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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514화 (514/892)

514화. 진화(眞火)가 하늘을 뒤덮다

늙은 용은 물살을 움직여 순식간에 밖으로 나갔고, 그는 마침 이쪽을 향해 오던 넝쿨검과 마주쳤다.

넝쿨검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으나 칼자루 위에 자그마한 종이학이 붙어있었다. 종이학은 혹여나 떨어질까 봐서 두 날개로 칼자루를 꽉 감싼 채 작은 머리를 착 붙이고 있었다. 선검이 멈추자 종이학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호기심 어린 표정을 한 늙은 용을 바라보았다.

그를 보자마자 종이학은 날개를 활짝 펴고서 물살을 가르며 늙은 용 앞으로 날아왔다. 그러자 응굉이 오른손을 뻗어 종이학이 손 위에 앉을 수 있도록 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종이학을 한번 툭 치자, 계연이 보낸 말이 응굉에게 전해졌다.

“다섯 명이 함께 모여 법보를 제련할 생각이라고? 오행에 속하지 않는 것에 음양오행을 불어넣는다라……. 각자 오행 중 하나를 맡아서 말이지…….”

늙은 용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동시에 재미있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단한 포부로군! 이 법보가 만들어지기만 하면 상대를 속박하는 데에 특화된 보물이 나오겠구먼! 하지만 지금 한창 선유 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내가 갔다가 괜히 욕이나 먹는 것 아닐까? 그렇다고 이런 일에 내가 빠져야 하나?”

늙은 용은 곧 결단을 내린 후, 종이학을 다시 칼자루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주었다.

“너희는 일단 돌아가거라. 내 몇 마디 남길 말이 있으니 곧바로 따라가마!”

종이학은 영특하게 머리를 끄덕인 후 칼자루를 끌어안았다. 다음 순간, 희미한 검명(劍鳴)과 함께 검광이 다시 한번 번쩍이며 수면을 뚫고 상공으로 솟구쳤다.

선검이 종이학을 데리고 떠나자, 늙은 용이 애써 유지하던 미소가 단번에 사라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용궁 쪽을 바라보았다. 비록 몇 마디 당부할 것이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의 아들딸들은 모두 동해 어느 작은 섬 아래의 용궁에 가 있었다. 그들의 모친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늙은 용은 사실 이곳에 홀로 있었다.

“에휴…….”

그는 깊이 한숨을 내쉰 뒤 뒤쪽에 선 야차를 쳐다보았다. 야차는 용왕이 자신을 쳐다보자 얼른 앞으로 나아가 예를 올렸다.

“무슨 분부가 있으십니까?”

“그래. 방금 계연이 선검으로 소식을 전해왔는데, 급한 일이 있어 내가 가 봐야 할 것 같다. 금방은 돌아오지 못할 것 같으니, 약리와 풍이가 돌아오면 알려주거라.”

“예!”

야차는 이렇게 대답한 뒤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용왕님, 만약 응풍 전하와 강신마마께서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으시면 어찌해야 합니까? 두 분께서 용왕님과 계 선생님의 안위를 걱정하실 듯합니다.”

늙은 용은 야차가 이번 일이 위험한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잠시 생각한 뒤 어느 정도는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아 이렇게 대답했다.

“위험한 일은 아니다. 계연이 무슨 대단한 법보를 제련하려 한다는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여 도와주러 가는 것이다.”

이 야차는 예전에 계연에게 물고기를 잡아다 주었던 그자였다. 지금은 야차 통령 중 하나가 되어 있을 정도로 무척 영민한 자였다. 그는 늙은 용의 말을 듣고 그제야 안심한 뒤 이렇게 물었다.

“혹시 무언가 준비하실 게 있으십니까?”

“아무것도 필요 없다. 계연이 대체 어떻게 법기를 제련할지 궁금하니 나는 서둘러 가봐야겠다.”

응굉이 말을 끝낸 순간, 야차는 주위에 용의 기운이 크게 치솟더니 용궁 안의 물살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용왕의 종적도 찾을 수 없었다.

한편, 통천강 수면 위에서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물보라가 솟구쳤다. 거대한 파도는 강 양쪽으로 퍼져나가다 마침내 기세가 누그러든 채로 기슭에 부딪혔다. 한편 상공에서는 투명한 용의 형체가 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수백 장(丈) 길이의 거대한 용은 바람과 벼락을 거느리며 날아올랐다. 용이 지난 곳마다 먹구름이 모여들며 번개가 번쩍였다. 그러나 그가 구름층을 뚫고 높이 날수록, 하늘 아래의 이상 현상은 점차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흥-!”

용의 포효가 구천에 울려 퍼지자 상공에 부는 바람조차 그 위력에 찢겨나갈 정도였다.

* * *

구봉산 선래봉의 운하원은 여러 겹의 금제(禁制)로 둘러쳐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여 일이 지나자 운하원 바깥으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운하원 주위의 안개구름은 시종일관 일출과 일몰의 빛처럼 붉은빛을 띠었다. 그 불빛은 응접실이 있는 방향에서 나온 것으로, 비록 허상이었지만 일렁이는 불꽃이 나타날 정도였다.

바깥을 지켜서고 있던 선하도 수사들은 어쩔 수 없이 운하원 가장 외곽으로 밀려났고, 어떤 이들은 구름을 밟고 아예 공중에 떠 있기도 했다.

때로는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선하도의 수선자들은 이 순간이 되어서야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깊이 깨달았다.

금제의 범위 안에 있거나 응접실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들은 심오한 도의 영향을 받고 있어, 도행이 부족한 이들은 서 있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제자들은 계속 타는 듯한 작열감을 느껴야만 했다.

이때, 상역과 장로 한 명은 공중의 채색 구름 위에 올라서서 운하원을 뒤덮은 법광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토록 명료하고 오묘한 도의 흐름을 필부(匹夫)가 보니 마음이 흔들리고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이지……. 휴, 나도 아직 수행이 얕구나!”

사형이 이렇게 한탄하자 상역도 그에 동의하며 입을 열었다.

“장교 어르신께서 전에 몇 대 제자 중 축 사백이야말로 동현의 경지에 오르고, 진선이 될 수 있는 수선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지요. 계 선생님께서는 이미 진선의 경지에 오르신 분이고, 노씨 성을 가진 수선자는 그 행색을 보아하니 건원종에서 제 발로 나간 그분인 듯하고요. 옥회산의 거 도우도 무척 대단한 인물이지요…… 그런 네 사람이 문을 걸어 잠그고 무언가를 제련한다니, 보통의 수선자들이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상역과 그의 사형은 운하원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점차 위로 옮겨 회색빛이 도는 새빨간 불길의 허상(虛像)이 무서운 기세로 하늘을 향해 타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금제 정도로는 이 이상 현상을 통제할 수 없을 듯하구나.”

“예, 운하원이 정말로 그 이름처럼 되었군요(운하(雲霞)는 노을빛 띠는 구름을 일컬음).”

이들을 비롯한 선하도 수사들은 더 이상 이러한 이상 현상을 가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위해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먼저였다. 어차피 자신들의 실력으로는 이를 제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한편, 선래봉 꼭대기에서는 구봉산의 손님맞이 담당 수사들이 한창 수행 중이었다.

별안간 몇몇 수사들이 연달아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조용히 수행을 닦다가 불바다를 목격하고 깜짝 놀라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오?”

“여러분도 느끼셨습니까?”

“예, 무슨 일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설마 외마(外魔)가 모습을 바꾸어 구봉 동천에 들어온 것이 아닐까요? 기회를 노리다가 수선자들을 주화입마에 빠지게 하려고요.”

“그럴 리가요! 외마는 선문의 동천에 들어올 만한 능력이 없을뿐더러, 어떻게 들어왔다고 해도 현재 선래봉에는 고인들이 수두룩합니다. 감히 이곳에서 소동을 부릴 리가 있습니까?”

그들은 이렇게 의견을 나누며 산 아래 사방 곳곳을 살폈다. 그러자 여러 곳에서 법광이 뿜어져 나오며, 구름에 오르거나 바람을 몰거나 혹은 법기를 탄 영각(靈覺)이 예민한 외부의 수선자들이 상황을 살피기 위해 밖으로 나온 것이 보였다.

그중 한 줄기 빛이 곧바로 선래봉 정상까지 날아오더니 흰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여인은 구봉산 수사들을 향해 인사했다.

“구봉산 도우분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구봉산의 대진(大陣)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

그러자 구봉산 수사 중 하나가 그녀에게 마찬가지로 인사한 뒤 대답했다.

“구봉산의 진법에 문제가 생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직 저희도 원인을 몰라 조사하고 있습니다.”

* * *

운하원 응접실 안에서는 거원자의 두 손이 마치 환영처럼 움직이며, 금 속성 영물에서 오행의 힘을 분리하고 있었다. 마치 금행(金行)의 힘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진법을 펼치는 것 같았다.

뒤이어 그 힘은 겹겹이 보호되고 있는 명주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명주실 위에 떠 오른 칙령 문자들은 환한 빛을 발하며 금 속성 영물의 힘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불길에 저항하고 있었다.

“계 선생님, 화력을 조금 더 올려 주십시오. 이곳을 선생의 금교(金橋)와 연결된 단로 안이라고 생각하시고, 단약을 제련하듯이 해주시면 됩니다. 저는 이곳에 진화와 음양의 기운, 금행 말고는 어떤 오행의 힘도 없기를 원합니다. 저는 단로의 진화를 이용해 이 힘들이 완벽히 합쳐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계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이 세 사람이 정말 독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삼매진화의 화력을 몇 차례나 높인 후였기 때문에, 보통 때라면 삼매진화의 화력은 계연 자신조차 위험하다고 느꼈을 수준으로 높아져 있었다. 그런데도 거원자는 이 화력으로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이 함께 있으니 계연도 그리 걱정할 것이 없어 담이 커졌다. 삼매진화를 통제하는 데에도 자신이 있었고, 만약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나머지 세 사람이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네, 각자 자리를 잘 지켜주세요. 단로가 이곳에 나타난 후에는 조금만 실수해도 삼매진화가 저희 몸에 옮겨붙을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계 선생님!”

“저는 준비되었습니다!”

“시작하셔도 됩니다!”

세 사람은 모두 자신의 수행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계연이 진화를 불러내 자신들을 공격하려는 것도 아니고, 불길이 잘 통제된 상황에서 네 사람이 함께 힘을 합칠 터였다. 그러니 삼매진화가 아무리 위험하다 해도 별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여기까지 온 마당에 굳이 뒤로 빠질 이유도 없었다.

다음 순간, 계연의 의식 세계 속의 산과 하천이 주위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네 사람은 어느새 운하원 응접실이 아니라 높은 산봉우리 위에 둘러앉아 있었다.

산봉우리는 싱그럽고 푸른 초목으로 뒤덮여 있었고, 아래로는 강줄기가 흘렀으며 해와 달,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심지어 노랗고 검은 상서로운 구름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중 가장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눈앞에 놓인 거대한 단로였다. 그 위로는 별이 떠 있었고, 영기 섞인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며 다채로운 색의 빛이 흐르며 번쩍거렸다.

그 모습에 노염생을 비롯한 이들은 일찍이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말았다.

“지금이에요!”

계연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 뒤 소매를 휘두르자, 실제 사물처럼 보이는 단로의 뚜껑이 천천히 위로 솟구쳤다.

화아앗……!

후욱-!

열기가 솟구치며 진화가 단로 안쪽에서 뿜어져 나왔다. 계연을 비롯한 네 사람의 얼굴은 불길에 쬐어 회색빛이 감도는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거원자가 이렇게 말하는 동시에 그의 손안에서 법광이 환히 뿜어 나오자, 다른 이들도 즉시 그를 도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어느새 금빛으로 변한 명주실과 다른 금행의 기운이 주위를 맴돌다 단로의 위쪽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이를 진화에 곧장 집어넣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그저 명주실과 금행의 기운을 상공에 띄운 채로 진화의 힘을 이용해 제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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