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화. 집중해야 합니다
둘째로, 인간 세상의 기운이 대성하는 초기에는 언제나 영웅호걸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단순무식하게 그들을 잡아 삼키기만 해도 요마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물론 그에 비례해 업장(*業障: 악한 행위를 저지른 과보로 받는 장애)도 늘어날 테지만, 그것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눈앞의 이익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마지막 이유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연(機緣)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대정국 각지에서는 적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해를 입고 있었다. 그곳의 터주신들마저 눈치채지 못하게 사라진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영성(靈性)이 뛰어난 막우가 마도(魔道) 측에 발각되었다. 비록 막우를 지키는 이들이 무척 기민하긴 했지만, 보통 무인들이 어찌 마귀와 상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위급한 시기에 마침 막우가 계연을 만난 것이다.
숭륜은 이 부분에서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하하, 비록 그 만남이 비록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계 선생님 같은 고인(高人)이 행하시는 일이니 우연이 아닐 가능성도 있지요. 은연중에 무언가를 느끼고 초엽산 산신당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제 제자를 만나셨을 수도 있고요.”
계연이 막우를 구한 뒤, 숭륜은 겨우 만난 제자를 통해 알게 된 그 ‘계 선생’에 관해 알아보았다. 그러나 ‘계 선생’에 관한 어떤 것도 점으로 알아낼 수 없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 일을 자신의 스승께 알렸더니, 숭륜의 스승도 ‘계 선생’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숭륜은 그저 계 선생이라는 자는 결코 옥회산 수사가 아닐 것이고, 속세를 거닐기 좋아하는 고인일 거라 추측했다.
숭륜의 말에 옥회산 일행은 그때가 대충 어느 시기인지 생각해낼 수 있었다. 비록 숭륜의 제자에 관한 일은 알지 못했지만, 그 당시 대정국 혹은 대정이 자리 잡은 곳의 기운에 관해서라면 옥회산에서도 아는 바가 적지 않았다.
그 당시 대정국에서는 늙은 선황제가 수륙대회를 열었고, 옥회산과 계연, 그리고 용족이 나서 대정국에 몰려온 요마들을 죽이거나 겁을 줘 내쫓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옥회산 수선자들은 자신들이 참여했던 것이 실은 요마를 물리친 세 번째 사건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가장 처음은 계연이 연추산에서 천경검세를 선보였을 때였고, 두 번째는 묵영의 죽음에 진노한 늙은 용이 동해 연안을 따라 닥치는 대로 요마들을 죽였던 때였다.
“처음에 선래봉에 있는 다섯 분의 고인 중 한 분이 계씨 성을 가진 선장(仙長)이라는 걸 듣고, 저는 어쩌면 그분이 계 선생님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여기저기 물어보니, 그분께서 옥회산 도우들과 함께 운주 남쪽에서 오셨다는 것까지 듣고 나서 거의 확신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설명한 그는 선래봉 쪽을 흘낏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공손히 인사했다.
“이왕 제가 찾아온 이유도 밝혔으니, 더는 여러 도우께 폐 끼치지 않겠습니다. 계 선생님이 돌아오시면 그때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예, 그럼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숭 도우!”
숭륜은 고개를 끄덕인 뒤 정자를 떠나 몇 걸음 걷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참, 만약 계 선생님께서 돌아오시면 제 스승이신 중평휴 어른께서 계 선생님을 무척 뵙고 싶어 하신다고, 언젠가 무량산(無量山)에 방문해주시길 바란다고 전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을 마친 숭륜은 맑은 구름을 몰고 떠나갔다.
“무량산? 사제, 그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구풍이 고개를 젓자 양명이 의견을 구하듯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으나,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사형, 너무 괘념치 마세요. 우리를 초청한 것도 아니고, 감히 무량(*無量: 많아서 헤아릴 수 없다는 뜻. 한계가 없는 완전성을 이르는 말)을 이름으로 내세울 정도니 아마 실력 있는 선문일 겁니다. 게다가 계 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실지도 모르고요.”
“음, 하긴 그렇지.”
* * *
이 시각, 계연과 다른 네 사람은 법보를 제련하는 데에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금사 끈이 빠른 속도로 회전함에 따라, 음양의 두 기운이 끈 주위를 감돌며 그를 따라 회전했다. 금, 수, 목, 화, 토 오행은 음양의 두 기운 주위를 감돌며 회전하고 있었다. 가장 중앙에서부터 외곽에 이르기까지 모두 활활 타오르는 삼매진화의 불꽃 안에 잠겨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내내 눈을 감고 법력을 쏟아붓던 노염생이 눈을 번쩍 떴다.
“이런! 파자산!”
이에 다른 네 사람이 깜짝 놀랐다. 늙은 용과 거원자, 축청도는 노염생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처음에는 법보를 제련하는 데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으나, 가만히 느껴보니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계연은 노염생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즉시 알아듣고, 삼매진화를 적절히 다스리는 동시에 재빨리 점을 쳐보았다. 그러자 파자산 자체에 대해서는 흉하다는 결과를 얻었지만, 파자산 바깥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는 점괘가 나왔다. 보아하니 누군가 도사연을 구해내려 하거나, 도사연이 스스로 탈출하려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노 선생님, 너무 염려 마세요. 일단 지금은 법보에 집중해야 하니, 그 일은 잠시 묻어두죠!”
“그래야죠. 분명 10년 동안은 괜찮을 거라고 확신했는데, 에잇! 제 계산이 잘못되었군요!”
* * *
한편, 멀리 파자산 상공에는 먹구름이 가득 몰려오고 요풍(妖風)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노염생은 자신이 내린 점괘 대부분에 대해 무척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그는 구봉산에 오기 전, 파자산은 10년 안에는 아무런 일도 없을 거라고 예측했었다. 봉인이 단단한 것 말고도 외적 요인을 고려한 예측이기도 했다.
그 당시 팔미호 본연의 기운이 감춰져 있지는 않았지만, 팔미호는 무언가 수를 써서 노염생의 예측이 빗나가도록 한 게 분명했다.
이처럼 때로는 고인(高人)이라 하여도 자신의 예측이 빗나가는 일이 꽤 있었다. 계연에 대해 점을 치면 애매하거나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는 것과 달리, 일반적으로는 점괘의 결과가 비교적 명확하게 나온다. 그렇기에 점을 치는 사람은 그 결과를 오히려 더욱 쉽게 믿게 되었다.
그제야 이 점을 떠올린 노염생은 남몰래 속으로 후회하며 고뇌에 차 있었다.
축청도가 무슨 일인지 묻자 노염생은 더욱 곤란해졌다. 하지만 그는 계연을 바라보며, 자신만 체면을 잃은 게 아니라는 생각에 그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여러분, 다른 일은 나중에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소이다. 전에 논의했던 대로, 일단 음양을 먼저 녹여내고 오행으로 넘어갑시다! 모두 정신을 집중해야 할 겁니다!”
늙은 용의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모든 이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이제까지의 모든 준비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노염생과 계연은 얼른 딴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모든 정신력을 제련에 쏟았다.
다섯 명은 금사 끈을 중앙에 두고 다섯 방향에서 각기 힘을 쏟았다. 계연의 의식 세계가 다시 바깥으로 펼쳐지면서, 삼매진화로부터 태양과 태음의 형상이 음양어(*陰陽魚: 음양이 물고기처럼 서로 꼬리를 물고 얽혀 있는 형태)의 모습으로 상공에 떠올랐다.
그것은 선래봉 위에도 나타나 천도봉을 포함한 구봉산 범위 내의 모든 수선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거대한 음양어는 쉬지 않고 회전하는 커다란 흑백의 구름처럼 보는 이들의 넋을 빼놓았다.
* * *
파자산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몰려왔다. 먹구름은 그 위압적인 기세만으로도 산맥을 부술 것처럼 보였다.
우르릉!
번개가 번쩍하고 내리꽂힌 뒤, 장대비가 솨아아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수국 조정에서 산신의 지위를 정식으로 승인받은 석유도는 봉인이 걸린 산 앞에 모습을 드러낸 채, 경악한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신장(神將) 대인, 신장 대인! 구름과 바람이 무언가 심상치 않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이 파자산 봉인을 향해 무언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신장 대인,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그러자 금갑 역사의 거대한 형체가 나타나더니, 그 형체가 자그마한 정괴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산세(山勢)와 지맥을 지켜야 한다.”
신장의 말에 석유도는 그의 뜻을 단번에 알아채고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몸을 숨기겠습니다. 소신(小神)의 도행이 얕아 파자산 지맥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으나, 반드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석유도가 고개를 들어 금갑 신장을 바라보니, 곁눈질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도 네가 그리 큰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하지 않으니, 어서 도망이나 가라!
석유도는 그가 자신의 두려움을 꿰뚫어 본 것만 같아, 즉시 양손을 맞잡으며 소리 낮춰 인사했다.
“그럼 소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신장 대인께서도 조심하십시오!”
이렇게 말한 석유도는 한 줄기 푸른 연기로 변하더니 지면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다.
금갑 역사가 자그마한 틈새 앞으로 다가와 그 안의 도사연을 바라보았다.
“왜, 주인이 없어 불안하신가?”
도사연의 목소리가 어두컴컴한 구멍 안에서 흘러나왔다. 깊은 산 안쪽에 있는 도사연은 구체적인 상황은 알지 못했지만, 대신 하늘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산신의 당황스러운 듯한 목소리까지 듣자, 대강 상황을 짐작한 그녀는 기분이 통쾌해졌다.
한껏 비꼬는 말에도 금갑을 입고 붉은 얼굴을 한 남자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표정은 물론이고 눈빛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에 도사연은 이가 갈렸지만, 과도한 반응을 보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저자가 봉인을 자극해 다시 자신을 짓누를 것이기 때문이다.
폭우가 쏟아지자 하늘을 뒤덮은 구름의 중압감이 점점 강해지는 듯했다.
우르릉!
뒤이어 번개가 치며 하늘을 밝히자, 용과 비슷한 형태가 상공을 날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용이 아니라 커다란 검은 뱀이었다.
그렇게 점점 더 많은 검은 연기가 봉인이 걸린 산 주위를 뒤덮으며, 하나씩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사연, 네게도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날 줄이야! 산 아래에 깔리다니! 하하하하…….”
그 말만 들으면 마치 원수를 갚으러 온 것처럼 들렸으나, 산 아래에 갇힌 도사연은 기쁜 마음이 앞섰다.
“어르신, 어르신이세요? 어서 저를 구해주세요!”
도사연은 얼른 힘을 모아 목소리를 실선처럼 가늘게 뭉친 다음, 틈새 사이로 쏘아 보냈다. 비록 바깥에서는 그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지만, 검은 그림자는 그녀의 말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어르신? 어르신은 멀리 서역 남주에 계시는데 어떻게 여길 오시겠어? 뭐, 너무 걱정은 마, 내가 있으니까! 널 이렇게 만든 이는 물론 고인(高人)이겠지만, 나도 나름대로 점괘를 쳐보고 오늘이 길시(吉時)라는 걸 알고 맞춰 왔지!”
어르신이 자신을 구하러 온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도사연은 얼른 마음이 가라앉았다. 상대방이 말하는 길시 어쩌고 하는 내용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 세상에 분명 누군가는 계연에 대해 정확한 점괘를 얻어낼 수 있겠지만, 지금 말하는 저자일 가능성은 절대 없었다.
봉인이 걸린 산 주위의 각 봉우리에는 대략 십여 명의 인영(人影)이 나타났다. 누군가는 요기(妖氣)를, 누군가는 마기(魔氣)를 내뿜고 있었다. 그들은 최대한 기척을 숨겼지만 그런데도 그중에는 괴이한 기운이 느껴지는 존재도 있었다. 게다가 하늘에는 거대한 검은 뱀이 구름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가운데 누군가가 도사연이 갇힌 산과 그 앞의 금갑 역사를 바라보며 유유자적한 태도로 말했다.
“자매끼리 회포는 나중에 풀고, 일단은 저 봉인부터 부수자고. 저곳으로 벼락을 쏟아부으면 봉인도 파괴하고, 저 금갑을 입은 자도 함께 죽일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