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화. 점점 더 알 수 없는 사람
“국사, 짐의 응대가 어떠했는가?”
황제는 어서방 바깥에 서서 교용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옥통에게 물었다.
“아주 적절하여 접대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폐하만큼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잠시 생각하던 문옥통이 이렇게 덧붙였다.
“폐하, 소신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남아서 같이 식사하지 않고?”
문옥통은 깊이 탄식하더니 손에 쥔 해치 두루마리를 만지작거렸다.
“폐하, 이 그림은 저로서는 알 수 없는 거대하고 신비로운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 도행이 부족하여 그 비밀을 감당할 수 없으니, 이 물건은 제가 갖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두 분 선장께 드리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계연과 노염생이 천사처에서 술법을 펼친 후, 문옥통은 사실 두 고인이 이 두루마리를 냉큼 가져가 버리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정통 선도를 수행하는 선장들은 당연히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선장들은 그림을 자신에게 돌려주며, 잘 보관하라고 당부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그림은 자신이 갖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문옥통은 두 사람에게 주는 편이 낫겠다는 결심이 서자마자, 어쩌면 그들은 이미 자신이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걸 미리 알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하, 그리고 두 분 선장께서 부탁하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변영부의 파자산에…….”
* * *
계연이 교씨 집안의 주방에서 한창 요리하던 시각.
도성 천사처의 선사들과 황제의 명을 받은 관리들은 변영부로 떠났고 관리들은 마침 변영부 쪽에서 파견한 이들과 서로 마주칠 수 있었다.
한편, 계연의 음식 준비가 채 끝나지 않았을 때, 문옥통이 교씨 집안에 찾아와 무척 정중한 태도로 해치 그림을 남기고 갔다. 계연은 한창 주방에서 바삐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염생이 나가서 대신 그림을 받았다.
계연의 요리에는 계주의 음식은 물론 현심부 비행선에서 만들었던 생선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금빛 철갑상어는 없었지만, 대추꿀과 계연의 솜씨로 인해 보통의 산천어도 대단한 별미로 탈바꿈했다. 그는 심지어 아이들이 먹기 편하게 요리하는 동안 모든 생선 가시를 제거하기까지 했다.
계연은 그에 더해 천두호 하나를 꺼내 모든 이들에게 아낌없이 따라주었다. 물론 용연향이 들어있는 게 아닌 하얀 천두호였으나, 이 안에 든 술은 영기를 품고 있어 마시는 사람에게 무척 보양이 되는 술이었다.
깊은 밤, 모두가 잠자리에 든 시간이 되자 계연은 객사의 작은 뜰에서 오늘 얻은 금사 끈을 바라보았다. 그의 맞은편에 앉은 노염생은 해치가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 선생님, 이 그림은 선생께서 보관하시는 게 적합할 듯합니다. 다만 이 그림에 대체 무슨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만 알려 주십시오.”
노염생은 두루마리를 계연에게 민 뒤 활짝 펼쳤다. 영기와 법력을 주입하지 않으니 지금은 그저 보통의 그림처럼 보였다. 다만 그 위에 그려진 동물이 약간 기괴하고 흉악하게 생겼다는 것만이 특이했다.
“노 선생님. 제가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저도 대체 이 그림이 무슨 비밀을 품고 있는 건지 몰라요. 해치나 금오, 필방에 대해서도 따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이는 계연으로서도 정말 솔직하게 대답한 것이었다. 지난 생에 계연은 역사나 고전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한 것이 아니니, 계연도 대략적으로만 알 뿐 자세히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노염생이 듣기에는 또 다른 의미로 들렸다.
“알겠습니다. 선생께서 더 말할 수 없으신 듯하니, 이 늙은이는 이만 자러 들어가 보겠습니다. 선생께서도 얼른 주무시지요.”
노염생은 그다지 고집부리지 않고 엉덩이를 툭툭 털어낸 뒤에 시원스레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노염생은 오늘 자신이 상고(上古) 적의 비밀을 대면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에 노염생은 자세히 생각할수록 마음속의 전율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무척 은밀하고 대단한 비밀이 연관된 것이 분명하니, 계 선생이 많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방문을 닫던 순간, 노염생은 문틈 사이로 돌 탁자 앞에 앉아 있는 계연을 바라보았다. 푸른 장삼을 입고 달빛을 받는 계연은 온통 하얀 빛무리로 뒤덮여있었다. 계연은 금사 끈을 들고서 탁자 위의 그림에 시선을 고정한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알면 알수록 점점 더 알 수가 없단 말이지. 계연, 당신은 대체 어디에서 온 사람이지?’
계연은 내력이 불분명한 인물이었지만, 도행이 높고 마음이 맑은 노염생은 계연이 믿을 수 있는 이라는 것을 알았다. 노염생은 계연의 인품은 물론, 계연이 정도(正道)를 걷는 이라는 것을 깊게 신뢰하고 있었다.
계연은 맞은편의 객사에서 노염생이 방문을 닫는 것을 보았다. 노염생 정도의 수선자라면, 문을 닫고 나서 몰래 자신을 감시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 해치 그림은 대체 누가 그린 것이며, 금사 끈은 대체 무엇으로 만든 것일까? 정말로 법기(法器)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대로 가져와 묶은 끈일까?’
계연은 금사로 된 끈을 공중으로 띄운 다음, 법력을 운용해 주위의 영기를 모아 끈으로 불어넣었다. 그러자 금사 끈에서 은은하게 금빛이 흘러나왔으나, 이는 끈의 특수한 재질이 영기에 반응하는 것뿐이었다.
계연의 생각이 전환됨에 따라 공중에 떠 있던 금사 끈에도 각종 변화가 나타났다. 직선에서 곡선으로 변했다가 뱀처럼 구불거리기도 했고, 묶이기도 했다가 다시 풀리기도 했다.
그 상황에 계연은 가만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생각만으로 제어할 수 있으니 무척 편하네. 조금의 오차도 없어.”
사물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어물술(御物術)은 선도를 비롯한 각 수행계에서 기초적으로 가르치는 것이었으나, 그 변화가 가장 다양한 술법이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어검술(*御劍術: 검을 타고 이동하는 등, 검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술법)이 있었다. 어검술은 선도에서도 제대로 된 술법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어 많은 수선자들이 근본으로 삼는 묘법(妙法)이기도 했다.
어물술은 배우기 어렵지 않았으나, 정통하고자 한다면 무척 어려운 술법이기도 했다. 그것을 연마하여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려면, 어물술을 펼치는 자의 도행도 높아야 했고 이용하는 사물도 비범한 것이어야 했다.
그러니 이 금사 끈은 무척 신기한 것이었다. 자신의 생각이 변하는 대로 조금의 오차도 없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튼튼한지 궁금한데.’
이렇게 생각한 계연은 망설이지 않고 양손으로 금사 끈의 양 끝을 쥔 다음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겼다.
계연은 문약한 서생처럼 보였지만, 실은 영기를 흡수하며 신체를 단련한 오기조원(*五氣朝元: 오행(五行)의 다섯 가지 기운이 한곳으로 모이는 도교의 고급 경지)의 경지에 다다른 수선자였다. 게다가 본인이 원한 건 아니었지만 뇌겁에 의해 신체가 단련되기도 하여 계연의 힘은 보통 사람을 훨씬 넘어선 지 오래였다.
기기긱……!
잔뜩 당겨진 끈은 계연의 엄청난 힘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끊어지지 않았다.
계연은 온몸의 법력을 운용해 끈을 당기는 힘을 순식간에 백 배, 천 배로 올렸다.
‘엄청 질기네…….’
파앗-!
계연이 막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순간, 금사 끈이 곧바로 끊어져 버렸다.
‘끊어졌네…… 끊어졌어?’
계연은 얼떨떨한 얼굴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신이 상상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계연은 양손에 하나씩 들린 끈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입가를 비죽이며 생각했다.
‘이제 이를 어쩌지?’
계연이 실험해 볼 겸 끊어진 부분을 서로 갖다 대자, 양 끝이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가 다시 힘을 주어 끈을 당겨보니 전혀 끊긴 부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처음 상태 그대로로 돌아갔다. 법력을 운용해 금사 끈에 대고 느껴보니, 돌아오는 감각이 완전한 한 덩어리였다.
“신기하네!”
계연은 다시 끈을 공중에 떠오르도록 한 다음, 오른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계연의 생각과 연결된 넝쿨검이 즉시 날아와 계연의 손에 잡혔다.
챙-!
척!
검이 뽑히는 맑고 날카로운 소리에 뒤이어, 검이 다시 검집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공중에 떠 있던 금사 끈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중간이 끊긴 것이 아니라 한쪽은 9할 이상의 길이가 남아 있었고 다른 한쪽에 아주 짧은 끈이 남아 있는 형태였다.
계연은 다시 양쪽 손에 끈을 하나씩 쥐고 조심스럽게 갖다 댔다.
선검에 입은 상처는 아물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넝쿨검에 의해 잘린 물건은 잘 붙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양 끝을 갖다 대자 즉시 연결되며 전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정말 신기하네!”
계연은 아래턱을 긁적이며 시선은 끈에 고정한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 잠시 후 계연의 두 눈이 무언가 결정한 것처럼 반짝였다.
계연은 일단 다시 한번 손으로 끈을 두 개로 끊어냈다.
다음 순간, 계연은 살짝 입을 열어 붉은색이 섞인 회색 연기를 짧은 끈 위에 내뿜었다.
삼매진화의 연기가 나타나자, 뜰 안은 어떤 온도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음양의 균형이 단번에 깨지며 영기의 흐름도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침상 위에 누워있던 노염생이 즉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금 전 검명(劍鳴)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은빛이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지금은 마치 하늘을 뒤덮는 불바다가 주위를 뒤덮은 듯했다.
노염생은 방문을 바라보며 도대체 계 선생이 바깥에서 저토록 대단한 어화술(御火術)을 사용해 뭘 하는 걸까 하고 고민했다.
한편 삼매진화의 연기에 휩싸인 끈은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아, 지켜보던 계연은 신기함에 혀를 끌끌 차는 동시에 안심했다.
계연은 곧바로 붉은색과 회색이 섞인 진정한 삼매진화를 내뿜었다.
화아앗!
화염이 끈 위에 닿자마자 금실로 짜인 듯한 가느다란 끈이 금빛 찬란히 빛나기 시작했다.
삼매진화는 무척 위험했지만, 계연이 진화를 다루는 능력은 전보다 훨씬 능수능란해진 상태였다. 이제는 불을 다루면서 다른 술법을 쓸 수도 있었다.
삼매진화로 끈을 그을리는 동시에 계연은 생각만으로 끈을 한계까지 잡아당겼다. 이것이 고무줄이었다면 이미 두께가 가늘게 변했겠지만, 이 끈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있었다 해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잠시 후, 삼매진화를 거둬들인 계연은 당혹감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금빛으로 번쩍이는 것 외에는 어떤 변화도 끈에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자세히 관찰해보니 금빛으로 빛나는 끈의 성질이 완전히 변한 것 같았다. 금실로 한 가닥, 한 가닥 짜인 듯한 매끄러운 느낌이 사라져있었고, 탄력도 많이 줄어 있었다.
‘어…… 다시 붙일 수 있으려나?’
계연이 좀 더 기다란 쪽의 끈을 가져와 금빛으로 빛나는 끈에 대보자, 이번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끝났나?’
“쯧…… 어쩌지…….”
그러다 계연의 마음에 별안간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성질이 변한 끈을 손에 쥐고 다시 한번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법력도 운용해보았으나 끈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 한번 검을 뽑았다.
챙-!
팅……!
넝쿨검이 금빛으로 빛나는 끈 위에 닿는 순간, 두 치(寸) 정도 칼날이 튕겨 나갔다. 비록 계연이 법력도 운용하지 않고, 어떤 검광도 없이 검의(劍意)도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휘두른 검이었다곤 하나, 이것은 넝쿨검이 처음으로 자르지 못한 사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