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27화 (527/892)

527화. 도가(道歌)

계연은 사람의 형상을 띤 부적을 소매 안에 넣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굳이 따지자면 부적에 가깝긴 해요. 하지만 다른 부적을 이용한 술법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그리고 조금 전의 그 역사는 제가 가진 부적 중에서도 특수한 존재고요. 그런 역사는 저도 이것 하나뿐이에요.”

계연의 말대로 역사 부적은 전통적인 부법(*符法: 부적을 만들고 부리는 술법)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종이로 만들어진다는 점 빼고는 오히려 여의 법전과 더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여의 법전은 죽은 이에게 제사를 지낼 때 태우는 법전에서 착안하여 계연이 만든 것이지만, 이름만 빼면 형태도 실제 법전과는 조금 달랐고 오히려 특수한 부법에 가까웠다.

어찌 되었든 계연은 정통 선도(仙道) ‘학원’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무언가를 만들 때, 그것의 한계나 정의를 따로 설정하지 않고 마음 끌리는 대로 만들었다.

늙은 용을 비롯한 이들은 계연의 말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였다. 어찌 특수하지 않겠는가? 무려 부적이 영지를 얻었는데.

노염생은 부적에 대한 호기심을 접어두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일을 떠올렸다.

“계 선생님, 금갑 역사는 여기 남아있었지만, 산세(山勢)가 훼손되고 봉인이 무너진 걸 보니 산신은 아마 죽었겠지요?”

노염생은 스스로가 남기고 간 봉인에 대해 잘 알았다. 그 봉인을 깨는 첫 번째 방법은 요마들의 진산법(鎭山法)에 대한 조예가 자신과 엇비슷하거나 그보다 깊어야 했으므로, 그랬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둘째로는 산세를 부수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러려면 파자산을 아예 싹 갈아엎거나 산신에게 손을 써야 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을 보니, 파자산이 훼손된 정도가 그리 크지 않았으므로 산신이 화를 당했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계연은 원래 구신술을 써보려다가, 노염생의 말을 듣고는 생각을 바꿨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정말로 목숨을 잃었는지는 알 수 없으니, 일단 산신당에 한번 가보죠.”

그들이 함께 산길을 걷자, 험난한 길도 평지처럼 변했고 걸음 한 번에 풍경이 휙휙 바뀌었다. 그렇게 잠시 후 그들은 산신당 바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당 바깥의 벽에는 누런 가죽으로 만들어진 변영부 관아의 포고가 못에 박혀 있었는데, 파자산의 통행을 금지하며 수렵 목적의 입산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6년 전의 변고 때문에 대수국 황조에서는 파자산에 사는 백성들을 다른 마을로 이주하도록 만든 후, 산길마저 끊어버린 뒤 통행을 금지했다.

틀만 세웠을 뿐 아무런 칠이나 장식도 하지 않은 산신당은 그렇게 황폐해져 갔다. 이에 산신당 주변에는 잡초가 가득 자라나 있었고, 칠도 하지 않은 대문에는 곰팡이나 벌레 먹은 흔적이 가득했다.

계연이 산신당 문을 밀자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부서진 산신상이었다.

신상의 온몸은 금이 가 있었고, 몸에서 떨어져 나온 얼굴은 누군가 주워다 찹쌀풀로 이어 붙인 듯 괴기스러운 모습이었다.

산신당으로 들어선 늙은 용이 신상 뒤쪽을 살펴보더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보아하니 아무리 대수국이라고 해도, 관아의 금지령을 어기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나 보군.”

이에 계연이 와서 보니, 신상 뒤쪽에는 불을 피우고 남은 재처럼 누군가 머물다 간 흔적이 널려 있었다. 그간 산에 들어온 이들이 산신당에서 자주 머문 듯했다.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요. 생계를 이으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오는 이들이 항상 있기 마련이죠. 게다가 이 산에는 사실 삿된 기운을 가진 것들이 살고 있지 않으니, 처음 몇몇이 산에 들어왔다가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이 알음알음 퍼져나간 모양이에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산신당 곳곳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그다지 볼 것은 없었지만, 그는 이를 통해 오래된 옛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훼손된 산신상, 나그네들이 머물고 가는 산신당…… 모두 그 예전의 우규산과 비슷했다.

“어쩌면 이 산신은 아직 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축청도의 말은 산신상 앞쪽에서 들려왔으므로, 계연과 늙은 용이 다시 앞으로 돌아 나오자 축청도가 신상 아래쪽에 난 균열에서 타고 남은 향 세 대를 찾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신도(神道)에서는 범인(凡人)들이 신령을 숭배하는 만큼, 신령도 그들에게 그와 상응되는 계시를 내립니다. 물론 향을 올리는 데에 꽤 따져야 할 게 많지만, 이렇게 향을 태우고 남은 형태에 따라 각기 다른 뜻이 있습니다. 향의 종류와 환경에도 영향을 받긴 하지만, 신령이 뜻을 전하는 방법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축청도가 들고 있는 향 세 대는 일찍이 다 타버린 후라 향을 올렸을 때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타고 남은 모습만으로도 알 수 없는 현묘함이 느껴졌다.

그들은 모두 진정한 고인(高人)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이렇게 짚어주자 곧바로 어떤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계연은 더 볼 것도 없이 칙령을 입에 머금은 상태로 오른발을 살짝 들어 지면을 향해 내리눌렀다.

계연의 발이 채 땅에 닿기도 전에 물결 같은 파문이 퍼져나갔다.

“파자산 산신을 뵙기를 청합니다.”

즉각 결과가 나타났던 다른 때와 달리, 이번에는 땅에 퍼지는 파문이 잠잠해지다 아예 사라진 후에도 산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자 노염생이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아무래도 석 도우는 정말로 숨이 끊긴 모양입니다!”

계연이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축청도가 든 향을 바라보자, 축청도는 계연이 부린 구신술에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계연은 그 표정에 주의를 기울일 새도 없이 그의 손에서 타고 남은 향 한 대를 가져갔다.

“축 도우, 향 한 대만 가져갈게요.”

계연은 향을 들고서 정신을 집중해 다시 법력을 끌어올린 후,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가 땅에 내리며 입을 열었다.

“파자산의 석유도를 뵙기를 청합니다.”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희미한 안개 덩어리 같은 것이 나타났다. 그것은 신당에서 향을 태우면 천장에 모여드는 연기와 비슷한 형태였다. 뒤이어 기이하게 생긴 노란 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일반적인 의자 정도의 크기였는데, 어떤 각도에서 보면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사람 같기도 했다.

“죽은 건 아니지만, 살아있다고 볼 수도 없네요.”

“음, 하지만 아직 살릴 수 있겠습니다!”

“예, 아직 늦지 않았네요.”

“이 정도만 남아도 대단한 겁니다.”

석유도는 현재 의식이 없는 상태로 돌 안에 희미한 영성(靈性)을 남긴 채로 영기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대로 영기가 좀 더 모여들고, 해와 달의 힘을 받으면 영성이 조금씩 강해지다가 백 년쯤 뒤에는 깨어날지도 몰랐다.

“그를 봉인이 걸렸었던 산봉우리 위에 가져다 두고, 그 주위로 진법을 쳐서 해와 달의 힘을 모으도록 도와주면 더 빨리 깨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노염생의 제안은 정통적인 선도의 방식이자 가장 상용된 방법이었다. 삿된 술법을 이용하면 그를 좀 더 빨리 깨울 수 있겠지만, 그러려면 남의 피를 이용하거나 원기를 빼앗아 오는 등의 악독한 방법을 써야 했다. 게다가 그렇게 되면 깨어난 석유도도 사도(邪道)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 계연은 눈썹을 찡그린 채로 토지신이나 산신 등 터주신에 관해 적혀 있던 <정덕보공록>에서 언뜻 보았던 내용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입으로 그 내용을 중얼거렸다.

“산속에 노란 돌이 있어, 해와 달빛을 받으며, 하늘에서는 바람과 벼락을, 땅에서는 영기를 받았다네……. 감정을 지닌 만물은 세상을 왔다 가고, 천지에 태어나 산하(山河)로 돌아가네……. 작은 돌은 가만히 산중에 누워, 하늘과 땅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나길 기다리네. 산맥과 감응하고 산천을 느끼니, 연이 닿는 때에 태어나고 자라나는구나……!”

계연의 목소리는 마치 노랫소리처럼 중후하고도 아득했고, 그 맑은소리는 점차 산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표범 한 마리는 산토끼를 물어뜯으려다 멈칫했고, 산토끼도 허둥지둥 도망치다가 서서히 걸음을 멈췄다. 하늘에서 참새 한 마리가 둥지로 내려오자, 원래는 어미가 돌아왔다고 입을 벌리고 삑삑대야 할 새끼 새들조차 숨을 죽였다. 냇가에서 물을 마시던 짐승은 고개를 들어 올렸고, 위험을 무릅쓰고 산에 들어와 약초를 따던 약초꾼은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노랫소리가 들리고 점차 산속에 울려 퍼지면서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삽시간에 파자산은 고요해졌다. 마치 식물부터 동물까지 모두 가만히 그 노랫소리를 듣는 듯했다. 그 은은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모두를 무척 편안하게 했다.

“영기가 모이며 땅속 깊이 이어지는구나, 작은 돌이 태어나고 자라나네.”

마지막 몇 글자에는 희미한 칙령의 힘이 담겨 있었고, 현황(玄黃)의 기운은 그의 목소리를 따라 산신당의 노란 돌을 향해 모여들었다.

계연의 도가(道歌)는 이미 끝났지만, 그 독특한 음율은 산과 대지가 그것을 따라부르는 것처럼 여전히 산속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보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 노랫소리가 산신당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 소리가 산신당 안으로 전해지며 산 곳곳의 영기도 노란 돌 안으로 모여들었다.

무언가를 느낀 계연이 고개를 숙이고 발치에 놓인 노란 돌을 바라보았다.

“일어나세요, 석 도우! 그만 일어나세요!”

콰지직…… 콰직……!

돌 위로 희미한 균열이 나타났지만, 그렇다고 이 돌이 지금 당장 부서질 거란 뜻은 아니었다. 다만 균열 틈새로 돌 안의 영기가 점차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한편 늙은 용을 포함한 다른 네 사람은 이를 보고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영기를 담은 바람이 산신당 안으로 불어와 돌을 감쌌고, 땅에서는 토령(土靈)이 끊임없이 돌 안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뒤이어 토령보다 훨씬 중요한 지맥(地脈)의 기운이 함께 이끌려왔다.

이때 석유도는 어떤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돌 안의 영기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의식이 깨어나고 있었다.

온통 새카만 암흑 속에서 석유도는 희미한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과 땅이 만들어낸 노래인 것처럼 메아리쳤다.

의식 속의 깊은 어둠이 물러감에 따라 점점 석유도는 빛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어나세요, 석 도우! 그만 일어나세요!”

계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석유도의 몽롱한 의식에 환히 빛이 들어왔다. 뒤이어 눈앞에 여러 색채가 펼쳐지며 푸르른 산맥이 펼쳐진 수행자의 의식 세계가 나타났다.

콰직- 콰지직-!

돌가루가 바닥에 떨어지며 노란 돌에서 은은한 빛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돌의 느낌이 희미해지면서 돌은 더욱 사람의 모습과 비슷해져 갔다.

마침내 돌을 뒤덮은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돌멩이가 잔뜩 붙은 모습의 정괴 석유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잔뜩 움츠린 상태에서 천천히 움직이며 눈을 뜨고는 바깥 세계의 빛을 받아들였다.

“석 도우, 일어나세요.”

계연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오자, 석유도의 뇌리에 그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영성을 얻어 정괴가 되고, 산에서 수행을 쌓고, 고인(高人)을 만나 요괴를 지키라고 명받고, 목숨이 경각에 달한 순간……!

그 두려웠던 순간이 떠오르자 석유도는 정신이 번쩍 들며, 막 깨어난 후의 몽롱함이 싹 가시는 것을 느꼈다.

“내, 내가 살아있나?”

석유도는 몸을 일으켜 양쪽 팔과 몸을 앞뒤로 살펴보며, 머리와 사지 곳곳을 더듬거렸다. 모두 다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스스로 뺨을 두 번 때렸다.

“하하하하……! 살아있어! 정말 살아있어! 하하하하!”

석유도가 기쁜 마음에 손발을 뒤흔들며 껑충껑충 뛰었다. 사람들은 날 때부터 영성을 지니고 있어 모르지만, 석유도에게 있어 감정을 가진 중생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고 얻기 어려운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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