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화. 곤선승(捆仙繩)과 맹세
이곳 기도봉에는 수행의 경지가 다른 많은 수선자가 선래봉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러 쌍의 법안에는 선래봉 상공의 다채로운 빛이 파문처럼 멀리 번져가는 것이 보였다.
솨아- 솨앗-!
그렇게 몇 번인가 빛이 번쩍이더니 선래봉이 점차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법보가 뿜는 상서로운 빛이나, 제련 과정에서 비롯된 법광도 사라졌다.
그때 선래봉 운하원 안에는 계연, 늙은 용, 노염생, 거원자 그리고 축청도 다섯 명이 가부좌를 튼 채로 앉아있었다.
원래 그들 주위로 펼쳐져 있던 드넓은 산과 하천의 풍경은 계연이 의식 세계를 거둬들이면서 다시 운하원 응접실의 광경으로 되돌아왔다.
빙 둘러앉은 다섯 사람의 중심에는 끈 하나가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수려한 법광을 흘리며 비범함을 드러내던 끈은, 그 빛을 점차 줄이더니 마침내 자색(紫色)과 금색이 섞인 가느다란 끈으로 변했다.
계연이 끈을 향해 손을 뻗으니 끈이 그의 손바닥으로 떨어졌다. 끈은 마치 자색과 금색의 특수한 끈이 서로 엮이며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고, 끈 한쪽 끝에는 가느다랗고 짧은 털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자그마한 백옥이 달려있었다. 계연이 법안으로 살펴보니, 그 백옥 위에는 보일 듯 말 듯한 영문(灵文)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문자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문자로 보이진 않았는데, 어떻게 보면 상용되는 전서체(篆書體)의 변형으로도 보였다. 문자에서는 심오한 도의 흐름이 느껴졌는데, 다섯 사람은 척 보자마자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곤선승(*捆仙繩: 주술을 펼쳐 선인을 꼼짝 못 하게 하는 밧줄)?”
축청도가 눈썹을 찡그린 채로 계연을 향해 물었다.
“계 선생님, 이게 어찌하여 곤선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요? 이름만 보면 꼭 우리 수선자들을 묶는 용도의 끈 같습니다만…… 곤마승(*捆魔繩: 마귀를 묶는 밧줄)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하지 않겠습니까?”
늙은 용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인지, 원래는 ‘곤요(捆妖)’라고 말하려다 말을 바꾼 듯한 분위기였다.
그 말에 거원자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축 도우께서 잘못 이해하신 듯합니다. 저 ‘선(仙)’ 자는 신선 혹은 신통력이 대단하다는 뜻 외에도 구속 없이 천하를 떠돈다는 소요(逍遙)의 뜻과 만물의 무궁한 변화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수선자들은 ‘도(道)’의 깨달으려 하며 그 진정한 의미를 좇는 이들이지만, 실은 불법을 닦는 승려나 마귀, 요괴, 신령들도 각자의 도를 닦는다는 점에서는 우리와 마찬가지입니다. 도 자체는 무궁하고 넓으니까요.”
거원자가 이해하고 설명한 바는 계연보다 훨씬 깊었다. 이에 더 덧붙일 말이 없었던 계연이 얼른 동의했다.
“거 도우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다고 ‘곤도승(捆道繩)’이라 부르자니, 오만하고 극단적으로 느껴져 그리 좋지 않을 듯합니다. 그 외에 다른 이름을 붙이더라도 다른 도를 닦는 수행자들의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 그냥 ‘곤선승’이라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렇군요, 확실히 그편이 나은 듯합니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천도(天道)에 합치하는 법보인 만큼, 듣기 좋은 이름도 중요하지요!”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이자 그리 심오하지 않은 문제를 논의했다.
노염생은 계연이 들고 있는 곤선승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법보는 상대를 속박하는 데에 쓰이는 것이 분명합니다. 저희가 모두 힘을 모아 6년이 걸려 완성해 낸 것이니, 그 위력도 필시 대단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법보의 능력은 그뿐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 나도 어쩐지 계속 그런 느낌이 들었소.”
법보를 제련하는 것은 마치 무언가를 조각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다섯 명은 마음을 모아 자신들의 능력을 합쳐, 이 곤선승을 가장 완벽한 형태로 탄생시켰다.
모두 이 법보가 무슨 능력을 지닐지 대략적으로만 추측했을 뿐이지만, 일단 법보가 성공적으로 만들어지기만 하면 대단한 물건이 되리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늙은 용은 그들의 대화가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갑시다, 이 법보에게 바깥세상을 보여줄 때요!”
다섯 명은 함께 선래봉을 날아올라 구봉 동천 바깥으로 향했다.
그러자 구봉산에서도 선법(仙法)의 힘이 담긴 법광이 차례로 솟구치며, 다섯 명이 타고 간 노을빛 구름을 따라 구봉 동천 바깥으로 향했다. 수많은 수선자가 환한 빛을 뿜으며 날아가는 모습이 마치 선유대회가 다시 열린 듯했다.
계연의 일행이 구봉산과 바깥 세계를 잇는 빛으로 된 둥근 진법을 빠져나오자, 하늘과 땅 사이에서 희미한 압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힘은 계연을 비롯한 이들의 마음까지 답답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다섯 명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계속해서 날아갔다. 구봉 동천에서부터 다시 일각(*一刻: 15분) 정도 떨어진 위치에 다다르자 계연이 곤선승을 하늘을 향해 던졌다.
다른 네 사람은 계연의 곁에 가만히 서서 곤선승이 상공으로 날아오르는 걸 바라보았다.
천지가 곤선승을 ‘영접’하는 의식에서, 계연을 비롯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계연이 예전에 썼던 <천지묘법>과 달리, 곤선승은 그 자체로 지극한 보물이었고 하늘의 세례를 받을 만한 보배였다.
계연과 늙은 용을 비롯한 이들의 뒤쪽에는 구봉 동천에서부터 따라 나온 수선자들이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급속도로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그 사이로 전류가 흐르며 번쩍였다.
우르릉…… 우르릉……!
번개가 번쩍이는 동시에 곤선승이 스스로 빛나기 시작했다. 눈이 멀어버릴 듯한 빛에도 수선자들은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콰지직……!
쿠웅!
벼락 한 줄기가 곤선승에 떨어지자 날카로운 금빛이 번쩍였다.
콰지직…… 쿠웅……!
콰직…… 쿠웅……!
…….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벼락이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곤선승이 뿜어내는 빛은 쉼 없이 변했고, 지켜보는 이들은 짓눌리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빛의 변화는 매 순간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저 벼락이 곤선승 위에 떨어질 때마다 나타나는 일곱 빛깔 색채의 변화는 법보가 겁을 견디는 거라기보다는 오히려 길조처럼 보였다.
그렇게 겨우 반각(*半刻: 7~8분)이 지난 후, 번개가 잦아들고 먹구름이 흩어졌다. 이제 하늘에 남은 것은 일곱 빛깔의 찬란한 빛을 내뿜는 곤선승뿐이었다.
곤선승이 계연의 손 위에 천천히 떨어지며 법광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자 구봉산 장교를 앞세운 수선자들이 차례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법보를 성공적으로 제련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원하던 바를 이루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제련에 성공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하늘에서 길조를 내리다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계 선생님!”
…….
계연을 포함한 다섯 명은 그들의 인사에 얼른 화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선래봉처럼 진법으로 보호되어 법보를 제련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곳을 군말 없이 내줬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은혜를 입은 것이었다.
수선자들은 범인(凡人)에 비하면 청정하고 욕심이 없는 편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찌 성대한 연회를 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이 자리의 모든 수선자가 그 자리에 참석할 수는 없었다. 이는 자격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구봉산에서 6년을 기다린 이들이 원하던 것은 오로지 조금 전의 그 장면을 목격하는 것뿐이었다. 이로써 그들은 법보가 밧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장면을 놓친 이들도 다른 이들을 통해 법보의 형태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내내 궁금해하던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돌아갈 때였다.
다만 저 법보가 무슨 능력을 지녔는지는 모두 추측만 할 뿐이었는데, 굳이 계연을 비롯한 고인들에게 이를 캐물었다가 미운털이 박히고 싶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 * *
그로부터 3일 후, 계연은 다른 이들과 함께 천도봉 정상의 논도대 위에 서 있었다.
“제 법보를 제련하는 일 때문에 여러분들이 선유대회에 참석하지 못한 데다 이리 큰 도움까지 받았으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노염생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선유대회에 참석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번 대회가 그중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그간 참석했던 선유대회 중에 올해가 최고였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늙은 용은 굳이 말할 것도 없이 자신도 이번에 정말 값진 경험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곰곰이 무언가 생각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계 선생, 우리는 본래 막역한 사이이니 서로 돕는 것은 당연한 말이오. 그러니 은혜를 갚아야 할 필요도 없소이다. 다만, 굳이 보답하고 싶다면…… 얼마 전에 법보를 제련한 경험에 관해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지 않았소?”
늙은 용이 다른 이들을 향해 얼른 눈짓하며, 계연이 천서(天書)를 쓰는 대단한 능력이 있다며 전음(傳音)을 보냈다. 그는 <천지묘법>이 천지에 받아들여지지 않아 뇌겁을 불러왔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만약 계 선생님께서 이 일을 책으로 엮으신다면, 저희에게도 꼭 보여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이번 일을 책으로 엮자면 계 선생님께서 쓰시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겁니다. 여러분은 계 선생님의 글자를 아직 못 보셨겠지만, 그건 이미 도의 경지에 이른 수준입니다! 이 법보에 관해 적으려면 오직 선생의 글자만이 그 뜻을 담을 수 있을 겁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들이 먼저 나서서 이렇게 요청하니 계연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네, 그럼 최선을 다해볼게요. 글을 다 쓰고 나면 어느 분께 빌려드리고 할 필요 없이, 이 글을 어느 수행 성지에 보관할게요. 네 분의 제자나 후배 중에서 혹 심성이 뛰어난 자가 있다면 모두 와서 볼 수 있도록요. 이 약속은 강산이 바뀌고 만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정한 겁니다!”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하하하하, 잘되었군!”
모두는 선유대회가 열렸던 천도봉 정상을 둘러보고는, 이걸로 이번 선유대회에 참석한 셈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듣자 하니 이번 선유대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다지 큰 소란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대회가 끝나 떠날 때도 모두 웃는 얼굴로 헤어졌다고 하니, 원만히 마무리된 것이었다.
다섯 명은 급히 돌아가려 하지 않고, 논도대 위에 앉아 법보를 제련하며 깨달았던 것들에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는 계연이 이후에 이 과정을 글로 엮어낼 때 그 내용을 더욱 완전하게 쓰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계연이 쓸 글은 진정한 ‘천서(*天書: 하늘의 글)’가 될 것이므로 보통 문자로 기록한 일반적인 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제련의 결과인 법보와 제련에 참여한 다섯 명이 그동안 깨달은 것들은, 다른 법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런 엄청난 부담감을 지고 계연이 순순히 글을 쓰겠다 나섰으니 다른 이들은 당연히 기뻐했다.
모두는 글을 남기기로 한 후에도 며칠간 더 논도대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구봉산 수선자들에게 말을 남긴 다음 함께 남쪽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