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23화 (523/892)

523화. 요물! 거기 멈춰라!

한편 그곳을 떠난 네 요괴와 마귀 하나는 고개를 돌려 파자산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홍수는 하늘까지 뒤덮을 듯 크게 일었고, 번개가 먹구름 사이로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때때로 여기까지 진동이 전해지는 걸 보니, 싸움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듯했다.

그러다 거대한 뱀이 내지르는 끔찍한 비명이 들려오자 요마들은 저쪽의 대치가 무너진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다행히 홍수의 위세는 그대로였다.

원래 이들은 각자 가진 생각이 따로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힘을 합쳐야만 했다.

“그 여우의 말로는 이곳의 산신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산신당의 천 자(약 300m) 아래에 숨는 것을 좋아한다니, 일단 요기(妖氣)를 감추고 땅 밑으로 들어가자. 우리가 공격해오는 걸 느끼면 산신은 곧장 도망치려 할 테니, 우리는 그때 곤령부(*困靈符: 영물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부적)를 이용해 주위 토령(土靈)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거야. 그럼 이를 눈치채지 못한 산신이 부적의 힘에 부딪히게 될 테니, 그때 바로 산신을 낚아채면 돼.”

처음에 도사연을 비웃었던 여인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래, 얼른 움직이자.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한테는 불리해. 만약 그 선인이 예상보다 빨리 나타나면 큰일이야.”

곧 다섯 갈래의 요광(妖光)과 마기(魔氣)가 멀리 산 바깥쪽을 향해 날아갔다.

* * *

그 시각, 산신 석유도는 지하의 저택에서 두 분 상선(上仙)이 어서 이곳에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비록 금갑 신장이 대단한 힘을 지니긴 했지만, 이곳에 나타난 요마들의 수가 적지 않고 지금 저 소란을 느껴보니 저들이 가진 실력도 대단한 듯했다.

두 주먹으로 손 네 개를 막기는 어렵다는 말도 있듯, 석유도는 금갑 역사 홀로 저들을 당해낼 수는 없을 거라고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곳에서 두려움에 떨며 숨어있는 것이었다. 석유도는 아직 정식 산신이 아니었지만, 그동안 산신의 위력을 얼마간 체험할 수 있었으므로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상선 어른, 제발 빨리 와 주십시오! 이렇게 가다가는 그 요괴가 탈출할 것 같습니다! 저 같은 작은 산신의 힘으로는 막아설 수도 없습니다!”

두려워 떠는 와중에도 석유도는 모든 주의를 멀리 떨어진 곳에 집중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땅의 영기가 모두 그쪽을 향해 모여드는 것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요괴가 술법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금갑 신장으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전황이 격렬하다는 뜻이었다.

“안전이 제일 중요해, 안전이. 신장 대인, 결코 소신(小神)이 대인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제 미미한 법력으로는 저 요마들의 힘과 기세를 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기 있다간 반드시 죽고 말 겁니다! 만약 오늘 일이 무사히 끝난다면, 부디 저를 용서하셔야 합니다!”

석유도는 그렇게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요마도 물론 두려웠지만, 조금 전 금갑 역사의 냉담한 눈길을 떠올리니 저 싸움이 끝나고 나면 자신을 손보려 할지도 몰랐다.

“신장 대인, 대인께서 제게 숨으라고 암시를 주신 겁니다……. 나중에 모른 척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다가 석유도는 돌연 땅속의 미미한 진동을 느꼈다. 파자산 저 멀리에서부터 전해진 기척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미세한 차이를 감지했다.

‘지하에 있는 동물일 수도 있어…… 아니지! 이렇게나 깊숙한 곳에 무슨 동물이 있어? 심상치 않아!’

수상한 기척을 감지한 석유도는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자신의 저택을 벗어나 봉인이 걸린 산을 향해 움직였다.

솨아아- 쿵!

그때, 흙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석유도의 신통력 아래에서 고분고분 움직이던 땅이 어느 순간 철 덩어리처럼 단단해졌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던 석유도는 암반에 거세게 부딪힌 후, 빛을 뿜으며 주위에 떠오른 부적의 글자를 발견했다.

‘이런! 당했다!’

석유도는 이제 막 지맥과 동화되기 시작한 정괴였으므로, 대수국 황제의 책봉을 받았다고는 해도 진정한 산신이 되려면 아직 먼 상태였다. 그에 더해 본인의 도행도 낮았기 때문에, 그렇게 옴짝달싹 못한 채 땅속에 갇혀버렸다.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을 짓누르는 강력한 중압감을 느끼며 부적과 함께 지면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살려 주십시오, 신장 대인! 신장 대인!”

두렵고 황망한 얼굴의 산신이 비명을 지르며 끌려왔다. 그는 어느새 솟구치는 요기를 누를 생각도 없어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오호, 산신이나 토지신들은 전부 이런 모습인가? 산신 대인, 신첩을 좀 도와주시겠어요?”

머리털이 주뼛 설 정도로 간지러운 목소리에 석유도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여인은 요광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 * *

반각(半刻: 7~8분) 후, 파자산에는 갑자기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이에 산간 마을에 사는 백성들은 폭우를 무릅쓰고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그 순간 자신을 짓누르는 봉인의 힘이 느슨해진 것을 느낀 도사연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산신을 찾아낸 다섯 요마는 다른 이들과 합류하여, 금갑 역사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한편 물길을 움직여 봉인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렇게 봉인이 느슨해진 곳에 홍수가 스며들며 봉인을 뒤흔들었다.

그렇게 하여 반 시진(時辰: 1시간) 후, 도사연은 일부나마 자신의 법력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도사연은 법력이 무궁무진한 손오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산을 폭발시켜 봉인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당한 크기로 넓혀진 틈새 사이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빠져나오기에는 충분했다.

자신을 짓누르던 산에서 벗어나자, 도사연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그제야 금갑 역사의 전신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때 십여 명의 요마들은 힘을 합쳐 법력을 펼치며 홍수와 산사태로 금갑 역사의 발을 묶고 있었다.

어느새 5장(약 15m) 높이까지 커진 금갑 역사는 금빛 철탑처럼 제 자리에 굳건히 서 있었다. 그가 약간의 움직임이라도 보일라치면 주위의 요마들은 재빨리 몸을 피하기를 반복했다.

금갑 역사는 도사연이 봉인에서 벗어난 것을 보자마자 두 눈을 내리치는 번개처럼 번뜩였다.

“요물! 거기 당장 멈춰라! 감히-!”

이는 금갑 역사가 내뱉은 말 중 가장 감정이 짙게 담긴 한마디였다. 그의 포효는 마치 천둥이 꽝꽝 내려치는 듯하여, 듣는 요마들의 심장이 떨릴 정도였다.

파앗……!

그 순간 금갑 역사의 움직임을 제한하던 홍수가 사방 백 장(약 300m) 범위로 폭발하며 벼락이 역사의 주위로 쉬지 않고 떨어져 내렸다. 마치 벼락의 신이 강림한 듯한 모습이었다.

“도사연이 빠져나왔어, 어서 가자!”

“맞서지 마! 빨리 가자!”

“어서 도망쳐!”

요마들은 허약해진 도사연을 붙든 채 서로를 향해 소리치며 서둘러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쿠구궁……!

산봉우리 하나가 금갑 역사의 발걸음에 무너져 내렸다. 금갑 역사는 번개가 흐르는 몸으로 공중에 떠 있는 도사연을 향해 뛰어올랐다. 이는 금갑 역사가 그들과 싸우는 동안 처음으로 두 발을 지면에서 뗀 순간이었다.

“막아!”

도사연은 금갑 역사의 눈빛만 봐도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었으므로, 감히 맞서지는 못하고 이렇게 소리치며 두 손으로 결인(結印)을 맺어 허상으로 변한 뒤 날아갔다. 고개를 돌려보니, 원래 자신을 부축하고 있던 요괴가 금갑 역사에게 붙잡혀 지면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살려줘! 가지 마, 살려줘-!”

요괴는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소리치며 술법을 부려 벗어나려 했지만, 이미 온몸이 노란 장식끈에 붙잡힌 채였고 그의 몸도 번개에 의해 마비된 상태였다.

하지만 요괴 중 누구도 뒤돌아보는 이는 없었다. 도사연을 어떻게든 살려야 했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죽, 죽이지 마세요, 저는 흉악한 요괴가 아니에요. 저, 저는 한 번도 사람을 먹은 적이 없, 아니, 살생도 그리 많이 하지 않았어요…….”

금갑 역사에게 붙잡힌 요괴는 너무 놀라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5장(약 15m) 높이의 거대한 신장은 자신의 본모습보다 훨씬 거대했고, 하물며 자신은 지금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괴가 아무리 애걸하고 빌어도 붉은 얼굴의 금갑 신장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멀리 요마들이 도망친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금갑 역사는 더는 도사연의 위치를 느낄 수 없었다.

즉 자신은 주인님이 남긴 명령을 완수하지 못한 것이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금갑 역사의 가슴을 스쳤다. 그것은 아주 희미한 감각이었다. 그는 요마들이 떠난 하늘 저편을 바라보다가, 다시 도사연이 갇혔던 커다란 산을 바라보며 실의에 휩싸였다. 물론 역사는 이게 무슨 감각인지 알지 못했고, 이와 비슷한 것을 경험한 적도 없었다.

“신장 대인, 한 번만 살려주세요! 앞으로는 마음을 고쳐먹고 선량한 요괴가 되도록 할게요…….”

손에 틀어쥔 요괴의 목소리에 금갑 역사는 다시 그쪽으로 주의를 돌렸다. 금갑 역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동자로만 요괴를 주시했다. 노란 장식끈에 붙잡힌 요괴의 온몸에는 번개에 의해 전류가 흐르고 있었고, 때때로 요괴의 모습 위로 늑대의 허상이 드러났다 사라졌다.

요괴의 눈에 비친 금갑 신장의 냉담한 얼굴과 멸시가 담긴 시선은 이전과 다름없었으나, 금갑 역사는 지금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낯선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희미한 노기였다.

금갑 역사의 발밑에 흙의 영기가 모여들더니 역사의 힘이 몇 배로 증가했다.

끄그그극……!

요괴의 근육과 관절이 소름 돋는 마찰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요괴는 고통을 참으며 자신에게 남은 모든 요력(妖力)을 끌어올려 맞섰다. 동시에 금갑 역사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시도했다.

치지직……!

은은한 보랏빛 전류가 금갑 역사의 손을 스치고 지나가자, 잔뜩 부풀었던 요괴의 형체가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안, 안 돼!”

끼이익-!

아주 짧은 대치 끝에,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요괴가 부서져 내렸다. 요괴가 내뿜었던 요기(妖氣)와 살기(煞氣)도 뇌겁의 기운에 의해 흩어져 버렸고, 고깃덩이가 된 살가죽과 핏물이 금갑 역사의 손가락 틈새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그것은 빗물을 따라 아래로 흘러가 다시 대지를 적셨다.

우르릉……!

천둥소리에 뒤이어 떨어진 벼락이 파자산을 밝게 비췄다. 거대한 금갑 역사는 산봉우리 위에 홀로 굳건히 서 있었다.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은 여전히 흩어지지 않아, 산속에는 여전히 폭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위력의 홍수는 요마들이 떠남에 따라 서서히 흩어져, 산 곳곳의 틈새로 스며들거나 지대가 낮은 곳으로 퍼져나갔다.

잠시 후, 낯설었던 감정은 서서히 금갑 역사의 내면에서 사라졌고 그는 다시 원래의 평정심을 회복했다.

금갑 역사는 자신이 서 있던 산봉우리에서 한 걸음씩 걸어 내려갔다. 그 과정에서 역사의 크기도 원래대로 돌아와, 마침내 역사는 도사연이 갇혔던 산 앞으로 돌아왔다. 비록 요괴는 이미 도망쳤지만, 금갑 역사는 이곳에 다시 돌아오는 것을 택했다. 그는 다시 그렇게 천천히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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