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화. 두 명으로 모자라면 다섯 명
법전을 잘 갈무리한 노염생은 3층 계단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듣자 하니 이 영보헌은 최근 백 년 사이에 몸집을 불린 수행 세력이라고 하더군요. 어느 선도(仙道)의 성지에도 속하지 않지만, 곳곳에 이런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곳 수선자들은 장사도 잘하지만, 눈썰미가 좋아 기이한 보물을 많이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노염생이 오늘 이곳에 온 것도 그 소문을 듣고 한번 구경하러 와본 것이었다. 정말로 산신옥같이 희귀한 것을 건질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보아하니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영보헌과 같은 신흥 세력은 희귀한 보물을 적잖이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나, 다른 수행 성지에 비해 저력이 부족했다. 이곳이 속세였다면 통통한 양을 탐내는 이리들처럼, 일찍이 다른 세력에 의해 와해 되었을 것이다. 비록 속세에 법이 있다고는 하나, 열 사람이 지켜도 도둑 하나를 못 막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영보헌은 수선계에 자리 잡고 있어 세력을 불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정도(正道)를 걷는 수선자들을 상대하는 만큼, 영보헌이 마음에 들지 않는 수선자들은 기껏해야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 덕분에 영보헌에서도 진정으로 ‘모든 수행자를 위한 편의’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 * *
영보헌의 누각에는 많은 진법이 설치되어있었으므로, 영보헌 관리자가 3층에 오르자 진법에 의해 주위 풍경이 곧바로 그가 가고자 하는 방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꼭 3층에는 방 하나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관리자가 가고자 했던 방은 서적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안에는 긴 수염을 기른 노인이 연탑(*軟榻: 소파와 비슷한 휴식용 가구) 위에 반쯤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관사가 들어왔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주(周) 지사(知事), 제가 보물을 하나 찾았습니다!”
“음, 우리 영보헌에는 툭하면 보물이 들어오는데 무슨 특이한 점이라도 있는가?”
그러자 관리자가 소매 안에서 법전 한 닢을 꺼냈다.
“바로 이것인데 이것을 제련한 수선자는 이걸 법전이라 부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토행(土行) 여의전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듯합니다. 이것으로 토행에 속하는 술법을 펼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안의 심오한 도력을 마음 가는 대로 흩어지지 않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노인은 읽던 서책을 내려놓고 일어나 앉았다. 노인이 손을 구부리자 법전이 관리자의 손을 떠나 노인을 향해 날아갔다.
노인은 원래 한번 보기나 하려는 마음이었으나, 법전을 보면 볼수록 그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노인은 어느새 비딱했던 자세도 고쳐 앉았다.
마침 탁자에는 차 한 잔이 놓여 있었으므로, 노인은 법전을 손에 쥐고 찻잔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찻잔 안의 찻물에 한기가 서리더니, 가느다란 얼음 줄기가 위로 솟구쳤다. 뒤이어 가지가 자라고 잎이 돋아나는 것처럼, 그 위로 푸른 찻잎과 얼음꽃이 달린 나무가 되었다.
“토행은 무슨? 이 법전에는 오행과 음양이 모두 담겨있네! 한마디로 흠결 없이 완벽한 물건이지! 이게 어딜 봐서 법(法)이고 어딜 봐서 돈(錢)인가! 그야말로 ‘도(道)’ 그 자체야!”
노인은 천천히 중얼거리더니 한참 후에 관리자를 향해 물었다.
“이것 한 닢으로 무슨 물건과 바꾸었는가? 그 수선자는 아직 있는가?”
관리자가 얼른 대답했다.
“이것 백 닢과 산신옥을 교환했습니다. 법전을 제련한 도우는 아직 2층에 있습니다.”
“백 닢? 잘했네, 잘했어! 이 물건은 절대 보통 물건이 아니야. 제련하기도 쉽지 않고. 도행이 무척 높아야만 하니, 아마 진선(眞仙)에 가까운 인물이겠지. 얼른 그 도우를 보러 가세!”
“예, 예! 저를 따라오시지요!”
* * *
2층의 계연과 노염생이 찻잔을 비우자 영보헌 관리자가 돌아왔다. 그의 뒤에는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서 있었는데, 관리자보다 도행이 훨씬 더 높아 보였다.
“계 도우, 노 도우, 이분은 완산 나루터의 영보헌을 총관하는 주 지사라고 합니다!”
“두 분 도우를 뵙습니다!”
노인은 먼저 공손한 태도로 계연과 노염생을 향해 인사했다. 상점 안에서는 모든 이를 도우로 칭해야 한다는 규율만 아니었다면, 그는 눈앞의 수선자를 어르신이나 선장(仙長)이라 불렀을 것이다.
그러자 계연과 노염생도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에게 인사한 뒤, 상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영보헌은 총 세 군데에 지점이 있는데, 이 지점들은 108개의 방으로 나뉘어 천강지살(*天罡地煞: 도교에서 천강(天罡)은 북두성(北斗星)에 포함된 36위(位)의 별 또는 신장(神將)을 일컬음. 지살(地煞)은 72위의 흉성(凶星) 또는 흉신(凶神)을 가리킴. 전설에 따르면, 천강지살 총 108가지 별이 함께 움직이며 요괴와 마귀를 물리친다고 함)의 수로 구별됩니다. 영보헌을 관리하는 이들만 해도 36명이 있지요. 저는 그간 많은 보물을 보아왔으나, 계 도우가 제련한 여의 법전처럼 정교하고 신묘한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웃어른이 법력을 봉하여 후대에게 호신용으로 건네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가장 흔한 방식이 부적이나 각종 법기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법전은 그와 달리 무척 특수했다. 공격용 물건도 아니고 방어용 물건도 아니었으며, 주문이 걸려 있지도 않았으나 오행과 음양을 모두 갖추고 갖가지 변화를 일으키며 쓰임새가 무궁무진했다.
주 지사가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더라도, 그는 실은 이 여의법전이 민간에서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만드는 지전(紙錢)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계연도 그 사실을 굳이 말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물론 지전에서 처음으로 영감을 받은 것은 맞으나, 그것 말고는 법전과 지전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주 지사께서 묻고 싶은 게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계연의 말에 주 지사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두 분은 분명 대단한 신통력을 지닌 수선자이시고, 선도의 명문에 몸담고 계시겠지요. 그러니 저희 영보헌 수선자들이 눈에 차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이토록 진귀한 물건은 저와 같은 수선자들에게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만약 계 도우께서 넉넉한 양을 가지고 계시거나, 그 제련 방법을 전수해줄 마음이 있으시다면 부디 저희 영보헌에 알려주십시오.”
노염생은 곁에서 듣고 있다가 말없이 코웃음을 쳤다. 그도 저 지사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법전을 좀 더 얻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만하나, 남의 신통력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은 상대를 언짢게 할 수 있었다. 수행법이나 신통한 술법은 선도의 일맥이 이어져 내려오는 근간이었다. 그런 것은 자기 문하의 사람이라고 해도 쉽게 전수해주지 않는데, 하물며 외부인이면 어떻겠는가?
물론 이렇게 드러내놓고 공손히 묻는 것은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주인의 동의 없이 남의 신통력을 탐내는 것은 엄청난 금기였다. 그래서 예전에 거안소각에서 소유가 수리건곤에 대한 추론을 살짝 읽었을 때, 노염생이 그토록 긴장했던 것이다.
그 말에 계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 법전은 제련하기 쉽지 않고, 저도 얼마간 여유가 있긴 하지만 후에 필요할 때가 있을지 몰라 조금 남겨놔야 해요. 제련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에게도 전수할 생각이 없고요. 게다가 이 법전을 제련하려면 시전자의 정신력과 법력이 무척 중요해요. 방법을 안다고 해서 쉽게 제련해 낼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법전을 백 닢 더 드릴 테니, 그 대신 영보헌의 금(金) 속성 영물들을 주세요. 어떠신가요?”
영보헌의 두 수선자들은 눈을 마주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얼른 물건을 찾으러 갔다.
* * *
계연과 노염생이 영보헌을 나왔을 때는 그로부터 일각(15분)이 지나 있었다. 또한 계연의 손에는 옥패 하나가 들려 있었는데, 그 위에는 영문(靈文)이 가득 조각되어 있었다. 그 위로 휴옥영보(*携玉靈寶: 거래와 관련된 일이 아니어도 후에 영보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옥패)라고 새겨진 글자도 보였다.
“계 선생님, 여의전이 물론 진귀하긴 하나 그렇게 많은 금 속성 영물을 살 수 있는 겁니까?”
“그러니까요. 저분들이 정말 진심이신가 봐요. 그렇다고 제가 다른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저들을 도와 법전만 제련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하하하, 그렇긴 하지요. 어쨌든 이제 오행이 갖춰졌으니 얼른 방법을 논의해 봅시다! 이 늙은이가 일전의 난제를 해결할 방법을 방금 떠올렸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노염생은 계연을 데리고 함께 구름을 타고 날아올랐다.
“예?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계연이 무척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은, 오행 중 단일 영물을 금사 끈에 녹여 넣으면 오행을 고루 갖추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점이었다. 하지만 노염생은 이론과 실제 행동으로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증명했었다.
하지만 노염생과 계연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함께 시도했을 때, 상생하는 두 가지 오행이 금사 끈에 녹아들어 삼매진화 아래에서 잠시간 공존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매진화의 힘이 너무 강력한 탓인지 쉽게 실패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어화술을 사용하면 금사 끈에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막다른 벽에 부딪힌 것은 아니었다. 정 안 되면 오행을 각각 따로 제련하여 합친 다음, 금사 끈과 함께 제련하는 방법이 있었다. 이는 이론상으로는 가능했지만 두 사람은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노염생에게 방법이 있다고 하자 계연도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노염생이 곧 미소 지으며 설명했다.
“하하! 계 선생님, 저희가 처음 함께 시도했을 때, 삼매진화 아래에서는 상생(相生)하는 것들만 안정시킬 수 있었지 않습니까? 만약 선생과 저 같은 인물 다섯 명이 동시에 시도한다면요? 삼매진화는 선생께서 통제하시니, 네 명이 함께 해도 되겠군요.”
“다섯 명이라고요?”
“하하, 맞습니다. 이건 절대 공상이 아닙니다, 계 선생님. 옥회산의 거원자도 그 정도면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자 또한 선생을 무척 존경하니, 절대로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다른 두 사람, 혹은 한 사람은…… 지금 마침 선유 대회 기간이니 설마 진선을 찾기가 그리 어렵겠습니까?”
‘맙소사! 그런 생각을 떠올리다니!’
계연은 노염생이 떠올린 대담한 방법에 혀를 내둘렀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가능성이 높아 보여 흥분되기 시작했다.
‘선하도 쪽에 한 번 물어봐도 되겠지?’
계연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도 늑대 털로 만든 붓이나 취죽(*翠竹: 푸른 대나무) 낚싯대처럼, 법보(法寶) 또는 법기(法器)라고 불릴 만한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통의 제련법으로 만든 것들이 아니라 설렁설렁 필요에 따라 만든 것들이었다. 게다가 그 목적도 무척 단순했으니, 하나는 글을 쓰기 위함이고 하나는 물고기를 낚기 위해서였다.
물론 효력은 둘 다 무척 뛰어났다. 게다가 계연을 따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구(*無垢: 추악함을 떠나 청정함. 곧, 번뇌가 없음)한 계연의 기운에 의해 이 두 물건은 깨끗이 씻겨나가 무척 비범한 물건이 되었다.
그리고 넝쿨 선검 같은 선기(仙器)는 이미 천지의 현묘한 경지에 다다른 사물이었다. 오직 계연의 칙령에 의해 탈바꿈할 기회만이 모자랐던 것이다. 검집과 넝쿨의 기운에 새해의 기운, 여기에 더해서 넝쿨검은 자신을 스스로 단련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지금이 있기까지 넝쿨검 스스로의 노력이 6할, 계연의 덕은 3할, 남은 1할은 좌리가 천하제일 고수가 되기까지 검을 수련했던 세월에 있었다.
그래서 금사 끈을 제련해 법보로 만드는 것은 계연에게는 처음으로 진정한 법보를 만들어보는 시도였다. 끈의 재질이 특수하기까지 하니, 계연이 품은 기대는 자연히 컸고 계연은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