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화. 신선을 찾으러 왔다기보다는 죽으러 온 것 같구나
천도봉 도장(道場) 어느 곳에서는 구봉산 수사 두 명이 가부좌를 틀고 뜰 안에 앉아 있었다. 그들이 앉은 방석 사이에는 자그마한 밥상이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찻주전자를 비롯한 다기와 오래되어 낡은 책 한 권이 있었다.
두 사람은 이 오래된 책에 숨겨진 가르침에 대해 한창 토론하고 있었다. 이것은 어느 선항(*仙港: 선문에서 관리하는 나루터)의 시장에서 구해온 것으로,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안에 담긴 신의(神意)는 소실된 지 오래였다. 그저 책에 적힌 글자의 평면적인 내용만으로 그 뜻을 추측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는 일개 범인(凡人)이 지어낼 수 없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서책에 적힌 ‘하늘과 사람이 가진 도’에 관해 한창 논쟁하던 수사 중 한 사람은 갑자기 장교 진인의 목소리를 듣고 동작을 멈췄다. 그는 잠시 귀 기울여 그 목소리를 듣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어느 방향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한 뒤 이렇게 대답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러자 함께 앉아 있던 수사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진(晋) 사제, 무슨 일이 생겼나?”
“이(李) 사형, 장교 진인께서 방금 전음을 보내, 제게 동천 아래를 살펴보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선인을 찾아 산에 든 자가 있는 모양인데, 신념이 아주 굳건하답니다.”
그러자 그의 사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나도 같이 가겠네.”
“좋지요, 지금 바로 갑시다!”
두 사람은 낡은 책을 다시 잘 보관한 뒤, 바람을 타고 천도봉을 떠나 남쪽으로 날아갔다.
* * *
구봉산 아래, 동천 안에 사는 범인들 사이에서 경천산이라 불리는 산속에는 현재 비바람과 천둥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하늘이 먹구름으로 완전히 뒤덮여,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오후 시각인데도 산은 한밤중처럼 깜깜했다.
우르릉……!
번개가 내리치자 주위가 한순간 대낮처럼 환해졌다. 택은 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나뭇가지들이 마치 발톱과 송곳니를 드러낸 괴물처럼 느껴졌다.
뒤이어 택에게서 십여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한 나무 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콰지직…… 우르릉!
번개 빛은 택의 눈이 시릴 정도로 밝았고, 천둥소리는 마치 두 귀가 먹어 버릴 듯했다. 택은 절벽에 조그맣게 난 구멍 안에 한껏 몸을 말고서, 두 손으로 귀를 꽉 막았다.
택은 그래봐야 열다섯도 채 안 되는 소년이었으므로, 산중에서 홀로 이런 날씨를 맞닥뜨리자 겁이 났다. 하지만 본디 총명했던 택은 그동안 산을 헤매면서, 어떤 신비로운 사실을 알아차렸다.
택이 다른 소년들과 함께 산을 나가려던 때는 언제나 산들바람이 부는 맑은 날씨였고 길도 아주 평탄했다. 하지만 다시 산으로 돌아와 산 깊이 들어갈수록 날씨가 험상궂어졌다. 이번뿐만 아니라, 생각해보면 다른 아이들과 함께 깊은 산으로 향할 때도 날씨가 이러했었다.
‘할아버지도 말씀하셨었어, 이상한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면 그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택은 젖은 옷이 온몸에 달라붙어 춥고 배가 고팠다. 하지만 가족들을 살리겠다는 집념 하나로 홀로 경천산 안으로 들어온 것이므로, 아무런 수확도 없이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설령 자신이 산에서 죽게 되더라도 말이다.
결사의 각오를 떠올린 택은 두 주먹을 꼭 쥐고서 깊은 산을 향해 소리쳤다.
“난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다고! 이건 선인이 내리는 시험이야, 난 안 무서워!”
택이 힘껏 내지른 고함은 폭우와 천둥으로 인해 그다지 멀리까지 퍼지지 못했고, 저 위 선인들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소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을 내쫓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폭풍우가 그치지 않은 채 어느새 산중에 깊은 밤이 찾아왔다. 절벽에 조그맣게 난 구멍 안에 움츠린 택은 컴컴한 산속에서 잠이 들 엄두가 나지 않아 자다가 깨곤 했다.
소년이 누운 절벽 위쪽의 암석에 한 노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어느 날 밤 아이들을 위해 옷을 말려주고 버섯을 자라나게 해준 노인이었다.
폭풍우가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택은 곧 깊이 잠이 들었다. 그때 구봉산의 두 수선자들이 맑은 바람을 몰고서 근처에 내려섰다.
멀찍이서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노인은 어느새 다시 모습을 감추며 생각했다.
‘대단한 놈일세! 선인들을 이 아래로 내려오게 만들다니!’
산에는 택을 제외한 어떤 사람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수사들은 곧 몸을 말고 깊이 잠든 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씨 성의 수사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아직 어린아이로군요!”
그러자 곁에 서 있던 그의 사형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텐데 말이야. 이 정도의 집념이라니, 신선을 찾으러 왔다기보다는 꼭 죽으러 온 것 같군…….”
택 가까이 서 있던 구봉산 진인들이 지금 택이 어떤 상태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택은 이미 한계까지 다다른 상태였고, 택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도 변해있었다.
진씨 성의 수사는 손가락을 접어 점을 쳐보더니, 이 소년이 산에 들어온 지 꽤 오래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 특히나 어린 소년에게는 무척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험상궂은 날씨를 견뎌야 했으니, 하루가 일 년 같았을 것이다.
“이 사형,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그러자 이씨 성의 수사가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진 사제, 이는 장교 진인께서 자네에게 명한 일이야. 그러니 내게 물어볼 필요 없이 알아서 결정하면 되네.”
진씨 성의 수사는 그 말에 택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구봉산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소년이 있는 곳에서는 아홉 좌의 봉우리가 보이지도 않았고, 홀로 그중 하나를 오르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소년이 산에 들어온 지는 이미 오래되었지만, 계속 방향을 헤맸고 속도도 느렸기 때문에 구봉산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 했다.
“이 아이는 돌아갈 생각이 없는 듯한데, 이대로 놔두면 분명 죽을 겁니다. 사형…….”
“아이고, 결정권은 사제한테 달려있다니까.”
“그럼 좋습니다, 조금 더 관찰하다가 구봉산으로 데려갈지 말지 결정하겠습니다.”
“그리하지.”
* * *
택은 일어나자마자 곳곳이 찌르는 듯 아프고 온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소년은 간밤에 자신이 잠든 것에 대해 더는 자책하지 않았고, 옷을 벗어 그 위의 물기를 힘껏 짜냈다.
택은 산에 맹수들이 많이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맹수들이 몇 번이나 자신을 노렸던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나 허약하니, 잡기 쉬운 사냥감일 텐데 왜 아직도 날 공격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왜 아직도 죽지 않은 것일까? 죽으면 할아버지랑 부모님을 볼 수 있을 텐데. 사람이 죽으면 저승사자가 와서 저승으로 데려간다고 들었다. 산에서 죽어도 저승사자가 오겠지?’
택은 감각이 점차 무뎌졌으나 택의 마음에 어린 한 가지 생각은 강해지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이 선인을 찾아 가족들을 살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죽어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는 집념인지 더는 구분되지 않았다.
* * *
그렇게 다시 3일이 지났다. 그동안 택은 식물의 뿌리와 과일을 먹고 물을 조금 마셨을 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 더는 불을 피울 힘도 없었다.
그날 정오가 되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택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비를 피할 만한 곳을 찾아 걸어갔다. 소년은 이제 산에서는 비가 오면 날이 더 빨리 어두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 발이 미끄러진 택은 땅에 철퍼덕 넘어졌다. 돌에 얼굴을 부딪친 택은 분명 고통을 느껴야 할 텐데도 어떤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시야가 점차 희미해진 택은 끝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체력이 다한 것이 아니라 기력과 의지를 잃은 탓이었다.
‘이것도, 괜찮겠지…….’
그러다 택은 두 사람의 인영(人影)이 가까워지는 것을 발견하고는, 역시 자신이 죽어 저승사자가 왔다고 생각했다.
“얘야,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 물음에 의식이 약간 또렷해진 택은 몸을 약간 뒤집어 빗속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빗물은 그 두 사람을 피해 내리고 있었다.
“저, 저는 택, 장택이라고 합니다…… 두 분은, 저승사자이신가요?”
“저승사자? 하하, 그들은 여기까지 오지 않아. 산에서 죽으면 떠도는 넋이 된단다.”
“그럼, 두 분은…… 누구신가요?”
진씨 성의 수사가 허리를 굽혀 택의 손을 잡은 뒤 가볍게 택을 끌어올렸다. 택이 홀로 설 수 있게 되자 수사는 택의 몸에 영기를 불어넣어 몸을 따뜻하게 하고 고통을 덜어주었다.
“아마 알지도 모르겠구나, 내 이름은 진장동이란다.”
이에 택은 퍼뜩 놀라며 이렇게 외쳤다.
“진장동? 장동공이시라고요? 전설 속의 그 장동공이요?”
진장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매를 한번 휘두르자, 그의 발밑에 흰 구름이 생겨났다. 그는 사형과 함께 택을 데리고서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일단은 나와 함께 돌아가자!”
구름을 타고 나는 것은 택이 두 발로 힘겹게 걷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흥분에 찬 소년과 두 선인은 구름을 헤치며 높이 솟은 아홉 개의 봉우리로 향했다.
아홉 좌(座)의 거대한 봉우리는 구름을 뚫고 높이 솟아 있어, 마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 같았다. 그리고 구름 위쪽에 무엇이 있을지 택은 이제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진장동이 불어넣은 온화한 영기 덕분에 택은 이제 스스로 서 있을 수 있었고 정신도 훨씬 또렷해졌다. 물론 눈앞의 광경 때문에 흥분한 것도 있었다.
“저기가 바로 선계(仙界)로군요…….”
택이 멍하니 중얼거리는 말에 진장동은 자신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떠올렸다.
“선계라,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택은 그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해 의혹에 찬 얼굴로 진장동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굳이 택에게 자세히 설명해 줄 생각이 없었다. 구봉산의 두 수사는 그렇게 택을 데리고 하늘 높이 올라갔다.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상공으로 올라가자 택은 마침내 진정한 경천산, 혹은 구봉산을 볼 수 있었다. 곳곳에 흐르는 은은한 빛무리, 산봉우리를 날아가는 선조(仙鳥), 그리고 아련히 들려오는 선음(仙音), 이 모든 것이 택에게 자신이 속세를 떠났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구름 위에 우뚝 솟은 아홉 봉우리, 아름다운 노을빛이 하늘을 물들이니 꿈속을 거니는 듯하구나.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신선이로다.”
진장동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넋이 나간 듯한 택을 데리고 천도봉으로 향했다. 택은 정신을 가다듬고 이 모든 것을 샅샅이 눈에 담았다.
그 와중에 선래봉 운하원의 응접실 안에서는 계연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글자들은 매 순간 변하며 그의 주위를 온통 금빛으로 뒤덮고 있었다.
거대한 계연의 법상(法相)은 멀리서부터 구름을 타고 오는 세 사람 중 한 소년을 발견했다.
계연의 본체는 한창 글을 쓰고 있었고 그의 주위로는 작은 글자들이 금빛으로 빛나며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구봉산 선래봉이라는 공간의 특수함과 계연 스스로가 지닌 특별함으로 인해 계연은 자신이 마치 ‘도(道)’에 깊이 잠긴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이런 감각은 자신의 육신이 아니라 법상에서부터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