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3화. 손씨 집안
손아아는 역시 계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며 웃은 뒤 다시 눈을 굴렸다.
“선생님, 식사하셨어요? 국수 드시고 싶으시면 제가 집에 가서 가져올까요?”
다시 생각이 이리저리 튀는 걸 보니 손아아는 기분이 조금 나아진 듯했다.
“아니야,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구나.”
그러자 손아아가 즉시 그의 말을 받았다.
“그래도 저녁 식사는 하셔야 하잖아요? 방금 청소를 끝내셨으니, 먹을 게 아무것도 없으실 텐데요. 아니면…… 저희집에 가서 저녁을 드시는 게 어떠세요? 한 번도 저희집에는 오신 적이 없으시잖아요. 게다가 저 그동안 글씨 연습도 열심히 했어요. 오시면 그동안 제가 쓴 글자도 보여드릴게요!”
손아아는 이렇게 말하며 잔뜩 기대가 담긴 눈으로 계연을 바라보았다.
계연은 그녀의 요청을 듣자마자 손아아가 속으로 무슨 계산을 두드리고 있는지 알았지만, 그저 모른 척해주었다. 어쨌든 그 일에 있어 계연은 손아아의 선택을 지지하는 쪽이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손씨 집안에서 만든 국수를 오랫동안 먹었는데, 그들은 항상 내 몫을 따로 남겨주었었지. 그러니 한번 방문해보는 것도 좋겠구나.”
손아아는 계 선생님이 자기 집으로 가서 오늘만이라도 자신의 편을 들어 주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실은 그가 거절할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순순히 승낙할 줄이야.
“정말요?”
손아아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 깜짝 놀란 얼굴로 계연을 바라보았다.
“그럼 거짓이겠느냐? 설마 나를 초대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그냥 해본 말은 아니겠지?”
그러자 손아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럴 리가요! 선생님이 오시면 저야 당연히 기쁘지요! 할아버지도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 아니, 온 가족이 모두 기뻐할걸요. 그럼 지금 어서 가요. 선생님께서 함께 식사할 예정인 걸 알면 모두 준비할 게 많을 테니 서둘러 가는 게 좋겠어요.”
그 말에 계연이 찻잔 안에 남아 있던 찻물을 모두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어서 가자꾸나.”
계연이 이렇게 말하며 탁자 위의 다기를 정리하려 하자, 손아아가 먼저 나서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가 할게요!”
손아아는 재빨리 다기를 정리해 쟁반에 담아 주방으로 가져갔다. 그런 뒤 기다리고 있던 계연과 함께 거안소각을 나섰다.
이곳에 올 때의 우울하고 의기소침해 보이던 모습과 달리, 집으로 돌아가는 손아아는 훨씬 얼굴이 밝아져 있었다. 그녀는 흥분한 기색으로 쉬지 않고 지난 몇 년간의 일을 종알거렸다.
학당에서의 일과 춘혜부로 가서 가르침을 구한 일까지, 지난 시간은 그녀에게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일들로 가득했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춘목강 강신 사당에서 열리는 글짓기에서, 두 곳 서원의 거두(巨頭)들을 누르고 제 작품이 뽑혔답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그들에 대해 여인보다도 못하다고 놀리자 어찌나 표정이 구겨지던지……. 하하하하!”
손아아는 그해 강신 사당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길가에서 배를 움켜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해맑은 웃음소리에 지나는 이들이 고개를 돌려 쳐다볼 정도였다.
그중 한 부자(父子)가 멀찍이서 불그스름한 옷을 입은 손아아와 그 뒤의 회색 옷을 입은 계연을 보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 낭자는 누구죠? 정말 아리땁네요…….”
“그것도 모르느냐, 손씨 집안의 낭자가 아니냐? 천우방 바깥에서 노점을 하는 손씨 어르신의 손녀다. 재녀(才女)로 소문이 자자하다더구나. 네가 감히 탐낼 만한 상대가 아니니 마음 접어라.”
“그럼 저 뒤에 있는 사람은요?”
그 말에 부친 되는 남자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자세히 관찰했다.
“뒤에는…… 허, 설마 계 선생님이신가?”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소리높여 불렀다.
“계 선생님, 돌아오신 겁니까?”
계연이 그 말에 고개를 돌려 골목 저쪽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이에 그는 남자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한 뒤 손아아와 함께 천우방 바깥으로 향했다.
“정말 계 선생님이셨군!”
남자의 말에서는 약간의 흥분이 느껴졌다. 그의 기억 속에서 계 선생님이 있는 천우방은 영안현 다른 곳보다 훨씬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었다. 곁에 있던 아들도 놀란 얼굴을 하는 걸 보니, 계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했다.
천우방은 영안현 성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었고, 동수방은 성의 서쪽에 있었다. 그 둘 사이에는 크고 작은 골목과 큰길이 놓여 있었다. 이에 손아아는 계연을 이끌고 거리를 거닐면서, 나중에 그에게 대접하기 위해 떡이나 간식거리 등을 조금 샀다.
이들이 채소 가게가 늘어선 작은 거리를 지나자 곧 동수방이 나타났다. 방문(坊門) 뒤편에 오래된 오동나무가 한 그루 있어, 그것이 이곳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계 선생님, 동수방에는 처음이시지요?”
계연은 오동나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 본 적은 있지만 들어가 본 적은 없구나.”
두 사람이 동수방 안으로 들어서자, 손아아를 아는 이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그들은 모두 아아에게 인사를 건넸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계연을 살피기도 했다.
“아아야, 돌아왔구나? 곁에 그분은 누구시니? 어느 서원에서 오신 선생이신가?”
바구니를 든 한 부인이 손아아를 마주치고는 이렇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처음에 계연이 어딘가에서 혼담을 넣기 위해 찾아온 자라고 여겼으나, 자세히 관찰해보니 또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네, 이씨 아주머니. 이분은 계 선생님이세요. 영안현의 계 선생님이요!”
아아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간단히 대답한 뒤 계연과 함께 동수방 깊이 들어갔다. 이씨 성의 부인은 눈썹을 찡그리며 계연이라는 이름이 어쩐지 무척 귀에 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어디서 들은 건지 떠올리지 못했다.
계연이 느끼기에 이 동수방은 천우방보다 훨씬 떠들썩했다. 물론 이는 손아아가 무척 눈에 띄고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에 인사를 걸어오는 이웃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었다. 손씨 일가가 사는 집은 동수방 서쪽에 있었는데, 계연은 어쩐지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손아아가 몇 번이나 심호흡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손아아의 부모에게는 자녀가 아아 하나뿐이었다. 손복은 아들이 하나뿐이 아니어서 다른 손자들도 많았지만, 손녀는 아아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집안사람들은 모두 아아를 무척 아꼈지만, 아아의 혼사 때문에 최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계 선생님, 저기가 저희 집이에요. 바깥에 말 두 필이 세워져 있고, 가마도 한 대 있는 걸 보니 매파가 아직도 안에 있나 봐요. 정말 꼴 보기도 싫다니까요! 일단 제가 먼저 가서 가족들에게 알릴게요.”
손아아는 이렇게 말한 뒤 재빨리 집으로 달려가 소리쳤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계 선생님이 오셨어요!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계 선생님이 오셨어요!”
손아아가 집 안에 들어서자 뜰 안에서 가마꾼 네 명이 차를 마시며 해바라기 씨를 까먹는 것이 보였다. 이에 아아가 그곳을 지나 곧장 응접실에 들어섰다. 손씨 집안은 상대적으로 풍족한 편이었기 때문에, 응접실도 꽤 품위 있게 꾸며져 있었다.
응접실 안에서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매파가 중년으로 보이는 두 사람과 함께 앉아 있었고, 손아아의 부모가 마침 그들에게 차를 따라주고 있었다. 그녀의 할아버지인 손복은 가장 상석에 앉아 있었다.
“아아야, 드디어 돌아왔구나! 잠깐 나갔다 온다더니, 왜 이리 오래 걸린 게야?”
손아아의 모친이 그녀가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더니, 즉시 손을 잡아 가까이 당겼다. 그러자 상석에 앉은 손복이 얼른 손녀딸을 위해 변명해주었다.
“아이고, 옥란(玉蘭)아, 우리 아아는 다른 집 아가씨들과 다르지 않으냐. 아마도 흥이 일어 글을 쓰러 간 모양이지.”
그러자 매파가 환히 웃더니 처음 왔을 때처럼 아아를 위아래로 자세히 관찰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손 낭자는 재능이 남다르니, 여인이 지녀야 할 덕을 배우는 것도 무척 잘하시겠네요. 아, 참. 손 낭자, 방금 저희가 마침 이 말을 하고 있었는데, 풍(馮) 씨 집안 공자께서 낭자의 재주를 무척 흠모하고 있답니다. 공자는 낭자야말로 재색을 겸비한 분이라며, 함께 춘목강 유람선을 타고 서화에 관해 토론하고 싶어하셨습니다, 호호호…….”
손아아는 억지로 미소를 끌어올리며 ‘과찬이십니다’라고 대답하고는, 상석에 앉은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방금 제가 한 말 못 들으셨죠? 계 선생님이 오셨어요!”
“뭐?”
손복이 멍하니 되묻자 손아아는 그가 제 말을 듣지 못한 줄 알고 더 가까이 다가가 크게 말했다.
“계 선생님이 오셨다고요! 거안소각의 계 선생님 말이에요. 곧 우리 집에 오실 거예요!”
그제야 손복이 정신이 번쩍 든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어? 계 선생님이 돌아오셨단 말이냐?”
“네, 돌아오셨어요. 게다가 지금 우리 집에 오셨어요. 제가 선생님을 식사에 초대했거든요. 할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설마 거절하진 않으시겠지요?”
그러자 손아아의 부모가 흥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럴 리가! 거절할 리가 없잖니! 계 선생님이 곧 오신다고? 그럼 어서 가서 선생님을 맞이해야겠구나!”
손복은 감격한 듯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다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깨달은 듯 다시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매파와 그녀를 따라온 두 선생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 집안의 오랜 지인께서 방문해 주셔서 그분을 맞이하러 나가야 합니다.”
손복은 이렇게 말하며 손아아의 부축을 받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아아의 부모도 매파를 비롯한 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한 뒤 얼른 그 뒤를 따라 나갔다. 손씨 집안사람들이 계연에 대해 가진 경외심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매파와 다른 두 사람은 서로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손아아를 비롯한 네 사람이 서둘러 밖으로 나오자, 연한 회색 장삼을 입은 계연이 이미 대문 바깥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자 손복이 얼른 계연을 향해 공손한 태도로 인사했다.
“계 선생님을 뵙습니다!”
계연도 그에게 같은 예로 답한 뒤, 얼른 손을 내밀어 나이 든 손복을 부축했다.
“어서 예를 거두세요.”
“예, 예! 선생님께서 이리 누추한 곳에 와 주시다니, 집안의 영광입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손복이 안으로 손짓하며 그를 이끌자, 계연도 구태여 그의 호의에서 비롯된 공손한 태도를 사양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갔다. 대문 안쪽 뜰에는 가마꾼 네 명이 있었고, 응접실 문가에는 세 사람이 나와 있었다. 그는 뒤이어 손씨 집안 이들을 따라 응접실로 향했다.
“계 선생님, 이쪽에 앉으십시오! 옥란아, 어서 차를 내와라!”
손복은 자신의 자리를 계연에게 내준 뒤 이번에는 아들에게 말했다.
“어서 가서 네 두 동생을 모두 데려오너라. 참, 네 둘째 백부와 셋째 백부, 백모님들도 모두 모셔 와라. 계 선생님이 오셨으니 와서 인사 올려야 한다고 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