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499화 (499/892)

499화. 천사처로 향하다

교용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실은 성상께서도 그리 저를 박하게 대하진 않으셨습니다. 관직을 삭탈한 것 외에 가산을 몰수하거나 하지는 않으셨으니까요. 다만…… 함께 배에 올랐던 다른 형제들은 그리 사정이 좋지 못합니다. 몸이라도 건강하면 모를까, 바다에서 크게 다친 이들이 많아 다른 일을 구하기도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성상께서 더욱 진노하실까 봐 병사들을 위한 구휼금을 요구하지도 못해, 그저 제 힘이 닿는 데까지 도울 수 있는 만큼 돕고 있습니다.”

그제야 노염생과 계연도 교씨 집안의 사정이 왜 이리 어려운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따로 점괘를 치지 않아도 교용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교 공께서는 마음이 참 선량하십니다.”

노염생이 웃으며 말하자 교용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형제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내내…… 여기가 편치 않습니다!”

교용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무사히 부하들을 데리고 귀향했으니, 엄밀히 말하면 교용이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교용은 자신이 애초에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자신이 감당하겠다고 배에 탔던 다른 이들에게 약속했으나, 주머니 사정이 여의찮아 줄곧 미안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거느리고 있던 수하들은 감옥에 갇히지는 않았으나, 마땅히 받아야 할 구휼금을 받지 못했으므로 중상을 입은 데 더해 밥그릇까지 빼앗기게 되었다. 반면, 교용 자신은 감옥에 갇혔으나 다시 석방되었고, 가족들도 무사한 데다 집안의 재산도 온전했다. 이에 교용은 내내 마음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편히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힘이 닿는 데까지 돕는다던 교용의 말은 거짓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계연과 노염생도 교용의 집을 보고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금은 재화를 모두 나눠준 것뿐만 아니라, 전답까지 반 이상 팔아넘긴 상태였다. 이에 교용의 가족들은 배를 곯는 지경까지는 아니었지만, 예전의 금의옥식(錦衣玉食)은 꿈도 꿀 수 없고 직접 두 손을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간 교용에게 있었던 일을 듣자 계연과 노염생은 대수국의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황제는 선단에 대한 갈망이 큰 자였지만, 그렇다고 간언을 듣지 못하는 자는 아닌 듯했다.

선도(仙道)의 존재가 희미한 곳에서 황제가 선단을 구하라 명을 내렸다면, 이는 확실히 나랏일을 내팽개친 셈이었다. 하지만 대수국에는 천사처도 있고, 백성들은 몰라도 조정 관원들은 어느 정도 선도에 대해 알고 있었다. 최소한 이 세상에 신선과 같은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었으므로, 이곳 황제가 선단을 구하는 것은 막연한 헛소리라고 할 수 없었다.

그때, 교씨 집안의 노복인 교덕이 들어와 이렇게 고했다.

“어르신, 부인께서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하십니다. 식사를 차려도 될는지요?”

그러자 교용이 계연과 노염생을 향해 물었다.

“계 선장님, 그리고 노 선장님, 지금 바로 가서 식사를 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노염생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이 늙은이는 전부터 그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와 계 선생님은 며칠째 식사를 못 해, 이미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은 지 오래되었거든요!”

“아, 그렇군요. 덕아. 어서 식사를 차리라 해라. 식당은 준비가 되었느냐?”

“예, 예. 식당은 이미 준비가 끝났습니다. 저는 일단 주방으로 갈 테니, 어르신께서는 두 분 선장을 모시고 식당으로 먼저 가시지요!”

교덕은 이렇게 말하며 계연과 노염생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예를 취한 뒤, 몇 번 뒷걸음질 친 다음 몸을 돌려 나갔다.

계연은 생각에 잠긴 듯한 눈빛으로 이 집의 유일한 가복(家僕)을 바라보았다. 혈기가 무척 왕성한 교덕을 바라보던 계연이 노염생에게 시선을 돌리자, 노염생도 교덕을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고개를 돌린 노염생은 계연의 시선을 마주하고는 계연과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

“어서 식당으로 가시지요!”

교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에 서서 공손히 손짓했다.

잠시 후, 교씨 집안의 식당에 놓인 커다란 원형 식탁 앞에 교용의 가족을 비롯하여 계연과 노염생이 자리 잡았다. 가복인 교덕만이 유일하게 서 있었다.

노염생은 식당 곳곳을 둘러보다가 모서리에 남은 거미줄을 발견했다. 계연은 뛰어난 후각으로 음식 냄새 말고도 젖은 먼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에 계연은 이들이 이곳을 청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보아하니 식당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다가 오늘 특별히 청소한 듯싶었다.

원형 식탁 위에는 총 열 가지의 요리가 차려져 있었다. 신선한 채소 요리부터 매운 양념을 한 커다란 생선요리와 닭 요리 두 접시가 눈에 띄었다. 그 외에는 볶음땅콩과 무말랭이 등으로 가짓수를 늘린 요리들과 술 한 병이 있었다.

식탁 앞에 둘러앉은 이들은 모두 계연과 노염생을 바라보며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교 부인과 이미 성인이 된 교용의 큰아들만이 담담한 태도를 보였고, 나이 어린 두 아이는 닭고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교용은 계연과 노염생의 술잔에 술을 따른 뒤 이렇게 말했다.

“자, 어서 드시지요! 두 분 선장께서 저희 집에 방문해주시니, 이는 저희 집안의 복입니다!”

그러자 계연이 노염생을 향해 말했다.

“노 선생님, 너무 배가 고파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었다 하지 않으셨어요? 어서 드세요.”

“하하하, 그럼 이 늙은이도 더는 사양치 않겠습니다! 쩝,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이 닭고기지요!”

노염생은 전혀 사양하는 기색 없이, 두 어린아이가 빤히 쳐다보는 닭요리에서 다리와 함께 두툼한 살점을 떼어갔다. 그리고는 남은 다리 한쪽도 떼어 계연에게 건넸다.

“계 선생님, 여기가 맛있습니다. 이건 선생님 드십시오.”

그러자 계연이 연신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군자는 남이 좋아하는 것을 뺏지 않는 법이지요. 노 선생님 많이 드세요.”

이렇게 말한 계연은 젓가락을 뻗어 탕 위에 뜬 푸른 채소잎을 집었다. 닭으로 육수를 낸 탕의 깊은 맛에 채소의 신선함이 더해져 무척 맛있었다.

“여러분도 어서 드세요. 손님을 초대해놓고 주인이 쳐다만 보는 경우가 어디 있나요?”

계연이 이렇게 말하며 닭 다리 두 개를 집어 두 아이의 그릇에 하나씩 올려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즉시 교용을 쳐다보았고, 교용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들은 웃는 얼굴로 입가에 기름을 묻히며 맛있게 닭 다리를 뜯어먹었다.

“예, 예. 저희도 먹겠습니다. 어서 식사하자.”

교용이 이렇게 말하자 남은 가족들도 모두 젓가락을 들었다. 식당 안의 분위기는 곧 떠들썩해졌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생기를 더했다.

* * *

깊은 밤, 교씨 집안사람들은 모두 잠이 든 후.

계연과 노염생은 자신들이 묵게 된 객사(客舍)의 뜰에 놓인 돌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고개를 들어 달을 감상했고, 다른 한 사람은 눈을 감고 정신을 수양하고 있었다.

말라 죽은 낙타도 말보다는 크다는 말처럼, 교씨 집안은 가세가 기울었으나 저택만은 남아 있어 이들이 묵을 곳을 내주는 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계연은 달을 감상하던 시선을 내렸고, 노염생도 내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슬쩍 미소 지었다.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동시에 두 사람의 모습이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교씨 저택의 뒤편에는 작은 골목이 맞닿아 있었다. 그곳에서는 교덕이 발끝을 세운 뒤 몸을 살짝 구부린 채로 올빼미처럼 가볍게 담장을 넘었다. 그 과정에서 조금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경공 실력이 대단하군요!”

별안간 온화하고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여겼던 교덕은 깜짝 놀랐다. 그가 얼른 고개를 돌려보니 계연과 노염생이 담장에 기대어 서 있었다.

달빛이 두 사람을 비춘 덕분에 교덕은 두 사람이 미소 짓는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궁금해서 묻는 건데, 만약 선유 대회 기간이 지난 후에 저와 노 선생님이 오지 않았다면 교씨 집안은 어떻게 되나요? 교덕 당신은 어떻게 할 작정이었죠?”

그러자 교덕의 안색이 여러 번 변했다. 곧 고개를 든 교덕이 이를 꽉 물고 대답했다.

“선유 대회 기간이 언제까지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저는 그저 내년 가을 전에 선인께서 방문하지 않으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어르신 일가를 도성에서 빼내야 한다는 것만 알 뿐이지요. 이 넓은 세상 어딘가에는 발붙이고 살 곳이 있겠지요!”

그러자 노염생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이중 세작(*細作: 간첩)일 줄이야, 그래도 충의(忠義)는 있는 자였군!”

그의 말에 교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찬이십니다. 비록 교씨 집안에 해가 되는 일은 한 적이 없으나, 이는 결국에는 어르신에 대한 불충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흥, 원래도 교씨 집안사람이 아니었는데 불충은 무슨 불충? 지금 어딜 가려는 건가? 천사처? 고작 이따위 속임수로 나와 계 선생님을 속이려 하다니?”

노염생이 코웃음 치며 손가락을 구부리자 교덕의 품 안에서 향낭 하나가 빠져나왔다. 노염생이 손으로 향낭을 만져보니 안에는 부적이 들어있는 듯했다.

그러자 교덕이 숨김없이 대답했다.

“두 분께서는 진정한 고인(高人)이시니, 저도 구태여 거짓을 고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천사처에 가는 것이 맞습니다. 어르신께서 겉으로는 한가히 지내시나, 어찌 정말로 바깥의 사정에 신경을 끊고 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정말로 해가 되는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

“하긴, 그렇군요. 다만 내년 가을 전에 우리가 오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깊이 탄식한 계연이 교덕을 향해 말했다.

“가보세요, 하던 일은 마저 해야죠.”

그러자 교덕이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

“저어, 그럼 두 분 선장께서는……?”

그 말에 노염생이 벌컥 화를 냈다.

“당연히 돌아가서 쉬어야지! 며칠 밤낮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다가, 오늘에서야 겨우 배부르게 한 끼 먹어 한창 졸린 와중에 네놈 때문에 자지도 못하고 기다렸으니!”

“하하하, 이제 알겠네요. 노 선생님께 배부른 한 끼는 닭 다리 두 개와 닭 머리 하나, 탕 반 그릇하고 채소 요리 몇 접시 정도군요. 다음번에 제가 대접하게 되면 꼭 참고할게요.”

“뭐라고요? 어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하하하하하……!”

교덕의 귓가에 아직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 계연과 노염생의 모습은 그의 눈앞에서 점차 희미해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교덕이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그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천사처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교용은 채소를 팔러 가지 않고 계연과 노염생을 데리고 곧바로 천사처로 향했다.

대수국에서 무척 중요하게 여겨지는 기구인 천사처는 황궁 바로 옆의 금싸라기 땅에 자리해있었다.

각지의 천사처가 비교적 은밀히 자리한 데 반해, 도성의 천사처는 화려하고 위엄이 넘쳤다.

황궁 바로 옆이니 어차피 일반 백성들은 오지 않는 곳이기도 했고, 황제가 가끔 찾아오기도 하는 곳이니 너무 소박하게 지을 수는 없었다.

천사처의 대문 앞에는 시위 몇 명이 서 있었다. 교용이 등 뒤에 두 사람을 이끌고 다가오자 곧바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거기 서라!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는가? 함부로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어서 물러가라!”

그러자 교용이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두 분 시위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본래 조정의 서진수사(西鎭水師) 제독(*提督: 함대의 사령관)이었던 교용입니다. 후에는 동해로 선문을 찾아 나선 선단의 총령감 정사를 맡았었고, 바다에서 한 선인을 만나 조정으로 돌아왔었지요. 오늘 그 선인께서 약속대로 저를 찾아주셔서, 두 분 선장을 모시고 국사 대인을 뵈러 왔습니다!”

“교용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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