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16화 (516/892)

516화. 단로의 불길로 진정한 금을 제련하다

그 시각, 선래봉 운하원에 있던 계연과 나머지 세 사람도 자신들이 다른 수선자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봉산 장교의 우레 같은 목소리를 어찌 못 들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에 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여기서 멈추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것이다.

다행히 구봉산 장교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그는 이곳에 머무는 도우들을 전부 다른 숙소로 배정했다고 알려주었다.

“이 금빛 명주실을 제련하고 나면, 제자들을 크게 혼내야겠습니다. 금제를 걸고 지키는 것조차 못하다니!”

“저들은 이미 충분히 잘해주었어요. 이제 여기에 집중해 주세요.”

단로 안에서 기세 좋게 타오르는 진화를 앞에 두고서, 법력을 운용하는 동시에 대화를 나누는 것은 이들처럼 도행 높은 수선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경지였다.

계연은 평형을 이루도록 불길을 조절하면서, 한편으로는 의식 세계 속의 특수한 별의 힘과 달빛을 끌어와 짙은 태음(太陰)의 힘을 만들어냈다. 몽롱한 빛무리가 네 사람이 앉은 곳을 감싸며, 삼매진화에서 비롯되는 열기를 식혀 주었다.

* * *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흐르고, 점점 더 많은 수선자가 구봉 동천에 도착하고 있었다. 늦게 도착한 이들은 곧바로 기도봉으로 안내되었고,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서 알음알음 선래봉의 상황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어느샌가 고인들이 선래봉에서 법보를 제련한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에 선래봉은 더는 손님을 받아들이는 장소가 아니었음에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우웅- 우웅-!

단로 위의 명주실은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떨릴 때마다 금행의 기운이 실에 스며들어 실은 금빛이었다가 투명해지며 반복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금행의 힘이 들어오면 금빛이 되었고, 뒤이어 네 사람이 법력을 쏟아부으면 다시 투명하게 돌아왔다. 독특하면서도 부드러운 강인함이 명주실에서 느껴졌다.

계연은 두 눈을 반쯤 뜨고 있었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엄청난 불바다와 함께 다른 세 사람의 다채로운 표정이 계연의 눈에 들어왔다.

거원자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시종일관 엄숙한 표정을 지은 채로, 입으로는 쉼 없이 칙령을 외고 있었다.

노염생은 진지한 와중에 흥분한 기색이 엿보였고, 축청도도 그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계 선생님, 선래봉에 머무는 도우들이 모두 떠났다니 더는 자제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맞습니다, 이왕 이곳이 비었다면 더는 조심스러워할 필요가 없지요!”

거원자는 칙령을 외느라 따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계연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호기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잘 되었군요. 도우들도 이제는 단로의 진화에 적응되셨겠죠!”

계연은 말을 마치며 양손으로 결인(結印)을 맺으며, 소매를 통해 수백 닢의 법전을 내보내 네 사람의 주위를 감쌌다. 뒤이어 그의 한쪽 손에는 늑대 털로 된 붓이 나타났다.

주위의 법전들이 하나씩 빛나며 흩어지고, 계연은 그와 동시에 공중에 붓으로 글씨를 써 내려갔다.

“칙령, 단로의 불은 진정한 금을 제련하라(爐火煉眞金)!”

‘솨앗’하는 소리와 함께 칙령의 주문이 밝게 빛나며 앞으로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높은 하늘에 떠 있던 단로의 뚜껑이 내려와 금빛 명주실을 단로의 진화 속에 가두며 쾅 닫혔다. 단로가 닫히던 그 순간, 칙령 주문은 그 위에 착 붙었다.

댕-!

커다란 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계연의 의식 세계에 퍼지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지났다. 그 소리는 선래봉 전체를 넘어 구봉산 곳곳에 퍼져나갔다.

그러자 기도봉을 비롯한 곳곳에서 여러 쌍의 법안이 동시에 선래봉으로 향했다.

그 둔중하고 커다란 종소리를 모든 이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행이 얕은 이들은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지만, 이러한 이들도 선배들의 반응을 통해 이변을 알아차렸다.

선래봉에서 퍼져나간 소리에 선유 대회에 참석한 수선자들의 호기심이 점점 커졌다. 하지만 이들은 감히 엿보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으므로, 궁금한 마음을 꾹 참기만 했다.

* * *

종소리가 잦아든 후 선래봉의 열기는 더욱 맹렬하게 들끓다가, 3일 후 그 열기는 점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마침내 진화의 기운이 사그라든 것이다.

운하원의 응접실 안에 있던 계연을 비롯한 네 사람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계연이 의식 속 산과 하천의 풍경을 거둬들이자, 모두는 다시 평범한 응접실 안으로 돌아왔다.

비록 구봉산 수사들이 삼매진화 때문에 무척 긴장하긴 했지만, 실제 구봉산 측이 입은 피해는 아무것도 없었다. 명주실을 제련하는 데 참여한 이들이 앉아 있던 응접실 안의 가구들조차 그을린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지금 네 사람의 눈앞에는 명주실 몇 타래가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흠결 없이 투명하게 빛나는 실에서는 순수한 금행(金行)의 힘 말고는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명주실은 전보다 더욱 유연해진 상태였다.

계연이 실타래 하나를 잡아끌어 오자, 다른 세 사람도 실타래를 하나씩 끌어와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거원자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 명주실은 금행에 속하는 모든 영물 중 첫손에 꼽히는 대단한 것일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맞는 말이오!”

“물론이지요!”

이번 성공을 통해 성취감을 느낀 이들은 모두 뿌듯해했다. 비록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 격이긴 했지만, 이로 인해 네 사람은 앞으로 법보를 제련하는 데에 더욱 큰 기대감을 느꼈고, 동시에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을 도와줄 또 한 명이 오는 중이었다.

그러다 돌연 계연이 무언가를 느끼고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딱 좋네요, 응 선생님께서 곧 오시겠어요. 저희는 일단 구봉산 도우들께 먼저 사과를 한 다음, 이 일에 대해 털어놓는 것이 좋겠어요.”

“네, 함께 가겠습니다!”

네 사람은 그렇게 한 달여 만에 처음으로 운하원 응접실을 나섰다.

그와 동시에, 선래봉을 배회하던 넝쿨검이 한 줄기 검광(劍光)으로 변해 계연에게 돌아왔다. 선검은 삼매진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곧바로 계연에게 돌아가지 않은 것은 모두 종이학 때문이었다.

계연의 품 안에 있는 비단 주머니 안에서는 어떤 것도 무서울 게 없었지만, 이번 상황은 작은 종이학에게 있어 무척 두려운 상황이었다. 종이학은 영각(靈覺)이 일반 수선자들을 뛰어넘을 정도로 무척 예민하여, 선래봉에 가까워지자마자 긴장으로 딱딱히 굳어 버렸다. 그래서 넝쿨검도 계연에게 돌아가지 않은 것이었다.

선검이 돌아오는 것을 본 계연은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웃었다. 계연은 종이학을 다시 품 안에 잘 넣고 세 사람과 함께 구봉산 주봉(主峰)을 향해 날아올랐다.

구봉산 수사들은 이 일을 마음에 담아두거나 크게 골머리를 앓지는 않았다. 선도의 수선자들의 모두 모이는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놀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선래봉에 모인 고인들이 법보를 제련한다는 소문 때문에 모든 주의가 그쪽으로 향해 비교적 잠잠한 편이었다. 도를 논하며 말다툼이 일어나는 상황도 줄어들었고, 자연히 치고받는 싸움도 역대 최소를 기록했다.

게다가 계 선생님을 비롯한 고인들이 대단한 법보를 제련한다니, 이는 자신들이 주관하는 선유 대회에 더욱 현묘한 색채를 더해주는 게 아닌가. 구봉산 측으로서는 바라 마지않는 바였다.

그 때문에, 계연을 비롯한 고인들이 찾아와 양해를 구하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털어놓자 구봉산 장교는 무척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선래봉에서 법보를 제련할 수 있도록 순순히 자리를 내주었고, 늙은 용이 구봉 동천에 들어오는 것도 흔쾌히 동의했다. 용이 요족(妖族)에 속하긴 하지만, 그래도 무척 존귀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 사람은 자신들이 제련하는 법보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선도를 닦는 수선자들은 대체로 자신이 가진 법보의 신비감을 유지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된 이유는, 아직 제련에 성공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말했다가 실패하면 체면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 * *

한편, 구봉 동천 밖 구름 위에서는 수백 장 길이의 이룡(*螭龍: 뿔 없는 용)이 나타났다.

“어흥-!”

용의 포효가 구봉 동천 밖 상공을 쩌렁쩌렁 울리자, 자연히 완산 나루터에도 그 소리가 전해졌다. 용의 등장과 함께 하늘에서는 뇌운(雷雲)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 포효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사방팔방으로 진동하며 퍼졌는데, 이는 응굉이 계연에게 자신의 도착을 알리는 것이었다.

먹구름이 몰려오자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던 완산 나루터는 금방 어둑어둑해졌다.

우르릉……!

구름 사이로 번개가 번쩍이며 모여들었고, 그 빛에 의해 나루터에 있던 이들은 얼핏 상공에 뜬 거대한 용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그러자 수많은 수선자가 경악에 차거나 꺼리는 듯한 표정으로 멀찍이 다가오는 진룡을 바라보았다. 아래쪽 완산 나루터에서는 적지 않은 이들이 상공을 날거나 법안을 이용해 용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용이다! 저건 틀림없이 용이야!”

“저 위세를 보니, 설마하니 진룡인가?”

“쉬……. 입조심 하게, 물길을 다스리는 왕에 대해서 함부로 입에 올리면 안 돼!”

“진룡이 구봉산에서는 무슨 일로 왔을까? 지금이 선유 대회 기간인 걸 모르나?”

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의견이 분분할 때, 계연은 구봉산의 한 나이 든 수사와 함께 노염생을 비롯한 세 사람을 데리고 늙은 용을 맞이하러 동천 바깥으로 나갔다.

이들이 동천 바깥으로 나오자 흐릿하게 보이던 먼 곳의 풍경이 또렷하게 펼쳐졌다. 뒤이어 수백 장 길이의 이룡이 구름 위에 고요히 떠 있는 것이 이들의 눈에 들어왔다. 용의 기다란 수염이 바람을 따라 흔들렸고, 한 쌍의 호박색 눈은 거대한 등불이 두 개 켜진 것처럼 보였다. 응굉은 그렇게 가만히 신기루처럼 보이는 구봉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은 계연이 처음으로 응굉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그의 진짜 모습은 공중에 뜬 거대한 산맥 같았다. 응굉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굽이치는 기다란 몸이 끝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진룡이 내뿜는 강렬한 압박감이 모든 이들에게 생생히 느껴졌다.

“계 선생, 나 응굉이 왔소이다. 설마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늙은 용의 시선이 동천 밖을 빠져나온 계연에게 떨어졌다. 그의 목소리는 하늘을 울리는 천둥 같아서, 그가 입을 열자 구름 사이로 번개가 번쩍였다.

우르릉……!

콰지직…… 콰직……!

계연은 몸과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은 뒤 그를 향해 살짝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늦다니요,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응 선생님께서 마침 시간을 딱 맞추셨어요. 어서 저를 따라 동천으로 들어가시지요. 참, 그 이룡의 모습은 거두는 게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선생께서 앉으실 공간이 없을 것 같거든요.”

“하하하하…… 하하하……! 하긴 그렇지!”

천둥을 동반하는 그의 웃음소리와 함께, 번개가 번쩍이며 용의 형체가 대금(*對襟: 중국식 윗옷의 두 섶이 겹치지 않고 가운데에서 단추로 채우게 되어있는 것) 형식의 도포를 입은 노인으로 변했다.

“계 선생, 그리고 여러분, 응굉이 인사드리오!”

“용왕께서는 예를 거두십시오!”

“용왕님을 뵙습니다!”

“여전히 풍채가 좋으십니다!”

“용왕을 뵙습니다, 저희 구봉산에서는 용왕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노염생을 비롯한 이들이 응굉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줄곧 긴장한 기색이던 거원자는 응굉이 스스럼없이 인사하며 웃는 것을 보고 남몰래 안도했다. 옥회산과 응굉은 이전에 사이가 무척 나빴기 때문이었다.

“자, 얼른 가시죠. 이미 구봉산 측에 봉우리 하나를 법보를 제련하는 동안 사용하도록 허가를 받았어요. 구봉 동천은 진법에 의해 하늘의 도(道)와 외마(外魔)의 침입에서 자유로워, 법보를 제련하기 딱 좋은 환경이에요. 선생께서 오셨으니 이제 인원도 갖춰졌네요!”

계연은 전음(傳音)을 통해 법보를 제련하기 위해 세운 계획과, 금행의 힘을 불어넣어 제련한 명주실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를 들은 늙은 용의 표정이 단번에 흥미롭다는 듯이 변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