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34화 (534/892)

534화.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언제 다시 느낄 수 있을지 모를 이런 현묘한 상태에서, 계연의 법상은 택을 바라보았다. 법상의 눈으로는 평소 계연이 기운을 관찰하는 것보다 훨씬 투명하게 상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심지어 어떻게 말하자면 보다 깊은 내면의 것들도 볼 수 있었다. 계연은 이것이 신기한 운명처럼 느껴졌다.

이런 생각을 떠올린 계연은 자기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선인이라 부르고 심지어는 점괘를 볼 수도 있었지만, 계연은 결코 운명론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실은 그뿐만 아니라 많은 수행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교 진인의 명을 받고 내려갔다 온 것이므로, 진장동이 택을 데리고 곧바로 향한 곳은 당연히 구봉산 장교가 있는 곳이었다. 진장동은 선문의 신비로운 광경에 푹 빠진 듯한 소년을 향해 이렇게 당부했다.

“장택아, 나는 지금 너를 구봉산 장교 진인께 데려다주는 것이다. 마음을 차분히 한 뒤 최대한 단정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렴.”

이런 상황에서 택이 감히 무슨 소동을 일으킬 리도 없었으므로, 진장동은 이렇게 간단히 한마디만 하고 말았다.

그들이 탄 구름이 천도봉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자, 택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정상을 감도는 빛무리를 바라보았다. 그 빛무리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봉우리를 감싸고 있는 신령한 기운이었다.

“수선자들이 모였던 대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선자들이 이곳에 남기고 간 심오한 도력이 영기를 끌어당겨 아름다운 빛을 내는 거란다.”

이는 진장동의 곁에 서 있던 이씨 성의 수사가 설명해준 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도 수사의 시선은 선래봉으로 향해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장교가 머무는 천도봉의 별원에 내려섰다. 진장동과 그의 사형이 택을 데리고 별원 가까이 다가가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시게.”

이에 세 사람은 걸음을 멈출 필요 없이 그대로 뜰 안쪽까지 다다랐다.

자신이 선계의 높은 어른을 만나는 것을 알게 된 택의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택은 초조함과 기대감을 안고 조심스레 두 사람을 따라갔다. 앞쪽에는 긴 수염을 기르고 갈색 장포를 입은 정교한 관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장교 진인을 뵙습니다! 제자가 하계(下界)의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진장동과 그의 사형이 함께 예를 올리자, 택은 멍하니 서 있다가 얼른 그들을 따라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하하, 꽤 영특하구나.”

조 장교는 웃으며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장동에게는 택을 데리고 온 일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택을 바라보았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릴 수 있는 수선자와 달리, 아직 어린 택은 그렇지 못했다. 택은 마침내 두 주먹을 꼭 쥐고 한껏 용기를 끌어 올린 뒤 장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발 제 부모님과 할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우리 마을 사람들을 살려주세요! 부디 자비를 베풀어 그들을 살려주세요!”

택은 이렇게 소리치며 머리를 조아리려 했다. 택은 결국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실낱같은 희망과 처절한 슬픔이 섞인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하지만 택이 얼마나 힘껏 머리를 땅에 부딪히려 해도, 마치 그와 땅 사이에 수만 리의 거리가 있는 듯 아무리 해도 닿지 않았다. 이에 택은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들었으나 여전히 무릎은 꿇은 채였다.

조 장교가 진장동을 바라보자, 그가 즉시 자신이 본 그대로 보고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장택입니다. 홀로 산중을 헤매고 있었고, 온몸이 상처로 가득했는데도 꿋꿋이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또한 죽음에 미련이 없을 정도로 마음에 품은 집념이 강했습니다.”

“음.”

조 장교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택을 향해 다가갔다. 조어가 소매를 한번 움직이자, 무형의 힘이 택을 끌어당기며 택의 몸을 일으켰다. 조어는 눈물로 얼룩진 소년의 얼굴을 보며 이렇게 물었다.

“얘야, 네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병에 걸렸느냐?”

“아니요! 마을에 비적 무리인지 병사들인지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어요. 흡, 저는 할아버지가 저와 제 친구들을 신당 구멍 안에 숨겨주셔서 살 수 있었어요, 흐윽…….”

조 장교는 이에 고개를 끄덕이니 저 멀리로 시선을 던졌다. 마치 겹겹이 깔린 구름을 뚫고서 재난을 입은 작은 마을을 바라보는 듯했다.

“그럼 왜 네 할머니를 살려달라고 빌지는 않는 것이냐?”

할머니는 생각지도 못했던 택이 한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

“왜냐면, 왜냐면 할머니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이미 돌아가셨어요. 할, 할머니는 돌아가신 지 무척 오래되셨어요…….”

“음.”

조 장교는 다시 선래봉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한참 말이 없자 초조해진 택이 막 입을 떼려던 순간, 장교가 다시 말했다.

“사실 너 스스로도 삶과 죽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알지 않느냐. 다만 너는 갑작스레 맞닥뜨린 비극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삶과 죽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심오한 도리 중 하나란다. 나처럼 선도를 닦는 이라 할지라도, 죽음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지. 사람은 죽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설령 돌아오더라도, 그 사람이 예전의 그 사람일까?”

택은 그의 말을 모두 알아들은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자신의 부모님과 할아버지를 다시 살릴 수는 없다는 뜻임을 알아차렸다.

“그, 그럴 리가요. 하늘에 사는 신선은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선약(仙藥)을 이용해 백골에 다시 살이 붙게 하고, 사람을 늙지도 죽지도 않게 할 수 있다고요. 그러니 우리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다시 살아날 방법도 있을 거예요. 이렇게 부탁드려요, 제발 그분들을 살려주세요. 그분들을 살려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할게요, 제 수명을 대신 가져가신다 해도 좋아요!”

택은 다시 땅에 머리를 부딪히려 했으나, 이번에는 무릎조차 꿇을 수 없었다. 조 장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택의 어깨를 토닥였다.

“얘야,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단다. 힘들겠지만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그의 목소리는 무척 가벼웠으나 마치 천둥처럼 택의 마음에 울려 퍼졌다. 택은 그 자리에 뿌리 박힌 것처럼 꼿꼿이 서서,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조금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모든 이가 그토록 오고 싶어 하는 선계에 간신히 올랐는데, 유일한 희망이 부서져 버린 것이다.

택은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 장교가 택의 이마에 가볍게 손을 대자, 택이 진장동의 품으로 털썩 쓰러졌다.

“이 아이의 정신과 마음을 보호해 두었으니, 일단은 데려가 쉬도록 하게.”

“예!”

진장동과 이씨 성의 수사는 장교를 향해 다시 예를 올린 뒤, 택을 품에 안고 천천히 별원을 나섰다. 반면 장교는 조금 전 계연이 이쪽을 주시했던 것을 느끼고 다시 선래봉을 바라보았다.

* * *

깊은 잠에 빠진 택은 며칠 동안 한 가지 꿈을 길게 꾸고 있었다. 그때의 악몽이었다. 꿈속에서 택은 다시 몇 개월 전으로 돌아갔다.

세 아이는 땔감을 쌓아두는 곳간에서 작고 오래된 탁자 앞에 모여 앉아 누가 잡은 송충이가 더 큰가 비교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재밌지만, 송충이들에게는 ‘악독하고 공포스러운’ 갖가지 수단으로 아이들은 송충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때 바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고, 택을 비롯한 아이들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택 오빠, 바깥에서 누가 소리 지르는 것 같아.”

“그러게, 누가 싸우나?”

그들이 막 문을 열고 바깥을 살펴보려 할 때였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바깥에서부터 문이 열리더니, 택의 할아버지가 다급한 얼굴로 들어왔다. 택은 할아버지가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서 나를 따라오거라!”

“왜 그러세요?”

“빨리, 빨리!”

택의 할아버지는 가장 나이가 어린 아이의 손을 끌어당기며 택과 용을 재촉했다. 바깥으로 나선 택은 마침내 많은 사람이 어딘가로 뛰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뛰고 있어 무척 혼란스러웠다.

할아버지는 세 아이를 데리고 마을 바깥으로 향하지 않고, 구석진 곳에 있는 토지 신당의 뒤편으로 향했다. 할아버지가 건초와 나뭇가지 등을 걷어내고 그 밑의 판자를 열자 커다란 구멍이 드러났다.

아직 토지 신당이 없었을 당시, 마을 사람들은 이 구멍 안에 임시로 신상을 모셔뒀었다. 신당을 짓고 난 후에는 구멍을 메우지 않고, 묘지기가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로 썼다. 그러나 공간이 너무 작았던 탓에, 결국 이곳은 버려두고 따로 창고용 흙집을 지었다. 이 일은 이제 마을 사람 중에도 아는 이들이 몇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 토지 신당의 묘지기는 택의 할아버지인 장면(庄棉)이었다.

“어서 여기로 들어가거라! 서둘러!”

장면은 세 아이를 구멍으로 힘껏 밀어 넣었다. 구멍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애초에 토지 신상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구멍 안에는 몇 사람밖에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아이들이 연유를 몰라 두려워하면서도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택의 할아버지가 어깨에 메고 있던 자루 두 개를 끌렀다.

“택아 이거, 아껴 먹어라.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나거든 찍소리도 내지 말아라! 나는 다시 갔다가 오마!”

장면이 덮개를 내린 뒤 그 위를 건초로 덮자, 구멍 안쪽은 완전히 암흑이 되었다.

택을 비롯한 아이들이 두렵고 불안해하던 와중, 반각(7~8분)이 흐르자 택의 할아버지인 장면이 다시 돌아왔다. 그는 그렇게 데려온 두 아이를 다시 구멍 안에 밀어 넣고서 단단히 당부한 뒤 떠났다. 그리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쥐 죽은 듯 몸을 숨기고서, 바깥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비명과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들은 차마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암흑 속에서 3일을 버텼다. 마침내 밖으로 나갔을 때 아이들이 마주친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참혹한 광경이었다…….

“안돼!”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온몸이 땀으로 푹 젖은 택이 꿈에서 깨어났다. 소년은 멍한 눈으로 낯선 환경을 둘러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허억……!”

택은 잠에서 깨어나 방 안의 풍경을 보고 있었으나, 아직 꿈속의 광경에서 벗어나지 못해 두 가지 장면이 눈앞에 합쳐졌다. 소년이 누운 방 안에 마을의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피, 시체, 전소(全燒)되어 잿더미가 된 건물들.

택은 무의식적으로 침대 모서리에 기대 몸을 잔뜩 말았다. 소년은 다시 그 두렵고 혼란스럽던 며칠 간의 순간으로 되돌아갔다. 다섯 명의 아이들은 경천산에서 아름다운 선광(仙光)이 반짝일 때까지 그렇게 유령처럼 마을을 배회했다.

그러다 택은 천천히 정신이 돌아와 자신이 선계에 있다는 걸 떠올렸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도 소년의 표정은 여전히 넋이 나간 듯했다.

“깼니? 나는 진수(晋綉)라고 해, 앞으로 내가 너를 돌봐줄 거야.”

이때, 문가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깜짝 놀란 택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용모가 수려한 여자아이가 쟁반을 받쳐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쟁반 위에는 김이 폴폴 나는 죽이 담겨 있었고, 곁들일 반찬도 조금 있었다.

막 악몽을 꾸고 난 상황에서도 갑자기 예쁜 여자아이가 들어오자 사춘기에 접어든 택은 저도 모르게 아이를 의식하며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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