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화. 자는 사람을 깨우려면
“교용이라고?”
“서진 수사 제독?”
“들어본 것 같군!”
“그럼 뒤의 두 분이 선인이십니까?”
천사처에는 기인이 넘쳐났지만 ‘선인’이라 불릴 수 있는 이는 몇 없었다. ‘선사’라고 불리는 다른 이들이 있긴 하지만 이는 존경의 의미에서 붙인 호칭이었고, 대부분은 그저 법사라고 불리는 것이 더 적합한 수준이었다.
“국사 대인께서는 천사처에 계시지 않으니, 내일 다시 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 국사와 대수국 황제는 지금 도성의 성황당에 있지요.”
“예에?”
시위들이 잔뜩 경계하며 그들을 향해 질문하려던 순간, 계연이 노염생을 향해 물었다.
“노 선생님, 어찌 하는 게 좋겠습니까?”
“하하, 오고 가면 귀찮기만 하니 좀 더 빠른 방법을 쓰는 게 낫겠습니다.”
계연과 노염생은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일을 좀 크게 벌여도 괜찮겠다고 결론지은 후였다.
노염생은 그렇게 대답하는 동시에 온몸의 법력을 운용하여 손가락으로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천천히 움직였다. 왼손 손바닥 위에 영문(靈文)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노염생이 지면을 향해 가볍게 손바닥을 뒤집으며 이렇게 소리쳤다.
“대수국 도성의 성황신은 모습을 드러내시오!”
후욱-!
그러자 공기 중에 수면처럼 파문이 일더니, 푸른 연기가 감도는 바람이 불어오며 노염생의 앞에 성황신이 나타났다.
그는 검은 장포를 입고 머리에는 사모(紗帽)를 쓴 채, 신령한 빛을 내뿜으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였다.
성황신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입을 살짝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계연과 노염생을 바라보았다.
도성에 사는 백성들이라면 거의 다 성황당에 가서 향을 올려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비록 성황신의 구체적인 생김새는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성황신의 모습이 어떤지는 대강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그의 몸에서는 신령한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성황신이야!”
“저분이 성황신이시라고?”
“정말 성황신이셔!”
“내가 며칠 전에 성황당에 갔다 왔는데, 성황신께서는 정말 저런 모습이셨어!”
“그런데 성황신께서 왜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셨지?”
“저 선장(仙長)께서 청해오신 것 같았는데…….”
“청, 청했다고?”
시위들은 모두 똑똑히 보았다. 그건 청한 게 아니라 정확히는 불러온 것이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교용도 입을 쩍 벌린 채 경악에 찬 얼굴이었다.
대수국은 작은 나라가 아니었으므로 도성에는 자연히 많은 인구가 살고 있었다. 게다가 대수국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이곳의 성황신은 백성과 황실의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니 도성을 관할하는 성황신의 법력의 깊이는 다른 신령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성황신 자신도 그토록 놀란 것이었다. 그는 조금 전에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컴컴해지며 어지러움을 느꼈고, 곧바로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곳으로 불려오기 직전, 그는 거의 직감적으로 어느 고인(高人)이 구신술을 부렸음을 깨달았다.
평소 머리 숙일 일이 없었던 대수국 도성의 성황신은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워하는 와중에도, 얼른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계연과 노염생을 향해 허리 숙여 읍했다.
“대수국 도성의 성황신 초녕(楚寧)이 두 분 선장을 뵙습니다!”
초녕은 힘껏 동요를 숨기려 했으나 그의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떨림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계연은 예민한 청각으로 그 점을 곧바로 감지했다. 이곳에 오기 전 계연과 노염생이 바라던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음, 초 성황신께서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저와 계 선생님이 그리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여기 시위들이 국사가 성황당에 있다며 다음 날 다시 오라고 하지 뭡니까? 이러다간 내일 와도 못 볼 수도 있겠다 싶어 오늘 꼭 만나봐야겠다고 결심했지요. 하지만 저희는 성황당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적당한 사람을 찾아 말을 전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염생은 평소의 웃음기 어린 얼굴을 거두고 무척 엄숙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를 지켜보던 계연은 선도(仙道)를 닦는 고인(高人)도 말만으로 사람을 열받게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초녕은 노염생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즉시 알아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즉시 성황당으로 돌아가 국사 대인께 아뢰겠습니다. 참, 혹 두 분 선장께서는 성상을 뵙고자 하십니까?”
“그럼 국사께서 이곳에 오실 수 있도록 대신 말을 전해주세요. 예전에 교 정사가 동해에서 만났던 계연이라는 선인이 찾아왔는데, 부디 아직 기억하고 계시길 바란다고요.”
계연은 황제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국사를 청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초녕은 얼른 대답했다.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조금 전에도 저와 그 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으니 분명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이렇게 말한 초녕은 두 사람을 향해 공손히 예를 올렸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그리고 초녕은 한 줄기 환영처럼 변하더니 황궁 외곽을 향해 재빨리 사라졌다.
성황신이 사라지자 노염생이 계연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계 선생님, 이 늙은이가 너무 지나치진 않았습니까?”
“딱 적당한 수준이었어요.”
계연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그 말에 노염생이 웃으며 천사처의 시위들을 바라보자, 그들이 얼른 두 사람을 향해 인사했다.
“두 분 선장, 저희가 감히 진선(眞仙)을 알아보지 못하여 결례를 범했으니,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때, 천사처 안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와 함께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그 소리가 가까워졌고, 곧 법포(法袍)를 입은 세 명의 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천사처에서 수련하던 수사들이었는데, 노염생이 부린 구신술을 감지하고는 깜짝 놀라 곧바로 달려 나온 것이었다. 그들이 나온 순간에는 문앞의 시위들이 두 사람을 향해 공손히 예를 올리고 있었다.
“두 분은 누구십니까?”
수사들은 계연과 노염생에게서 어떤 법력이나 신령한 빛도 감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두 사람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
“선사님들, 조금 전 여기 두 선장께서 성황신을 불러오셨습니다. 성황신께서는 지금 국사 대인께 알리러 가셨고요…….”
시위가 방금 있었던 일을 간추려 말하자, 세 명의 수사들은 노염생이 성황신을 불러왔다는 말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성황신을 부르셨다고? 여기로 말인가?”
세 사람은 약간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다가, 그중 좀 더 나이 든 수사가 별안간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서둘러 계연과 노염생을 향해 예를 올렸다.
“두 분 어르신, 안으로 들어와 차라도 드시면서 국사 대인을 기다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서 드시지요!”
이에 계연이 교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교 공도 저희와 함께 들어가시죠.”
“예, 예!”
* * *
그 시각 대수국 도성의 성황당은 이미 한바탕 난리가 나 있었다. 조금 전까지 성황당 대전(大殿) 안에는 성황신과 황제와 국사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한창 선유 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황제는 선유 대회에 사신을 파견해 함께 참석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국사와 성황신 모두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국사는 나름대로 황제를 설득해보려 했지만, 황제는 고집을 꺾지 않고 기어코 성황당에 와서 성황신에게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성황신 초녕이 곤란한 얼굴로 황제에게 설명하던 순간이었다.
“폐하, 제가 도성의 저승을 오랫동안 관리해 온 만큼, 소식을 얻는 통로가 여러 개 있습니다. 선유 대회는 선도를 닦는 수행자들이 모이는 자리로, 속세의 조정에서…….”
한참 말을 하던 성황신의 법체(法體)가 돌연 희미해지더니, 성황신은 한 줄기 연기가 되어 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아니, 이 무슨?”
국사가 단번에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폐하를 호위해라!”
“어서 폐하를 호위하라!”
“어가를 호위하라! 어서!”
황제의 주위를 시위들이 둘러쌌고, 몸을 숨기고 있던 고수들도 대전 안으로 들어와 어가를 보호했다. 이에 따라 대전 바깥을 지키고 선 시위들도 모두 긴장하기 시작했다.
“국사, 성황신은 어디로 갔나? 혹시 요괴에게 잡혀간 게 아닌가?”
황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국사 문옥통(門玉通)에게 물었다.
만약 노염생이 구신술을 펼치는 것을 직접 보았다면 국사도 그것이 구신술임을 알아볼 수 있었겠지만, 신령이 소환되어 가는 모습은 그로서도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문옥통은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어 즉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폐하, 안심하십시오. 제가 여기 있으니 폐하께서는 무탈하실 겁니다. 모두 경계를 늦추지 마라! 저승의 다른 신령들께서도 함께 폐하를 지킬 수 있도록 현신(現身)해 주십시오!”
그러자 저승의 기관장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고 저승사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성황당의 긴장된 분위기는 한동안 지속되다가 성황신 초녕이 돌아오며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초녕은 성황당 입구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후, 안쪽 대전으로 들어갔다.
“폐하, 국사!”
“성황신이시여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갑자기 어디로 나가셨던 겁니까?”
국사가 이렇게 묻자 초녕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게 아니오, 내가 스스로 나간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소환되었었소!”
“뭐라? 설마 짐이 머무는 도성에 그리 대단한 요물이 나타났단 말인가?”
황제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고 국사의 반응은 그보다 더욱 격렬했다.
“설마…… 구신술입니까?”
그 말에 성황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구신술이었소. 대수국 도성의 성황신인 나를 불러 말을 전하더군.”
“구신술이 무엇인가? 아이고, 국사, 그리고 초 성황신! 자기들끼리만 알지 말고 짐에게도 설명해주게!”
황제가 답답해하자 국사가 정중히 사죄하며 설명했다.
“너무 믿기 어려운 소식이라 신이 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폐하. 구신술은 무척 현묘한 술법으로 세간에 이를 할 수 있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대단한 경지에 오른 이가 아니면 완벽히 배울 수 없는 술법입니다. 게다가 저희 대수국 도성의 성황신을 소환하다니, 저로서는 상대의 실력을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구신술을 펼친 그 선장은 어디에 있나? 무슨 말을 했지? 어찌 이리 빨리 돌아왔고?”
그러자 성황신이 국사를 바라보다가 황제를 향해 이렇게 대답했다.
“선장 두 분이 찾아오셨는데, 구신술을 펼치신 분은 차림새가 남루한 노인이었고, 다른 한 분은 푸른 장삼을 입은 서생처럼 보였습니다. 푸른 장삼을 입은 선장이 바로 동해에서 교용의 선단을 만났던 그 계 선장이십니다. 두 분은 지금 국사를 만나러 천사처에 와 계십니다. 참, 교용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를 찾는다고요? 그럼 무엇 하러 구신술을 쓰신 겁니까?”
국사는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자는 사람을 깨우려면 몸을 몇 번 흔들어주면 되지, 굳이 옆에서 있는 힘껏 북을 치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