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화. 모두 모이다
노염생의 제안은 얼핏 듣기에는 대담하고 허튼소리처럼 들렸지만, 계연이 생각할수록 지금 자신이 가진 인맥이라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거원자는 분명 동의할 것이었다. 노염생은 비록 거원자가 간신히 자격이 된다는 듯 말했으나, 계연은 그보다 거원자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거원자의 수행은 노염생보다는 못하지만, 대신 연구에 있어서는 거원자가 노염생보다 더욱 뛰어났다. 이전에 계연을 깜짝 놀라게 했던 칙령법에 관해 적힌 옥간도 거원자가 쓴 것이었으니, 법기를 제련하는 것처럼 절차와 형식이 있는 방면에 대해서도 잘 알 것이다.
노염생에 대해서는 따로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계연 자신보다 이 일에 더욱 마음을 쏟고 있었다.
선하도의 명성은 널리 퍼져, 영안현의 성황신조차 들어 알고 있을 정도였다. 진선(眞仙) 정도 되는 인물이 없을 리가 없었지만, 이번 선유 대회에 참가했는지가 문제였다.
만약 선하도에서 진선 혹은 그에 필적하는 인물을 선유 대회에 보냈다면, 계연은 그게 누구든 자신이 법보를 제련하는 일에 참여해줄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이미 4명이 모인 셈이었다.
이 네 사람은 모두 계연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으니, 자연히 신뢰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섯 번째 조력자가 될 만한 적당한 인물이 선유 대회에 있을지, 이를 알 수 없다는 것과 찾는다고 해도 그자를 설득할 수 있을지였다.
그러나 계연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언제든 늙은 용이라는 대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거리가 멀긴 하지만, 응굉와의 교분을 생각해봤을 때 응굉은 자신이 요청하면 반드시 올 것이다.
만약 선하도에서도 거절하고 선유 대회에도 적당한 이가 없다면, 계연에게는 또 다른 대안도 있었다. 바로 체면을 갖다버리고 불인 명왕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었다. 이전에 함께 도를 논하며 서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으니, 법보를 제련하는 자리에도 8할 이상의 확률로 올 것이다.
노염생이 다섯 명이 함께 법보를 제련하자는 제안을 한 짧은 순간에, 계연의 뇌리에는 이토록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 결과 계연은 다섯 명을 모아 법보를 제련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노 선생님의 말씀이 맞아요. 모처럼 대단한 법보를 제련할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그렇습니다! 게다가 금사 끈은 오행에 속하지 않으니, 그런 사물에 음양오행을 불어넣는 자체가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일입니다. 선생님과 저 정도의 수행을 가진 이들도 일생에 이런 기회는 몇 번 없을 겁니다!”
두 사람은 간략히 의견을 나누면서, 더더욱 이 일에 확신을 얻게 되었다. 노염생이 구름을 모는 속도는 저도 모르게 몇 배는 빨라졌고, 그들은 구름을 뚫고 올라가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날았다. 그러다 이들은 마침내 구름 위에 솟은 아홉 좌(座)의 신기루와 같은 산봉우리와 마주쳤다.
“이번 선유 대회는 계 선생님의 법보 때문에 더욱 신묘한 색채가 더 해지겠군요.”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 일은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예, 저희 모두 떠들썩하게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요. 그럼 물어보는 사람들도 적으면 적을수록 좋겠군요…….”
노염생은 무언가 결심한 듯이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정 안되면, 이 늙은이가 체면이고 뭐고 건원종 장교(掌敎)에게 가서 부탁해 보겠습니다!”
그 말에 계연은 놀라워하는 동시에 감동도 받았다. 건원종 장교라면 노염생의 사형일 것이고, 노염생은 이미 따로 나와 제자를 받아들인 상태였다. 비록 노염생이 건원종에 아직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노염생은 무척 체면을 중시하는 성격이었다. 법보를 제련하는 데에 진심이 아니었다면, 그가 자신의 사형에게 부탁하러 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만약 인원이 모자라면 대정국으로 소식을 보내 통천강 용왕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돼요. 아니, 지금 바로 소식을 전하죠, 어차피 법보를 제련하려면 2, 3일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품 안에서 작은 종이학을 꺼내 손가락으로 살짝 눌렀다. 그런 후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넝쿨검 위에 종이학을 올렸다.
“얼른 갔다 얼른 돌아오렴.”
우웅……!
선검은 살짝 검신을 떤 뒤, ‘솨앗!’하는 소리와 함께 한 줄기 빛이 되어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노염생은 이를 보고는 이마를 내리치며 말했다.
“아, 그렇지! 이 늙은이가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습니다. 계 선생님과 용왕께서는 둘도 없는 친우셨지요. 선생께서 부탁만 하시면 분명 오실 겁니다! 그럼 벌써 네 명이네요! 자자, 그럼 어서 구봉 동천으로 가십시다, 하하하하…….”
노염생의 호탕한 웃음소리는 광활한 구름 위 하늘에 울려 퍼졌다. 마침 구봉산 수선자가 모는 나뭇잎으로 된 나룻배 몇 척은 초대받은 수선자들을 태우고 구봉 동천으로 향하던 참이었다. 그들은 노염생의 웃음소리를 듣고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오색구름 위로 흰 구름 하나가 표표히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겉보기와 달리 실제 속도는 무척 빨랐다. 구름 위에는 푸른 장삼을 입은 수선자가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뒷짐을 지고 서 있었고, 그 옆에 남루한 옷을 입은 노인이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띠고 있었다. 보아하니 웃음소리는 그 노인의 것인 듯했다.
“하하하하하……!”
눈 깜짝할 사이에 흰 구름은 그들 근처로 거리를 좁히더니 삽시간에 구봉산과 외부 세계를 가르는 진법 안으로 섞여 들어갔다. 그리고는 진법 너머 보이는 한 머나먼 봉우리를 향해 날아가더니 마침내 수선자들의 시선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중 한 나룻배 위에는 선유 대회에 처음 초대받는 선문에서 온 10여 명의 수선자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 참석하게 된 것에 대해 무척 감격한 상태였는데, 지금은 더욱 흥분한 상태였다.
“과연 선유 대회로군, 고인(高人)이 무수히 많구나!”
그 선문에 속한 한 나이 많은 수선자가 이렇게 감탄하자, 주위의 다른 이들이 저마다 동의하며 그의 말을 거들었다.
* * *
노염생과 계연이 구름을 몰고 향한 곳은 옥죽원이었다.
과연 둘의 예상대로 거원자를 설득하는 것은 무척 쉬웠다. 계연이 그저 법보를 제련하는 데에 도움이 필요하다며 운을 떼었을 뿐인데 곧바로 승낙한 것이다.
그 후 노염생과 계연은 거원자에게 자신들의 계획과 생각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내내 담담한 얼굴이던 거원자는 그들이 제련할 것이 어떤 법보인지에 대해 들은 후, 즉시 흥미가 당기는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그는 옥죽원에서 기다리지 못하겠다며, 두 사람을 따라 다른 도우를 방문하러 향했다.
거원자가 이 일을 승낙한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계연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둘째로는 그들이 제련할 법보에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었는데, 그보다는 제련 과정 자체에 더욱 흥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조금 더 현실적이었다. 이를 통해 다른 고인들과 교류하는 것이 옥회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계 선생님, 선하도에 먼저 가보신다고요? 선하도와 교분이 있으십니까?”
거원자가 호기심이 들어 이렇게 물었다. 예전에 계 선생께서 자신에게 선하도에 관해 물었을 때는 선하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어 보였었기 때문이다.
“음, 몇 년 전에 한번 연이 닿은 적이 있어요.”
노염생은 약간 눈썹을 찡그리며,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계 선생님. 선하도 수선자들은 자부심이 높아서, 그저 일면식이 있을 뿐이라면 구태여 가서 물어보지 않는 게 낫겠습니다.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다면 괜히 저희가 법보를 제련한다는 소식만 알리게 되는 셈이니까요.”
“일단 가서 물어나 보죠!”
세 사람이 선래봉을 담당하는 구봉산 수선자를 찾아 물어보니, 선하도 일행은 반나절 전에 도착했다는 소식과 더불어 그들이 묵는 곳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에 세 사람은 바로 구름을 몰아 선하도 수선자들이 머무는 운하원(云霞苑)으로 향했다.
* * *
선래봉은 구봉산의 아홉 봉우리 중 하나로 그 크기가 엄청났다. 세 사람은 봉우리를 빙 돌아 높은 절벽에 자리 잡은 운하원을 발견했다. 운하원 주위로는 오색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계연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운하원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선하도 도우분들,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계연입니다!”
잠시 후 찬란한 노을빛 한 줄기가 날아왔다. 그 위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상역이었다.
“계 선생님과 두 분 고인께서 방문해주셨군요, 어서 오십시오! 축 사백(*師伯: 사부의 사형)께서는 구봉산 장교를 뵈러 가셨습니다. 안 그래도 사백께서 계 선생님을 뵙고 싶어 하셨었는데, 먼저 방문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상역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과 감정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노염생은 거원자를 바라보며 그와 상역이 계연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겨우 일면식이 있는 관계라니?’
계연을 비롯한 세 사람이 구름 위에서 내려서자, 선하도의 다른 수선자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그중에는 계연이 예전에 만났던 장로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무척 친근한 태도로 다가와 계연에게 인사했다. 또한 그때 계연과 함께 요마를 무찔렀던 수선자들도 몇몇 보였는데, 그들도 마찬가지로 계연을 향해 정중히 예를 올렸다.
운하원의 한 응접실 안에서 상역은 친히 손님들을 위해 차를 우렸다.
“자, 어서 드시지요. 이건 저희 선하도의 운무영차(雲霧靈茶)입니다! 이미 축 사백께 계 선생께서 오셨다고 소식을 전했으니, 금방 오실 겁니다!”
“서두르실 필요 없어요.”
상역이 이토록 친근한 태도로 나오자 계연도 사려 깊은 태도로 대답했고, 노염생과 거원자도 미소 지으며 상역이 접대한 차를 마셨다.
그로부터 채 일각(15분)이 지나기도 전에, 멀리서부터 노을빛 한 줄기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그 위에 탄 상대의 모습이 보이기도 전에 이미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 선생님 아직 계십니까?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상대의 모습이 마치 환상처럼 순식간에 문가에 나타났다. 그는 우람한 체격에 단정한 얼굴을 지녔으며, 머리는 깔끔히 틀어 올리고 짧은 수염을 기른 채였다.
그는 실내를 한번 쓱 훑더니 계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안녕하십니까, 계 선생님. 저는 선하도 수사인 축청도(祝聽濤)라고 합니다. 이번에 선유 대회에 온 것도 오로지 선생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였습니다. 일검에 하늘을 무너뜨려 요마들을 놀라 죽게 하셨다니, 그놈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광경을 보지 못한 것이 내내 한스러웠습니다!”
상역을 제외한 선하도 수사들에게 있어 계연의 인상은 그 천경검세와 떼려야 뗄 수 없게 깊이 인식되어 있었다.
노염생은 ‘일검에 하늘을 무너뜨렸다’는 말에 큰 호기심을 느꼈으나 입으로는 그저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보아하니 네 명은 모았군요.”
“네 명을 모았다니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도우?”
축청도가 노염생에게 이렇게 물었으나, 노염생은 그를 향해 씩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고 계연을 향해 말했다.
“계 선생님, 용왕께서는 반드시 오실 테니 이 일은 이대로 정해진 것 같군요.”
그 말에 계연도 웃으며 축청도를 향해 인사한 다음, 그의 도움이 필요한 일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축 도우, 다름이 아니라 제가 도우께 상의할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반각(半刻) 후, 이야기를 들은 축청도의 표정이 볼만하게 변했다.
“대단한 계획입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이런 일에 제가 빠질 수는 없겠지요!”
노염생은 역시 예상대로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물었다.
“응 용왕께서는 어쨌든 요족이신데, 선유 대회 기간에 구봉산에서 출입을 허가해 주겠습니까?”
그가 이렇게 묻자 흥이 오른 축청도가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뭐라고! 저희가 이름을 내걸고 보증하면 구봉산에서 설마 그 정도 체면도 안 세워주겠습니까? 정 안 되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되지요! 선유 대회는 참가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