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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528화 (528/892)

528화. 생명의 은인

계연은 가만히 그를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석유도가 다시 살아난 것을 목격한 다른 이들도 그의 기분에 동화되어 수염을 쓰다듬으며 껄껄 웃었다.

“하하하……!”

“축하하네, 석 도우!”

“축하하오!”

석유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계연과 노염생, 그 외에도 모르는 고인이 세 사람이나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너무 기뻐 눈물을 흘리며 곧바로 계연의 앞에 꿇어앉고는 머리를 땅에 부딪히면서 큰절을 올렸다.

쿵! 쿵! 쿵!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상선께서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는 부모와 같다고 하였으니, 소신(小神) 앞으로 상선 어른의 아랫것이 되고자 합니다. 앞으로 영원히 상선의 명만을 따르고 받들겠습니다!”

쿵! 쿵! 쿵!

석유도는 계연의 목소리를 당연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전히 그의 마음속과 산속에서는 여전히 조금 전 울려 퍼진 도가(道歌)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지금은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지만, 그건 계 선장(仙長)의 목소리임이 틀림없었다. 이에 감격한 석유도는 쉬지 않고 머리를 땅에 부딪히며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선인의 능력에 감탄했다.

산신당에는 고인이 다섯 사람이나 있었지만, 석유도는 오로지 계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늙은 용을 비롯한 네 명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이 산신이 기댈 곳을 고르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은혜를 갚으려 한다지만, 실상은 높은 가지를 타고 오르는(攀高枝: 지위가 높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뜻) 것과 다름없었다. 아니,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登天靑雲: 벼락출세함을 이름) 것과 더 비슷했다.

계연은 손을 뻗어 석유도가 더는 머리를 부딪히지 못하게 한 다음 그를 일으켜 세웠다.

“석 도우, 어서 일어나세요.”

석유도가 일어나 흥분한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자 산신당 안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산신상이 금이 가고 부서진 모습을 보니, 마치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보는 것과 같아 마음이 씁쓸해졌다.

“수행은 본디 어렵고, 정도(正道)를 닦는 것은 더욱 어렵지요. 세간에 삿된 것들이 왜 그리 많겠습니까? 그만큼 유혹이 크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수행의 길에 지름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옳지 않은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건 결국 막다른 길입니다!”

계연은 부서진 산신상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그마한 석유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휘면 온전할 수 있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움푹 파이면 채워지게 되고, 헐리면 새로워지는 법입니다(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敝則新: 노자(老子)가 지은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구절). 이번에 죽음의 위기를 넘겼으니 석 도우께서도 명심견성(明心見性: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여 자기의 본성을 발견하다)에 대해 느낀 바가 있으시겠지요?”

석유도는 계연과 다른 네 사람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예를 올리며 말했다.

“느낀 바가 적지 않습니다!”

노염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산신상이 있는 방향을 가볍게 쓰다듬자, 신상의 부서진 조각과 가루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산신상 위에서 쏟아져 내렸다. 그러자 흠 없이 온전한 산신상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편이 더 좋겠지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선장.”

그러자 노염생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럴 필요 없소이다. 이 정도 솜씨는 계 선생님이 방금 부른 도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네 수선자는 계연이 부린 술법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해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물어보기 적당한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거원자가 산신을 향해 물었다.

“석 도우, 도우께서는 아직 지맥과 완전히 섞여들지는 않았으나 산신의 근간을 갖춘 몸인데 어찌하다 그 요물들에게 잡힌 겁니까?”

산신이나 토지신, 그중에서도 특히 그 땅에서 태어난 정괴가 신령이 된 경우에는 자신이 관할하는 땅 밑에 숨어들면 대지와 완벽히 한 몸이 되었다. 그래서 특수한 수단이 아니면 그들을 찾아내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금갑 역사의 설명에 따르면 그 요마들은 도행이 얕지 않은 자들임이 분명했으나, 그렇다고 숨어들기로 작정한 산신을 가볍게 찾아낼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소신이 숨어든 곳을 그들이 정확하게 찾아냈습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제가 생각 없이 그 팔미호에게 정보를 흘린 것 때문인 듯합니다. 전부 제 탓입니다……. 그 때문에 봉인이 깨지고 요괴가 탈출했으니, 꾸짖음도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석유도는 저들이 이왕 자신을 살렸으니, 그리 무거운 죄를 묻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쨌든 사죄하는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그래서 도사연을 믿지 말라고 말씀드렸지 않나요? 이번에는 산신도 교훈을 얻으셨겠지요?”

“후회해도 늦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참, 신장 대인은…… 그분은 어찌 되셨습니까?”

석유도가 잊지 않고 금갑 역사를 떠올리자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역사는 괜찮아요, 조금 전의 산신보다 훨씬 괜찮은 상태예요. 이왕 깨어났으니 천사처에 대신 보고 좀 해주세요, 저희는 이제 가봐야겠네요.”

석유도는 그 말에 입을 몇 번 달싹이다가 계연의 일행이 산신당을 나서자 다급히 뒤따라 나오며 이렇게 소리쳤다.

“계 선장, 소신 앞으로 영원히 상선의 명만을 따르고 받들겠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삿된 길로 빠지지 말고 열심히 수행하세요. 그러다 보면 또 만나는 날이 있을 거예요.”

늙은 용을 비롯한 네 명은 계연과 마찬가지로 석유도를 향해 살짝 양손을 맞잡고 인사한 다음 맑은 바람을 몰고 떠나갔다.

석유도는 산신당 문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예를 올리는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다섯 명이 멀리 떠나간 후에도 그는 오래도록 그 자세를 유지했다.

계 선장께서는 비록 응답하진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단칼에 거절하지도 않으셨다. 이에 석유도는 평온한 겉보기와 달리 마음이 흥분으로 요동치는 중이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석유도는 그제야 예를 거두고 땅 밑으로 사라졌다.

한편, 산길을 따라 나타난 여섯 사람은 등짐을 지거나 창이나 활을 등에 지고 있었다. 물주머니나 두립은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었고, 이들이 등에 멘 광주리에는 밧줄이나 삽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산신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일행 가운데 한 젊은이가 기쁜 얼굴로 소리쳤다.

“외삼촌, 앞에 산신당이 있어요!”

“응, 빨리 가자. 곧 해가 지겠다.”

그 말에 다른 이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잘됐군, 마침내 좀 쉴 수 있겠어!”

“그러게,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겠어. 하늘을 보아하니 곧 비가 올 듯하군.”

“자자, 어서 가지!”

그들은 등에 진 물건을 단단히 부여잡고 산신당을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조금 전의 젊은이는 가장 먼저 산신당 대문 앞에 이르러 장창으로 문을 몇 번 쿵쿵 때렸다. 산신당 안에 무슨 들짐승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곧바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이편이 안전했다.

안쪽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자, 조금 전 외삼촌이라 불린 연장자가 안심한 기색으로 말했다.

“어서 들어가지!”

산신당에 들어선 몇 사람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산신상이었다.

“어이쿠! 산신 어른!”

“세상에!”

“산신 어르신의 신상이, 다시 붙었어?”

부서지고 금이 간 산신상의 원래 모습은 무척 괴기스러웠는데, 밤에 불빛에 비춰보면 악귀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때 노을빛에 비친 산신상의 모습은 평온하고 고요해 보였다. 물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신상에 금이 간 흔적이 조금도 없다는 점이었다.

“산신께서…… 신통력을 발휘하신 거야…….”

“외삼촌, 제가 아까 노랫소리를 들었다고 했잖아요! 그때는 제가 쓸데없이 사람을 놀라게 한다고 뭐라 하시더니, 지금 보니 산신 어르신께서 부르신 노래임이 틀림없어요! 그건 보통 사람이 낼 수가 없는 소리였다고요!”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멍하니 서서 뭐 하느냐, 어서 산신께 향을 올리자!”

“예, 예, 예!”

일행은 다급히 등짐에서 단향(檀香)을 꺼내 화절자를 이용해 불을 피운 다음, 향에 불을 붙이고 산신을 향해 절을 올렸다.

한편 멀리 산 안쪽에서는 석유도가 모습을 드러내고서 오랫동안 받지 못했던 향불의 원력(愿力)을 받으며 산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신당을 바라보았다. 기쁨도 물론 존재했지만, 그는 이제 마음가짐이 전과 달라진 상태였다. 이런 감각은 무척 기이해서, 평온한 와중에 무언가가 느껴질 듯 말 듯했지만, 또 무어라 말하긴 어려운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게 바로 계 선장께서 말씀하신 ‘명심견성(明心見性)’일지도 모르겠군…….”

* * *

그 시각, 파자산 북쪽의 상공에서는 계연의 일행이 맑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파자산 방향을 뒤돌아보는 계연의 표정은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동시에 그의 소매 안에서 바둑돌의 모습이 반짝이며 사라졌다. 그것은 완전한 모습을 갖춘 흰 돌이었다.

계연이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고, 다른 이들은 암묵적으로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파자산에서 멀리 떠난 후 계연이 다시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오자 축청도가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계 선생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조금 전에 도음(道音)을 이용해 부른 노래는 대체 무슨 신묘한 술법입니까? 선생님께서도 제 성격을 아실 테지만, 저는 결코 선생님의 술법을 넘보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게 신묘하고 심오한 술법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나도 축 도우와 마찬가지로 궁금하오. 하지만 계 선생이 말하기 불편하다면, 답을 듣지 못해도 개의치 않겠소.”

늙은 용은 궁금해하면서도 계연을 배려해 이렇게 덧붙였다. 이는 노염생과 거원자도 마찬가지였다.

네 명은 모두 그 신묘한 술법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지만, 계연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캐묻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는 계연이라면 말해줄 확률이 높았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계연은 그리 애태우지 않고 잠시 눈썹을 찡그리며 말을 고르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만약 순간적으로 옛 기억이 떠올라, 그 도음을 노래처럼 부른 거라고 한다면 믿어주시겠어요?”

그의 말에 네 사람이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거원자는 눈썹을 찡그린 채로 생각에 잠겼고, 축청도는 가만히 수염을 쓰다듬었으며, 늙은 용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고, 노염생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축청도를 제외한 세 사람은 모두 계연의 말을 믿었다. 축청도조차 비록 그 말이 황당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계연 같은 경지에 오른 수선자가 거짓을 말할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굳이 감춰야 할 필요를 못 느낀 계연은 그들에게 옛일을 털어놓았다.

“실은 예전에 연이 닿아 지령(*地靈: 땅의 신령스러운 기운)에 관한 천서(天書)인 <정덕보공록>을 본 적이 있었어요…….”

여기까지 말한 계연이 네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그 책에 대해 알지 못하는 듯 보이자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책은 어느 작은 마을의 토지신이 가지고 있던 것이었는데, 그는 그 책이 귀중하다는 것만 알고 글자가 보이지 않아 내용을 알지는 못하고 있었어요.”

기억을 되짚으며 계연은 자신의 ‘철부지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의 자신은 막 수행을 시작한 새내기로, 자신이 아는 선도(仙道)의 상식은 <외도전>과 <통명책>에서 얻은 게 전부였다. 그 시절에는 성황신만 만나도 조심스러워하곤 했다. 지금이라고 성황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그때는 존중에 더불어 두려움도 조금 있었다.

“그때 제가 우연히 그가 관할하는 곳을 지나다가 어느 농가에 잠시 머물렀는데, 토지신이 제가 수선자임을 알고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 저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는 그 서책을 꺼내며 제게 그 책의 내용을 알려달라고 부탁했어요. 그 덕분에 저도 그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죠. 조금 전의 그 도음은 그 책 속에서 보았던 내용이에요. 그것을 떠올리자 깨닫는 바가 있어, 바로 읊기 시작했어요.”

이는 그야말로 평소 계연의 행동 방식 그대로였기 때문에, 늙은 용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이들도 계연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생각했다. <정덕보공록>은 대단한 내용의 천서가 맞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건 계연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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