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46화 (546/892)

546화. 말이 많구나

수심루의 나이 든 포주 여인은 손수건을 손에 쥔 채로 땅바닥에 엎어진 사내들과 계연을 번갈아 손가락질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것 좀 보세요, 여러분! 모두 저것 좀 보세요! 오자마자 대뜸 우리 수심루 기물을 부수고 사람을 때리더니, 이제는 우리 기루의 아가씨마저 강제로 채가네요. 도양성에 대체 법이 있긴 한가요? 당신이 이자들을 책임지는 어른이지요? 이자들은 대낮에 남의 기루에 쳐들어와 폭력을 휘두르고 사람을 빼앗아 갔으니, 당신이 책임지지 않겠다면 나는 지금 당장 관아에 신고하러 가겠어요!”

그러자 대머리 사내도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험악한 어조로 말했다.

“선생, 대체 어떻게 이 일을 책임질 것이오? 우리가 비록 기루를 운영하고 있다지만, 이건 떳떳하고 합법적인 장사요. 여태까지 우리 기루는 한 번도 명성에 금이 가는 일을 저지른 적이 없었소. 그런데 오늘 우리 기루에 쳐들어와 이런 짓을 벌이다니, 대체 어찌 보상할 생각이오?”

이때 주위에는 구경꾼들이 잔뜩 몰려온 상태인데다가, 진수가 내내 고개를 숙이고 감히 말조차 내뱉지 못하는 걸 보고서 포주는 즉시 기세등등해졌다. 말싸움에서는 결코 져본 적이 없던 포주는 당당히 계연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우리는 아가씨들을 비싼 값을 치르고 사와, 모두 세심히 가르치고 좋은 것만 먹인답니다. 또한 금기서화를 가르치는 데에는 돈이 불에 타는 것보다 빠르게 사라지니, 고작 금괴 하나로는 너무 부족하지요. 그렇게 키우고 가르쳤는데 손님도 받지 않고 곧바로 사람을 데려가려 하다니요? 정말 뻔뻔하네요! 그러니…….”

포주는 네 명의 소년들에 둘러싸인 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인 진수를 흘끗 쳐다본 다음, 쯧쯧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저 아가씨가 이틀만 손님을 받게 해주면, 우리도 돈 한 푼 받지 않고 돌려주겠어요!”

포주도 이렇게 말하면 저들이 승낙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중했으니, 오로지 저들을 열받게 하고 저 아가씨가 부끄러움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녀가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어떤가요, 이쪽 선생…….”

포주는 이렇게 말하며 진수를 비롯한 일행에게서 시선을 돌려 계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채 반응도 하지 못한 사이, 손등 하나가 점점 크기를 불리며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파앗!

나이 든 포주 여인은 4, 5장(약 12~15m)의 거리를 날아 수심루 안으로 내던져졌다. 우장창창 하는 소리와 함께 탁자며 의자가 쓰러지며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피가 묻은 누런 이 네다섯 개가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땅에 떨어졌다.

“말이 많구나.”

계연은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린 뒤 다시 차가운 눈으로 대머리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자가 바로 수심루의 주인이었다. 계연이 회백색의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마음에 마치 벼락 한 줄기가 내리꽂힌 듯했다.

쿠구궁……!

이 천둥소리는 그의 정신에 큰 타격을 주었고, 소스라치게 놀란 남자는 땅에 철퍼덕 주저앉아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 뒤 계연은 별말 없이 눈을 휘둥그렇게 뜬 진수와 택을 비롯한 이들에게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되었다, 이 일은 끝났으니 이만 가자.”

계연이 넓은 소매를 휘두르며 몸을 돌리자, 주위에 있던 구경꾼들이 주르르 비켜서며 그를 위해 길을 내주었다. 그들 중 감히 한마디라도 입 밖에 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계연이 내보인 그 벼락같은 기세에 모두 겁에 질렸던 것이다.

진수는 다시 흥분한 얼굴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택을 비롯한 소년들을 채근했다.

“정신 차려, 선생님 가시잖아. 빨리 따라가자!”

“으응!”

“알았어!”

“어서 가자!”

여섯 명의 아이들은 얼른 계연을 따라 걸음을 서둘렀고, 구경꾼 중 그들을 막아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충분히 멀어지자 사람들은 그제야 이 일에 대해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한편 대머리 사내는 넋이 나간 얼굴로 한참을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 * *

계연과 진수는 곧 구봉 동천의 하계(下界)를 떠나기로 한 참이었고, 택도 자연히 더는 이곳에 남을 수 없었다. 반면 용을 비롯한 아이들은 이곳에 머무는 것이 더 적합했으니, 우선 계연은 이들이 이곳에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었다.

빈열객잔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이들은 도양에서 동쪽으로 백 리(里) 정도 떨어진 작은 성으로 향했다. 계연은 성 곳곳을 훑으며 풍수를 따져본 뒤, 적당한 곳을 골라 황금 10냥을 써서 영업이 잘되지 않던 객잔을 하나 사들였다. 앞으로 이곳은 용을 비롯한 아이들이 살며 본인들의 삶을 꾸려나갈 근간이 될 것이다.

용 일행은 도양성의 객잔에서 2년간 일한 경험 덕에, 객잔을 경영하는 데에 필요한 지식을 거의 다 갖추고 있었다. 유일하게 알지 못했던 것이 바로 장부를 기재하고 셈하는 법이었는데, 다행히 리가 그 일을 맡을 수 있었다. 운영할 객잔을 얻게 된 용 일행은 모두 흥분에 차서 힘든 줄도 모르고 바삐 객잔 내부를 청소하고 수리하기 시작했다.

택을 포함한 네 명의 소년들은 함께 마구간에 쌓인 말똥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간 쌓인 양이 산을 이룰 정도로 많았다. 전 주인은 비쩍 마르고 나이 든 말 한 마리도 객잔과 함께 넘겨주었다. 이에 네 사람은 코를 찌르는 악취에도 싫은 내색 없이 기뻐하며 일했다.

“여기 되게 더럽네!”

“하하하, 그러니까 말이야. 원래 주인이 그다지 성실하지 못했나 봐!”

그때, 리가 물 주전자를 들고 오다가 그 말을 듣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객잔 건물은 튼튼하고 커. 조금 더러울 뿐이지. 우리가 깨끗이 청소하기만 하면 몰라보게 달라질(煥然一新: 환연일신, 면모가 온통 새롭게 된다는 뜻의 사자성어) 거야!”

“오, 리 너 이제 그런 말도 쓸 줄 알아?”

“와, 대단하네!”

“하하, 이제 날 주인장이라고 불러야 할걸!”

“응응, 역시 객잔 주인다워!”

“하하하하…….”

“하하하!”

리가 웃으며 물 주전자를 택에게 내밀자, 택이 주둥이에 입을 대고 꿀꺽꿀꺽 마신 뒤 다시 용에게 건넸다. 그들은 그렇게 물을 마시면서도 조금도 꺼리는 기색이 없었다.

“택 오라버니, 진수 언니는 신선이야?”

리의 질문에 택은 어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만약 몇 달 전이었다면 분명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계연과 진수와 함께 지내며 사이가 가까워지자 신선이 아닌 것도 같았다. 다만 자신이 진수를 누나로 여기며 존경하는 것만은 확실했고, 그 질문에 신선이 아니라고 답하자니 그도 틀린 것 같았다.

“택 오라버니, 계 선생님은 신선이셔?”

택도 이번 질문에는 아무런 고민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응, 계 선생님은 신선이셔. 그것도 이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신선이셔!”

원래 택은 ‘이 세상 밖에서도 가장 대단한 신선’이라고 덧붙이려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쭉 살아가야 할 이들에게 굳이 이 세상 바깥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줘 괜히 혼란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말을 아꼈다.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용이 돌연 새빨개진 얼굴을 하며 어색한 말투로 물었다.

“택, 그, 진수 누나 말이야. 꼭…… 선녀처럼 아름다우시잖아……. 혹시 내가…….”

용이 이렇게 운을 떼자마자 택은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지 마, 용아. 선계와 속세는 본디 유별한 것도 있지만, 실은 진수 누나가 내게 말하지 못하게 한 것이 있어. 누나는 사실 네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아. 그러니 그 생각은 접는 게 좋을걸. 나도 처음에 그 말을 듣고 이모라고 불렀다가 하마터면 맞아 죽을 뻔했는걸…….”

택은 그때 일을 떠올리자 등에 다시 식은땀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털어놓은 그는 진수가 어디선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사방을 둘러본 다음에야 마음을 내려놓았다.

“뭐어?”

“설마!”

“제발, 나를 위해서라도 이 일은 입 밖에 내지 마!”

“응응, 알았어!”

“알았어. 그런데 그게 정말이야? 내가 누나한테 가서 확인해 보면…….”

“넌 내가 제 명대로 사는 게 싫은 모양이지?”

“하하하하!”

“하하하……!”

후원에서 울려 퍼지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는 객잔 대청에 앉은 계연의 귀에도 들려왔다. 그는 <묘화천서>를 읽다가 그 소리를 듣고 한번 미소 지은 뒤, 책을 덮고는 낭호(*狼毫: 늑대의 털) 붓을 꺼내 들었다.

먹물을 묻히지 않았는데도 붓끝에서는 먹이 묻어나오며 은은한 묵향이 퍼졌다. 계연은 붓을 쥐고는 중앙에 세워진 대들보 앞으로 다가가 ‘무사태평하며 온갖 사악한 것들이 물러난다(正和安泰, 諸邪闢易)’라는 뜻의 문장을 써 내려갔다. 대들보 위의 글자는 옅게 빛나더니, 잠시 후에 스르르 모습을 감췄다.

그 시각, 시정에서 마대로 만든 자루를 손에 들고 장을 보던 진수는 연달아 재채기를 내뿜었다. 그러자 그녀는 눈썹을 찌푸리며 누군가 지금 자기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 * *

객잔 전체를 깨끗이 청소하는 데에는 장장 3일이 꼬박 걸렸다. 계연과 진수에게는 그 일을 단번에 처리할 만한 능력이 있었지만, 일부러 쓰지 않았다. 용을 비롯한 이들이 객잔 곳곳에 익숙해지게 만들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다섯 명의 아이들이 얼마간 같이 시간을 보내게끔 하려는 의도였다.

세상에 끝나지 않는 연회 자리는 없듯이, 곧 이들이 헤어져야 할 때가 오고 말았다. 택의 상태로는 계연이 그가 여기에 머무는 걸 허락한다 해도, 구봉산 측에서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날 저녁, 이들은 함께 풍성한 만찬을 즐긴 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이는 3일 내내 늦잠을 잤던 계연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아침에는 이들이 고용한 악단이 일찍부터 찾아와 객잔 대문 앞에 악기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이를 본 구경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용과 고 형제 세 사람은 모두 약관(*弱冠: 남자 나이 20살)이 되기까지 1, 2년을 남겨둔 나이였다. 그러나 원체 체격이 크고 튼튼했기 때문에, 모두 스무 살은 훌쩍 넘은 젊은이들로 보여 소년들이 객잔을 열었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악단이 연주를 시작하자 객잔 주위로 몰려드는 인파가 더욱 많아졌다. 최근 며칠 동안 인근 백성들은 이 객잔의 주인이 바뀌었고 새로 개업할 예정임을 알게 되었다. 백성들 모두는 객잔의 전주인이 게으르고 태만한 성정을 지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 객잔은 내부는 물론 외부도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펑! 파바바밧!

펑! 파바밧!

파앗……!

여러 가지 폭죽이 공중에 터지며 떠들썩하고 경사스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모든 폭죽이 터진 후에는 음악 소리가 잠시 멈추며 용이 맨 앞으로 나섰다. 그는 약간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용기를 내어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 어르신과 이웃분들, 또한 덕망 높은 원외(*員外: 지방 유력자)와 향신(*鄕紳: 퇴직 관리로서 그 지방에서 학문과 덕망이 높은 사람) 분들, 우리 산남(山南) 객잔이 오늘 개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객잔과 마찬가지로 숙식을 모두 제공하니 부디 널리 알려주십시오!”

그가 이렇게 말하자 한쪽에 서 있던 대고(大古)와 소고(小古) 형제가 객잔 대문에 걸린 붉은 천 두 장을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커다란 등롱과 함께 걸린 새로운 편액이 나타났다.

편액 위에는 ‘산남객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는데, 표구(表具)하거나 글씨에 금박을 입히지 않은 보통의 널찍한 목판이었다. 하지만 계연이 쓴 글씨 덕분에 운치가 모자라거나 값싸 보이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등롱 위에도 각기 글자가 하나씩 적혀 있어, 차례로 읽으면 ‘산남객잔’이 되었다.

용을 비롯한 이들이 함께 서서 웃으며 인파를 향해 공수하자, 주위의 구경꾼들도 무척 예의 있게 축하를 건넸다. 설령 객잔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제대로 된 객잔이 인근에 있으면 어쨌거나 많은 도움이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