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13화 (513/892)

513화. 각자 한 속성의 영물을 담당하다

축청도의 성격은 계연이 보아온 수선자들 중에서도 꽤 독특한 편에 속했다. 계연 자신을 포함하여 수선자들 대부분의 성격은 온화한 편에 속했다. 마음에 별다른 파문이 일지 않기 때문이었다. 축청도의 성격은 불같다거나 충동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계연이 느끼기에 무척 ‘열정적’이었다. 그가 가진 이름(聽濤: 청도, 파도 소리를 듣다)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노염생과 계연은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천천히 설명했다. 축청도는 이를 통해 계연과 좋은 관계를 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도 이 일에 무척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당장 참여하기로 했다.

세상에 죽지 않는 방법은 없지만, 장생(張生)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축청도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수명이 길어지고 풍부한 견식이 생기면서 모든 일에 초연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므로 이번 일처럼 축청도나 거원자, 노염생 같은 고인들의 흥미를 일으키는 일은 거의 접하기가 어려웠다.

“일단은 준비 작업으로 오행의 영물을 먼저 제련하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 운하원에서 바로 착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축청도의 의견에는 다른 세 사람도 이견이 없었다. 이왕 함께 법기를 제련하러 모인 이들이니, 계연은 그들을 믿고 재료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네 사람은 장소도 바꾸지 않고 운하원의 응접실을 잠시 폐관하여 제련하기로 했다. 선하도의 다른 수선자들은 바깥에서 진법을 쳤다.

중요한 역할을 맡은 금사 끈을 처음 본 거원자와 축청도는 혀를 차며 신기해했다. 그런 후에는 준비된 오행 영물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계연은 그들에게 삼매진화와 칙령 뇌주를 잠시 보여준 뒤 곧바로 거둬들였다. 삼매진화는 이미 그 힘이 극치에 달해 따로 제련할 필요가 없었고, 뇌주는 적당한 통제가 필요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손을 거쳐야 할 것은 유리 바다의 금빛 철갑상어의 비늘과 산신옥, 법력으로 제련한 명주실과 기타 금(金) 속성의 영물들이었다.

“저, 계 선생님. 금 속성에 속하는 저 명주실은 약간 수준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한 무더기 쌓인 금 속성의 영물 중, 투명하게 반짝이는 명주실 한 줌은 무척 눈에 띄었다. 너무 일반적으로 보인다는 뜻이었다. 이에 노염생이 그것을 손에 쥐고 의혹 어린 눈길로 물었다.

축청도는 눈썹을 살짝 찌푸린 뒤 명주실을 집어와 살펴보았다.

“아니! 이건 보통 물건이 아닙니다!”

거원자도 끝부분을 찾아 살짝 뽑아내어 자세히 관찰하더니 말했다.

“맞습니다, 이 명주실은 아주 특별한 물건입니다!”

거원자는 왼손으로 명주실을 쥔 뒤, 오른손으로 세 가지 수인(*手印: 주문을 욀 때, 두 손의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여러 가지 모양) 연이어 취하며 검지로 명주실을 쓱 훑었다.

솨앗!

금빛 법광(法光) 한 줄기가 반짝이며 스치자, 명주실에서 금빛이 터져 나왔다. 그에 더해 작은 글자들이 공중에 떠올라 명주실에서 한 뼘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흐르듯 움직였다.

수많은 작은 글자들은 척 보기에도 비범했으며 현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거원자도 칙령술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를 보자마자 이해했다.

“아주 정교하고 신묘한 법령(*法令: 글자로 남기는 술법)입니다, 어쩐지 이런 모습이더라니!”

거원자가 시험 삼아 가볍게 잡아당기자, 그의 예측대로 명주실은 자유자재로 길이가 늘어났다.

“과연! 계 선생님께서 낚싯대에 쓰는 낚싯줄도 이것이지요?”

물론 유리 바다에 사는 금빛 철갑상어를 먹어본 사람답게 거원자는 계연이 가진 특이한 낚싯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바로 그것 덕분에 진귀한 물고기를 낚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니 말이다.

경현해각에서는 사전에 말했던 대로, 계연이 그 철갑상어를 낚은 뒤에도 따로 무언가 요구하지 않았었다. 다만 어떤 이가 그 철갑상어를 맛보고 싶어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을 뿐이었다.

실은 거원자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명주실에 빽빽이 적힌 법령은 노염생과 축청도의 법안에도 보였다. 그들도 거원자와 마찬가지로 이 영물의 현묘함을 눈치챘고, 빽빽한 법령 안에 칙령의 힘이 깃든 것도 알고 있었다.

“예, 바로 그 낚싯줄이에요. 끈 형태의 법보는 무척 보기 드물잖아요. 속세에서는 끈을 무언가를 묶는 데에 쓰고요. 그러니 길이가 늘어나면 무척 유용하겠죠.”

계연은 명주실 한쪽 끝을 집어 들고서 가볍게 늘였다.

“이 낚싯줄의 원래 재료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끝없이 늘어나는 특별한 기능이 있죠. 예전에 낚시를 즐겨할 때 일부러 이런 낚싯줄을 만들었었어요. 이건 금사 끈과 함께 법보의 ‘골격’이 되어줄 거예요.”

노염생은 눈빛을 빛내며 다른 금 속성 영물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그 명주실은 없어서는 안 되겠군요. 하지만 오행의 평형을 맞추기 위해, 질을 올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금 속성 영물들을 모두 명주실 안에 녹여 넣죠!”

금 속성 영물을 명주실에 녹여 넣는다니.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게 무슨 탕국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제련할 때 그렇게 뚝딱 무언가를 넣을 수는 없었다.

금 속성의 영물은 무척 단단하고 날카롭지만, 또한 가장 안정적이었다. 일반적으로 법보를 제련할 때는 이용할 재료와 방법에 대해 무척 까다로운 편이었다. 보통은 좋은 재료가 지닌 본질적인 이점들을 합치기 위해 신묘한 술법을 이용하여 법보를 제련했다. 하지만 금 속성 영물 특유의 안정성을 깨고 다른 물건과 합친다는 것은 이 자리의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과정의 어려움은 둘째치더라도 아무도 그런 생각은 떠올리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네 명은 일반적인 수선자가 아니었으므로, 노염생이 이렇게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럽시다. 이 명주실은 뺄 수가 없으니 다른 영물을 이용해 질을 끌어 올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축청도가 동의하자 거원자도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른 영물을 명주실에 녹여내는 과정은 제가 주도하겠습니다. 옥회산은 그 이름과 마찬가지로(옥(玉)은 오행 중 금에 속함) 금 속성 영물과 친숙한 편입니다. 계 선생님은 삼매진화를 통제하시고, 두 분 도우께서는 저를 도와 함께 다른 영물을 명주실에 녹여보죠!”

“네!”

“도우의 말대로 하지요!”

“좋습니다!”

세 사람은 거원자의 말에 즉각 동의했다. 그들은 이 과정에 더 깊이 참여하고자 각자 오행의 하나씩 담당하여 제련하기로 했다. 삼매진화는 가장 중요한 촉매제이자 이미 그 자체로도 완벽해서 따로 제련할 필요가 없었다. 삼매진화는 계연에게 속한 것이나 마찬가지니 남은 네 가지 속성은 네 사람이 하나씩 맡기로 했다.

거원자는 옥회산의 고인(高人)답게 오행 중 금을 맡고, 노염생은 토(土) 속성 술법에 능했으므로 토를 맡기로 했다. 축청도와 늙은 용은 모두 물과 구름, 벼락을 다루는 데에 능했다. 그러니 이들은 목(木)과 수(水) 중 하나씩 고르면 될 듯했다.

사실 제련에 참여하는 모두는 높은 경지에 오른 수선자들로서 오행 중 가장 친숙한 것을 고른 것뿐이지, 실상 이들은 어떤 속성도 다른 것에 비해 많이 떨어지진 않았다. 계연을 제외하고 말이다.

네 사람은 사각형 모양으로 둘러앉은 뒤, 중앙에는 명주실과 다른 금 속성 영물만을 남겨 놓았다.

계연은 두 손으로 결인하며 천지화생을 펼치기 시작했고, 곧 거대한 단로의 허상이 네 사람의 눈앞에 나타났다.

단로 안에는 무시무시한 진화가 이글거리고 있었는데, 온 하늘을 뒤덮어 불바다를 만들어 버릴 듯한 기세였다.

“계 선생님, 이 운하원은 저희 선하도 수사들이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그러니 어디가 타지 않게 부디 조심해 주십시오…….”

삼매진화의 위력을 느낀 축청도가 염려하는 마음에 이렇게 말하자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안심하세요, 축 도우. 조심할게요.”

그때, 계연의 의식 세계 속에 놓인 거대한 단로의 뚜껑이 천천히 위로 솟아올랐다. 활활 타오르는 잿빛을 띤 붉은 불길이 네 사람의 법안에 들어왔다. 계연은 천천히 입을 열어 중앙에 놓인 금 속성 영물을 향해 삼매진화를 내뿜었다.

다른 세 사람이 얼른 법력을 운용하기 시작하자, 법광이 네 사람의 가운데를 감싸며 삼매진화의 위력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았다. 그와 동시에 세 사람은 법력이 소모되는 속도에 깜짝 놀랐다.

이때, 옥죽원 바깥에서 진법을 펼치던 선하도 제자들은 모두 일종의 환각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늘을 뒤덮을 기세의 불바다에 서 있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 열기에 온몸이 탈 듯이 뜨거워 버티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에 제자들은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상역과 장로 하나가 제때 제자들의 이상을 눈치챘고, 상역이 곧바로 전음(傳音)을 통해 이들에게 경고했다.

“선하도 제자들은 들어라. 마음을 단단히 지키는 데에 집중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도록 하라. 응접실 안의 상황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신(*元神: 육체가 만들어지는 동시에 생겨나, 수행을 시작하면 혼백을 주관하는 역할을 함. 사람이 죽은 후 환생하는 근간이 됨)에 손상을 입거나 심하면 주화입마(*走火入魔: 심리적인 원인 등으로 인해 몸속의 기가 뒤틀려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상역의 말에 선하도 제자들이 얼른 정신을 부여잡았다. 네 명의 고인이 모여 폐관하고 있으니 호기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마음이 어느 정도 그쪽에 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이 이끌린 끝에, 계연의 의식 세계 속에서 단로가 열리자 삼매진화의 열기가 솟구쳐 하마터면 이들은 다칠 뻔했던 것이다.

겹겹이 금제로 보호된 응접실 안에서는 삼매진화가 황금과 백은 등의 금 속성 영물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액체로 녹여버렸다.

거원자가 온 정신을 집중한 채로 입으로 무어라 주문을 외우자 칙령의 금빛 문자가 떠올랐다. 뒤이어 그는 두 손으로 계속해서 결인하며 영물이 녹은 액체를 무수히 많은 가느다란 가닥으로 나누었다. 그것은 중앙에 명주실 한 갈래를 감싼 채 소용돌이치며 주위를 회전했다. 그렇게 3만 6천 번을 돌 때마다 금색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

명주실을 강화하는 과정은 무척 느리게 진행될 것이지만 네 사람은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식사로 치면 이는 그저 전채(前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진짜로 법보를 제련하려면 아마도 수년이 걸릴 것이다.

* * *

열흘 후, 대정국 통천강 위에 한 줄기 검광(劍光)이 맞바람을 뚫고 날아왔다. 넝쿨검은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은 채 곧바로 수면 안으로 꽂혀 들어갔고, 주위로는 물보라조차 일지 않았다.

그러자 용궁 안에서 기보(*棋譜: 바둑을 두었던 수순을 기록한 것)를 펴놓고 한창 홀로 바둑을 두던 늙은 용이 표정을 달리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예리한 검의(劍意)와 그 안에 담긴 봄의 따사로운 기운은 넝쿨검이 분명했다.

‘계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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