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31화 (531/892)

531화. 선계(仙界)에 들기가 그리 쉬울 리가 있나

여기가 집안도 아니고 화절자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불을 피우려면 부싯돌과 종이나 천 조각 같은 게 필요했는데, 그 중요한 부싯돌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에 소년들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급격히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택은 부싯돌을 책임지고 갖고 다니던 소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곧 화가 치솟아 무어라 소리치려 했다. 그러나 그 소년의 표정이 너무나 황망해 보이는 데다 자신도 소리칠 힘이 없었으므로 관두기로 했다.

“안 돼! 반드시 불을 피워야 해, 어떻게 해서든 불을 피워야 해! 돌멩이랑 나뭇가지를 찾아서 불씨를 피워보자. 너희는 가서 땔감으로 쓸 나무를 주워 와. 우리가 집에서 불을 안 피워 본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하지만 아이들의 소망과 달리 현실은 가혹했다. 한 시진(2시간)이 지난 후, 택을 비롯한 아이들의 상처 가득한 손에는 물집이 잔뜩 잡혔다. 심지어 물집이 터지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불씨를 피우지 못했다.

공기가 습하고 재료가 적절치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소년들의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다.

우르르릉……!

그 순간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아직 해가 질 시간이 아닌데도 산속이 어두컴컴해졌다. 뒤이어 먹구름이 몰려오며 그 사이로 번개가 언뜻 비쳤다.

콰지직- 번쩍!

우르릉……!

“으아아앙!”

가장 어린아이가 놀라 울기 시작했고, 다른 소년들도 울지만 않았을 뿐이지 거의 비슷한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그저 최대한 안쪽으로 등을 붙이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더 가까이 붙어!”

“저 모서리로 가, 붙어 앉으면 따뜻할 거야!”

“붙어, 붙으면 춥지 않을 거야…….”

우르릉!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바람도 더욱 거세졌다. 다행히 아이들이 앉은 곳에는 바람이 그리 많이 들이치진 않았다. 바깥에는 모래와 자잘한 돌멩이가 강풍에 날아다니고 있었다.

솨아아아……!

곧이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튀어나온 돌덩이가 빗물을 막아주긴 했으나, 풍향 때문에 가장 변두리에 앉은 택과 다른 두 소년은 비를 맞고 있었다.

“추워…….”

“안쪽으로 조금 더 붙어봐!”

“택이 오빠…….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 걸 보니, 아까 불을 못 피워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으면 모두 슬퍼졌을 거야.”

가장 안쪽에 앉은 아이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아이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하하, 맞아. 불을 못 피워 다행이야!”

“응……. 그렇게 생각하니 훨씬 낫다!”

“헤헤헤…….”

아이들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흐르는 눈물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택은 내내 목에 걸고 있던 천 주머니를 열어 손바닥 위에 조심스레 쏟았다. 그러자 쌀겨가 잔뜩 섞인 쌀알이 쏟아졌다. 어두컴컴한 사위에 나타난 흰 쌀알은 아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자, 한 사람당 한 줌씩이야. 불이 없으니 그냥 먹을 수밖에 없어. 부드러워질 때까지 잘 씹어야 해!”

“응!”

곁에 있던 소년이 두 손으로 조심스레 쌀겨를 받아 가자, 택은 다시 한 줌을 덜어 다른 아이들에게 건넸다. 모두에게 쌀을 한 줌씩 건넨 후 택은 자신의 몫으로 또 한 줌을 쏟아부었다.

천 주머니의 무게를 재어보니 이제는 쌀이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다.

까드득, 까드득…….

쌀겨가 섞인 거친 낱알을 생으로 씹으려니 무척 딱딱하고 입안 곳곳이 따가웠다. 아이들은 그것을 오래오래 씹으며, 쉬이 넘기기 위해 빗물을 받아 마셨다. 다만 겨우 한 줌의 곡식으로 보충되는 열량은 차가운 빗물이 가져오는 한기를 덜어내는 데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가장 안쪽에 앉은 어린 소년 둘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다른 소년들은 모두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다.

“후…… 후우……. 해가 곧 뜰 거야, 금방 뜰 거야…….”

깊은 밤이 되자 마침내 비가 멎었고, 아이들은 그때까지 잠들지 못한 상태였다. 정신이 극도로 피곤하긴 했지만, 이런 환경에서 모닥불도 없이 잠이 들기에는 불안했기 때문이다.

“택 오빠, 맹수가 나타나면 어떡해?”

“오면 잘 됐지, 그놈이 우릴 잡아먹을지 우리가 그놈을 잡아먹을지 한번 보라지!”

“맞아! 오면 우리한텐 잘된 거지!”

가장 바깥쪽의 소년 중 하나는 장작 패는 칼을 손에 꼭 쥐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택은 가죽 검집이 씌워진 비수를 들고 있었는데, 검집 밖으로 칼을 빼니 칼날 위로 서늘한 빛이 번쩍였다.

“리(妳)야, 고(古)야, 어서 자. 나랑 용(龍)이 있잖아.”

“응…….”

안쪽에 앉은 아이들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직 택과 용만이 땔감용 칼과 비수를 꼭 쥔 채 깨어 있었다.

“택아, 만약 내가 잠들면 꼭 깨워야 해!”

“응!”

그로부터 반 시진 후, 택과 용은 사이좋게 잠이 들었다.

곧이어 무언가 다가오는 듯한 아주 희미한 소리가 났다. 깊이 잠이 든 소년들이 그 소리를 듣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짙은 갈색 털을 가진 표범으로, 긴 털이 표범의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표범의 발톱은 날카로웠다. 두꺼운 발바닥 덕분에 걸을 때는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으므로, 표범은 소년들에게 소리 없이 한 걸음씩 다가갔다.

“크흐흥…… 후욱…….”

표범은 입을 열어 송곳니를 드러내고서 소년들의 냄새를 맡았다.

바로 그때, 짧은 지팡이가 날아와 표범의 머리를 때렸고, 표범이 곧바로 머리통을 수그렸다. 표범의 등 위에는 녹색 장포를 입은 노인이 타고 있었다.

“에휴! 이 아이들을 어쩌나…….”

노인은 이렇게 탄식하며 아이들을 향해 지팡이를 뻗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입은 옷이 물기 없이 바싹 말랐다. 그 후 노인은 아이들이 잠든 절벽 근처의 나무와 수풀을 향해 지팡이를 뻗어 그 위로 버섯이 잔뜩 자라나게 했다.

그런 뒤 표범이 천천히 몸을 돌려 노인을 태우고 사라졌다.

“아이고, 선계(仙界)에 들기가 그리 쉬울 리가 있나. 빨리 돌아가는 게 좋으련만…….”

* * *

다음 날, 햇빛이 택의 얼굴에 쏟아지며 눈을 아프게 찔렀다. 택은 눈을 쉴새 없이 비비며 간신히 두 눈을 떴다.

‘이런! 잠들었구나!’

당황한 택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그대로인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용아, 용아. 일어나.”

“어어?”

벌떡 일어난 용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땔나무 패는 칼을 반사적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용은 주위를 둘러본 후에야 한숨을 내쉬며 택을 바라보았다.

“택, 왜 안 깨웠어…….

택은 자신도 잠들었다고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공을 드러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괜히 말했다가 아이들이 겁을 먹을까 봐서였다. 그는 다음번에는 반드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다짐하며 억지로 미소 지었다.

“괜찮아, 네가 너무 곤히 자길래 안 깨웠어.”

“택이 형, 해가 떴어?”

“응, 해 떴어!”

택과 용은 앉았던 자리에서 비켜나, 밤새 쭈그리고 있었던 아이들이 다리를 펼 수 있도록 했다. 오늘은 산에 들어온 이래 가장 날씨가 화창했다.

“해를 못 본 지 오래됐는데, 정말 잘됐다!”

이렇게 말한 아이는 다리를 움직이며 몸을 쭉쭉 늘렸다. 아이는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근처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소리쳤다.

“택 오빠! 버섯! 여기 버섯이 아주 많아! 무당버섯이야! 먹을 수 있는 거야!”

“어디?”

“저기! 저기에!”

아이가 가리킨 곳으로 모두 달려가 보니 정말로 버섯이 잔뜩 돋아나 있었다. 이에 아이들은 오랜만에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잘됐다! 버섯을 먹으면 되겠어!”

“정말 무당버섯이네!”

“불, 불을 피워야 해. 이번에는 꼭 피우자!”

택을 비롯한 소년들은 모두 기운을 냈다. 그리하여 마침내 반 시진 후 불씨를 지펴 기름천에 불을 붙인 뒤 모닥불을 피워냈다.

아이들은 갖고 온 솥을 그 위에 올리고, 샘물을 퍼온 뒤 쌀겨와 버섯을 잔뜩 더했다. 솥단지 위로 향긋한 냄새가 피어오르자 아이들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먹자. 모두 그릇 줘.”

요리를 담당한 택에게 다른 아이들이 모두 자신의 나무 그릇을 차례로 내밀었다. 그러자 택은 버섯 쌀죽을 그릇마다 가득 넘치게 퍼주었다.

이 한 끼는 아이들이 산에 들어온 이래 가장 흡족하고 배불리 먹은 한 끼였다. 아이들이 이렇게 배불리 식사한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간 아이들이 채소와 과일을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배를 채웠다고는 해도, 그것만으로 이렇게 오래 버틴 것은 운이 무척 좋은 것이었다.

어느새 솥 안의 버섯 쌀죽은 쌀겨 하나 남지 않고 깨끗하게 비워졌다.

배불리 포식한 아이들은 모닥불 곁에 붙어 앉아 절벽에 등을 대고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은 이런 날씨가 길을 떠나기에 좋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배불리 먹은 후의 휴식을 한껏 만끽했다.

“택 오빠, 하늘에는 정말 신선이 살아?”

“할아버지가 있다고 하셨어. 우리 할아버지는 절대 거짓말 안 해!”

“그런데, 장(庄)씨 할아버지는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우리 마을이 그렇게 된 뒤에도 그 나쁜 놈들은 왜 아무 벌도 안 받은 거야? 신선이나 신령이 정말 있다면 왜 그 사람들을 벌하지 않아?”

택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만약 살아있을 때 업보를 치르지 못하면 죽은 후에는 반드시 치르게 된다고 하셨어.”

그렇게 모두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용이 물었다.

“장씨 할아버지가 예전에 나한테 해주신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처럼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관리나 왕족들의 생활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고 하셨어. 그럼 신선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갈까? 신선들은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들었는데, 그럼 왜 신당의 제사상에 고기며 갖가지 음식을 올리는 거지?”

이렇게 말한 소년은 선인과 신령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진 생각이었다.

그러자 택이 용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너는 관리나 왕족들의 생활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신선이 어찌 사는지는 알아서 뭐 하게? 어쨌든 분명 대단하겠지!”

“하긴. 근데 나 그런 사람들이 어찌 사는지 조금 알아. 우리 집 솥은 벌써 일곱, 여덟 번 정도 땜질을 했는데, 엄마가 요리할 때마다 만약 자기가 부잣집 며느리였으면 아예 새로 사버렸을 거라고 불평했었거든!”

그러자 가장 어린아이가 ‘하하하’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용 오빠, 장씨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부잣집 며느리들은 주방에 안 간대!”

그 말에 용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뭐? 주방에 안 가? 그럼 굶어 죽는 거 아냐?”

“이 바보야, 교(喬)씨 아저씨도 예전에 성안의 어느 대갓집에서 빗자루질하는 일을 했었잖아. 그러니까 그런 부자들은 다른 사람을 불러서 요리를 시키겠지!”

“아,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헤헤헤…….”

“하하하하…….”

아이들은 한바탕 웃은 뒤 급속도로 조용해졌다. 이전의 일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슬픔과 실의에 잠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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