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17화 (517/892)

517화. 이미 시작되다

구봉 동천에 들어온 다섯 명은 5일 후에 선유 대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곧바로 운하원으로 향했다.

노염생과 같은 수선자들에게 있어, 선유 대회는 법보를 제련하는 것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계연과 응굉만이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을 뿐이었다.

계연은 5일 후에 열릴 개막식과 비슷한 행사가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을지 궁금해했고, 응굉은 선유 대회에 대해서는 듣기만 했을 뿐 직접 보지는 못했으므로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둘도 선유 대회에 참가하는 것보다는 법보를 제련하는 쪽을 훨씬 중요하게 여겼다.

선래봉 운하원의 응접실에서 다섯 명은 각기 방석을 깔고 앉았다. 이들은 중심에는 특이한 금사 끈을 놓고 그 주위로 오행의 영물을 띄워둔 채로 기운을 정돈하며 법력을 몸속에서 순환시켰다.

“제가 삼매진화를 맡을 테니, 응 선생께서는 계수의 정수를 담은 금빛 비늘을, 노 선생께서는 산신석을, 거 도우께서는 금행인 명주실을, 축 도우께서는 뇌겁을 맡아주세요.”

“좋소이다!”

“알겠습니다!”

다섯 명의 기운이 모두 밖으로 드러나자, 늙은 용은 단번에 자리에 있는 이들의 실력이 얼마나 높고 낮은지를 알 수 있었다.

‘대단하군. 진선(眞仙)인 계연을 제외한 다른 세 사람의 도행은 내가 보기에도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야. 진룡과 진선이 물과 불 양극을 맡아, 삼매진화에 담긴 음양의 양극을 이끌어내다니, 좋은 계획이야!’

계연은 자리한 이들을 한번 훑어본 다음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금행에 속하는 명주실은 제련이 끝나 이미 완벽하고, 삼매진화와 천도(天道)를 품은 뇌겁은 따로 제련이 필요치 않으니 토행(土行)와 수행(水行) 두 가지부터 시작하죠.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면 바로 법보를 제련하도록 하고요. 자, 이제 시작하시죠!”

“지금입니다!”

고요하던 선래봉에서 여러 갈래의 법광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자, 선래봉에 걸린 금제와 진법이 펼쳐졌다. 여러 금제와 진법은 선래봉 안의 변화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이를 잘 감추었다.

* * *

그로부터 5일 후, 선유 대회가 정식으로 개막해 각지에서 찾아온 수선자들이 구봉산의 천도봉(天道峰)으로 모여들었다.

여러 수선자들은 법광을 내뿜으며 그리로 날아가는 도중에도 선래봉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한편, 기도봉의 한 고요한 뜰 안의 대나무로 지은 정자에서는 현재 강설릉(江雪凌)이 대나무 꼬치로 찻잔을 휘젓고 있었다. 마치 그렇게 하면 차 맛이 더 좋아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강설릉의 기다란 머리카락은 원래라면 땅에 끌려야 했다. 그러나 어떤 술법을 부리지도 않았는데도 그녀의 머리카락은 기이하게 땅에서 반 치(寸) 정도 떠 있었다.

그때 정자 바깥에서 또 다른 위미종 수사 하나가 다급히 강설릉 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정자 안의 상황을 보고 우습기도 하고 속이 부글부글 끓기도 했다.

‘대체 여기서 누가 어른이지?’

“사조(師祖)! 왜 아직도 여기 계세요? 선유 대회가 곧 시작될 거예요, 저희도 어서 천도봉으로 가야 해요!”

그러자 강설릉이 차를 휘젓던 동작을 멈추더니 고개를 불쑥 들었다. 그녀는 깜짝 놀란 얼굴로 멀리 선래봉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선유 대회는…… 이미 시작된 게 아니었니……?”

강설릉은 이렇게 대꾸하긴 했지만 선유 대회의 개막식에는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강설릉은 위미종 제자의 재촉을 받으며, 한입에 찻잔을 비운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이어 위미종 수선자들은 강설릉의 인도 아래 운무(雲霧)에 올라탄 채로 멀리 천도봉을 향해 날아갔다.

천도봉을 향해 날아가는 이들의 주위에는 여러 갈래의 빛무리가 길게 흔적을 남겼다.

* * *

구봉산은 구봉 동천 안에서 가장 큰 산맥이며 산세도 험준했다. 그중 가장 장관을 뽐내는 아홉 좌의 봉우리는 그 정상이 구름에 감춰져 끝이 보이지 않았고, 봉우리 안에도 항상 안개가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어둡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 안개구름이 시시때때로 움직이며 햇빛이 들어올 틈을 남겨 두었기 때문이었다.

천도봉은 구봉산의 주봉이자, 아홉 좌의 봉우리 중 가장 크기가 크고 장엄했다. 선유 대회의 회장(會場)이 될 천도봉은 오늘을 맞아 금제를 풀고 활짝 개방되었고, 구봉산 수사들에 의해 신성한 느낌이 들도록 꾸며졌다.

천도봉에 가까워지기도 전에 수선자들은 그 거대한 봉우리가 상서로운 빛에 뒤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다채로운 색을 지닌 아름다운 빛무리가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그에 더해 선계의 음악 소리가 흘러나와 듣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이때 위원생은 다른 옥회산 사형 사제들과 함께 감격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구풍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 주위에는 여러 갈래의 선광(仙光)이 함께 날아가고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한 명 혹은 한 무리의 수선자를 뜻했다. 이는 계연이 춘혜부에서 선하도 수사들이 다급히 날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구풍과 양명을 비롯한 몇몇 진인들도 실은 그렇게 침착하지 못했다. 거원자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모두 선유 대회에 처음으로 참석한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 이는 놀라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부님, 거 진인과 계 선생님 모두 안 계시는데 괜찮을까요?”

천도봉이 점차 가까워짐에 따라 위원생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선 낮은 소리로 구풍에게 물었다.

“긴장할 필요 없다, 수선자들은 어떤 상황에도 침착해야 하는 법이다(處變不驚). 이왕 거 진인과 계 선생님도 안 계시니, 다른 이들이 도를 논할 때 참여하지 않고 가만히 구경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아…… 참, 사부님. 선유 대회 중에는 오래 앉아 있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밥은 어떻게 해요? 구봉산에서 밥을 가져다주나요?”

위원생처럼 수행이 얕은 이들은 며칠만 먹지 못해도 곧바로 허기가 졌다.

“하하, 걱정하지 말아라. 선유 대회가 입씨름만 하는 대회도 아니고, 도를 논하다 보면 술법을 시연하기도 하고 그렇게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지. 개최 측인 구봉산에서는 무엇도 부족하지 않게 세심히 준비했을 것이다. 정교하고 다양한 간식거리와 직접 빚은 귀한 술도 갖추었을 거야.”

“사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계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선인(仙人)도 실은 편하고 아름다운 것을 좇는 이들이므로 여건 안에서 모든 편의를 제공할 테지요. 그러니 배곯을 걱정은 하지 말아라. 구봉산 도우들의 접대가 부족할 리가 없잖느냐!”

“하하하하…….”

옥회산의 진인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리자, 그들 뒤를 따르던 제자들도 모두 따라 웃었고, 위원생과 비슷한 걱정을 하던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유 대회가 곧 시작되는데, 계 선생님과 거 진인께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으셨으니 아마 참석하지 못하시겠죠?”

상의의가 이렇게 묻자, 양명이 선래봉 방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건 우리가 조바심 낸다고 될 일이 아니지. 게다가 우리 말고도 선래봉을 주시하는 이들이 무척 많단다!”

“자, 모두 의관을 정제하시지요. 곧 도착합니다.”

주위의 안개가 흩어지더니 눈앞의 빛무리가 더욱 환해졌고, 옥회산 일행은 마침내 천도봉 정상에 다다랐다.

천도봉은 크기가 무척 크고 넓은 봉우리였기 때문에, 그 정상은 마치 여러 개의 작은 언덕이 솟아오른 산맥처럼 보였다. 작은 언덕 꼭대기마다 정자며 누각이 세워져 있었고, 그 안에는 탁자와 차, 다과, 방석 등이 빠짐없이 갖춰져 있었다.

옥회산 수선자들이 내려선 곳은 그중에서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한 언덕이었다. 그곳에서는 한 구봉산 수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봉산 수사인 임점이 옥회산 도우들을 뵙습니다.”

임점은 예전에 동해에서 계연을 만나 계연을 선유 대회에 초대했던 그 수선자였다. 구봉산 장로들은 이 일을 알게 된 후 일부러 임점으로 하여금 옥회산 수사들을 접대하도록 안배했다.

“임 도우,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임 도우를 뵙습니다!”

그들은 서로 정중히 인사를 나눈 뒤, 임점의 안내에 따라 뒤에 세워진 정자로 향했다. 임점은 옥회산 수사들을 위해 곳곳을 설명해 주었는데, 죽 늘어선 탁자 위에는 음료와 다과가 올라 있었고 푸른 연기를 내뿜는 향로도 있었다.

옥회산 수사들은 임점의 안내를 들으며 각자 자리에 앉았다. 임점은 새로 온 옥회산 수사들에게 영패를 나눠준 뒤, 다시 인사하고 떠나갔다.

옥회산 수사들이 바깥을 둘러보니 곳곳에서 도착한 수선자들이 빛을 내뿜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각 선문(仙門)이 배정받은 곳 사이에는 대략 십여 장(丈)에서 수십 장의 거리가 있었다. 천도봉의 가장 중앙에는 선유 대회에 없어서는 안 될 ‘논도대(*論道臺: 도를 논하는 곳)’가 설치되어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원형의 청석(*靑石: 푸른빛을 띤 응회암으로, 실내 장식이나 건물의 외부 장식에 씀)이었는데, 그 위로 무수한 문자와 진법이 새겨져 있었고 그 뜻은 대략 천지의 도를 계승한다는 의미였다.

논도대의 크기는 그리 작지 않아서 직경은 대략 백 장 정도였다. 그 중심에는 거대한 부적이 끊임없이 빛을 내뿜으며 공중에 떠 있었고, 그 위에서는 문자들이 쉬지 않고 변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반짝일 때마다 선광이 천도봉 전체를 비추며 갖가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푸르른 산과 맑은 물이 흐르는 풍경과 함께, 아름다운 화초와 나무 그리고 뛰노는 동물까지 빠짐없이 비추어졌다.

천도봉에 울리는 선악은 부드럽게 흩날리는 옷을 입은 삼십여 명의 선녀들이 각종 악기를 손에 쥐고 연주하는 것이었다. 선녀들은 비교적 높은 언덕에 있는 정자에서 한창 연주하는 중이었고, 그곳에서부터 부드럽고 온화한 빛이 음악 소리와 함께 천도봉 전체에 퍼져나갔다.

“사부님, 논도대 쪽에서 비추는 저 변화하는 풍경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구풍은 가볍게 자신의 짧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가다듬은 후 대답했다.

“하늘과 땅 사이의 각종 기묘한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천도(天道)의 순환을 상징하는 듯하구나. 사계(四季)의 변화와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것, 그리고 저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으로, 세상일이 덧없이 변천함이 심함을 비유하는 말)와 해가 지고 뜨는 그 모두가 천지의 도가 아니겠느냐?”

구풍도 실은 그 진정한 뜻은 알지 못했으나, 스스로 생각해 본 바에 따라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다른 옥회산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곳에서부터 7, 8개 언덕을 사이에 둔 곳에서는 위미종의 수선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 논도대의 부적이 만들어내는 온갖 꽃이 피어나는 풍경을 목격했는데, 그 광경은 마치 실제로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생생해 보였다.

강설릉이 허리를 굽혀 땅으로 손을 뻗자, 생명력이 충만한 붉은 모란꽃이 손에 잡혔다. 그것을 코 아래로 가져와 향기를 음미하니, 은은한 꽃향기가 전해져왔다.

그러자 강설릉의 동작에 의해 무언가 신비한 규칙이 깨진 것처럼, 순식간에 천도봉 정상이 꽃향기로 뒤덮였다. 주위로 가득 펼쳐진 꽃밭의 허상이 실제처럼 살아나, 각종 꽃향기가 퍼지며 수선자들을 취하게 했다.

“이것이야말로, 선유 대회의 의의를 담고 있지!”

강설릉은 웃으며 이렇게 말한 뒤 정자에 놓인 방석 위에 앉았다. 그러자 다른 위미종 수사들도 뒤이어 자리에 앉았고, 그들의 접대를 맡은 구봉산 수사는 강설릉을 주의 깊게 바라본 뒤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위미종 수선자들은 외부인과의 교류를 좋아하지 않아, 거의 언제나 무덤덤한 얼굴로 다가오는 이들을 천 리 밖으로 밀어내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요마(妖魔)는 물론이고 수선자와 승려도 그들의 산문이 자리한 천 리(里) 안으로는 반기지 않았다.

수선계에서는 위미종 수선자들이 고요하고 깨끗한 도를 추구하다 보니 감정을 잊은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 소문은 물론 과장된 측면도 있었지만, 위미종 수선자들의 태도가 이런 소문을 퍼지게 한 데에 크게 한몫한 것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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