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48화 (548/892)

548화. 또 한 번의 우연한 만남

<천지묘법> 상권에서는 법(法)의 비중이 술(術)보다 많아, 천지화생의 묘법이 내용의 근간이 되었다. 또한 책은 결인에 대해서도 조금 다루긴 하지만 심도가 깊지 않았다. 하권에 이르면, 계연이 노염생 등과 6년간 법보를 제련하고 도를 논하며 얻은 수확이 담겨 있었다. 또한 응굉과 노염생이 ‘기세’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계연은 진작부터 흥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방식에 그들에게서 얻은 깨달음을 더해 책에 담았다.

그래서 하권에서는 법과 술의 비중이 고른 편이었다. 또한 하권에는 도교의 경전에서 얻은 깨달음과 진자주와 함께 연구한 ‘성술(*星術: 별의 힘을 이용한 술법)’외에도, 상권에 담긴 결인과 오행을 근본으로 하는 여러 가지 묘법에 관한 내용이 더 세분화되어 보충되어 있었다. 그에 더해 산신 석유도를 되살리며 불렀던 도가(道歌)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었다.

물론 계연은 모든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담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권의 <천지묘법>과 <묘화천서>가 있다면 자신의 가르침이 충분히 전해지고도 남았다. 이 천서(天書)들의 가르침을 모두 깨우치려면 엄청난 힘과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다. 계연 자신은 집필자로서 깨우침을 얻고 상당한 성취를 얻었지만, 누군가 이것을 처음부터 수련하려면 무척 험난할 것이다.

이에 계연과 진자주는 막 입문한 운산관 제자들에게는 도문(道門)의 경전을 먼저 가르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그들은 청송 도인과 함께 ‘속세에서의 수행법과 마음을 닦는 방법’을 최소 3년간 가르친 후, <천지묘법>의 상권을 천천히 가르치기로 했다.

백여 개의 작은 글자들의 도움으로 계연은 마음 편히 <천지묘법> 하권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하늘의 변화’를 일으킨 것은 어디까지나 상권이었다.

계연은 <천지묘법> 하권을 쓰면서 <묘화천서>를 곁에 두고 때때로 살폈다. 이 두 권은 서로 깊이 연결된 책이었으므로, 계연이 순조롭게 책을 쓰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 * *

계연이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자, 비행선 안에 있는 구봉산 수사들은 자연스레 계연을 방해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구봉산 비행선의 노선은 계연이 타고 온 현심부의 노선과는 달랐고, 비행시간도 차이가 있었다. 계연은 방 안에서 장장 몇 달째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어느 날 계연은 <천지묘법> 하권의 세부 내용을 모두 완벽히 마무리해 폐관을 끝냈다. 계연은 붓을 내려놓고 두 팔을 하늘을 향해 쭉 뻗으며 허리를 늘렸다. 그러자 온몸에서 뚜두둑 대는 소리가 났고, 그는 연이어 하품을 했다.

“하암……! 으으……. 십 년이고 몇십 년이고 가만히 앉아 수행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네…….”

계연은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문득 궁금해져 점을 쳐본 후에 비행선이 이미 동토 운주에 돌아온 것을 알아차렸다.

그로부터 3일 후.

갑판 위에 오른 계연이 멀리 내다보니, 운해(雲海) 위에 떠 있는 듯한 월록산 정봉 나루터가 눈에 들어왔다. 완산 나루터가 선유대회가 끝난 후로 매우 한산해진 것과 반대로, 정봉 나루터는 예전에 자신이 왔을 때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구봉산의 비행선이 천천히 나루터를 향해 내려가자, 많은 이들이 나루터 근처로 몰려왔다. 수레를 끌고 있는 범인(凡人)부터 수선자는 물론이고 정괴도 있었다.

구봉산의 지사 두 명은 계연이 비행선에서 내릴 때 배웅하기 위해 벌써 나와서 계연의 양옆에 공손히 서 있었다. 이는 장교 진인이 직접 지시한 일이었지만, 실은 그의 분부가 없었더라도 두 사람은 감히 계연을 접대하는 데에 소홀하지 않았을 터였다. 비록 구봉산 대부분의 수선자들이 계 선생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계 선생이 어떤 분인지는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 선생님, 어찌 웃으십니까?”

수염도 기르지 않은 무척 젊어 보이는 지사가 계연에게 이렇게 물었다. 다른 지사도 계연이 멀리 바라보며 가만히 미소 짓는 것을 보고 궁금해하고 있었다.

계연은 눈을 돌려 질문한 지사를 바라보더니 가볍게 대꾸했다.

“별일 아니에요, 재미있는 걸 봐서요.

”마침내 비행선이 멈추고 교두보 두 개가 내려갔다. 계연이 자신을 배웅하는 지사들을 향해 인사한 뒤 몸을 돌리자, 두 명의 지사들은 다급히 그를 뒤쫓아 함께 비행선에서 내렸다.

그러자 계연이 뒤를 돌아 그들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두 분 이제 더 배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서 이만 헤어지는 게 좋겠네요.”

지사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마침내 계연을 향해 함께 허리 굽혀 예를 올렸다.

“안녕히 가십시오, 계 선생님!”

그 정중한 인사에 비행선에서 내리는 승객들이 그들을 피해 빙 돌아갔고, 어떤 이들은 아예 계연을 관찰하기도 했다. 계연이 누구인지는 몰랐으나, 비행선에 탄 승객들 대부분은 지사들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연은 더 머무르지 않고 두 사람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걸음을 서둘러 정봉 나루터의 인파 사이로 들어갔다. 원래는 적지 않은 수선자며 정괴들이 계연을 쫓아가려 했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종적을 감추었다.

그때, 택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한 소년이 정봉 나루터 아래쪽을 향해 나는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두 사람이 따르고 있었는데, 하나는 비쩍 마른 사내였고 다른 하나는 진한 화장을 한 통통한 부인이었다.

“아이고, 대체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야?”

마른 남자가 이렇게 묻자 함께 뛰던 여인이 마찬가지로 의혹 어린 얼굴로 물었다.

“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거야? 누굴 본 거야?”

두 사람은 이렇게 물으면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소년과 함께 나는 듯이 달렸다. 그 속도는 비거술과 비교해도 그다지 느리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선도(仙道)의 고인들이 이용하는 축지법처럼 우아하지는 않을 뿐이었다.

소년은 때때로 뒤를 돌아보며 멀어지는 정봉 나루터를 확인하고는 두 사람을 향해 다급히 설명해주었다.

“일단은 나를 따라와! 지금은 그저 상대는 선도의 진정한 고인이고, 자네들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밖에 말해줄 수가 없어. 저 정도 경지에 이른 사람은 하늘과 교감할 수 있고 마음도 맑아서,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이름을 입에 담으면 깜깜한 밤에 등불을 켜는 거나 다름이 없다고!”

소년은 이렇게 말하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고는, 정봉 나루터 방향에서 어떤 이상 현상도 발견하지 못하자 그제야 약간 안심했다. 그런 와중에도 속도는 절대 줄이지 않았다. 이에 두 남녀는 서로 의아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이 소년이 원래는 저렇게 담이 작고 겁이 많은 이가 아니었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나 대단한 자라고? 잘못 본 건 아니고?”

남자가 다시 이렇게 묻던 순간, 여인은 소년의 손에서 무언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는 즉시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 혈지(血枝)는?”

그러자 소년이 두 사람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신발을 아끼다간 늑대를 못 잡는다(捨不得鞋子, 套不着狼)는 말이 있지. 하지만 그깟 나뭇가지를 버렸다고 해서 완전히 도망칠 수 있다는 확신은 없어. 그러니 이제 말은 그만하고 기운이나 숨기고 따라와!”

그렇게 세 사람은 어느새 정봉 나루터 주위에 걸린 금제를 벗어나 바깥의 산 속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기운을 숨긴 채로 아무런 술법도 쓰지 않고서 두 다리만으로 멀리 도망쳤다.

한편, 정봉 나루터 변두리의 한 절벽 앞에서는 계연이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굽혔다. 그가 낭떠러지 바깥으로 손을 뻗자 어느새 그의 손안에 꽃이 활짝 핀 복숭아나무 가지가 나타났다.

지금은 월록산에 복숭아꽃이 활짝 필 때가 한참 지난 시기였다. 그러니 이 나뭇가지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다, 계연의 두 눈에도 이러한 점이 아주 또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이 눈에 익은 나뭇가지는 예전에 그가 정봉 나루터에 처음 왔을 때 본 적이 있었다.

“복숭아꽃은 핏빛 홍조를 띠고, 가지 위에 죽음의 기운이 미소 짓는구나.”

‘두 번이나 같은 곳에서 같은 사람을 마주치다니, 이게 우연일까?’

우웅……!

그때, 계연의 등 뒤에서 푸르스름한 흰빛이 번지더니 넝쿨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신(檢身)을 미약하게 떨며 소리를 내는 넝쿨검에서 미처 억누르지 못한 날카로운 검의가 느껴졌다.

‘그때’도 지금 이 상황과 비슷한 일이 일어났었다.

푸른 넝쿨로 뒤덮인 선검에는 생기(生氣)와 함께 온화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이 때문에 선검과 이 복숭아나무 가지가 지닌 사악한 성질, 혹은 이 나뭇가지의 주인과 기운이 상충하는 듯했다.

선검은 나뭇가지의 주인과는 마주친 적이 없었고, 복숭아나무 가지는 아직 어떤 해악도 저지르지 않았으나, 무척 언짢은 기운을 뿜어냈다.

계연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손에 든 채 천천히 일어났다. 이 복숭아나무 가지의 삿된 기운은 전부 가지와 꽃에 서려 있어, 보통 사람이 보면 그저 꽃이 만개한 보통의 나뭇가지로 보일 것이다. 다만 그 위의 꽃만은 유달리 색상이 선명했는데, 지금 회색 옷을 입은 계연이 이를 들고 있으니 그 대비가 더욱 뚜렷했다.

“그자가 나를 아나?”

계연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 복숭아나무 가지의 주인은 자신을 두 번째 만난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을 정말로 잘 아는 듯했다. 어쩌면 처음에도 자신을 알았을지 모르나, 어쨌든 이번만은 확실했다.

복숭아나무 가지의 주인은 철저히 방비한 게 분명했다. 자신의 기운을 털끝만큼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끊어내 버렸기 때문이다. 이 나뭇가지에는 심지어 어떤 술법이 걸린 흔적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해놓고 갔다는 것은 행여나 본인이 남긴 기운으로 인해, 저번처럼 어느 고명한 검선(劍仙)이 자신을 향해 검을 빼 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자의 성격이 조심스러워서 이랬을 수도 있지만, 계연은 직감적으로 상대방이 자신이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느꼈다. 자신이 닦은 도행의 수준으로 미루어보면 이 직감이 착각일 확률은 거의 없었다. 자신의 직감이 틀리려면 어떤 술법의 영향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했다.

우웅……!

넝쿨검이 다시 한번 희미하게 소리를 내자, 날카로운 검의가 천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계연이 선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선검은 즉시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저 멀리 날아갔다. 정봉 나루터에 빽빽이 모여든 수선자들 중에서 그 검광을 감지한 자는 몇 없었다.

선검은 정봉 나루터를 떠나 월록산에 설치된 금제를 빠져나간 뒤, 산 위를 몇 바퀴 돌다가 어느 한 방향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넝쿨 선검의 영성(靈性)은 무척 뛰어나서, 복숭아나무 가지에 남은 기운이 아무리 깨끗하게 사라졌더라도 그 안에 담긴 희미하지만 사악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계연을 그 나뭇가지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 넝쿨검은 주위에 존재하는 다른 사악한 기운을 느끼는 동시에, 복숭아나무 가지에 남은 악한 기운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뒤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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