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화. 금갑 신장이 굳건히 서 있으니, 산을 무너뜨리기가 어렵구나
상공의 구름 사이로 코웃음 치는 소리가 전해지며 벼락이 쏟아져 내렸다.
콰지직…… 쿠궁……! 우르릉……!
벼락이 한 산봉우리 위에 떨어지자, 돌멩이들이 불에 그을린 것처럼 변하거나 곳곳의 흙과 돌이 폭발했다. 하지만 산 전체에는 아무런 작용도 일으키지 못했다.
금갑 역사는 거대한 산 그 자체처럼, 벼락이 떨어지는데도 조금도 피하거나 숨지 않았다. 그는 가만히 서서 주위의 요마들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폭우 속에서 이미 벼락을 한 차례 맞은 산은 봉인이 뿜어내는 영험한 빛도 드러내지 않은 채 끄떡없었다. 금갑 역사도 마찬가지로 원래 있던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보통이 아니군. 과연 이 산을 지키고 있을 만해. 어쩌면 봉인을 푸는 방법도 알고 있을 수 있겠어.”
외모가 준수한 남자가 요풍(妖風)을 부리며 도사연이 갇힌 곳 근처로 날아갔다. 그러자 금갑 역사의 시선이 그 남자의 몸에 고정되었다.
“어떻게 하면 저 봉인을 파괴할 수 있는지 당장 말해라. 그럼 고통 없이 보내주겠다, 어떠냐?”
“주인님의 명을 받아 이 산을 지켜야 하니, 요물은 썩 물러가라!”
금갑 역사는 말을 길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 쩌렁쩌렁한 소리에 온 산이 진동할 정도였다. 당연히 주위의 요마들도 아주 또렷하게 금갑 역사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요마들은 정확한 시간을 셈해보고 온 뒤라 조금도 겁을 먹지 않았다. 요마들은 금갑 역사가 자신들의 말을 무시하자, 더는 입씨름할 생각 없이 말했다.
“하하, 지금은 선유대회 기간이라 네놈의 주인은 멀리 구봉산에 있지. 이곳의 상황을 눈치챈다 해도, 여기까지 오려면 최소 2, 3일은 필요하니 네놈을 구해주지 못할 것이다!”
“산이 비록 크긴 하지만 이런 계통의 술법은 분명 진산법일 테지. 이곳 산세만 부숴도 봉인을 부술 수 있어. 어서 시작하자!”
이어서 준수한 외양의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휘익’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시야가 빙글 돌더니 온통 금빛으로 가득 차는 것을 보았다. 사내의 동공이 잔뜩 오그라든 순간, 그는 금갑을 입은 붉은 주먹이 제 몸에 닿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퍼억……!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남자는 잔뜩 몸을 구부리며 비의 장막을 헤치고 멀리 날아가 어느 산에 부딪혔다.
쿵!
그가 부딪히며 내는 굉음에 산간에는 메아리까지 쳤다.
빗소리는 여전히 귀따갑게 들려왔지만, 그 순간 산 전체가 고요해진 듯했다. 잠시 후, 도사연을 비웃었던 여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산세를 부숴! 주위에 연결된 산맥부터 끊어!”
“어서!”
“저자는 내가 상대할게, 커흥……!”
이와 동시에 여러 산봉우리 위의 요마들이 원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거대한 요괴의 모습으로 산맥을 부수기 시작했고, 그중 넝마가 된 옷을 걸친 거대한 원숭이는 금갑 역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대한 원숭이는 두 손을 꽉 쥔 채로,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금갑 역사를 향해 내리쳤다.
콰앙……!
산 전체가 희미하게 진동하며 지면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으나, 금갑 역사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원숭이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금갑 역사가 멀지 않은 곳의 한 산등성이 위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뭐야! 어어, 조심해!”
마침 그곳에 있던 한 마두(魔頭)는 심상찮은 기척을 눈치채고, 금갑 역사가 다가오는 순간 두 팔에서 어둑한 빛을 뿜으며 몸을 돌려 공격했다.
파밧!
금갑 역사가 마두에게 닿기 전 갑자기 멈춰서자, 그와 부딪친 빗물이 폭발이라도 한 듯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마두는 발톱처럼 날카로운 두 팔로 금갑 역사의 한쪽 팔을 꽉 틀어쥐고 있었지만, 그다지 큰 효력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틀어쥔 그 손이 바로 그의 얼굴을 꽉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금갑 역사의 크기는 약 1장(약 3m) 높이까지 치솟아, 손에 쥔 마두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끼기긱…… 끼긱…… 퍽!
뒤이어 마두의 머리통이 터져나가며 사방에 피가 튀었다.
그와 동시에 금갑 역사는 ‘쿠궁!’하는 소리와 함께 흙을 부수며 다시 모습을 감춘 뒤 좀 더 먼 곳에 떨어진 요괴에게로 했다.
금갑 역사가 사라지자, 지면 위에 낭자한 피와 살점이 다시 스르르 모이더니 조금 전 마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만 그의 안색은 전과 달리 창백했고, 숨도 겨우 쉬고 있는 듯 보였다. 힘의 소모가 커서인지 금갑 역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네 이놈, 죽여버리겠다!”
거대한 원숭이는 온몸의 구멍에서 연기를 뿜을 듯이 분노한 얼굴로, 한 줄기 금빛으로 변한 금갑 역사를 막으러 달려갔다. 금갑 역사는 자신을 막으러 달려오는 원숭이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콰과과광……!
쿵쿵쿵쿵……!
서로를 향해 힘껏 뛰어가는 발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북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 녀석과 힘으로 맞붙지 마! 너보다 힘이 세다고!”
금갑 역사에게 한번 머리가 으깨졌었던 마두가 얼른 전음을 보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곧이어 두 눈이 빨갛게 물든 거대한 원숭이와 붉은 얼굴을 가진 금갑 역사의 몸이 부딪혔다.
쾅……!
금갑 역사는 두 다리로 지면에 기다란 고랑을 남기며 뒤쪽으로 십수 장 정도 밀려났다. 반면 원숭이 요괴는 그와 부딪힌 충격 때문에 뒤쪽 산으로 날아갔다. ‘쿠궁!’하는 소리와 함께 원숭이 요괴의 모습이 무너져 내린 산 아래로 파묻혔다.
요마들은 저도 모르게 모두 원숭이 요괴를 바라보고 있다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요마들은 그들이 부딪혔던 곳을 보다가 금갑을 입은 사내가 또다시 모습을 감추었다는 것을 깨닫곤 머리털이 주뼛 서는 것을 느꼈다.
그중 한 요괴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돌연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빗물이 약해진 것을 느꼈다. 그는 즉시 불길함을 느끼고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을 드러낸 채 뒤쪽으로 몸을 돌려 공격했다.
타닥, 타닥……!
그때 불꽃이 튀는 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지더니, 요괴는 자신의 온몸이 저릿저릿해진 것을 느꼈다. 금갑 역사는 한쪽 손으로 요괴의 팔을 붙잡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요괴의 몸을 틀어쥐고 있었다.
어느새 3장(약 9m) 높이까지 커진 금갑 역사가 한 손으로 요괴의 몸통을 틀어쥔 모습은 마치 장난감을 쥔 것처럼 보였다.
끼긱…… 끼이익…… 턱!
“크아악!”
요괴의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는 동시에 금갑 역사가 요괴를 공격하려던 순간, 요괴는 자기 피를 흡수해 핏빛으로 변하여 도망쳤다. 거의 동시에 뒤쪽에서 ‘퍽!’하고 금갑 역사의 두 손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요괴는 만약 자신이 1초만 늦었더라도 그대로 금갑 역사의 손에 터져버렸으리란 걸 깨달았다.
금갑 역사는 무릎을 살짝 굽힌 상태에서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사의 몸 위에는 보일 듯 말 듯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윽…… 커헉……!”
쿠구궁……!
그때 돌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더니 산 중간에 처박혔던 원숭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멀찍이 서 있던 준수한 외모의 남자도 다시 요풍을 몰고 이쪽으로 돌아왔는데, 사내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머리가 터졌던 마두며 방금 팔 한쪽을 잃은 요괴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저자는 상대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먼저 처리해버리는 게 좋겠어!”
산 아래에 갇힌 도사연은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기도 벅찼기 때문에 외부의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간간이 들려오는 고함과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니 싸움이 시작된 것 같았다.
비록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금갑 역사를 상대로 저들이 그리 손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간 도사연은 금갑 역사를 탐색하며 거의 제대로 된 말 한마디 끌어내지 못한 상태였다. 역사는 항상 약간의 멸시가 담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는 오만하고 냉혹하며 계연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사사(*死士: 죽음을 각오한 무사)였다. 도사연은 금갑 역사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가 더욱 꺼려졌다.
금갑을 입은 저 남자는 아예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사람이라 해도 결코 보통 인간은 아니었다. 이는 그 붉은 피부색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에 더해 자신을 한껏 멸시하는 듯한 단조로운 눈빛도 한몫했다. 때로 그의 눈빛에서는 번개가 내리치는 듯 흉흉한 빛이 번뜩였는데, 도사연은 차마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였다.
바로 그 때문에, 도사연은 선유대회가 개막했고 최소한 이틀의 시간이 있다는 걸 들어 알고 있었음에도 그리 큰 희망을 품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런 느낌은 무척 괴이할 정도였다. 도사연은 저 밖에 있는 여인을 무척 싫어했지만, 그녀의 실력만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함께 온 요마들의 수도 적지 않았고, 선유대회 기간에 여기에 온 것만 봐도 실력에 자신 있는 이들이 따라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뒤따라 일어난 상황은 도사연의 예측과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도사연은 바깥의 상황을 볼 수는 없었지만, 소리는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금갑을 입은 남자는 맨 처음 한마디 한 후로는 한 번도 입을 떼지 않았고, 그 후로 들려온 다급한 외침과 비명은 모두 요마들에게서 나는 것이었다.
“저자는 상대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먼저 처리해버리는 게 좋겠어!”
바깥에서 들려온 목소리와 함께, 포효하는 듯한 소리가 잇따르며 더욱 많은 요괴가 본모습을 드러냈다. 일각(15분)이 자신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산 밑에서 상황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도사연의 마음이 바짝 타들어 갔다.
힘껏 고개를 빼서 바깥을 보려고 해봐도, 좁은 틈으로 들어오는 빛조차 무척 제한적이었다. 도사연은 언뜻 요광(妖光)이 스치는 것만 볼 수 있었다.
산등성이 위에 서 있는 금갑 역사는 왼손으로 털이 숭숭 난 요괴의 팔을 들고 서 있었다. 조금 전에 팔이 뜯겨나간 후 도망친 그 요괴의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더니 우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팔을 잘게 부순 뒤 던져 버렸다.
3장(약 9m)에 이르는 크기의 금갑 역사는 마치 산등성이 위에 높이 솟은 금빛 건물처럼 보였다. 하늘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고, 파자산 일대는 폭우에 잠겨 있었다.
솨아아아……!
빗줄기는 시야뿐만 아니라 행동에도 제약을 가져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어둑한 산간에서 번개가 내리쳐야만 주위의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터였다.
콰지직…… 쾅!
주위가 다시 새하얗게 밝아지더니 금갑 역사의 몸에 벼락이 꽂혔다. 하지만 그는 숨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치지직…… 치직……!
벼락이 떨어진 그의 몸에 전류가 흘렀으나 금갑 역사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그는 머리를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전방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런데도 요마들은 역사가 자신을 주시하는 듯한 괴이쩍은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요마들의 직감은 사실이었다. 금갑 역사에게 있어서도 두 눈은 무척 중요한 기능을 했으나, 역사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과 조금 달랐다. 금갑 역사는 굳이 집중해서 대상을 보지 않아도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역사가 누군가를 볼 때 고개를 움직이지 않는 주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