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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497화 (497/892)

497화. 이쪽은 다루기 쉽지 않군

사실 석유도는 눈앞의 이 자들이 이 산에 걸린 봉인을 깨뜨릴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그저 금갑 신장이 이를 보고 자신이 맡은 임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할까 두려웠던 것뿐이었다.

“저어, 부디 소인을 난처하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상선께서는 제게 이곳에 가까이 접근하려 하는 자가 있다면 돌려보내라 하셨지, 길을 안내하라고 하시지는…….”

“말이 많구나, 너처럼 별것도 아닌 정괴가 이 산을 지킨다는 말 자체가 헛소리다! 계속 우리를 막아서면 당장 체포해 천사처로 압송하겠다! 어서 안내해라!”

“예, 예!”

그 말에 정말로 겁이 난 석유도는 결국 그들을 이끌고 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작은 틈새가 뚫린 쪽으로는 일부러 일행을 데려가지 않았다.

어느 정도 깊이 산에 들어선 후, 한 선사가 산세를 살펴보며 등 뒤를 따르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곳 산세의 변화를 측정할 수 있게 산을 올라야겠소이다. 따라오시오!”

그들은 경공을 이용해 걸음 한 번에 4, 5장(丈: 약 12~15m)씩 뛰어오르며 산 정상으로 향했다.

바로 그 순간, 그들의 귓가로 광풍이 불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휘익-!

콰당, 콰당……!

그들은 마치 커다란 마차에 부딪힌 이들처럼 공중에서부터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전방에 물결처럼 파문이 일더니 금빛이 번지며, 금갑을 입고 붉은 얼굴을 한 거인이 나타났다.

금갑 역사의 현재 모습은 약 10장(30m)에 달해, 마치 작은 언덕배기 같았다.

“주인님의 명을 받아, 이 산을 지키고 요괴를 감시한다! 영기(靈氣)를 지닌 이는 가까이 올 수 없다.”

금갑을 입은 거인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종이 울려 퍼지는 것처럼 산속을 뒤흔들며 메아리쳤다. 듣던 이들의 귀가 아플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에, 온 산의 화초와 수목들이 떨기 시작했다.

무공을 닦은 병사와 선사(仙師)들은 다행히 그대로 땅에 처박히지 않고 뒤로 쭉 밀려난 뒤, 나무나 동료와 부딪힌 뒤에야 몸을 바로 세울 수 있었다.

그들이 부딪힌 것은 사실 금갑 역사가 휘두른 손바닥이었다. 물론, 금갑 역사는 아무런 힘도 쓰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그랬다면 이들은 모두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온 산을 뒤흔드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역사의 거대한 형체가 가져다주는 압박감도 대단했다. 그들은 단번에 금갑 역사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석유도는 얼른 금갑 역사와 천사처 일행의 사이를 막아섰다. 심기가 어지럽혀진 금갑 신장(神將)이 이들을 때려죽일까 정말로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람이 죽는다면 가장 곤란에 처할 이는 힘없는 정괴인 그 자신뿐이었다.

“신장 대인! 대인, 노기를 가라앉히십시오! 이들은 대수국 조정의 관아에 속한 사람들로, 상황을 조사해보러 왔을 뿐 봉인에 위협을 가할 이들이 아닙니다!”

그러자 금갑 역사는 그곳에 가만히 서서 산신을 내려다보았다. 산신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천사처 일행에게 말했다.

“서, 선사님들, 어서 신장 대인에게 상황을 설명하십시오. 제게 말한 그대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산을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왜, 왜 조금 전에는 저런…… 저런 신장께서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천사처의 선사가 약간 노기 띤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석유도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일을 쉽게 입에 담겠습니까? 여러분은 천사처의 선사이지만, 신장 대인께서는 오로지 상선(上仙)의 명만 듣는 분입니다. 저 대인께서 저를 죽이는 것 정도는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과 비슷하단 말입니다! 아이고, 지금 책임을 물을 때가 아닙니다, 어서 신장 대인께 상황 설명을 하십시오!”

그러자 조씨 성의 선사가 앞으로 걸어 나와 다른 이들을 이끌고 금갑 역사를 향해 함께 양손을 맞잡으며 예를 올렸다.

“변영부 천사처의 수사(修士)들이 신장 대인을 뵙습니다!”

예를 올린 그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자, 금갑 역사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돌아가라.”

그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지자 천사처의 일행들은 모두 알겠다고 대답한 후에 다급히 왔던 길로 돌아갔다. 석유도도 금갑 역사를 향해 한 번 더 양손을 맞잡고 인사한 뒤, 그들의 뒤를 따라 떠났다.

선사들은 잠깐이라도 쉴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게다가 그들이 돌아가는 길에는 왜인지 가시며 넝쿨 식물이 없어 훨씬 걷기가 쉬웠다.

일각(15분)이 지난 뒤, 봉인이 걸린 산의 범위를 충분히 벗어났다고 여긴 일행은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았다.

석유도는 어디선가 돌로 된 쟁반 위에 샘물이 가득 담긴 나무 잔 여러 개를 받쳐 들고 나타났다.

“선사님들, 관차(官差)님들, 자자, 어서 목부터 축이십시오. 이건 산에 흐르는 샘물인데, 무척 달고 갈증을 풀기에도 딱입니다.”

파자산 산신이 되려면 천사처를 거쳐야만 했으니, 납작 엎드린다고 할 것까진 없었지만 어쨌든 좋은 관계를 쌓아놓는 것이 좋았다.

“고맙네!”

“고맙소!”

“감사합니다!”

이때, 일행들의 태도는 전보다 훨씬 누그러져 있어 모두가 석유도를 향해 감사를 표했다. 선사 하나가 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일행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꿀꺽꿀꺽 샘물 한잔을 비우자 갈증과 피곤함이 싹 가시는 듯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오?”

“아, 제 이름은 석유도라 합니다. 파자산 산신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지요. 물론 대수국 조정의 허가를 받지 못해 산신당도 세우지 못했으나, 이곳 산세와 지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 석 도우(道友)로군. 저 금갑 신장과 산 아래 갇힌 요물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소?”

그러자 석유도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산 아래 갇힌 요물이 대단한 존재라는 것과 도망치지 못하게 잘 감시하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금갑 신장께서도 이곳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이 중 하나입니다.”

‘임무를 맡은 이 중 하나라고?’

이를 들은 천사처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존재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것인가 하고 깜짝 놀라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의 눈앞에 서 있는 이 정괴는 당연하게도 그 범위 안에서 제외됐다.

“알려줘서 고맙소, 석 도우. 앞으로 우리 천사처에 이 산의 소식에 대해 자주 알려주시오. 파자산에는 아직 산신당도 없고 산신도 없으니, 만약 도우가 뜻이 있다면 우리 변영부 천사처에서 도우를 위해 건의해 보겠소!”

계연과 노염생이 이미 그가 산신이 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지만, 석유도는 무척 기쁜 얼굴로 천사처 일행을 향해 공손히 예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천사처에 보고하겠습니다. 돌아가시면 이 산에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포고를 좀 붙여 주십시오.”

“당연히 그리하겠소!”

“물론이오!”

* * *

한편, 천사처 일행이 떠나자 금갑 역사는 곧바로 사라지지 않고 몸을 돌려 가느다란 목소리가 새어 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휴우…… 아윽……. 너무 아파…….”

도사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숙인 채 두 눈을 빛냈다.

‘저자가 바로 그 신장이군!’

이는 도사연이 처음으로 금갑 역사를 본 것이었다. 자신을 내리누르는 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도 신장의 비범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도사연은 신장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과연, 자신의 목소리가 금갑 역사의 주의를 끌었던지 도사연은 금갑 역사가 천천히 틈새 앞으로 다가오는 걸 느꼈다.

“흐윽……. 밖, 밖에 계신 분이 혹 신장 대인이신가요?”

도사연은 엄청난 고통을 참고 있는 것처럼 한껏 처량한 목소리를 꾸며낸 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녀가 마주한 것은 연민이나 호기심, 혹은 경계를 담은 눈빛이 아니라 아무런 감정 없이 잠잠하고 약간의 경멸이 담긴 눈길이었다.

자그마한 틈새였는데도 도사연은 신장이 아무런 감정 없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장 대인께서는 존함이 어찌 되시나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신장 대인……. 신첩도 제 죄가 중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중벌을 받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신장 대인께서는 분명 계 선생님을 따르는 분이시겠지요……. 신첩…….”

여기까지 말한 도사연은 감히 더 말을 이어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는 신장의 두 눈 때문이었다. 그건 마치…… 마치 계연의 눈빛을 생각나게 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

약간의 경멸이 담긴 눈빛은 마치 자신의 모든 생각을 낱낱이 꿰고 있는 듯했다. 마치 상대가 무슨 발악을 하는지 한번 지켜보겠다는 태도 같았다. 신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소리 없는 조롱이었다.

‘멍청하기는, 힘이나 아껴라. 나는 그 멍청한 산신과 다르니까. 요괴는 요괴일 뿐, 네가 아무리 번지르르 말을 해도 내게는 안 먹힌다. 딱한 것…….’

수치로 이를 꽉 다문 도사연의 머릿속에 신장이 생각할 법한 말이 떠올랐다.

‘이쪽은 다루기 쉽지 않군!’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으며, 약간의 틈도 없는 자. 바로 눈앞의 이 사내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계연은 도사연의 요법(妖法)이 높고 강력한 데다 도사연이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데에 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그것이 통하지 않고, 자신의 명령을 철저히 따르는 금갑 역사를 남기고 간 것이다.

* * *

한편 계연과 노염생은 대수국의 도성에 이틀째 머무르고 있었다.

그들은 곧바로 국사(國師)를 찾아가지 않고, 일부러 도성에 머물며 천사처와 대수국의 현재 정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그래서 노염생은 계연이 속세의 조정과 얽혀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연은 대정국과 무척 다르면서도 크게 번창한 이곳 조정에 호기심을 느낀 것뿐이었다.

그들은 천사처의 선사 몇몇을 관찰해보다가 해가 질 때쯤 되어 한 사람을 찾아가기로 했다.

* * *

해가 산 뒤편으로 떨어지자 교용은 시장 골목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 앉아 있던 낮은 걸상을 커다란 광주리에 담았다. 그리고는 담장에 기대 세워놓은 멜대를 가져와 양쪽 끝에 광주리를 매단 뒤 힘껏 들어 올렸다.

그가 들어 올린 광주리에는 저울 말고도 팔고 남은 배추나 무 같은 채소들이 담겨있었다.

멜대를 가뿐하게 짊어진 교용은 안정적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었다.

교용의 맞은편에서는 푸른 장삼을 입은 선생과 남루한 옷을 입은 비렁뱅이 같은 노인이 함께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 조합이 참 특이했다. 하지만 주위로 지나치는 백성들은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교용이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교용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 두 사람을 남몰래 주시했다. 어쩐지 푸른 옷을 입은 선생이 약간 낯익게 느껴졌지만, 괜한 오해를 살까 봐 일부러 그쪽을 보지 않았다.

그들이 막 지나치려던 찰나, 두 사람이 그를 향해 다가와 멈춰 섰다.

“채소가 필요하십니까? 팔고 남은 것이 좀 있는데, 필요하시다면 두 분께 싸게 팔겠습니다.”

노염생은 위아래로 교용을 살피다가 계연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고, 계연은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교 정사(*正使: 사신(使臣)의 수석),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계연과 노염생이 찾아온 이는 선단을 통솔해 선하도를 찾아 바다를 떠돌던 총령감(總領監) 정사 교용이었다.

2백여 척의 크고 작은 배와 3만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며 위풍당당한 기세로 선하도를 찾아 나섰던 인물이니, 결코 낮은 지위의 사람이 아니었을 터였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는 지금 시장에서 채소를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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