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09화 (509/892)

509화. 곧 여기서 탈출할 수 있다

“억울합니다, 계 선생님! 저한테 그런 누명을 씌우시다니요! 저희는 그저 멀리 유람을 떠났던 것뿐이에요. 선검은 신묘한 존재인데다, 신첩은 어려서부터 검을 좋아하였습니다. 게다가 선생을 화나게 한 후, 지금까지 이 먼 북경 항주까지 도망쳐 와서 숨어있지 않았습니까? 소씨 집안의 일은 정말로 예상치 못했어요. 신첩이 세외(世外) 동천에 오래 머물다 보니, 속세의 일을 잘 알지 못한답니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 그토록 약할 줄은 정말몰랐어요……. 놀잇배에서의 일은…….”

도사연의 목소리는 여기에서 부드럽고 교태롭게 변했다.

“계 선생님, 보통 사람이 신첩과 하룻밤을 보내는 데에 양기와 원기만 조금 바치면 된다니, 그들에게 이득이 아닌가요?”

그러자 노염생이 참지 못하고 코웃음을 쳤다.

“하, 경망스러운 여우 같으니! 계 선생님, 보아하니 뭘 말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저희는 여기서 이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으니, 백 년 후에 다시 오시지요.”

노염생은 이렇게 말한 뒤 차가운 눈빛으로 도사연을 바라보았다.

“감히 헛짓거리할 생각은 말아라. 설령 구미호가 직접 나선다고 해도 너는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본래 고분고분한 태도로 나가려던 도사연은 노염생이 감히 옥호동천의 어르신을 입에 담는 것을 보고서 즉시 화가 치솟았다.

“빌어먹을 거지 놈! 우리 어르신의 머리카락 하나만으로도 네놈이 벅차하는 꼴을 내가 보았는데 거짓말 말아라!”

노염생은 아예 눈을 감으며 도사연과 더는 말을 섞지 않았다.

“계 선생님, 어르신의 머리카락을 제게 돌려주시지요. 그렇지 않으시면 어르신께서도 언짢아하실 거예요. 저를 꾸짖기만 하시면 다행이지만, 혹여 그분이 계 선생님께서 옥호동천에 적의(敵意)를 가지고 있다 오해라도 하시면 큰일이잖아요? 일전의 일은 정말로 오해였어요, 앞으로는 성질을 누르고 모든 일에 앞서 깊이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사연의 말에는 조금도 믿을 수 있는 구석이 없었다. 계연과 노염생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던 중, 노염생이 이렇게 목소리를 전해왔다.

‘저 성질이 꺾이도록 좀 놔둡시다.’

“산 아래에 갇힌 와중에도 이토록 정신이 또렷한 것을 보니, 선유 대회가 끝난 후에 다시 이야기하죠.”

계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위에서 맑은 바람이 불어오더니 계연과 노염생이 상공으로 떠올랐다.

그러자 금갑 신장이 다시 나타나 상공의 계연이 있는 방향을 향해 예를 올렸고, 산신 석유도도 나타나 그와 마찬가지로 예를 올렸다.

도사연은 계연이 자신을 속이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라 여겼으나, 계속해서 아무런 말이 없자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다 도사연은 곧 자신이 자연스럽고 맑은 마음을 지닌 진선(眞仙) 급의 인물과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들은 구속 없이 자유롭게 노닐며 언행이 일치하는 이들이었다. 그러니 간다고 했다면 진짜로 가는 것이었다.

“계연? 늙은 거지? 계연! 돌아와! 돌아오라고!”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자 화가 난 도사연은 땅에다 대고 주먹을 내리쳤다.

“아악! 성질나 죽겠네!”

선유 대회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예측도 할 수가 없었다. 정식으로 시작한 후 몇 개월 후에 끝날 수도 있었고, 수선자들끼리 도를 논하다 흥이 일어 대회가 수년간 이어지기도 했다.

계연이 떠난 후 화가 잔뜩 난 도사연이 바위 틈새를 바라보자, 그 사이로 초연한 와중에 약간의 멸시가 담긴 두 눈이 보였다. 이에 도사연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 주인에 그 노비로구나.”

한창 분통을 터뜨리던 도사연은 돌연 익숙한 기운을 감지하고서 다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어떤 요사스러운 기운이나 영기가 아니라, 아주 옅지만 순수한 기운이었다.

바로 일전의 그 회색 여우였다. 도사연은 노염생과 이곳에서 맞붙기 전에 술법을 부려 그 여우를 보내버렸었다. 원래는 그 작은 짐승이 스스로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온 것을 보니 꽤 담이 큰 모양이었다.

* * *

태양이 점차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파자산 깊은 곳, 봉인이 걸린 산 아래에서는 희미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달그림자가 물 위에 비치니, 밝은 달빛에 대고 화장을 하는구나. 물속의 달에 손을 대 만져보니, 그 파문이 마치 내 마음 같구나. 외롭고 가슴 아파라…….”

산신은 지하에서 가만히 그 목소리를 들으며 노랫소리가 아름답고 처량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도사연이 노래를 더 부르기도 전에 금갑 역사가 나타나 도사연을 짓누르는 산에 주먹을 날렸다.

콰광……!

끼기긱……!

그러자 산의 봉인이 도사연을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으윽…… 졸개 주제에 감히, 두고 보자! 윽…….”

봉인의 고통은 잠시뿐, 도사연은 가느다란 틈 사이를 바라보며 어둠 속에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 여우의 기척은 이미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그제야 도사연은 자신이 이곳에 갇힌 것을 아무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벗어났다. 자신은 곧 여기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 * *

노염생은 흰 구름을 밟고 바람을 몰며 이동하다가, 파자산 방향을 뒤돌아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여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한 말은 조금도 하지 않는군요.”

그러자 계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 전부 거짓말만 했다고 해서 그 안에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는 건 아니에요. 도사연의 태도는 약간 불안정해 보였어요. 그녀는 지금 옥호동천의 구미호가 자신이 갇힌 걸 아는지 확신할 수 없는 거예요.”

노염생이 잠시 생각해 보더니 계연의 말에 동의했다.

“만약 도사연이 정말 무슨 일을 꾸미고 있고, 그것이 구미호의 뜻에 따른 것이라면, 구미호도 도사연에 갇힌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말한 노염생은 파자산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계연을 향해 물었다.

“그렇다면, 저 여우 혼자 한 짓이라는 거군요?”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직은 결론 짓기 일러요.”

함부로 단언하기엔 계연이 그간 겪어온 괴이한 일이 적지 않았다. 여기는 신선도 요괴도 존재하는 세상인데다가, 세계가 이렇게나 넓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계연 자신조차 의식 속에 천지만물을 품고 있으니 더욱 많은 일을 고려하게 되는 법이었다.

“옥호동천의 팔미호라 함부로 손을 대기가 어렵군요. 그렇지만 않았으면, 삼화(*三華: 인체 내의 정(精), 기(氣), 신(神)을 이름)의 기운을 깎아 내어 이번 생에는 아예 득도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릴 텐데 말입니다. 그럼 그제야 무엇이 진정 대단한 술법인지 알겠지요!”

노염생의 말에 계연은 삼화의 기운을 깎아 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어떻게 깎아 낸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묻기 적당한 때가 아니었으므로, 기억만 해두고 후에 물어볼 참이었다.

그와 동시에 계연은 홀로 생각에 잠겼다.

이 세계는 너무나 넓고, 자신이 모르는 지식과 정보는 아직 너무나 많아 그저 천천히 접하며 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옥호동천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세상의 물길과 네 바다에 사는 진룡들이 그 수역을 실질적으로 다스리듯, 옥호동천도 요괴들에게는 무척 중요한 곳이었다. 비록 정식 문서로 남은 기록은 없지만, 옥호동천은 외부와 일종의 암묵적인 평형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세간에는 절대적인 공평함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노염생도 도사연을 백 년 동안 가둬놓았을 뿐, 옥호동천의 존재 때문에 곧바로 죽이지 못했다. 비록 옥호동천에는 가본 적도 없었지만, 아홉 개의 꼬리가 달린 천호(天狐)의 체면은 지켜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연은 노염생보다 더욱 많은 것을 꺼리며 신경 쓰고 있었다. 계연의 생각은 천 갈래로 뻗어나갔다. 심지어 계연은 육 산군이라는 바둑돌을 써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계 선생님,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노염생은 계연이 오래도록 말을 하지 않자 호기심에 먼저 말을 걸었다.

‘계연은 이 늙은이가 어떻게 삼화의 기운을 깎아 내는지 궁금하지도 않나? 이런 신통한 묘법(妙法)은 바깥에서는 아예 전해지지도 않는데! 아니면 내 말의 뜻을 생각하고 있었나?’

삼화의 기운은 노염생이 부르는 이름일 뿐이고, 사실 삼화는 득도하면 발현되는 것으로 비교적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바로 ‘동현(*洞玄: 도교 경전이 동진(洞眞), 동현, 동신(洞神) 세 부분으로 나눠짐. 수행의 단계를 나타내기도 함)의 현묘함을 엿보는’ 단계인 것이다.

수행자의 근간을 끊어버리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었는데, 경맥을 끊거나 기혈을 망가뜨리거나 원신(*元神: 육체가 만들어지는 동시에 생겨나, 수행을 시작하면 혼백을 주관하는 역할을 함. 사람이 죽은 후 환생하는 근간이 됨)을 훼손하는 등의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삼화의 기운을 깎아 내는 방법에 대해 적혀 있는 선법(仙法)에 관한 서책은 없었다. 그런 기이한 술법은 무척 희귀한 것이었다.

“아, 별일 아니에요. 바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말에 노염생은 입술을 비죽거렸다. 계연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일단은 법보를 제련하는 일 먼저 생각하는 게 좋겠습니다, 계 선생님. 완산 나루터가 요즘 인파가 모여 떠들썩하니 한 번 가서 보시지요. 어쩌면 법보에 녹여 넣기 적당한 토 속성의 영물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요.”

“네, 그리로 가지요!”

두 사람은 구름의 속도를 올려 구봉산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구봉산이 관할하는 완산 나루터는 여전히 떠들썩하고 북적거렸다. 선유 대회가 열리는 기간에는 이곳이 수선자들의 활동하는 범위 내에서 가장 북적이는 시장터일 것이다. 이곳은 인간, 요괴, 정괴, 신령, 수선자 등이 모두 공존하는 곳이었다.

계연과 노염생은 나루터를 천천히 한 바퀴 구경하면서 간판을 매단 상점 곳곳을 들어가 보았으나 적당한 물건을 찾지 못했다. 혹은 노염생이 느끼기에 적당하고 생각되는 물건을 찾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영보헌(靈寶軒)이라는 이름의 상점을 찾았다. 둘은 짧은 마고자에 영패를 차고 있는 한 수선자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다.

“두 분 도우(道友), 상점 안에 금제가 걸려 있으니 영패를 잘 쥐고 계십시오. 저희 영보헌에 얼마 전 무척 희귀한 토 속성 영물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두 분께서 마침 잘 찾아오셨습니다!”

노염생은 남루하고 구멍이 난 옷을 입어 누가 봐도 비렁뱅이처럼 보였으나, 이곳은 수선자가 경영하는 보물 상점인 만큼 차림새로 남을 판단하는 일은 없었다. 영보헌을 관리하는 수선자는 최소한 계연과 노염생 앞에서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척 봐도 도행이 얕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염생이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수행하는 이들 중에서는 이상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사물로 변하는 술법을 연습하다가 나무나 화초, 돌멩이 등으로 변하기도 했으니 옷차림이 조금 이상한 것쯤은 별일도 아니었다.

계연과 노염생은 이렇게 상점가를 돌아다닌 지 꽤 되었으므로, 아직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는 계연과 달리 노염생은 이미 흥이 확 식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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