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03화 (503/892)

503화. 일격을 주고받다

계연과 노염생은 두 힘이 서로 맞부딪치던 순간, 이미 영기와 법력을 거둬들인 상태였다. 이때 두 사람은 엄숙한 표정으로 서로 두루마리와 깃털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염생은 눈을 들어 계연을 바라보다가 그의 왼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계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계연이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니, 조금 저릿한 느낌이 드는 것 외에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뇌겁(雷劫)으로 단련된 손에 이 정도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으므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두 사람이 다시 시선을 돌려 화폭을 바라보니 해치는 이미 원래 모습대로 돌아와 있었다. 이렇게 보니 시장에서 파는 것과 다를 것 없는 그림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때 대수국 국사와 천사처 수사들은 모두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들이 안정을 되찾자 계연이 이렇게 물었다.

“이 두루마리는 어디서 얻으신 건가요?”

문옥통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계연을 향해 다가와 양손을 맞잡고 예를 취했다.

“선장께 아룁니다. 이 그림은 황실 보고(寶庫)에서 직접 찾아낸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비범하다고 여기기만 했는데, 후에 이형방신(移形仿神)의 술법으로 해치의 모습을 따 패를 만들어보니 흉을 피하게 해주고 길한 것을 좇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 것과 같은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형방신술은 선도(仙道)에서 상용되는 묘법으로, 수많은 갈래로 나뉘었다. 하지만 모두 어느 신물(神物) 혹은 살아있는 것을 모방해 그 정수(精髓)를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그 신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럼 대수국의 황족이라면 이 그림의 내력을 알 수 있을까요?”

계연은 이렇게 물으며 동시에 소매 아래로 점괘를 쳐보고 있었다.

그의 물음에 문옥통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아마 모르실 것입니다. 그 그림을 어디에서 얻은 것인지, 혹은 역대 어느 제왕이 남긴 것인지도 모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제가 이것을 얻고 나름대로 조사해보고 폐하께 여쭤보기도 했습니다만,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습니다.”

문옥통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계연의 점괘도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다. 노염생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점괘가 안 나옵니다.”

이렇게 말한 노염생은 다시 한 마디 덧붙였다.

“계 선생님, 다시 한번 시도해볼까요?”

계연은 깊이 한숨을 내쉬더니 깃털을 다시 소매 안으로 집어넣었다.

“아니에요.”

비록 해치의 그림에서 어떤 명확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지만, 두 요기가 맹렬히 부딪치는 순간 계연은 이 깃털의 비범함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아마 최소한 해치와 같은 급의 신수일 것이다.

“예.”

노염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루마리를 다시 잘 말았다. 그의 양 손바닥에는 약간 그을린 흔적이 있었는데, 순식간에 옅어지더니 곧 사라졌다.

“이 화폭에 담긴 것이 해치라면, 그 깃털은 또 어떤 신수의 것입니까?”

노염생이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계연도 숨기는 것 없이 자신의 추측을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저도 추측할 수 있는 건 두 종류뿐이에요. 하나는 금오(*金烏: 태양 안에 산다는 삼족오(三足烏))고, 다른 하나는 필방(*畢方: 다리는 하나고 불을 일으킨다는 신조(神鳥))이에요. 삼족오에 더 가까운 듯하지만, 필방도 깃털 색깔만 빼면 큰 차이는 없어요.”

그러자 노염생은 무의식적으로 두루마리를 바라보았다. 계연이 내뱉은 두 신수의 이름은 그로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실 깃털이 달린 신수(神獸) 혹은 흉수(凶獸)는 그 수가 무척 많았다. 계연은 지난 생에 그저 보통의 회사원이었던 데다가, 전공조차 이공계였기 때문에 역사나 신화에 대해 하는 것이 별로 없어, 그나마 가장 인상이 깊은 것이 금오와 필방 둘이었다.

물론 노염생은 그런 사실을 몰랐으므로 계연의 말에 틀린 점이 있어도 알 수가 없었다. 노염생은 마음속으로 해치, 금오, 필방의 이름을 되뇌며 혹 자신이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 중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노염생은 자신의 이 세 가지 이름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음을 확신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계연과 노염생이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문옥통과 천사처 수사들이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다가왔다.

“두 분 선장 모두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노염생이 그들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소, 괜찮소. 나와 계 선생님이 큰 소란을 피워 여러분이 놀랐겠구려.”

계연이 주위를 둘러본 뒤 국사와 수사들에게 살짝 양손을 맞잡으며 사과했다.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저희가 천사처의 대전을 망가뜨렸으니 부디 양해해 주세요.”

“괜찮습니다! 이런 일로 괘념치 마십시오. 조정에서도 수리할 인력을 금세 파견해 줄 겁니다.”

국사와 수사들은 대전이 망가진 것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을 쓴다 해도 자신들이 어찌 감히 이 두 선장에게 죄를 물을 수 있겠는가? 다만 불쑥 치솟는 호기심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문옥통은 결국 참지 못하고 노염생과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선장, 조금 전 그 요기(妖氣)는 정말 위력이 엄청나더군요. 두 요기가 맞붙었을 때의 그 충격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또 계 선생님의 그 깃털은 어느 신수의 깃털입니까?”

그러자 노염생이 그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떤 일들은, 모르고 있는 게 나을 때도 있소.”

비록 해치와 필방, 금오 모두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으나, 이는 분명히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신수라는 것에 노염생은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또한 이런 미신에 가까운 일은 보통 사람들은 모르는 편이 나았다.

노염생의 눈에 천사처의 수사들은 ‘보통 사람’의 범주 안에 드는 자들이었다.

노염생의 말에 국사를 비롯한 이들은 조금도 이의를 품지 않고 ‘예’하며 고분고분 대답했다. 곁에 있던 계연도 따로 설명할 수고를 덜었으므로 노염생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계연은 이때 국사가 이 그림을 황실 보고에서 얻었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눈을 반짝 빛냈다.

“국사께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만약 제가 보고를 구경해보고 싶다고 한다면, 허락받을 수 있을까요?”

계연은 이미 대수국의 군신(君臣) 모두 반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으므로, 형식상으로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그러자 문옥통은 계연의 예상대로 즉시 단언했다.

“물론입니다, 황상께서도 분명 동의하실 겁니다.”

* * *

한편, 대전을 떠난 두 명의 시위들은 겹겹이 호위들로 둘러싸인 황제가 머무는 곳으로 돌아왔다.

황제는 황궁에 돌아갈 필요 없다며, 이곳이 안전하지 않다면 어딜 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었으나 황제를 모시는 측근들의 행동은 민첩하기 그지없었다.

시위들이 갔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황제가 있는 곳은 이미 금군과 무공 고수들로 포위되어 있다시피 했다. 심지어 이들은 황족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부적으로 된 깃발까지 세우고는 완벽한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두 시위가 돌아온 것을 보고 일동은 모두 깊이 안도했고, 황제도 궁금해하며 물었다.

“어찌 되었느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두 분 선장은 아직 계시느냐? 국사는 괜찮고?”

시위는 서로 한번 눈을 마주 보더니 그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보고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국사와 두 분 선장께서도 모두 무사하십니다. 다만 천사처의 대전이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습니다. 안쪽에서 펼친 어떤 술법으로 인하여 대전 안팎이 모두 부서진 듯합니다. 국사께서는 모두 괜찮다며 먼저 돌아가라 말씀하셨습니다.”

“대체 무슨 술법이라더냐?”

황제가 이렇게 캐묻자 시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국사께서 돌아가라고 명하셔서 저희도 그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다만 오늘 오신 두 분 선장께서 일으키신 듯합니다.”

“짐이 무언가 도와줄 거라도 없던가?”

“국사께서 아무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황제는 대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살짝 한숨을 내쉰 뒤 옆에 있던 태감에게 말했다.

“당장 공부(工部)에 명해 천사처를 수리하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태감은 명을 받고 뒷걸음질 쳐 물러난 뒤 재빨리 사라졌다. 황상께서 기한을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해서, 이 일이 급하지 않은 거라 여기면 안 되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무척 긴급한 일인 것이다.

“친애하는 교 경, 계 선장과 노 선장께서 곧바로 떠나지는 않겠지?”

황제의 물음에 교용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얼굴로 주저하며 대답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선인이 행하는 일을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어찌 추측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그때, 누군가 문옥통이 대전 안에서 다급히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황제도 정신을 번쩍 차리고 그를 기다렸고, 잠시 후 나타난 문옥통이 곧바로 황제에게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폐하! 두 분 선장께서 부디 보고에 한 번 들어가 보게 해달라 긴히 청하셨습니다. 소신이 어찌 대답하면 좋겠습니까?”

황제가 그 말을 듣더니 얼굴 가득히 기뻐하는 기색을 드리우며 다급히 대답했다.

“허한다! 짐이 허락하노라. 들어가 보는 것뿐만 아니라, 선장께서 그 안에서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져가셔도 좋다고 전해라!”

황제에게 있어서도 보물이나 금전은 물론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것도 상황을 가려야 했다. 선인과 연을 맺을 수만 있다면 금산(金山)과 은산(銀山)이 대수겠는가?

이렇게 말한 황제는 문옥통에 가까이 다가가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국사, 짐에게 확실히 말 좀 해주게. 저 두 분 선장의 도행이……?”

황제는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문옥통은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소신이 평생 본 중 가장 뛰어난 분들이시고, 선유 대회에 참석하시더라도 그중 무척 높은 위치실 겁니다.”

그 말에 황제의 웃음이 더욱 환해졌다. 뒤이어 그는 두 분 선장에게 언제 보고에 가고 싶어 하시느냐고 캐물었다. 그로서는 두 선인이 자신의 보고에서 되도록 많은 것을 가져갔으면 했다.

* * *

1시진(2시간) 뒤, 황궁의 천자호(*天字號: 가장 높은 등급) 보고 주위에는 원래 삼엄한 경비를 서던 금군과 고수들이 자리를 비운 채였다. 황제는 국사와 함께 친히 계연과 노염생을 이곳으로 안내했다.

이 거대한 보고는 두꺼운 벽에 견고한 문을 지닌 데다가 각종 부적이 그려져 있었다.

두 명의 정예 시위들이 앞에서 길을 열며 동(銅)으로 주조한 대문에 달린 두 개의 동 자물쇠에 열쇠를 넣었다. 열쇠가 자물쇠에 들어가자 자물쇠 안쪽에서 ‘철컥철컥’ 소리가 한참 나더니 마침내 문이 열렸다.

끼기기긱……!

두 명의 시위들이 대문을 밀자, 금속으로 된 문지도리가 돌아가며 살짝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황제가 손을 뻗으며 두 사람을 이끌었다.

“안으로 드시지요, 보고 안에 있는 어떤 물건이든 마음에 드시는 것이 있다면, 제게 말씀하실 필요 없이 가져가시면 됩니다. 원하시는 만큼 가져가십시오!”

계연과 노염생은 황제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국사는 그들보다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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