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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504화 (504/892)

504화. 금실로 엮은 끈

계연은 시력이 좋지 않아 모든 게 온통 모호하게 보이는 와중에도, 사방이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음을 알았다.

축구장 크기의 반만 한 황궁의 천자호 보고에는 은(銀)으로 된 물건은 들어올 자격도 없었다. 이곳에는 각종 귀중한 보석과 보물이 저장되어 있었고, 대부분은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의 보물 중에는 종류별로 가지런히 분류된 것도 있었고, 금덩이로 만든 산처럼 무작정 쌓아놓은 것들도 있었다.

계연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생을 두 번 살면서도 이 정도로 많은 재물은 처음으로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보고를 보고 자신이 가진 금덩이를 떠올리니, 겨우 그 정도를 엄청난 액수라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계연은 그저 한번 웃으며 바로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그때 마침 국사가 입을 열었다.

“두 분 선장, 그림을 보관하는 바로 저 책장에 해치 그림이 있었습니다.”

국사는 이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이끌고 책장 가까이 다가갔다. 위에는 글씨며 그림이 적힌 두루마리들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고, 책장에는 각각 표식이 되어 있었다.

대가의 이름이나 시기가 적힌 곳도 있었고, ‘작가 미상’이라고 표시된 서책이 가득한 책장도 있었다.

계연이 법안을 열어 아래위로 훑어보니 어떤 특이한 서화도 보이지 않았다. 노염생도 그와 마찬가지로 법안을 이용해 곳곳을 관찰하고 있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눈을 맞추더니 살짝 고개를 저었다.

“다른 곳도 더 둘러보죠.”

“예.”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흩어져 보고 안에서 보물을 찾아다녔다.

보고 바깥에 있던 황제는 마음이 조급했다. 선인들이 진귀한 것을 들고 갈까 봐서가 아니라, 저 두 선인의 마음에 차는 것이 없을까 봐서였다. 아무래도 후자의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

마침내 반각(7~8분)이 지난 후 보고에 들어갔던 세 사람이 나왔다. 한 걸음 뒤에 떨어져 나오던 국사가 황제를 향해 살짝 눈짓하며 고개를 저었다. 두 선장이 아무것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보고를 열어 구경할 수 있게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견문이 크게 넓어졌습니다.”

“이 늙은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많은 금덩이는 처음 보았습니다. 하하, 천하의 재물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는 듯하더군요.”

황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과찬이오’하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무척 조급한 상태였다.

천자호 보고만이 각종 진귀한 보물을 보관한 곳이었기 때문에, 다른 보고는 구태여 보여줄 필요조차 없었다. 선인이 마음에 들어 할 만한 물건은 그림이나 글씨에 가까웠고, 다른 보고에는 오직 금은(金銀)만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도 전혀 모양을 내지 않은 덩어리들뿐이라 볼 가치가 없었다.

“두 분 선장께서 괜찮으시다면, 여기서 식사를 들고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제 교 경의 집에서 그리 풍족히 식사를 드시지 못했을 테니 말입니다. 궁중의 어선(*御膳: 임금에게 올리는 음식)은 솜씨가 썩 괜찮습니다. 어떻습니까?”

“하하, 괜찮습니다. 교씨 집안의 음식도 무척 풍성했습니다. 이 늙은이도 뱃가죽이 빵빵해질 정도로 많이 먹어, 앞으로 10년은 안 먹어도 될 듯합니다.”

계연도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사양하겠습니다.”

‘이를 어쩌지, 이를 어찌하면 좋지?’

두 사람이 곧 떠나려는 듯 보이자, 겉모습과 달리 황제의 속이 바싹 타들어갔다.

그때, 나이 든 태감 하나가 조심스럽게 황제에게 다가가 귀엣말로 속삭였다.

“폐하……. 폐하께서 잊으신 곳이 있습니다. 보고의 보물은 일부일 뿐이고,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전부 어서방(御書房)에 있지 않습니까? 각 궁전에도 있고요…….”

그 말에 황제의 눈이 번뜩였다.

“아, 참참참! 두 분 선장, 이곳 보물은 일부일 뿐이고, 보물 대부분은 모두 궁중에 있습니다. 짐의 어서방에도 무척 많지요, 가서 보시겠습니까?”

그러자 계연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예, 그럼 거기로 가겠습니다!”

황제는 직접 계연과 노염생을 데리고 어서방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국사뿐만 아니라 황제도 직접 그들을 따라 들어와, 그가 생각하기에 값진 물건을 소개해 주었다.

어서방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으나, 진귀한 물건이 적지 않았다. 계연은 법안을 열고 둘러보다가 마침내 서가에 꽂힌 한 두루마리에 시선을 고정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루마리가 아니라 그것을 묶은 금실로 만들어진 끈이었다.

계연은 황제에게 먼저 양해를 구한 후, 서가 앞으로 다가가 두루마리를 가져다 그 끈을 풀었다. 그가 그 끈을 손 위에 올려놓고 자세히 바라보자, 노염생도 계연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이 금실로 엮은 끈에서는 어떤 법광(法光)이나 신령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아주 독특한 특징이 있었다. 노염생도 그것을 알아보고 이렇게 소리쳤다.

“정말 신기한 물건이군요, 오행(五行)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니!”

노염생의 말대로, 이 끈은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았다.

천지만물의 거의 전부는 모두 오행에 속해 있었다. 풀뿌리 하나부터 들짐승, 바람과 벼락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행에 속했다. 오행에 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노염생과 계연이 잘못 보았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 특별한 끈으로 묶여있던 것이니 저 두루마리도 뭔가 특별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 게연은 한쪽에 놓아둔 두루마리를 가져와 천천히 열었다.

하지만 계연과 노염생은 곧 잔뜩 실망하게 되었다. 두루마리 안의 그림은 평범한 풍경화로 위에는 ‘대수산하(大水山河)’라고 적혀있었고 황제의 이름인 초택(楚澤)이 함께 쓰여 있었다. 이 그림에는 아무런 특별한 점이 없는 것이 분명해 보였고,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이 그림을 그린 이가 계연과 노염생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고인(高人)이라는 뜻이었다.

계연은 다시 손에 든 가느다란 끈을 쳐다보며 황제를 향해 물었다.

“폐하, 이 금사(*金絲: 금실) 끈은 어디서 얻으신 겁니까?”

황제는 단 한 번도 그 금색 끈에 대해 주의를 기울인 적이 없었으므로, 그 내력을 알 리가 만무했다. 이에 그는 곁에 서 있던 나이 든 태감에게 물었다.

“공순(龔順), 혹 아는 게 있느냐?”

태감도 실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금실로 엮은 끈 하나 아닌가. 황궁에 얼마나 많은 물건이 있는데, 고작 이런 끈 하나를 그가 기억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황제가 질문한 것이니 어떻게든 대답을 끌어내야 했다. 이에 그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한 발짝 나아가 대답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궁중에는 금사로 만든 끈이 무척 많습니다. 아마 채화태감(*采貨太監: 궁중 내 소모품을 담당하는 태감)이 일정 시기마다 제조처(製造處)에서 가져오는 것으로 압니다. 이 금사 끈도 아마 제조처의 장인이 만들었을 것입니다.”

“제조처?”

그 말에 노염생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웃었다.

“하하, 이 끈은 범인(凡人)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금사로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말한 노염생은 돌연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문옥통을 향해 말했다.

“문 국사, 그 두루마리 좀 다시 한번 보여주시오.”

“예!”

문옥통이 건곤납물술로 소매 속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두 손으로 노염생에게 바쳤다. 계연도 그가 무슨 생각을 떠올린 것인지 눈치채고는 금사 끈을 건넸다.

노염생은 넘겨받은 끈으로 두루마리를 가볍게 몇 바퀴 감은 뒤 묶었다. 그것을 묶었다 하여 무언가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계연과 노염생은 이것이 원래 이런 모습이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랬군, 이 끈은 원래 해치 두루마리를 묶었던 끈이었어.”

원래대로라면 천자호 보고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했으니 떠났어야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계연은 어째서인지 내내 이유 모를 찝찝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금사 끈을 보고 나니 그런 느낌이 싹 사라지고 없었다. 그 말인즉, 이것 외에는 더 찾아볼 가치 있는 물건이 없다는 뜻이었다.

실은 이 해치 그림도 비범한 기운이 서려 있긴 해도 고작해야 부적일 뿐이었고, 그것도 쉽게 기운을 봉할 수 있어 이 끈이 있든 없든 큰 영향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함께 두고 보니, 이 둘은 같은 곳에서 온 게 분명했다.

금사 끈 자체는 법력이 서린 보물이라기보다는 그저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일 뿐이었다. 아마 저 해치 그림을 그린 사람이 손 닿는 대로 가져와 생각 없이 두루마리를 묶은 것 같았다.

계연은 다시 끈을 풀어 그림을 문옥통에게 돌려준 뒤 황제를 향해 물었다.

“폐하, 이 끈을 제가 가지고 가도 되겠습니까?”

이 상황을 보니 저 끈이 무언가 비범한 데가 있는 게 틀림없었지만, 황제 자신이 갖고 있어 봐야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그보다는 두 선인에게 인정을 베푸는 쪽이 더 이득이었다.

“일찍이 말씀드렸다시피, 두 분 선장께서 마음에 드시는 무엇이든 가지셔도 됩니다. 기껏해야 끈 하나일 뿐이니까요.”

“감사합니다, 폐하!”

계연이 황제를 향해 감사의 뜻으로 살짝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그러자 허리를 깊이 숙인 인사가 아닌 간단한 예일 뿐이었는데도, 황제는 저도 모르게 약간 감격했다.

“아닙니다, 선장. 참, 어선방에 저녁 연회를 준비해 놓으라 했는데, 함께 식사를 들고 가지 않겠습니까? 국사, 어찌 생각하는가?”

그러자 문옥통이 즉각 거들었다.

“예, 좋은 생각입니다. 두 분 선장께서도 황궁에 남아 함께 식사를 들고 가시는 게 어떨까요?”

“하하…….”

그들의 모습에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대로 떠나지 않을 테니 두 분 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하지만 궁에서 저녁을 들고 갈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이미 교씨 집안 아이들에게 저번 식사의 답례로 직접 요리를 해주기로 약속을 해서 말입니다.”

노염생은 체면이나 자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등 뒤로 손을 집어넣어 벅벅 긁은 뒤 마찬가지로 거절했다.

“계 선생님께서 직접 요리하신다면 저도 맛을 꼭 보고 싶군요. 자, 그럼 어서 가시지요. 곧 해가 지겠습니다.”

오늘은 많은 일이 일어났고 이미 오후에 접어든 시간이긴 했으나, 해가 지려면 아직 먼 시각이었다. 하지만 노염생은 계연의 요리 솜씨가 무척 궁금했다.

황제와 국사가 동의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계연과 노염생은 이미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황제는 입을 달싹이다가 결국에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계연과 노염생이 떠나자, 황제 근처에 서 있던 교용이 주저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어, 폐하, 소, 소인도 함께 돌아가야겠지요?”

황제가 그 말에 깜짝 놀라더니 교용을 쳐다보았다.

“교 경 아직도 여기에 있었나? 어서 돌아가 보게! 짐 대신 두 분 선장을 잘 대접하도록. 참, 혹 무슨 식재료가 필요하면 어선방에서 가져다 쓰게! 뭐 하나, 손님 기다리지 않게 어서 가보게!”

“예,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교용이 서둘러 떠나자 황제는 남은 이들과 함께 어서방에서 나왔다. 하지만 급히 멀어지는 교용의 뒷모습만 보일 뿐, 계연과 노염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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