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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526화 (526/892)

526화. 마음은 영혼의 근본

그로부터 이틀 후, 파자산 북쪽 상공에 흰 구름이 하나 나타났다. 구름 위에는 계연과 노염생을 비롯한 다섯 명이 서 있었다.

여우 요괴를 봉인해놓았던 산봉우리는 여전히 굽이굽이 이어진 산맥 깊은 곳에 우뚝 서 있었다. 하지만 그 봉인을 걸었던 노염생의 눈에는 봉인이 이미 깨진 것이 보였다.

이미 6년이 지났음에도 산에 남은 싸움의 흔적은 그대로였다. 산봉우리가 몇 개나 무너진 데다, 요법(妖法)에 의해 일어난 홍수와 산사태로 인해 지형이 변하고 계곡이 몇 줄기나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흰 구름은 도사연이 갇혔던 곳의 맞은편 산등성이에 천천히 내려왔다.

노염생은 주위를 둘러보며 이렇게 탄식했다.

“휴, 결국 그것이 도망치고 말았군!”

도사연이 갇혔던 산 아래에는 어느새 1장(약 3m) 너비의 열곡이 생겨났고, 그곳에는 암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 물길은 파자산에 새로 생긴 지하수와 이어져 있었다. 도사연이 아니라 보통의 여우라도 도망칠 수 있을 정도였다.

사실 계연은 파자산으로 오는 내내 어쩌면 금갑 역사가 훼손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뇌겁의 세례를 견뎌낸 유일한 역사 부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 내려서자 역사의 존재가 느껴졌다.

계연은 담담한 어조로 그를 불렀다.

“역사, 여기에 있는가?”

계연의 목소리와 함께 봉인이 걸린 산 옆쪽이 쿠르릉 떨리며 돌과 흙, 흙에 섞인 잡초 등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사람의 형체를 한 것이 한 걸음씩 걸어 나오면서 몸을 한번 뒤흔들었다. 그러자 그자를 뒤덮었던 흙이 땅으로 떨어지며 노란 금속 갑옷을 입은 붉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전까지 금갑 역사는 거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산과 완벽히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의 몸 위로 영험한 빛이 흘렀다.

금갑 역사는 한 걸음씩 계연의 일행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간 뒤 계연을 향해 예를 올렸다.

“주인님! 저는…….”

그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인 채, 예를 올리는 자세 그대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반면 계연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가 언제나처럼 그저 ‘주인님’이라고 인사하기만 할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저는…….’이라고 말하며 무어라 말을 하려 했고, 계연은 예민한 청각으로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금갑 역사가 무사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특별한 변화도 일어난 듯하여 계연은 무척 기뻤다. 하지만 지금은 도사연이 어떻게 도망쳤는지, 구미호가 직접 왔는지 등을 자세히 알아봐야 할 때였다. 물론 싸움의 흔적으로만 볼 때, 구미호가 왔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혹은 왔더라도 제자들만 나서게 하고 자신은 보기만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요물이 도망친 것은 이미 안다. 하지만 6년 전에 그 요물을 구하러 온 게 대체 누구지?”

금갑 역사는 예를 거두고 양팔을 다시 몸 옆에 가지런히 붙였다.

“이곳에 온 건 요괴 열 명과 마귀 네 명이었습니다. 뱀, 천산갑, 여우, 원숭이, 인마(人魔)였습니다. 하루 내내 맞붙은 결과, 그중 둘을 죽였으며 셋은 중상을 입혔습니다. 하지만 산세(山勢)가 무너져 그 요물이 도망쳤고, 다른 요마들도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금갑 역사의 간결한 말에서는 어떤 감정 기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그날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고하자, 계연의 희뿌연 두 눈이 밝게 빛났다.

이 역사 부적은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렇게 많은 요마를 상대하면서 둘을 죽이고 셋을 상처 입힌 데다, 그 자신은 어떤 복구 불가능한 손상도 입지 않았다. 이는 계연이 보기에 무척 대단한 전적(戰績)이었다.

비단 계연뿐만 아니라, 거원자와 축청도 두 사람도 다시 금갑 역사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역사의 능력에 혀를 내두르며 역사의 도행이 필시 낮지 않을 거라 추측했다.

금갑 역사의 설명을 들어보니 그 요마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것들이었다. 모두 다 둔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람과 비를 부리기도 하고 머리를 쓸 줄도 알았다. 어수술을 이용해 파자산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을 정도였다.

한 사람이 십여 명의 요마와 맞붙은 후 무사히 몸을 빼냈다는 것은 비록 소임을 다하지는 못했다더라도, 결코 죄를 물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다.

늙은 용과 노염생이 금갑 역사를 바라보는 눈길도 전과 달랐다. 용 한 마리는 경악에 찬 눈빛을 하고 있었고, 한 사람은 넋이 나간 듯 보였다.

“계 선생님, 언제부터 이런 대단한 신장을 거느리고 계셨습니까? 전에는 뵙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저분은 보아하니 요족(妖族)은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의 기운이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설마 신령이십니까?”

거원자는 공손한 태도로 금갑 역사가 누군지 궁금해하며 물었다. 척 봐도 대단한 존재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노염생은 거원자와 축청도의 표정이 호기심을 담고 있긴 하지만, 정상적인 범위 안의 반응인 것을 알아차렸다. 오직 자신과 응굉만이 아연실색한 듯한 얼굴이었다. 이에 노염생은 응굉과 계연의 교분이 깊으니, 분명 용왕도 저게 역사 부적임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늙은 용은 노염생의 추측대로 저것이 역사 부적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계연에게 들어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아들인 응풍이 응풍의 ‘어중이떠중이’ 무리 중 하나인 천수호 교룡 고천명에게서 들은 후 알려준 덕택에 알고 있는 것이었다. 고천명은 귀성(鬼城)에서 만난 우패천과 연비에게서 들어 금갑 역사에 관한 것을 알게 되었었다.

이는 건너 건너 알게 된 사실일 뿐이라 응굉은 역사 부적보다는 삼매진화에 더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응굉은 드디어 원하던 대로 삼매진화의 위력을 실컷 감상할 수 있었고, 삼매진화는 그의 예상보다 더욱 대단했다.

응굉은 원래 역사 부적이란 게 꼭두각시나 인형을 부리는 보통의 부적 종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저런 모습에 저런 능력을 지녔을 줄이야!’

늙은 용이 옛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 노염생은 허허 웃으며 계연이 입을 열기 전에 자신이 나서 거원자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거 도우, 실상은 그게 아닙니다! 저 금갑 신장은 부적입니다.”

“부적이라고요?”

축청도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으며 법안을 열어 금갑 역사를 관찰했다.

“그럴 리가요, 저건 꼭두각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법력으로 만들어진 간단한 존재도 아닌데요. 영험한 빛에 감싸여 있긴 하지만, 육신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계 선생님, 그 말이 사실입니까?”

축청도는 계연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저었다.

“부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다르고……. 음, 기이한 술법(異術)이라도 해두죠!”

여러 신통한 술법 중에서도 기이하다고 불리는 것들은 모두 범상치 않았다. 아주 희귀하거나 배우기가 무척 어렵거나 했는데, 보통은 그 둘 다였다. 그리고 계연이 느끼기에 역사 부적은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었다.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고, 일단은 확인할 것이 있어요.”

계연은 축청도의 물음에 대답하면서도 금갑 역사를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계연은 버들잎처럼 천천히 산등성이에서부터 금갑 역사 앞쪽으로 내려앉았다.

금갑 역사는 아무런 신통력을 쓰지 않았는데도 계연보다 몇 배는 더 컸다. 이에 계연은 그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역사를 자세히 관찰한 계연은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감지할 수 없었다. 요마들과 싸우며 많은 힘을 소진했다고 해도, 흙의 영기를 흡수했을 테니 거의 곧바로 회복되었을 터였다. 표정과 눈빛도 그대로였지만, 계연은 금갑 역사가 ‘저는…….’이라며 무언가 말하려 했던 것을 잊을 수 없었다.

금갑 역사는 조각상처럼 가만히 자리에 서 있었지만, 계연은 역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이 산 아래의 요물을 지키라고 명한 후에, 그 요물이 도망쳤을 때, 기분이 어땠지?”

원래라면 계연은 금갑 역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금갑 역사는 역사를 만들어내는 술법에 포함된 행동과 판단 양식 외에는 어떠한 주관적인 감정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 계연의 물음을 들은 금갑 역사는 얼마간 침묵하더니 이렇게 입을 열었다.

“주인님…….”

그는 적당한 단어를 찾으려는 듯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마침내 다시 말을 이었다.

“내리신 명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송구스럽습니다!”

내린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말은 원래의 금갑 역사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송구스럽다’라는 말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역사의 감정 표현이었다.

“하하하…… 괜찮다. 임무를 다하지 못해 요물이 도망쳤지만, 대신 다른 걸 발견했으니까.”

금갑 역사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으나, 계연은 금갑 역사의 시선에 변화가 생긴 것을 느끼고 웃으며 물었다.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으냐?”

금갑 역사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지만, 계연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바로 네 마음, 그러니까 심장이다!”

“심장?”

금갑 역사는 이렇게 되물으며 고개를 숙여 자신의 왼쪽 가슴 부근을 바라보았다. 그는 사람과 둔갑한 요물들의 심장이 모두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은 원신(*元神: 육체가 만들어지는 동시에 생겨나, 수행을 시작하면 혼백을 주관하는 역할을 함. 사람이 죽은 후 환생하는 근간이 됨)이 머무는 곳이고, 오행 중 불(火)에 속하며, 육신에 원기를 불어넣는 작용을 한다.

‘육신의 생명을 거두고 원신을 훼손하려면, 심실(*心室: 심장의 아래쪽에서 동맥과 직결되어 혈액을 내보내는 부분)과 상단전(*上丹田: 도가(道家)에서, 삼단전(三丹田)의 하나인 뇌(腦)를 이르는 말)에 충격을 가해 부수고…….’

“내가 말하는 마음은 네가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계연은 금갑 역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처럼, 역사가 다른 생각에 빠지기 전에 얼른 덧붙였다.

“마음이란, 음…… 모든 중생이 가진 영혼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지. 넌 이번에 그걸 우연히 발견한 거야. 앞으로는 스스로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거원자를 비롯한 이들은 일찍이 산등성이에서 내려와 이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계연이 ‘마음’에 대해 논하는 것을 듣고 눈을 반짝였다. 대부분의 수행 서적에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집중하라거나 마음을 깨끗이 하여 욕념을 자제하라고만 하지, 계연이 한 말과 같은 내용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마음을…… 찾아야 한다?”

“그래. 일단은 쉬고 있으려무나!”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그러자 거대한 금갑 역사가 금가루와 같은 빛무리로 변하더니 사람 형태의 노란 종이로 바뀌어 계연의 손안으로 돌아갔다.

이를 본 거원자와 축청도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정말 저게 부적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조금 전까지 계 선생님이 저 부적과 마음에 대해 논하고 있었는데!’

보통의 부적을 이를 때도 영부(靈符)라고 일컫긴 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영기를 품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계연이 가진 노란 종이 부적의 ‘영’은 그보다 깊은 의미를 지녔다.

계연이 역사 부적을 손에 쥐자, 네 사람이 다가와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계 선생, 이게 정말 그 부적이란 말인가?”

늙은 용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예전에 아들이 금갑 역사에 관해 전해주며, 계 숙부님이 뇌주(雷咒)를 다루니 필시 부적에도 능할 거라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계연 정도의 경지에 그런 술법에 능하지 못한 것이 더욱 이상할 것이다. 게다가 꼭두각시를 부리는 부적은 무척 쓸모가 많으니, 계연도 그런 종류의, 그러나 조금 더 특수한 부적을 가졌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응굉은 그보다는 계연의 천경검세와 삼매진화가 더 궁금했었다.

하지만 계연의 손에 들린 종이를 바라보며 조금 전 보았던 것을 떠올린 그는 이게 보통 특수한 부적이 아니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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