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4화. 신분 상승?
계연은 손복이 손씨 집안 사람을 전부 부르는 걸 듣고서 눈썹을 살짝 꿈틀했다.
“계 선생님, 제가 번거롭게 일을 벌인다고 꾸짖지 마십시오. 선생님이 처음으로 저희 집에 와 주셨으니 당연히 모든 이들이 와서 인사를 올려야 합니다!”
원래 손씨 노인에게는 아들이 넷 있었는데, 손복은 그중 막내였고 그의 큰형은 이미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 후로 그는 전보다 훨씬 생각이 많아졌고 회상에 잠기는 일도 늘어났다. 그런 참에 계 선생님이 자기 집에 왔으니, 그는 집안사람들이 모두 마땅히 와서 인사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하하, 그럴 리가요!”
계연은 잠시 후 펼쳐질 대성황을 떠올리며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매파는 이를 지켜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그녀와 함께 온 짧은 수염을 기른 남자가 계연을 향해 양손을 맞잡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이쪽 선생께선 어디에서 오신 귀인이십니까?”
그러자 계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찬가지로 양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제 이름은 계연이라 합니다. 이곳 영안현에 사는 한가한 사람일 뿐으로, 귀한 신분은 결코 아닙니다.”
한쪽에 있던 손아아가 입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손복에게 바짝 다가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할아버지, 계 선생님도 오셨는데 오늘은 혼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크흠…….”
손복이 대답을 망설이던 순간 매파가 다시 활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더 잘 되었군요! 친척들이 모두 모이니 집이 떠들썩해지겠네요. 손 낭자의 경사에 대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계연은 손아아의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눈길을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며 손씨 집안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아아에게 무슨 경사가 있나요?”
“아, 선생께 아룁니다. 아아도 이제 혼인할 나이가 되어, 마침 오늘 어떤 이가 혼담을 넣으러 찾아왔습니다. 상대의 집안이 풍족하고, 가풍도 괜찮아 좋은 혼사라고 생각하던 참입니다.”
그러자 매파가 천연덕스레 웃으며 끼어들었다.
“이는 손씨 집안 조상들께서 보우하신 게 분명합니다! 손 낭자도 그야말로 재색을 겸비한 분이고요. 이 혼사가 이뤄지기만 하면, 손씨 집안은 단번에 신분 상승을 하는 겁니다, 호호호!”
“신분 상승?”
계연은 그 말이 귀에 거슬려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이 말에 질색하는 손아아를 보다가, 다시 손씨 집안사람과 매파를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설령 아아가 지방 부호, 권문세가, 심지어 왕가나 제후의 집안에 시집을 간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도 아아에게 신분 상승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손복의 뒤에 서 있던 아아는 그 말에 마음속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역시 계 선생님이셔!
‘기세가 대단하군!’
그의 말에 매파와 두 남자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계연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는 차림새가 소박했으나 기질이 범상치 않았다.
짧은 수염을 기른 남자가 참지 못하고 이렇게 나섰다.
“손 낭자는 확실히 이 근방에 보기 힘든 재녀(才女)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선생의 말씀은 조금 지나친 데가 있군요. 저희는 물론 이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을 테지만, 만약 꿍꿍이가 있는 자가 그 말을 들었다면 손씨 집안에 대해 안 좋은 말이 나돌 수도 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불만을 무척 정중한 태도로 표현했다.
그러자 매파도 미소를 유지한 채 좀 더 노골적으로 덧붙였다.
“에그,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가요? 선생께서 손씨 집안과 교분이 깊은 것은 잘 알겠으나, 저도 매파로서 양측 집안 사정에 대해 모두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런 제가 보기에 방금 하신 말씀은 조금 지나친 면이 있으시군요. 물론 손 낭자를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테니, 저도 당연히 이해는 합니다만. 호호호…….”
그녀의 말을 들은 계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여인은 타고난 매파였고, 그중에서도 아주 고수라고 할 수 있었다. 말하는 수준은 전혀 천박하지 않았으나, 욕 한마디 하지 않고도 상대를 비꼴 수 있었다.
결국 매파가 하고자 하는 말은, 손씨 집안은 그리 떳떳한 집안이 아니니 헛소리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떳떳하지 않다는 말은 이들이 범죄를 저질렀다거나 하는 뜻이 아니라, 천한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었다. 손씨 집안은 대대로 국수를 팔았고, 그것조차 거리의 노점이었으니 천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매파는 말을 마친 뒤 그제야 계연과 눈이 마주쳤다. 계연은 장안법을 쓰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회백색의 눈과 마주친 매파가 잠시 멈칫했다.
“흥!”
한편 손아아는 매파의 말에 코웃음을 쳤지만, 매파의 말이 사실임을 알았으므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반면 손씨 집안의 다른 이들은 매파의 말에 숨겨진 뜻을 읽지 못하고서, 그저 계연이 손아아를 두둔한 후로 분위기가 조금 경직되었다는 것만 알아차렸다.
“저, 계 선생님, 어쨌든 저분들은 손님이니…….”
손복이 어쩔 수 없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이렇게 나섰고, 계연은 그의 말에 매파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하지만 제가 한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닙니다.”
그러자 계연과 시선이 마주친 손복도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 여러분 차 한 잔 드시지요! 아아야, 차를 따르려무나.”
“네!”
손아아가 찻주전자를 들고서 차를 따르기 시작하자, 약간 긴장됐던 분위기도 점차 누그러졌다. 하지만 계연이 왔으니 매파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점차 혼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손씨 집안사람들은 그간 영안현에서 있었던 일을 알려주면서, 계연이 먼 길을 떠나 겪은 일에 대해 무척 궁금해했다. 이에 계연도 그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적당한 일을 골라 이야기해주었다.
매파와 함께 온 두 남자는 양측의 대화를 들으며 계연이라는 자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오직 매파만이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고, 손아아의 모친을 한쪽으로 끌고 와 혼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각(15분) 여가 흐르자, 손씨 집안사람들이 차례로 도착하기 시작했다. 계연이라는 손님을 진심으로 중시하는 이들은 손복의 형제들과 손복의 직계 자손들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저 호기심을 채우려는 마음이 더 컸다. 손씨 일가를 맨 앞에서 이끌고 들어온 것은 두 노인이었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비슷한 시각에 손아아네 집으로 모여들었다.
이리 많은 이들이 모두 자신을 보러 왔으니, 계연도 더는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어 응접실 바깥 뜰로 나갔다. 그러자 손씨 노인의 아들들이 맨 앞에 선 채로 계연을 향해 예를 올렸다.
“손씨 일가가 계 선생님을 뵙습니다!”
“어서 예를 거두세요.”
계연은 맨 앞의 두 노인을 부축해 일으킨 다음, 구경하러 온 목적이 좀 더 큰 다른 이들을 향해서는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손복의 손윗 형제들은 떨리는 손으로 계연의 손을 잡으며 감격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그간 뵙지 못한 지 참으로 오래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함께 선생님을 뵈러 갔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손복의 셋째 형은 둘째보다 좀 더 정정해 보였다. 그도 계연에게 이렇게 말했다.
“계 선생님, 저 소모(*小毛: 아명(兒名))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예전에 선생님께서 건달들에게 돈을 건네며 붉은 여우를 구했을 때, 저도 옆에서 쌀국수를 팔고 있었지요.”
계연은 웃으며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일 뿐 따로 무슨 말을 더 하지는 않았다. 그도 길에서 가끔 이들 형제를 본 적이 있었지만, 사실 손복을 제외하면 다른 형제들은 그에 대해 그저 문인(文人)에 대한 기본적인 존경심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뀐 모양이었다.
매파와 두 남자를 비롯해 뜰에 서 있던 가마꾼 네 사람은 이 장면을 보면서 모두 이상하다고 여겼다. 서른 명이 넘는 일가가 모여와 계연에게 정중히 예를 올린 건 둘째치고, 누가 봐도 계연보다 훨씬 고령인 노인들이 계연을 대하는 말투가 마치 아주 존경하는 어르신을 모시는 듯했기 때문이다.
손씨 일가는 다 함께 인사를 올린 뒤 곧 떠들썩하니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자 손복이 한쪽에 서 있던 매파 일행에게 다가가 정중한 태도로 다음에 찾아와달라 말했다. 어쨌든 오늘은 혼담을 논할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
그러자 매파가 황당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손씨 어른, 이 혼사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못 구할 정도의 혼사입니다. 이걸 놓치면 손 낭자의 종신대사(*終身大事: 평생에 이르는 큰일, 혼인을 일컬음)를 망치는 셈이라고요!”
“내 잘 알고 있네.”
“내가 보니 잘 알지 못하고 계신 듯하군요. 풍씨 공자는 집안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학식도 높으신 분입니다. 곧 추위(*秋闈: 과거 시험 중 가을에 치러지는 향시(鄕試)를 이르는 말)에 응시할 예정인데, 그분의 실력으로는 분명 합격 방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고요. 게다가 공자는 일전에 혜원 서원에서 수학한 바 있어, 관계를 따져보면 윤 부마와도 동창이라 할 수 있지요. 후에 관직을 얻어 도성에 가게 되면, 윤 재상 대인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단 말입니다…….”
매파가 끊임없이 허풍을 떨자 듣던 손복은 약간 짜증이 났다. 게다가 예전에 아아가 윤 부마께서 공주와 함께 거안소각에 들러 계 선생님을 뵈러 왔었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러자 눈앞의 매파가 하는 말이 가소롭게 들렸다.
“알았네, 알았어. 알았으니 오늘은 일단 돌아가시게!”
이 매파는 눈치가 귀신같았으므로 손복의 태도 변화를 금세 눈치채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럼 그동안 잘 생각해보시고, 저는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지요.”
“살펴 가시게. 집안에 귀빈이 오셔서 나갈 수 없으니 양해 바라네!”
매파와 두 남자는 대문을 나와, 매파는 가마에 오르고 다른 두 사람은 말에 올랐다. 두 남자는 손복의 집을 떠나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가는 길에서 짧은 수염을 기른 남자가 옆의 동료에게 물었다.
“영안현에 계연이라는 인물이 있던가?”
“나는 들어본 적 없네.”
그러자 가마 안에 있던 매파도 가림막을 걷고 고개를 내밀었다.
“나도 들어본 적이 없어. 손씨 집안과 관계가 닿은 이들은 내 다 아는데, 계씨 성을 가진 이가 있다고는 듣지도 못했다고!”
그때 가마를 들던 가마꾼 중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영안현의 계 선생님이라면, 소인이 조금 압니다만…….”
가마는 현성 안에서 고용한 것이었으므로 가마꾼도 영안현 토박이였다. 그 말에 말을 타고 있던 짧은 수염을 한 남자가 흥미가 솟은 얼굴로 말했다.
“오? 어디 한번 말해보게!”
가마꾼은 가마를 흔들리지 않게 다시 잘 떠받친 다음, 주저하며 말했다.
“소인도 그저 조금 알고만 있을 뿐이어서, 그…….”
“아이고, 답답해 죽겠으니 어서 말이나 하게!”
매파는 가마꾼에게는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예, 예! 예전에, 그, 소인이 아주 어렸을 때 계 선생님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영안현에 사는 기인(奇人)이신데 흉가에 사시는 거로 유명하고, 상처 입은 여우를 구해…….”
가마꾼이 이야기를 늘어놓자 다른 가마꾼 하나도 즉시 끼어들었다.
“아아, 그 여우가 선생에게 절한, 그 이야기 말인가? 그 선생의 성이 계씨였군?”
“그래, 그래! 바로 그 일일세! 어쨌든 소문으로는 그 여우가 건달들에게 얻어맞다가 개에 물려 죽기 직전, 계 선생이 지나는 것을 보고는 그 앞에 달려가 목숨을 구해달라고 절을 올렸다 합니다. 그리고는 계 선생께서 건달들에게 돈을 주고 여우를 구해내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한 가지 생각난 일이 있습니다. 소문으로는 윤 문곡과 계 선생께서 아주 막역한 사이라고 합니다. 그분께서 출사하기 전에는 관계가 무척 가까웠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매파와 두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자네들 말이 사실이라면, 계 선생님은 대체 연세가 얼마나 된단 말인가?”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건 소인들도 잘 모르겠습니다. 참, 저분은 그 계 선생의 아드님이 아니실까요?”
“아, 그렇겠군! 그렇게 말하니 들어맞는군!”
“그게 맞는 듯하군, 저 선생은 나보다 나이가 그리 들어보지도 않으니 말이야. 여우가 선생에게 절했다는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니까.”
“하하하하……!”
그러자 가마꾼들이 모두 웃기 시작했다.
말에 탄 남자들은 다른 말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윤재성과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에 계 선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 계연이라는 사람은 그 부친과 윤 공이 정말 가까운 사이일지도 몰랐다.
이렇게 생각한 짧은 수염을 한 남자는 동료와 함께 이 일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조금 전 계 선생이 한 말이 아예 허풍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가 정말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거라면, 풍씨 집안에서는 이 혼사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정중하게 나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