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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547화 (547/892)

547화. 집착하는 것

그 후, 계연은 택과 진수를 데리고 떠났다. 그들은 헤어지는 순간에도 정답게 웃었고, 조금도 이별로 인한 슬픔을 내보이지 않았다. 일각(15분) 후, 성 바깥에 도착한 택은 그제야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어뜨렸다. 계연은 아무런 말 없이 두 사람을 데리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구봉산으로 향했다.

맑은 바람이 그들을 향해 불어왔고, 발아래로 녹음이 우거진 산과 푸른 물길이 펼쳐졌다. 겹겹이 뒤덮인 운무(雲霧)를 헤치자, 택은 다시 한번 하늘을 떠받친 아홉 개의 봉우리를 볼 수 있었다. 세 사람은 비행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택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계연을 향해 물었다.

“계 선생님, 구봉산 선인들께서 제게 선법(仙法)을 전수해 주실까요?”

그러자 계연이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야. 하지만 술(術)보다는 법(法)을 먼저 가르치겠지. 몸을 수련하고 마음을 수양하는 게 먼저이니까.”

곁에 있던 진수는 입을 달싹이다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구봉산에 있을 때와 달리 이제는 택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행여나 제 말이 택을 자극할까 봐 결국 입을 다물었다.

택은 주먹을 꼭 쥐고 용기를 내 물었다.

“계 선생님, 저를 제자로 삼아주실 수는 없나요?”

그러자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내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는 적지 않았지만, 정말로 제자가 될 수 있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단다. 보통은 제자를 받지 않는다며 정중히 거절하지만, 실은 내가 제자를 고르는 데에 비교적 까다로워서 말이야. 너와 나는 인연은 있지만, 그것이 사제의 연은 아니구나.”

뒤이어 계연은 멀리 아홉 개의 봉우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구봉산에서 제자를 가르치는 수준이 나보다 더 나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든 재능을 가진 사람이든 처음부터 배우려면 구봉산이 더 적합하지. 참고할 수 있는 서책도 많고, 이끌어주고 가르침을 줄 선배들도 더 많단다.”

택은 그의 말을 듣고도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계연은 웃음을 거두고 그를 향해 물었다.

“왜 내 제자가 되고 싶은 거니?”

그러자 택이 고개를 번쩍 들며 대답했다.

“왜냐하면 계 선생님께서는 항상 제게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인품도 온화하신 데다, 선인만의 기품을 지니셨다고 생각해서요.”

“그래?”

그 말에 계연이 웃으며 곁에 있던 진수를 바라보았다.

“진수도 네게 잘 대해주지 않았니? 성격도 온화하고 선인의 기품도 갖췄지. 그럼 어째서 진수를 스승으로 모시지 않고?”

택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의아해하는 진수를 바라보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이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도 계연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한참 후, 택이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럼 제가 선생님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드려야 하나요?”

구름 위에 서 있던 계연이 몸을 돌려 온화하지만 진지한 얼굴로 택을 향해 말했다.

“만약 어느 날, 다시 마성(魔性)이 발현되거든 내가 너를 어떻게 바라볼지 잘 생각해보렴. 그렇게 내게 보답해주면 된다.”

그러자 계연의 ‘내가 너를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해보렴’이라는 한 마디가 택의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 또한 밝은 달과 같은 계연의 눈빛도 그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

택은 마치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두 팔을 앞으로 쭉 내밀어 양손을 맞잡은 뒤 깊이 허리를 숙이며 읍을 했다.

“장택, 선생님의 가르침을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그러자 계연이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잊지 말렴.”

* * *

그 후로 구봉 동천 안 수많은 성황당에서 신상에 금이 가는 괴현상이 벌어졌다. 이에 향을 올리러 온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었고, 동천 안 신령들 사이에도 한바탕 거센 풍랑이 일었다. 그로부터 한 달 반 정도가 지난 후에야 동천 안의 세계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구봉 동천에서 벌어졌던 이번 일로 인해 구봉산의 체면은 단단히 땅에 떨어진 셈이었다. 비록 이 일을 아는 외부인은 계연밖에 없었지만, 수천수만의 수선자보다 계연이 중요한 존재라는 게 문제였다. 어쨌든 계연은 일이 마무리될 기미가 보이자 더 머무르려 하지 않고 구봉산 수선자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구봉 동천 안 천지의 운행 방식이 바뀌게 되었다. 비록 몇몇 수선자들이 원래대로 유지하며 일정 시기마다 내려가 순찰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그렇게 되면 자연스러운 하늘의 이치에 반하게 되는 셈이므로 찬성하는 이가 몇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구봉산 측에서는 결국 시차의 이점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하고, 며칠을 상의한 끝에 동천 안 천지의 시간 흐름을 외부 세계의 두 배로 좁혔다. 또한 앞으로는 동천 안 신도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그 결과에 대해 계연은 아무런 말도 보태지 않았다. 그는 이것이 구봉산 측에서 내놓은 최선의 결과일 거라 믿었고, 또한 그는 어디까지나 외부인으로서 구봉산의 일에 함부로 참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계연은 떠나기 전 구봉산 조 장교와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조 장교와 함께 택이 머무는 절벽 위의 숙소를 찾아갔다.

두 사람이 멀찍이서 택을 바라보니, 그는 낭떠러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예전에 택은 절벽 아래로 다리를 내려놓고서 아무렇게나 앉았었는데, 지금은 가부좌를 튼 상태로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계연과 조어가 다가가자 그들의 기척을 들은 택이 즉시 고개를 돌렸다. 보아하니 아직 완전한 수행 상태에 접어든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택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예를 올렸다.

“장택이 계 선생님과 장교 진인을 뵙습니다!”

조어는 진정한 고인(高人)으로서 도량이 넓었기 때문에, 자기 문하의 제자가 계연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것에도 별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는 장택이 이렇게 단정한 태도로 예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무척 만족해했다.

그의 인사를 받은 계연이 이렇게 물었다.

“아직도 이렇게 낭떠러지 가까이 앉아 있니?”

“네, 이렇게 하면 눈을 뜨자마자 심연이 보이거든요.”

장택의 대답에 듣던 조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연도 별말 없이 장택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택이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아 펴보니 안에는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라(凝神淸心)’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별로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법령(法令)일 뿐이야. 항상 가까이 두고 보렴.”

이는 무슨 신기한 효능을 지닌 부적이 아닌 일반적인 법령 한 장일 뿐이었다. 만약 외부의 마(魔)를 맞닥뜨린다면 마음을 지키는 법기나 술법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마음속의 마를 제어하려면, 외부의 힘을 빌리더라도 결국은 자신의 힘에 기대야 했다.

“감사합니다, 계 선생님!”

장택은 활짝 웃으며 대답한 뒤 아쉬워하는 눈길로 계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떠나시려고요?”

“나는 구봉산 수사도 아닌 데다 따로 할 일도 있으니, 계속 여기 붙어있을 수는 없지 않겠니? 슬퍼할 필요 없다. 우리 같은 수선자들은 도를 깨우치기 위해 세상 어디에 있든 각자 수행을 닦는 법이니 말이야. 그러다 보면 언젠가 또 만날 날이 있을 거란다.”

그러자 장택이 숙소와 이어진 작은 산길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수 누나는 오늘 아직 오지 않았는데, 여기서 조금 기다렸다 가시겠어요?”

“하하, 괜찮다. 네가 나 대신 안부 전해주렴. 조 장교께서 나를 배웅해주기로 하셨으니, 그럼 이만 가보마.”

그러자 조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한마디 했다.

“열심히 수행하렴. 계 선생님을 실망하게 하면 안 된다.”

그 말에 곁에 있던 계연도 웃으며 덧붙였다.

“구봉산의 은혜를 저버리면 안 된다.”

계연과 조어는 서로를 향해 웃으며 구름을 타고 떠나갔다. 장택은 절벽 끝에 서서 멀리 사라지는 채색 구름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 * *

구봉산 장교가 직접 배웅을 나왔으니 이는 계연에게 최대한의 존중을 표한 셈이었다. 조어는 완산 나루터까지 나와 계연이 구봉산의 비행선에 오를 때까지 함께했다.

이 비행선은 원래 이곳에 있을 예정이 아니었으나, 계연을 태우려고 일부러 노선을 바꿔 3일 전부터 완산 나루터에서 계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선상의 구봉산 지사(知事) 두 사람을 제외한 배에 있던 다른 이들은 그들이 원래 노선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비행선이 떠오르고 점점 멀어지는 완산 나루터와 신기루처럼 보이는 구봉산을 바라보며 계연의 생각도 더욱 멀리 날아갔다. 소매 안의 오른손에는 어느새 바둑돌의 허상이 새로 나타나 있었다.

이 바둑돌은 지금 생긴 것이 아니라 장택을 데리고 동천에서 구봉산으로 돌아오던 와중에 생긴 것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계연이 ‘내가 너를 어떻게 바라볼지 잘 생각해보렴’이라는 말을 하고 나서 장택이 계연에게 정중히 예를 올린 뒤 나타났다.

계연은 이 바둑돌이 나타날 것을 예감했었지만, 이것이 실체를 갖출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무릇 마는 모두 집착하는 것이 있으니…….”

계연은 이렇게 탄식한 뒤, 갑판을 떠나 자신에게 배정된 숙소로 돌아갔다.

비행선 안에서 계연이 머무는 곳은 무척 고요했다. 그는 숙소로 돌아와 얼마 전에 완성한 <묘화천서>를 읽다가 <천지묘법>의 하권(下卷)을 마저 집필하기 시작했다.

<천지묘법>과 <묘화천서> 두 가지 서책은, 계연이 수행을 시작한 이래 여러 수행 법문(法門)의 가르침과 서책을 통해 얻은 배움에 자신의 깨우침을 더해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것이었다.

<천지묘법>의 상권에서 계연은 불도(佛道)에서 이용하는 결인(結印)을 개량해 그만의 묘법을 만들어냈다. 예전에 그가 사용한 적이 있던 삼지감산인(*三指撼山印: 세 손가락으로 형태를 만드는 결인으로, 산을 뒤흔든다는 뜻)이 가장 대표적이었고, 그 외에도 ‘파(破), 형(衡), 진(鎭), 속(束), 개(開)’ 등의 결인이 있었다. 이 결인들은 비록 불인명왕과 도를 논하며 영감을 얻어 불도의 법에 기초를 두고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었다.

불도의 결인이 힘을 발휘하는 데에는 스스로가 지닌 법력과 불법에 대한 깨달음, 삿된 것을 없애겠다는 불자(佛子)의 신념이 필요했다. 또한 불도의 진언(*眞言: 부처와 보살의 서원이나 덕이나 가르침을 간직한 비밀의 어구를 뜻해 범어 그대로 외우는 불교 주문)은 결인과 서로를 보조하는 형태로, 진언과 결인은 단독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결합하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반면 계연에게는 결인과 함께 사용할 진언이 없었고, 계연은 스스로의 법력보다도 ‘의식 세계’와 힘을 드러내는 ‘기세(勢)’에 대한 깨달음, 이를 펼칠 수 있는 능력을 더 중요시했다. 이 두 가지는 또한 <천지묘법>을 수행하는 데에 근본이 되기도 했다. ‘삼지감산인’을 펼칠 때도 세 손가락으로 산을 짓누르겠다는 뜻을 품어야 했다.

이 때문에 계연이 창조한 수행 법문은 천부적인 자질이 무척 높게 요구되는 편이었다. 일반적인 선문에서는 제자의 심성과 근골을 모두 따지지만, <천지묘법>에서는 심성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다. 비록 선법(仙法)을 닦을 근골을 지니지 못했더라도, 진정으로 마음에 천지를 품을 수만 있다면 무척 힘들기는 하겠지만 계속 선법을 배워나갈 수 있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의식’을 다루는 비중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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