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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502화 (502/892)

502화. 엄청난 요괴의 기운

“상고 시기의 신수? 해치라고?”

노염생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아는 게 별로 없어서요, 일단은 국사께 물어보죠. 화폭은 이것 하나뿐인가요?”

문옥통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것 한 부뿐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다른 때에 펼치면 모습이 또 다릅니다. 영기나 법력을 주입하면 반응도 합니다.”

문옥통은 이렇게 말하며 화폭 안으로 영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그림의 색채가 더욱 선명해지며 해치의 모습도 더욱 생동감이 넘치게 변했다.

“크르릉……. 나는 해치다, 감히 나를 방해한 자가 누구냐? 나는 해치다, 감히 나를 방해한 자가 누구냐? 어흥……!”

“보통은 이 두 마디밖에 하지 않습니다.”

문옥통이 계연과 노염생을 향해 이렇게 설명했다. 계연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법안을 열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오른손에 금빛 나는 붉은 깃털을 불러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영기를 한 줄기 불어넣었다. 그러자 삽시간에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의 요기(妖氣)가 치솟았다. 하지만 이 기운은 의식의 차원에 머물러 있어 보통 사람들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노염생은 눈썹을 찌푸린 채 깃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 느끼는 희미한 불안함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계연은 그의 반응을 보고 노염생의 도행이 거원자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치, 이게 무엇인지 아느냐?”

계연은 평온한 목소리로 깃털을 그림 앞에 갖다 댔다. 하지만 그림 속의 신수는 여전히 했던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이에 계연은 깃털을 다시 집어넣으려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문옥통을 향해 말했다.

“법력과 영기를 조금 더 많이 불어넣어 주세요.”

“예!”

문옥통도 어쨌든 진인(眞人)이라 불릴 정도의 경지에 오른 수선자였으므로, 그의 온몸에 법광이 흐르는 동시에 법력과 영기가 끊임없이 화폭으로 흘러 들어갔다.

잠시 후, 두루마리 안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휘두르던 해치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어흥……. 나는 해치다, 감히 나를…….”

그렇게 말하던 해치의 목소리가 뚝 멎었다. 그리고는 전에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동작을 취했다. 해치는 계연이 들고 있는 깃털에 시선을 집중한 채였다.

“하악!”

거친 쇳소리가 섞인 포효가 화폭에서 울려 퍼지자, 국사는 두루마리가 전보다 훨씬 무거워지고 뜨겁게 느껴졌다. 뒤이어 검은 연기가 화폭 바깥으로 뿜어져 나왔다.

“크르르…….”

이번에 해치가 내는 소리는 훨씬 더 낮았으나 사람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훨씬 커졌다.

치지직……!

그때 문옥통의 두 손에서 푸른 연기가 솟아나더니, 문옥통은 자신이 마치 뜨거운 철판을 들고 있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이것이 정말로 뜨거운 철판이었다면 오히려 드는 데에 조금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문옥통은 더는 철판을 지탱할 수가 없어 양팔을 덜덜 떨었다.

‘과연 반응이 있군!’

이렇게 생각한 계연은 노염생에게 말했다.

“노 선생님, 국사 대신 화폭에 영기를 불어 넣어 주세요.”

“네!”

누가 보더라도 국사는 곧 버티지 못할 것 같았으므로, 노염생은 문옥통의 손에서 화폭을 넘겨받았다. 노염생의 손에 들어온 화폭은 훨씬 안정적으로 보였다.

“대체 무슨 힘이 숨겨져 있는지 한번 보자!”

노염생이 계연과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뜻을 주고받은 후 더욱 많은 영기를 불어넣자 화폭 전체가 영험한 빛으로 빛났다. 계연도 그와 마찬가지로 들고 있던 깃털에 더욱 많은 영기를 불어넣었다.

화아앗-!

그러자 푸른 연기가 화폭에서 솟구쳐 오르더니, 한곳에 뭉쳐져 실체 없는 검은 화염이 되었다. 계연이 든 깃털에서도 마찬가지로 실체 없는 금빛 붉은 불길이 치솟았다. 그 둘이 서로 부딪히자 강력한 요풍(妖風)이 불어닥쳤다.

휘이이-! 휘이잉!

대전 안에 별안간 광풍이 불어와 몸의 중심을 잃은 선사들이 허둥거렸다. 하지만 이는 바람 때문이 아니라 너무 큰 두려움을 느낀 탓이었다.

‘이건 요괴의 기운(妖氣)이다! 엄청난 요괴가 뿜어내는 기운이야!’

노염생은 깜짝 놀란 얼굴로 손에 든 두루마리와 계연이 든 깃털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딱딱히 굳은 얼굴의 계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노염생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지금은 무언가 묻기에 적당한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이왕 계연이 자신을 이 자리에 머물도록 했으니, 후에 분명히 설명해 줄 터였다. 아주 일부분이라도 말이다.

계연은 자신이 해치를 신수(神獸)라 칭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지난 생의 기억에 의거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해치에게서는 두려울 정도의 요기(妖氣)가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진룡도 신수인 동시에 따지자면 요괴가 아닌가?

물론 소수의 예외도 있었다. 예를 들면 전설 속의 봉황 같은 종류는 신성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선도(仙道)를 닦는 선수(仙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지금 노염생과 대수국 천사처의 수사들이 느끼기에, 대전 안은 온통 요괴의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 게다가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두려운 기운이었다.

천사처의 수사들은 최소한 자신들의 견식이 얕아서라며 자기 위로라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백성들이 비록 자신을 ‘선사(仙師)’라고 추앙하지만, 사실 수행계에서 자신들은 어떤 대단한 존재도 못 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염생은 달랐다. 그는 수행한 세월도 길고 도행도 높은 수선자로서 만나본 것뿐만 아니라 ‘처리한’ 요괴만 해도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진룡처럼 대단한 요괴도 만나보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만나본 어떤 요괴도 이처럼 대단한 기운을 내뿜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손안에 든 물건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었으므로, 엄청난 요괴의 실체가 나타난 것처럼 하늘을 덮고 해를 가릴 정도의 요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의 기운으로도 이 화폭과 저 깃털은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의 두려운 기세를 내뿜었다.

휘이잉-!

계연은 자신이 기대하는 변화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불어넣는 영기와 법력의 양을 늘렸다. 각기 다른 두 요괴의 기운이 서로 부딪히는 것만으로는 모자랐다.

계연이 멈추지 않으니 노염생도 암묵적으로 계연의 뜻에 따라 영기와 법력을 더욱 많이 불어넣었다.

이 두 어르신의 거침없는 행위 때문에 대전 안의 천사처 수사들은 모두 곤란을 겪고 있었다. 국사인 문옥통은 물론이고 다른 수사들도 이미 평소의 우아하고 속세에서 벗어난 듯한 느긋한 태도를 내던진 후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벽 모퉁이에 몰려서서, 이 엄청난 요괴의 기운에 대항하기 위해 법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 요기가 실질적인 해는 입히지 않는다지만, 수사들은 온몸의 법력을 운용하여 진법을 설치하느라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잠시 후, 계연의 손에 있던 깃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노염생이 든 화폭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두루마리 자체가 규칙적으로 떨렸지만, 화폭을 들고 있던 노염생은 굳이 그 변화를 다스리려고 하지 않았다.

치지직…… 치이익……!

노염생의 손바닥에서 푸른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두루마리가 떨리는 빈도가 더욱 높아졌다. 화폭 안의 해치의 모습 또한 모호해진 상태였다.

“크르릉…… 어흥……! 썩 꺼져라!”

화폭 안의 검은 요기는 순식간에 실체를 갖춘 듯이 검은 화염이 되어 날카로운 발톱 끝에 모여들었다. 곧이어 검은 화염은 화폭 안에서 뻗어 나와 붉은 깃털에서 피어오르는 금빛을 향해 날아갔다.

계연은 오른손으로 깃털을 등 뒤에 숨긴 채 왼손 엄지와 검지, 새끼손가락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천지묘법의 감산인(*撼山印: ‘산을 뒤흔든다’는 뜻의 결인(結印))을 취했다. 그러자 손가락 끝에 번개가 모이더니 벼락처럼 해치의 날카로운 발톱에 맞섰다.

두 힘이 서로 맞닿는 순간, 계연은 질식할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실제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감각일 뿐, 계연이 충분히 맞설 수 있을 정도의 힘이었다.

콰광……!

굉음과 함께 두 힘이 맞닿은 곳에서 파문이 일며 폭발했다. 마치 거대한 암석이 평온한 수면에 던져진 것처럼, 물결이 이리저리 요동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쩌적……!

지지직…… 지이익-!

대전 안에 걸린 휘장이 전부 찢겨 나갔고, 바닥에 깔린 돌은 ‘쩍’하는 소리와 함께 길게 갈라졌다. 심지어는 대들보에도 균열이 생길 정도로, 이 충격은 사방을 향해 퍼져나갔다.

쾅! 콰앙! 쿠웅……!

쿠구구궁……!

대전 안의 창문은 충격으로 전부 활짝 열렸고, 닫혀 있던 대문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다가 부서졌다. 대전 지붕 위의 기왓장마저 그 충격에 날아갈 정도였다.

휘이이이-!

솨아아……!

폭풍 같은 기류가 대전 안쪽에서부터 폭발하듯이 터져 나오자, 건물 주위로 흙먼지가 파도처럼 높게 일었다.

대전에서부터 두세 채 떨어진 한 건물의 뜰에 앉아 있던 황제와 교용은 그 소리에 놀라 전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폐하를 보호하라!”

“어서 폐하가 타신 가마를 호위하라!”

“폐하를 호위하라!”

챙! 챙! 챙!

오늘 여러 번 놀란 시위들이 다시 한번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칼까지 뽑아 들고서 황제와 교용을 세 겹으로 에워쌌다.

“대체 무슨 일이냐?”

“저희도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국사가 있는 대전에 무슨 일이 난 게 아니냐?”

황제가 교용을 한번 쳐다보고는, 교용과 마찬가지로 잔뜩 긴장한 시위들 중 두 사람을 향해 이렇게 명을 내렸다.

“너희가 가서 보고 오너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말이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두 사람이 재빨리 자리를 떠나자, 또 다른 시위 하나가 이렇게 물었다.

“폐하, 저희가 폐하를 호위할 터이니 먼저 이곳을 떠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황제는 벽 너머 대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서두를 필요 없다. 이곳이 안전하지 않다면, 황궁으로 도망쳐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대전 쪽의 큰 소란은 일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황제의 명을 받은 두 명의 시위들은 경공을 이용해 순식간에 천사처 대전에 도착했다. 그들의 시야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마당에 떨어진 나무 창문과 문짝이었다.

대전 안의 모습도 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무공을 닦은 이 특유의 뛰어난 시력으로 살펴보니, 대전 중앙에는 두 선장이 서 있고 국사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뒤쪽 벽에 붙어 서 있었다.

그리고 계연과 노염생을 중심으로 한 바닥에는 전부 금이 가 있었다. 특히 중심에 가까운 곳일수록 균열이 심했는데,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거의 가루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바깥으로 뻗어나간 균열은 마치 나뭇가지가 뻗어나간 모양처럼 벽을 타고 올라가기까지 해, 대전 안 사방 벽에도 금이 가 있었다.

창문 앞에 걸려 있던 휘장도 말아놓은 것이든 풀어놓은 것이든 전부 뜯겨 나가, 노란 천 조각이 눈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창문 위에 바른 창호지는 뜯겨 나갔고, 나무로 된 덧창도 전부 사라져 있었으며 문틀조차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국사 대인, 선사와 선장님들 모두 괜찮으십니까? 성상께서 이쪽에서 일어난 소란을 몹시 염려하시며 저희를 보내 상황을 알아보라고 명하셨습니다. 혹 저희가 도움이 될 일은 없겠습니까?”

시위 하나가 조심스럽게 묻자 문옥통이 즉시 바깥을 향해 대답했다.

“두 분은 돌아가 폐하께 이곳은 아무 일도 없으니 안심하시라고 전해주십시오. 당분간은 이곳에 도움이 필요 없을 테니, 이만 돌아가 보시지요.”

시위들은 서로 눈짓을 교환하며 생각했다.

‘건물이 다 무너지게 생겼는데 아무 일도 없다고?’

하지만 국사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었으므로, 그들은 포권하여 예를 올린 뒤 천천히 뒷걸음질 쳐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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