죽어라!”
“허업!”
“아악!”
“이쪽에도 있어!”
4, 50명의 기병이 습격해오자 미처 방비할 새도 없었던 많은 여우가 기병들의 장창에 꿰뚫려 죽었다.
하지만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바로 눈앞에 있었으므로 무사히 달아난 여우들은 모두 죽을힘을 다해 그곳으로 뛰어갔다. 여우들의 주의력이 그들을 뒤쫓아오는 기병들을 방비하는 데 쏠리는 동안, 갑자기 그물이 여우들을 덮쳤다.
딩딩딩!
방울 소리와 함께 견고한 그물이 전방의 지면에서 솟구쳤다. 혹은 사방에서 여우들을 덮친 것 같기도 했다. 거의 모든 여우는 이 그물에 붙잡히고야 말았다.
* * *
천지를 울리는 말발굽 소리를 따라 바람을 몰고 가던 계연과 노염생은 곧 병사들이 일으키는 흙먼지에 가까워졌다. 곧이어 병사들이 내뿜는 살기(煞氣)가 보였다. 병사들이 뒤쫓는 전방에서는 요괴의 기운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요괴를 추격하는 것이로군.”
노염생도 전방의 요기를 느꼈으므로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게다가 요괴의 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는 아래턱에 어지러이 자라난 짧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대수국에서 이런 광경은 그리 기이한 것이 아닙니다. 저 병사들 모두 혈기가 왕성하고 살기가 짙은 것을 보니, 오랫동안 전장을 겪은 노련한 병사들이군요. 실력도 능숙할 테니 저런 요괴들을 추격할 임무를 맡을 만하네요.”
계연은 살짝 눈썹을 찡그린 채로 대답 없이 고도를 낮추었다. 아래의 기병들은 추격하던 기세를 살짝 늦추며 여우들이 붙잡힌 곳을 향해 말을 달렸다.
뒤이어 말들이 내뿜는 거친 호흡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말에서 내렸다. 그들은 모두 이번 작전의 성공에 격앙된 모습이었다.
“하하하하……. 결국 우리에게 붙잡히고 말았구나. 감히 변영(汴榮)에서 요법을 부려 사람을 해치다니! 네놈들이 요괴라 해도 우리 손에서 벗어날 순 없다!”
병사들을 이끌던 무관은 활을 등에 지고 장창을 손에 쥔 채로 그물에 걸린 요괴들에게 다가갔다. 튼튼한 그물 곳곳에는 작은 방울이 달려있어, 그물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냈다.
무관이 주위를 둘러보자 그물에 붙잡힌 여우들 외에는 모두 포획당했거나 죽은 후였다. 보아하니 도망친 여우는 없는 듯했다. 혹은 요행으로 도망쳤더라도 이 무리에 있던 여우가 아니라 추격이 시작되기 전에 도망친 여우일 것이다.
무관이 옆을 향해 손짓하자, 친위 하나가 다가와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그는 겁에 질려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여우들 앞에서 천천히 두루마리를 펼쳤다.
“한 여우 요괴가 변영부에서 요법을 부려 관리 세 명과 백성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천사처(天師處)의 한 선사(仙師)가 그 요괴를 체포해 진상을 조사해보니, 낙소추(洛小秋)라는 이름을 가진 고목총(枯木塚)의 여우 요괴였다. 요물이 사람을 해친 것은 중죄이므로, 변영부 지부와 천사처 선사의 명을 받아, 모든 여우 요괴를 처리해 고목총을 평정하려 한다.”
그는 다시 두루마리를 잘 말고는 여우들을 훑어보다가 흰 여우를 발견했다.
“하, 네놈 가죽이 꽤 괜찮구나. 너희를 죽인 후에 그 가죽을 헌상하면 그것도 공을 세운 셈이 되겠지.”
그의 말에 여우들은 극도의 두려움을 느꼈다. 여우들은 모두 이것이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직감한 듯 저마다 입을 열어 호소했다.
“억울합니다! 장군, 장군 저희는 정말 억울합니다!”
“장군, 저희는 낙소추라는 여우를 알지도 못합니다. 고목총에는 그런 이름의 여우가 없습니다!”
“장군, 제발 저희를 놓아주십시오. 저희는 맹세컨대 하늘의 도리를 거스르는 일은 한 적이 없습니다!”
“저희는 사람을 해하지 않았습니다, 부디 통촉해 주십시오!”
“죽이지 말아 주세요! 제발 죽이지 마세요!”
여우들은 그렇게 애걸하는 와중에도 쉬지 않고 그물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들은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로 그물을 물어뜯으려 했으나, 방울만 더욱 세게 흔들릴 뿐 조금도 뜯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상처만 입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여우들은 조금도 멈출 수 없었다.
주위에는 병사들이 무기를 든 채 엄숙한 얼굴로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죽이 상하지 않게 정확히 조준해라.”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무관은 부하들에게 이렇게 분부한 후 여우들을 향해 말했다.
“억울하다니, 요괴 가운데 선한 이가 어디 있더냐? 대수국의 백성들이 중죄를 지었더라도 그 가족이 모두 연루되어 벌을 받는데, 하물며 너희 요괴가 뭐라고? 탓하려면 낙소추를 탓해라!”
노염생과 계연은 마침 그 부근에 내려선 상태였다. 추격하는 도중에 잡혀 죽은 여우들을 제외한 나머지 스무여 마리의 여우들은 모두 그물망에 잡혀 있었다.
두 사람은 기운과 모습을 숨기고 있었고, 더욱이 계연은 태허(太虛) 옥 부적을 이용해 술법을 펼친 상태였기 때문에, 여우 요괴는 물론이고 병사들도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계 선생님,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노염생은 이 요괴들에게 아무런 호감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죄를 죄인의 가족들에게마저 묻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만약 이 여우 요괴들이 정말로 무고했다면 어쩌면 자신도 도움을 베풀었을 터였다.
여우 요괴들은 자신들이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요기로 인해 드러나는 기운 때문에 결코 노염생과 계연의 눈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과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을 유혹하여 그 원기를 빼앗은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때 계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상관할 필요가 없겠네요.”
노염생도 그의 말을 들은 동시에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어 파자산 숲속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회색 여우를 안은 흰옷 입은 여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여인은 고개를 숙여 가만히 품속의 여우를 쓰다듬으면서, 느긋한 걸음으로 보이지만 실은 무척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계연이 담담하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오른쪽 소매를 내려다보았다. 저 여인이 자신이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한 걸 보니, 태허 옥 부적은 정말 신묘한 힘을 지닌 것이 분명했다.
노염생은 산속에서 나타난 여인을 보더니 곧 흥미가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는 여인의 정체가 무척 궁금했지만, 계연에게 묻지 않고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