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41화 (541/892)

541화. 귀성(鬼城)에서의 만남 (2)

“이쪽으로 오십시오. 산 남쪽에서 살던 혼백들을 찾았습니다.”

모두가 상대적으로 번화한 귀성을 나오자, 약간 황폐한 곳에 따로 지어진 괴이한 모습의 흙집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무덤과 더 비슷했다. 관차가 있는 곳에는 십여 명의 남루한 옷을 입은 인영(人影)들이 잔뜩 움츠러든 채 서 있었다.

“어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택은 끓어오르는 흥분을 누르지 못하고, 가족들을 애타게 부르며 그들의 품에 뛰어가 안겼다. 그들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흐르는 눈물은 뜨거웠다.

“택! 정말 우리 택이구나!”

“택아! 살이 빠지진 않았는지 어미가 한번 보자.”

“정말 우리 택이야! 게다가 살아있어! 택이 살아있었어!”

“아이고, 이 말썽꾸러기야! 겨우 목숨을 건졌는데, 저승에는 왜 왔단 말이냐?”

택의 할아버지는 손자의 당돌함에 보자마자 꾸중을 던졌다. 살아있는 사람이 저승에 와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괜찮아요, 할아버지. 저는 신선과 함께 왔거든요. 경천산에 들어가서 천계에도 들어가 봤어요!”

“네 이놈…….”

장택의 할아버지는 화도 나고 안심이 되기도 했다. 경천산이 얼마나 깊고 위험한 산인데 거길 들어갔다니 화가 났고, 결과적으로는 택이 정말로 신선을 만났으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노인이 계연을 슬며시 살펴보니, 저승 안에 있는 데도 그에게서는 왠지 모를 깨끗하고 시원한 느낌이 났다.

“우리 택을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장 어른!”

“감사드립니다!”

귀신들이 모두 계연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감사를 표했다.

“예는 거두시고 얼른 가족끼리 이야기 나누세요, 오래 머물지 않을 테니까요.”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대답한 뒤 더는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러자 택의 가족이 아닌 다른 귀신들이 다가와 택에게 자기 집 아이는 어찌 지내는지 묻기 시작했다.

택은 그들에게 둘러싸여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진수는 이 광경을 보며 기쁘기도 한 동시에 마음이 아팠다. 수선자들도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진수는 저도 모르게 자기 가족 생각이 났다. 다만 그들은 흙이 된 지 오래라, 이제는 혼백조차 흩어졌을 것이다.

한편 저승의 판관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수염을 쓰다듬다가, 계연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이에 그가 고개를 돌려 계연을 마주 보니, 평온히 가라앉은 두 눈이 마치 잔잔한 호수에 밝은 달이 떠오른 듯한 모습이었다.

“판관 대인, 이곳 성황신께서는 무척 바쁘신 모양이군요?”

계연에게서는 어떤 법력의 기운이나 신령한 빛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물음에 담긴 압박감은 무척 컸다. 이에 판관은 얼른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선장(仙長)께 아룁니다. 근 몇 년간 전란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죽은 이들이 무수히 많았고, 이곳 북령군도 이미 주인이 바뀐 지 2년이나 되었습니다. 더는 동승국 치하에 있지 않지만, 다행히 성황당이 훼손된 것도 아니고 천계(天界)의 신물(信物)이 있어 버틸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저승의 귀신들은 모두 원기(元氣)가 크게 상했고, 저승을 다스리는 성황신께서는 특히나 더 상태가 안 좋아지셨지요. 성황신께서는 금신(*金身: 수행을 쌓아 도달하는 영원불멸의 신체)에 손상을 입으셨기에 현재 정양 중이실 뿐, 결코 선장을 모시는 데에 태만한 것이 아닙니다!”

2년 전의 전란으로 북령군의 주인이 바뀌었을 줄은 계연도 몰랐다.

“제가 성급했군요, 그럼 성황신께서는 좀 괜찮으신가요? 무언가 필요하신 게 있다면 제가 도움은 못 되더라도 대신 선문에 말을 전해줄 수는 있습니다.”

“아하하, 괜찮습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성황신께서는 폐관한 채 정양 중이실 뿐 꾸준히 회복하고 계십니다. 저 같은 하계(下界)의 작은 귀신이 어찌 천계에 폐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판관이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자 계연도 미소 지으며 다시 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택과 그의 가족들은 서로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 아주 떠들썩했다. 더구나 택의 네 친구의 가족들까지 다가와 아이들이 어찌 지내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택은 그들이 저승에서 내내 걱정할까 봐 좋은 얘기만 하고 고생한 이야기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오래 머물지 않을 거라고 한 말과 달리, 계연은 단 한 번도 택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진(時辰)이 흐르고, 택은 그제야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들은 오래도록 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들 모두 이번 만남을 끝으로 저승과 이승으로 갈라져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택아, 앞으로는 여기 오면 안 된다!”

“맞다, 여긴 저승이니 앞으로는 오지 말아라!”

“그래, 용과 다른 아이들을 찾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니? 그놈을 만나거든 저승에는 올 생각도 하지 말라 전해라.”

“응응, 우리 집 리한테도 전해주렴. 정 그리우면 연말이나 명절에 향이나 한 대 태우면 된다고 말이야.”

“고한테도 여기 왔다가는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 줄 거라고 전해라!”

그러자 택이 눈물을 머금은 채 차례로 대답했다.

“네, 반드시 전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한편 장씨 노인은 계연과 진수를 바라보다가 택을 한쪽으로 끌고 간 뒤 낮은 소리로 당부했다.

“택아 저 낭자는 그리 선인(仙人)처럼 보이지 않는다만, 저쪽 선생만은 틀림없이 높으신 신선이시다. 만약 기회가 있거든 꼭 저분을 따라가려무나. 그리되면 스승의 가르침을 항상 명심하고 결코 잘못을 저질러선 안 된다. 만약 저분이 널 받아주지 않는다면, 이 할아비도 네가 대단한 인물이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니니, 그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만 기억해라.”

장씨 노인은 나이가 든 만큼 세상 물정을 잘 알아 아주 눈치가 빨랐다. 그는 택이 계연을 사부라고 부르지 않고, 계연도 택을 제자라 부르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이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님을 일찍이 눈치채고 있었다.

“네, 할아버지 말씀을 꼭 기억할게요!”

다시 일각(一刻) 후, 택은 걸음을 뗄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계연과 진수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택의 가족과 이웃들은 더 따라오지 못하고 관차의 옆에 멈춰서서 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만 보면 사람과 귀신이 아니라, 마치 먼 길을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러 나온 가족들 같았다.

“계 선생님, 저 왔어요…….”

“작별 인사는 잘 나눴니?”

“네!”

그러자 계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꾸나.”

계연은 이렇게 말한 뒤 자신을 향해 공손히 예를 올리는 귀신들에게 살짝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그리고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택과 진수를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떠날 때는 관차가 사람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느라 천천히 갈 필요가 없었으므로, 올 때보다 속도가 훨씬 빨랐다. 잠시 후, 그들 세 사람은 판관을 따라 함께 귀문관에 이르렀다.

마침내 세 사람이 떠나게 되자 판관은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그 순간, 계연이 귀문관 안쪽 저승의 전당(殿堂)을 바라보며 곁에 있는 진수에게 물었다.

“진 낭자, 구봉산에서 얼마나 오래 하계의 저승을 보러 오지 않았지?”

그 말에 판관이 놀라 멍해졌다. 이 선장의 말을 들어보니 이 선장은 구봉산에서 온 선인이 아닌 듯했다.

‘그럼 여기 속세에 머무는 신선이신가?’

진수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그다지 정확히 알지 못했기에 곰곰이 생각했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알기로 산에서 저승에 가봤던 분들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선문에 든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선배들께서는 영약(靈藥)이나 돌보러 내려오실 뿐, 저승에는 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누가 굳이 여길 오겠어요,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요.”

“하하, 그 말도 옳구나. 여태 무슨 일이 없었으니, 성황신한테 마(魔)가 생긴 것도 모르고 있지.”

“예에?!”

“예?”

계연의 말에 판관과 진수가 모두 대경실색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들을 따르던 저승의 관차와 귀졸(鬼卒)들도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계연은 그들의 반응을 보고서 그들이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거나 최소한 그리 자세히 알지는 못했음을 알아차렸다.

“선, 선장, 어찌 그런 말을 입에 담으실 수 있습니까!”

판관은 불안한 기색으로 계연을 향해 연신 양손을 맞잡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계연은 싸늘한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성황신은 저승의 주신(主神)입니다. 머리카락을 한 올만 당겨도 온몸이 움직이듯(牽一髮而動全身: 사소한 일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 성황신에게 문제가 생겼으니 그것이 천천히 다른 저승의 귀신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겁니다. 고작 귀문관을 지키는 관차조차 문제가 있을 정도이니, 이는 성황신에게 생긴 문제가 절대 작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판관과 주위의 관차들을 쳐다보았다.

“원래는 귀문관 같은 요지의 수비가 이토록 허술한 것이 오랫동안 안일한 상태로 지내 게을러진 것이라 여겼는데, 이제 와 보니 그저 인원이 부족한 것이었군요?”

저승에 들어온 지 이리 오래되고, 귀성에도 갔었을 정도인데 계연이 본 관차와 귀졸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내내 곁을 따르는 일고여덟 명을 제외하면 저승 내 다른 기관의 기관장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계연은 판관을 주시하면서 그가 만약 수상한 기색을 보이면 즉시 손을 쓸 준비를 했다. 판관은 계연의 말을 들으며 안색이 여러 번 변하더니, 마침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선장,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간 저승의 귀졸들이 모두 비정상적인 속도로 죽어 나가, 적당한 인선을 찾아 보충해도 그 수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각 기관장께서도 모두 쇠약해진 상태이시고요. 성황신께서는 세태가 불안정하여 저승에까지 동요가 일어난 거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성황신께서 원기가 크게 상하시자, 저승 전체가 함께 해를 입게 된 것이지요. 다만…….”

판관이 계연을 바라보는 눈빛에 불안함이 스쳤다.

“소신, 감히 성황 대인을 의심하는 건 아니오나, 내내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뭐가 이상하냐고 하면 딱히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만…… 듣기로 세간에 사악한 것은 일찍이 천계의 선인들께서 모두 없애버려, 더는 생겨나지 않는다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성황신께서는 대체 어쩌다가…….”

판관이 알기로 천계의 선인들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평소 속세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지만, 만약 저승에 정말로 큰일이 난 거라면 앞으로는 무언가 엄중한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가서 보면 알게 되겠지요.”

계연은 판관이 자신을 속일 수도 있다는 걱정이나, 진수와 택이 위험할 수 있다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는 듯이 가벼운 걸음으로 곧바로 저승의 대전(大殿)으로 향했다. 그러자 판관과 귀졸들도 서로 머뭇거리다 계연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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