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19화 (519/892)

519화. 대체 어디가 회장(會場)이지?

늙은 용이 막 도착했을 때 사실 계연을 제외한 세 사람은 모두 응굉을 어색해했다. 하지만 이렇게 한바탕 웃고 나니 알게 모르게 존재하던 벽이 허물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보면 실은 선래봉에서도 ‘도를 논하고(論道)’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것이 천도봉과 관련된 이야기이든 법보를 제련하는 이야기이든 간에 말이다.

게다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선래봉에서 도를 논하는 질적 수준이 천도봉의 소란스러운 말싸움보다 더욱 높다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선래봉의 다섯 사람이 논하는 것은 결국 음양오행에 관해서였고, 천도봉 논도대의 상황과 달리 그들은 법보에 담긴 음양과 오행의 힘이 균형을 이루게 하겠다는 하나의 목적만을 갖고 있었다. 법보를 제련하는 데에 모든 힘을 쏟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했고 허심탄회한 태도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계연을 제외한 네 사람은 모두 오랜 세월을 살며 부단히 수행해 온 진정한 수선자였지만, 계연은 지난 생의 경험 덕분에 그만의 날카롭고 독보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다섯 사람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불꽃은 불가능을 점차 가능으로 바꾸고 있었다. 천지 간에 존재하는 오행은 본래 오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으므로, 천천히 그 균형을 모색해간다면 그들도 하늘의 이치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계연은 예전에 대량사에서 불인 명왕과 앉아 도를 논하며 여러 가지 변화를 불러일으켜, 대량사 측에서 다급히 참배객들을 물리고 사찰을 닫아건 적이 있었다. 이 순간 다섯 사람이 모여 법보를 제련하며 심오한 도가 펼쳐지자, 각종 기이하고 다채로운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래봉의 원래 색채는 점차 퇴색되며 은은한 빛에 감싸였고, 심오한 도(道)를 품은 선래봉에는 변화가 생겼다.

《‘목(木)’에 대해 논하자면,

온 산은 푸르른 초목으로 가득하고, 갖가지 꽃들이 아름다움을 다투는구나.

‘화(火)’에 대해 논하자면,

꽃잎은 화염처럼 검붉고, 빽빽이 뒤덮인 상엽(*霜葉: 서리를 맞아 단풍이 든 잎사귀)은 불타오르는 듯하구나.

‘토(土)’에 대해 논하자면,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온 산의 색채가 사라지며 흐르는 세월을 재촉하는구나.

‘금(金)’에 대해 논하자면,

낙엽이 지자 마른 가지에 예리함이 더해지고, 산봉우리의 돌에도 날카로움이 깃드는구나.

‘수(水)’에 대해 논하자면,

하늘에서 눈꽃이 떨어져 온 산이 하얗게 물들고, 온갖 부드러움이 다시 봄으로 돌아가는구나.》

선래봉에 일어나는 갖가지 변화는 음양의 도를 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술법을 이용한 싸움도 하늘을 울리는 천둥소리도 없었지만, 어느새 모든 천도봉 수선자의 이목을 끌었다. 이에 따라 논도대 위의 격렬한 다툼도 적잖이 힘이 빠졌다.

강설릉은 위미종 수선자들이 머무는 정자 안에서 갖가지 변화를 드러내는 선래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변화는 천도봉의 신령한 부적이 보여주는 환상과 비슷했으나, ‘도’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보다 훨씬 뛰어났다.

“보렴, 내, 진작 말했었잖니……. 선유 대회는 이미 시작했다고……. 믿지 않더라니…….”

다만 위미종의 후배 수선자들은 강설릉의 말을 듣지 못하고, 온통 선래봉에 일어나는 변화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위미종은 물론 옥회산 쪽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었고 대양궁, 빙봉각 등도 마찬가지였다. 각각의 수선자들 눈에는 모두 각기 다른 선래봉의 풍경이 보였다. 어떤 이는 기본적인 사계의 변화만을 보았고, 어떤 이는 천도(天道)의 오묘함을 보았다.

구봉산 장교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선래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 있던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 둘의 법안에 비쳐 보이는 선래봉의 변화는 황홀하고 현묘하여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장교의 곁에 서 있던 남자가 돌연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하……. 조 장교, 보아하니 제가 선유 대회의 회장(會場)을 잘못 찾아온 모양입니다!”

이번 선유 대회의 가장 특별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바로 이 순간부터 대회가 열리는 장소는 하나가 아니게 되었고, 천도봉에 앉은 도행이 높은 수선자들은 모두 선래봉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물론 천도봉에서 열리는 대회도 무척 흥미진진했으나, 선래봉이 너무 많은 주의를 끈 탓인지 이번 대회는 꽤 평화롭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선유 대회 때와 비교하면 무척 평화로운 편이었다.

옥회산 수선자들이 자리한 곳에서는 여러 제자가 논도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양측이 도를 논했지만, 곧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도를 논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느 쪽도 자신의 신념과 의견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현재 선래봉에서 나타난 토행(土行)과 관련된 이상 현상 때문에, 오행 중 토 속성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양측 수선자들은 추측에 근거해 술법을 선보이며 상대에게 반박했다.

“사부님, 저들이 설파하는 도리는 모두 신묘한데 상대에게 칭찬을 해주기가 그리 어려운가요?”

상의의가 포도알을 손에 쥐고 갖고 놀면서 옆에 앉은 양명에게 물었다.

“의의야, 수선자들도 마찬가지로 사람이란다. 수행을 닦고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화를 참지 못하는 순간이 있지. 논도대가 도를 논하는 곳이긴 하지만, 저곳에 오른 모든 이들이 설파하는 게 도는 아니란다. 최소한 상대가 인정하는 도는 아닌 것이지…….”

양명은 논도대를 바라보다가 다시 옥회산 제자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수선자들은 꿋꿋한 마음가짐으로 일평생 도를 구하는 이들이다. 상대방이 설파하는 도리가 아무리 신묘하고 정교하다 해도, 본인이 믿는 바와는 다를 것이고, 그 도리가 상대를 기쁜 마음으로 승복하도록 만들 정도가 아니라면 결코 상대가 이를 인정하게끔 할 수는 없는 법이지. 하지만 상대의 말에 반박하고 술법을 겨루며 싸우는 그 과정 자체가 자신의 도를 연마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이는 선유 대회가 열리게 된 최초의 의의 중 하나이기도 하단다.”

“어쨌든 저희는 저기에 끼어들지 않을 거잖아요.”

위원생이 하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른 생각에 빠졌던 게 아니라 정말로 졸음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이 중에서 도행이 가장 낮은 위원생은 이렇게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고 앉아만 있으려니 정신을 차리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에이, 류(劉) 진인 같은 분이 몇 분 더 오셨으면 재미있었을 텐데요. 그동안 보고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실 테고……. 아함…….”

“원생아, 정말 피곤하면 가서 자도 된다. 선유 대회는 그리 일찍 끝나지 않아. 게다가 정말로 끝난다고 해도, 선래봉에서 무슨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떠나지 않을 거다.”

“안 돼요, 먹을 걸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

위원생은 고개를 저으며 고집스레 잠기운을 떨쳐냈다. 구봉산 측에서는 매일 수선자들을 위해 영기를 품은 각종 요리와 다과를 준비해 주었기 때문이다.

논도대에서 양측이 서로 주고받는 신통한 술법 때문에 옥회산 일행이 머무는 곳까지 그 파동이 전해져왔다. 게다가 그들의 법력에 의해 공중에 떠 있는 부적에서부터 각종 풍경이며 사물의 허상이 나타났다.

바로 그때, 누군가 옥회산 일행이 배정받은 작은 언덕 위에 내려섰다. 그는 구봉산 수선자가 아닌 낯선 사람이었는데, 그는 머리를 작은 관과 옥비녀로 단단히 고정하고 옅은 자줏빛의 장포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아래턱에는 약 1척(尺) 길이의 아름다운 검은 수염을 기르고 있어, 무척 품위 있어 보였다. 얼핏 보면 중년의 나이인 듯하다가도 자세히 보면 세월의 관록이 느껴졌다.

남자는 옥회산 수선자들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며 공손한 태도로 그들을 향해 먼저 인사했다.

“소생 숭륜(嵩侖), 옥회산 도우들을 뵙습니다!”

“숭 도우를 뵙습니다. 도우는 어느 선문에서 오셨습니까? 이곳에는 무슨 일이신지요?”

그는 한눈에 봐도 수행이 낮지 않았고, 낯선 곳에 손님으로 방문한 입장인 옥회산 일행은 더욱 예를 차렸다. 양명은 옥회산 제자들을 이끌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를 향해 인사했다. 그는 만약 이자가 도를 논하러 온 거라면 재빨리 거절할 생각이었다.

양명과 구풍 등을 비롯한 진인들은 예전에 자옥 진인이 선유 대회에서 도를 논하던 도중 일으킨 소동을 생각하며, 이 자가 혹시 그들 옥회산 일행을 보고 따끔한 맛을 보여주러 온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숭륜이 허리를 펴고 웃으며 이곳에 찾아온 연유를 설명했다.

“저는 여러분과 도를 논하러 온 것이 아니라, 계 선생님께서 옥회산 수사이시라는 말을 듣고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계 선생님이라고?’

양명이 사제인 구풍을 바라보자, 구풍도 고개를 저으며 그에 대해 계 선생님께 들은 바가 없음을 내비쳤다. 계 선생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심오하여 그들로서는 추측할 수도 없을뿐더러, 일일이 자신들에게 말해주시지도 않았으므로 모르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었다.

보아하니 상대방은 계연이 옥회산 수선자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이에 양명은 감히 호가호위(*狐假虎威: 권위 있고 유명한 사람의 명성을 이용해 남을 겁주고 기만한다는 뜻의 성어)할 수는 없어, 얼른 나서서 해명했다.

“숭 도우께서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계 선생님과 저희 옥회산의 관계가 무척 가깝긴 하지만, 그분은 저희 옥회산의 수선자가 아니십니다. 선생님께서는 홀로 수행을 닦는 분이시고, 저희 옥회산 선문과는 가까운 거리에 사는 이웃이십니다.”

옥회산이 자리한 곳과 영안현은 천 리(里)나 넘게 떨어져 있었지만, 수선자들에게 있어 그 정도 거리는 ‘이웃’이라고 부를 만한 정도였다.

“아, 그러시군요!”

“여기 앉아 기다리시지요, 도우. 계 선생님과 저희 옥회산의 거 진인께서는 현재 선래봉에 계시니, 제련이 끝나면 저희를 찾아오실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양명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떠올랐다. 두 분 어른께서 선래봉에 계신다는 말은 옥회산 수선자들에게 있어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설령 누군가 그들에게 도를 논하자며 청해오더라도, 그들은 이 점을 이용해 이렇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다.

“저희는 모두 제자들일 뿐이고, 선문의 어르신 두 분은 지금 모두 선래봉에 계십니다. 그분들이 나오시면 토론하시지요.”

이렇게 나오면 옥회산 수선자들과 감히 토론하려는 이가 없을 터였다.

양명은 자신이 정중히 건넨 말에 상대가 정말로 빈자리를 찾아 방석 위에 앉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그는 자신이 계 선생님을 찾아온 연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20년 전, 그는 대정국 경계를 지나다가 막우라는 이름을 지닌 뛰어난 자질을 가진 아이를 발견하여 제자로 삼았다. 하지만 당장 그를 데려가기가 여의치 않아, 일종의 보호 수단을 남긴 다음 길을 떠났었다. 후에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 제자를 데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천기각에서 친 운주의 대세에 관련된 점괘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져 있던 때였다. 수선자들은 대부분 그에 대해 연연해하지 않았지만, 온갖 요마들은 대정국의 기운이 대성하는 시기에 뭐라도 얻어낼 수 있을까 하여 피 냄새를 맡은 거머리처럼 그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왜냐하면 인간과 인간 세상의 수많은 것들은 본디 요마들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타고나면서부터 가진 양기와 혼백, 육신은 삿된 것들에게 있어 무척 얻기 힘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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