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4화. 속세의 음식
북령군의 아침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시작되었다. 생계를 잇기 위해 백성들은 모두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바삐 움직였다.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고는 배불리 먹는 것은 물론이고 세금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연은 택, 진수와 함께 훈툰(*餛飩: 얇은 피에 갖가지 속을 넣은 만두를 육수에 끓여 먹는 음식, 만둣국과 비슷함)을 파는 노점에 앉아 있었다. 노점 주인은 백발이 성성하고 몸짓이 느릿한 노인이었다. 그는 예전 국수 가게에서 활발하게 일하던 손기 할아버지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손기는 항상 정신이 또렷하고 손발이 날랬는데, 이 훈툰 노점의 주인은 일하는 내내 손을 떨고 있었다. 비록 위태롭게 비틀거리진 않았으나 아침 일찍부터 이리 고된 노동을 하기에는 적합지 않아 보였다.
아직 훈툰이 상에 오르기 전, 계연은 갈색 장포를 입은 이가 노점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침 알맞은 거리까지 다가온 조어와 서로를 향해 인사했다.
“계 선생님!”
“조 장교!”
그들이 서로 예를 마치자 조어는 소매에서 종이학을 꺼내 계연에게 건넸다. 종이학은 이때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으로 만든 보통의 종이학처럼 보였다. 계연이 종이학을 받아 품에 넣자, 안쪽에서 종이학이 스스로 비단 주머니를 찾아 들어갔다.
조어는 한창 훈툰을 먹는 택을 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 성황당을 바라본 뒤, 계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께서 발견하셨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이리 큰일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뒷일은 저희 구봉산에서 처리하겠습니다.”
계연도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 일에 간섭할 생각도 없고, 밖으로 떠벌릴 생각도 없습니다.”
조어는 그 말에 내심 안도했다. 그가 홀로 계연을 만나러 온 것은 바로 이 말을 듣고자 하는 목적에서였다. 하지만 만약 계연이 이일을 비밀로 지키려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계연의 약속을 듣고 조어는 다시 한번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선생님의 두터운 인정과 의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계연이 손을 들어 가로막았다.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어요. 조 장교께서도 제 뜻을 이미 아시겠지만, 구봉 동천에 적용된 규칙은 더는 적합하지 않아요.”
조어는 계연의 말에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계연이 내내 회백색의 눈으로 자신을 주시하자, 마침내 조어가 이렇게 입을 열었다.
“이 일은 제가 직접 나서 조사할 겁니다. 만약 정말 어찌할 수 없는 문제를 발견하면, 그에 맞는 적절한 처분을 내리겠습니다.”
계연의 뜻은 일전에 계연이 보낸 종이학에 이미 명명백백히 담겨 있었다. 이곳 천지의 운영 방식에는 큰 문제가 있으며, 조금의 삿된 기운도 없는 천지를 창조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구봉 동천의 시간이 바깥 세계와 같았다면, 동천 안의 신도(神道)는 이미 심각하게 무너졌을 것이다. 이 열 배의 시차는 구봉산에서 힘을 쏟아 관리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를 불러올 터였다. 그렇다고 그 시차를 없앤다면 구봉산에서 관리하는 약초밭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수선자들이 아무리 사리사욕에 욕심이 없고 도량이 넓은들, 이익에 대한 관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그것이 자신이 속한 선문의 미래와 관련되어 있다면 말이 달랐다. 계연 자신도 구태여 남의 보물을 빼앗지는 않겠지만, 만약 누군가 자신의 넝쿨검을 넘본다면 분명 화를 낼 것이다.
“어이쿠, 손님, 훈툰 한 그릇 하시겠습니까?”
바삐 일하던 주인장이 그제야 화려한 옷을 입은 조어를 발견하고는 즉시 이렇게 응대했다.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조어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으나, 계연이 주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이쪽 조 선생께도 한 그릇 주세요.”
그리고는 의혹 어린 눈길을 던지는 조어를 향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조 장교께서는 속세에 잘 나오지 않으시니, 가끔은 이곳의 음식도 한번 드셔보시지요.”
그 말에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담긴 것처럼, 즉시 떠나려던 조어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왕 계 선생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저도 선생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진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조어에게 ‘장교 진인’하고 부르며 예를 올렸다. 조어가 그녀의 인사를 받고 고개를 끄덕이자 진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노인은 계연의 말에 훈툰을 몇 개 더 끓는 솥에 넣고 이렇게 대답했다.
“예! 금방 됩니다, 금방!”
네 사람이 함께 식탁에 앉자, 진수와 택은 약간 긴장한 듯했다. 그러나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요리가 올라왔다.
“자, 손님, 여기 주문하신 훈툰입니다.”
노인이 쟁반을 받쳐 든 채로 천천히 그들 식탁으로 걸어왔다. 그는 최대한 손에 힘을 주고 있었지만, 쟁반이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에 택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쟁반을 넘겨받았다.
“어르신, 제가 할게요.”
“그래, 고맙구나!”
택이 쟁반을 식탁 위에 올리자 진수가 그를 도와 그릇을 차례로 내렸다.
노점에는 손님이 그들 네 사람뿐이었고, 본디 수다스러운 성정이었던 주인은 손님들이 척 보기에도 보통 사람 같지 않은 데다 성격도 좋아 보여, 근처 걸상에 앉았다. 그러자 계연도 스스럼없이 그와 잡담을 나누며 식사를 했다.
주인은 계연을 비롯한 ‘외지인’들에게 이곳 백성들이 겪는 고초를 들려주었다. 그의 아들은 끌려가 병사가 되었고, 며느리는 집에서 시어머니와 어린 아들을 돌보며 밭을 일구고, 바느질을 비롯한 온갖 집안일을 맡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부과된 세금도 무거워서 밭일만으로는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이 노인도 이 나이에 생계를 위해 노점을 연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 대부분은 하루 한 끼를 겨우 먹고 있었으니, 그의 사정은 남들에 비하면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그간 세태가 불안정하여 곳곳에서 군사가 들고일어났다. 어느 마을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더라 하는 소식도 흔치 않게 들려왔다.
바깥 세계도 인간사는 언제나 복잡했고, 내내 평화로운 땅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노인의 말을 들어보니 이곳은 문제가 좀 더 심각한 듯했다. 조어가 이를 듣고는 손가락을 접어 점을 쳐보니, 이런 상황이 비단 북령군 주위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그는 마침내 시선을 택에게로 던졌다.
택과 진수는 훈툰을 먹는 데에만 열중할 뿐 조어를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계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무 수저를 움직이며 식사를 이어갔다. 이때 조어의 정신은 아득히 멀리 떠다니며 하늘과 땅, 음양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의 시선과 정신이 다시 육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을 때는 눈앞에 놓인 훈툰이 보였다. 그것을 입에 넣고 한입 씹자, 느껴지는 것은 기름기와 짠맛만은 아니었다.
* * *
네 사람이 노점의 탁자에 앉아 훈툰을 먹던 시각, 구봉산에서는 수많은 고인이 속세로 내려와 동천 곳곳으로 향했다.
구봉 동천의 상황은 구봉산 수선자들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었다. 비록 그들도 동천 안에 아무런 문제도 없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태가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
구봉산에서는 천여 명의 수사들을 파견했고, 수사들은 수행의 정도에 따라 홀로 임무를 맡기도, 몇 사람이 함께 움직이기도 했다. 이들이 각지의 상황을 조사해보니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성황신 중에서는 비교적 세태가 안정된 몇 곳만 문제가 없었을 뿐, 다른 곳의 성황신은 전부 작든 크든 얼마간 문제가 있었다. 심각한 이들은 완전히 마(魔)에 잠식된 상태였다.
그런 성황신을 상대하려면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승은 성황신이 주관하는 곳이라지만, 구봉산 수사들은 모두 특수한 영패를 지녀 동천 안의 신령에 대한 통제력이 컸다. 아무리 마기에 잠식된 성황신일지라도 그 힘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었다.
수많은 구봉산 수사가 하계(下界)의 저승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영패를 들고서 모든 저승을 봉쇄한 것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성황신이나 다른 귀신들이 도망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이승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일은 계연과는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맨 처음 북령군 저승에서 마에 잠식된 성황신을 상대한 후로, 그는 남은 일을 구봉산 수사들이 스스로 처리하도록 넘기고 간섭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계연은 처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택과 진수를 데리고 택의 고향 마을 친구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들은 함께 훈툰을 먹고 난 뒤 구봉산 장교와 인사를 나눈 후, 계연을 비롯한 세 사람은 사람을 찾으러, 조어는 동천 안 저승의 일을 해결하러 흩어졌다.
* * *
동승국의 큰 성인 도양성에는 빈열객잔(賓悅客棧)이라는 규모도 등급도 중간에 속하는 객잔이 있었다. 장삼에 마고자를 걸친 주인장은 키가 크고 마른 똘똘한 사내로, 한창 계산대 앞에 앉아 주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박자를 따르듯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어제의 장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가에 세 사람이 들어오는 걸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거길 간 게냐?”
용은 주인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곁에 있던 대고(大古)와 소고(小古)두 형제도 그와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었는데, 얻어맞았는지 얼굴은 멍이 생기고 잔뜩 부어 있었다.
주인장이 주판을 들어 착착 아래위로 구슬을 정리하고는 장부를 덮었다. 그리고는, 계산대 밑에서 질타주(*跌打酒: 부딪친 상처나 멍이 생긴 데에 바르는 약주(藥酒)) 한 병을 꺼내 올려놓으며 말했다.
“가져가서 잘 문지르거라. 저녁 무렵에 마구간 청소하는 것 잊지 말고.”
용은 계산대 앞으로 다가가 질타주를 받으며 주인장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주인어른.”
“얼른 가보거라.”
객잔의 주인은 손을 휘휘 저으며 가보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세 사람이 객잔 뒤편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세 젊은이는 성품이 아주 괜찮은 이들이었다. 더럽고 고된 일을 시켜도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으며, 장작을 패고 청소를 하고 마구간의 말을 돌보는 일까지 모두 막힘없이 해냈다. 객잔 주인은 그들이 성실한 태도로 묵묵히 일하는 모습에 퍽 만족하고 있었다.
원래 주인은 그들에게 남은 음식을 조금 나눠주고, 장작을 보관하는 창고에 하룻밤 묵을 수 있게 해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얼마간의 양심과 선의로 인해 그는 이런 뜻밖의 인재들을 줍게 될 줄은 몰랐다. 이곳에 묵은 다음 날, 그들은 보답이라며 객잔 안팎과 마구간까지 빼놓지 않고 꼼꼼히 청소했다. 이에 감명받은 주인장은 그들에게 객잔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먼저 제의했다. 급여는 그리 많이 주지 못했지만, 숙식이 해결되니 세 사람은 모두 만족해했다.
다만 주인장은 후에 그들이 원래는 어린 여자아이와 함께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화를 피해 함께 도양으로 도망쳐오다가 그 아이만 유괴당한 것이다. 이에 세 사람은 2년 동안 줄곧 그 여자아이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은 얼마 전에야 마침내 소재를 파악하게 되었으나, 결과는 그리 낙관적이지 못했다.
“어휴, 이놈의 세상. 살아서 밥만 제때 먹어도 행복한 셈이지.”
주인은 이렇게 탄식하다가 문가에 손님이 온 걸 보고는 즉시 친근한 태도로 맞아들였다.
“세 분 손님, 어서 오십시오! 식사하시렵니까, 숙박하시렵니까?”
객잔에 온 것은 계연, 택, 진수 세 사람이었다.
주인은 눈썰미가 좋았기 때문에, 진수와 택이 입은 옷이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중간의 서생처럼 보이는 남자는 소박한 옷차림이었으나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다. 그들은 척 봐도 보통 손님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