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화. 남의 닭을 빌려 알을 낳다
“계 선생님, 이번에는 얼마나 오래 머무르실 건가요?”
호운은 차를 마시며 계연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의 찻잔 안의 찻물은 이미 반 정도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차를 다 마셔 버리기가 아까워 조금씩 입에 머금었다. 계연은 이 꿀이 들어간 차는 매번 딱 한 번밖에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 있지 않을 거야, 이틀 내로 떠날 거란다.”
이에 호운과 손아아가 계연을 향해 이구동성으로 “예?”하고 외쳤다.
그러자 계연이 그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정말로 곧 떠날 거야. 아아는 오늘 집에 돌아가면 슬슬 짐을 싸는 게 좋겠구나. 글을 이 정도 썼으면 이제는 책을 보러 가야지.”
“네, 알겠습니다!”
그러자 호운의 눈에 약간 낙담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계 선생님이 돌아오신 것을 방금 알았는데, 곧 또 떠나신다니. 그는 우규산에서 수행을 닦고 있었기 때문에, 거안소각에 자주 들르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계 선생님이 영안현에 있기만 해도 그에게 큰 의지가 되었다.
“호운아 네 수행도 드디어 자리가 잡힌 듯하구나. 다만 앞길이 분명치 않을 뿐이지.”
이렇게 말한 계연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 공교로운 일이 하나 있었지. 몇 년 전, 내가 친우와 함께 북경 항주에서 무척 사악한 팔미호를 하나 만났었단다. 팔미호는 결국 내게서 도망치고 말았지만, 대신 이것을 얻게 되었지. 이것을 이용해 호운 네 요호(*妖狐: 여우 요괴)로서의 미래가 어떨지 한번 살펴보고,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듯하구나. 이를 이용해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는 오로지 너 자신에게 달렸으나, 반드시 스스로가 누군지 잊지 말아야 한다.”
계연이 이렇게 말하는 동안 기다란 흰색 털 뭉치가 그의 손에 나타나 있었다. 털의 양 끝은 아래로 늘어져 있지 않고, 바람에 날리는 듯한 모습으로 꼿꼿이 서 있었다. 호운과 손아아는 그것을 호기심 어린 얼굴로 바라보면서, 계연이 한 말에 숨겨진 뜻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 * *
저녁이 가까워지자 손아아는 돌 탁자 위의 문방사우와 오늘 썼던 글을 잘 정리한 후, 계연과 호운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뒤 책 상자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은 거안소각에 올 필요가 없었지만, 모레에는 곧바로 고향을 떠나야 했다. 비록 손아아는 가르침을 얻으러 춘혜부에 가본 적이 있었으나, 그런데도 떨림과 불안함, 약간의 걱정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편 거안소각에는 이제 계연과 호운, 바람을 맞으며 고요히 우뚝 서 있는 대추나무뿐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쭉 지켜보고 있는 작은 종이학도 있었다.
반면 건물 바깥에 걸어 놓은 <검의첩>은 무척 조용했다. 이는 작은 글자의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니라 그들이 수행을 닦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의첩>의 흰 종이 위에서 백여 개의 작은 글자들은 두 개의 검은 덩어리로 뭉쳐져 있었는데, 이는 천강(*天罡: 북두성(北斗星)을 뜻함. 도교에서는 북두성에 포함된 36위(位)의 별 또는 신장(神將)을 일컬음)을 뜻했다. 심오한 도를 품고 태어난 이 글자들은 서로 진영을 나눠 싸우기를 즐겼는데, 이제 보아하니 그것이 그저 놀이였던 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호운은 심장이 쿵쾅대어 기대감이 어린 눈빛으로 계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드디어 자신이 계 선생님에게서 가르침을 전수받게 되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렴.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법력도 운용하지 말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아라. 알겠니?”
“네!”
호운은 사람처럼 가부좌를 튼 자세로 뜰 안에 앉아, 눈을 감은 채로 순식간에 입정(入靜) 상태에 들었다.
이를 본 계연이 고개를 끄덕인 뒤 곤선승을 꺼내 들자, 곤선승은 곧 금빛 그림자가 되어 거안소각의 뜰을 뒤덮더니 거안소각과 외부 세계를 완벽히 차단해 버렸다. 뒤이어 계연은 은백색 털 뭉치를 손가락에 감아, 그 손가락으로 호운의 이마를 가볍게 눌렀다. 그와 동시에 계연은 신통력을 펼쳐 천지화생을 불러일으켰다.
솨앗-!
그러자 강렬한 빛이 호운의 마음을 밝게 비추더니, 호운의 마음속에 산과 하천이 펼쳐지고 날짐승과 들짐승을 비롯한 세상의 만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호운 자신은 홀로 높은 산봉우리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호운이 몸을 일으켜보니 자신의 뒤에 아홉 개의 꼬리가 달린 것이 보였다.
“보고 느낀 것을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두렴. 하루밖에 시간이 없으니, 이 기회를 낭비하지 않도록 지금 이 느낌을 잘 기억해야 한다. 다음 기회는 없을 테니까. 한 번 더 이것을 사용했다가는 구미호가 알아차릴 수도 있다.”
계연의 목소리가 하늘과 땅 사이에 울려 퍼졌다. 현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풍경 안에 있던 호운은 그의 말에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흥분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저 가만히 수행을 닦기로 했다.
이때 이 특별한 여우의 털은 호운의 머리 위를 감싸고 있었다. 계연은 자신의 의식 세계를 펼치는 동시에 호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 여우 털은 건곤술이 담긴 것으로, 아홉 번째 꼬리의 교묘한 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게다가 이것은 아홉 번째 꼬리가 되던 순간 계연이 잘라낸 것이라, 그 안에 담긴 힘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덕에 계연은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호운에게 찰나의 현묘함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에 더해 천지화생의 술법을 이용해 호운의 의식 세계 속 시간을 하루 밤낮으로 만들어주었다.
다만 그 현묘함이 사라진 후 호운이 그 감각을 얼마나 오래 기억할 수 있을지는 오로지 그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고작 이것으로 옥호동천의 묘법(妙法)을 전수받을 수는 없을 테고, 호운은 그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닦아야 했다. 말하자면 이것은 ‘남의 닭을 빌려 알을 낳는(*借鷄生蛋: 다른 이의 기술이나 자금을 빌려 자신의 이익으로 만들어낸다는 뜻의 사자성어)’ 방법이었으니, 계연은 무척 신중히 행동해야 했다. 만약 곤선승이 없었다면 그도 이런 일을 벌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잠시 후, 계연은 다시 그 은백색의 여우 털을 거둬들였다. 그러나 호운은 여전히 입정한 상태 그대로였다. 계연이 보아하니 자신이 그의 마음속에 펼친 하루 동안 아예 수확이 없던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계연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연은 호운에게 이 감각을 잘 기억하도록 하라고 했을 뿐, 혹시나 호운이 심리적인 부담을 느낄까 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펼친 하루 밤낮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호운이 이 상태에서 깨지 않은 것을 보니, 호운도 그간 수행에 많은 진전을 이룬 것 같았다. 계연의 추측으로 봤을 때 호운은 하루 정도 더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듯했다.
호운의 의식 세계에서 낮과 밤이 지나는 동안에 현실에서 흐른 시간은 무척 짧아서, 손아아가 동수방에 도착한 지는 얼마 되지도 않았다. 오늘은 동지(冬至)였으므로 손기 노점도 오늘 장사를 일찍 마무리한 상태여서, 손아아는 돌아가는 길에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동수방 안을 걷던 손아아의 가슴 속에는 흥분과 서글픔이 교차하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동경과 가족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많은 서책을 읽어 왔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신선에 관련된 이야기에서, 선인(仙人)과 범인(凡人)은 유별하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이는 선인들이 냉담하여 범인의 생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였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선인과 범인과의 은원과 갈등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런 이야기들이 더욱 유명해지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선인과 범인이 유별한 것은 선인들이 속세를 초월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선인들이 사는 선산(仙山)이나 선도(仙島)는 모두 속세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는 즉 손아아 자신도 고향에서 아주 먼 곳으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손아아의 마음속에는 슬픔이 짙어졌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그녀는 항상 막연한 동경과 기쁨에 가득 차 있었지만, 지금은 손아아에게서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마주친 이웃들이 인사를 건네도 손아아는 무척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걷다 보니 손아아는 어느새 자기 집 대문 앞에 다다라 있었다. 마침 장작더미를 들고 나뭇간에서 나오던 손복은 손녀가 돌아온 것을 발견하고는 웃으며 반겼다.
“아아 왔느냐?”
그러자 손아아는 고개를 들어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네” 하고 대답했다. 손복은 그녀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얼른 장작을 주방으로 갖다 놓고 다시 나왔다. 그때 아아는 이미 응접실 앞까지 걸어간 상태였다.
“아아야, 수업 중에 계 선생님께 꾸지람이라도 들은 게냐?”
손아아는 서책 상자를 응접실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오늘 제가 쓴 <유룡음>이 크게 진보했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그럼 왜 이리 기운이 없는 것이냐?”
그 말에 손아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조금 이따 저녁에 말씀드릴게요.”
밤이 되어 손씨 일가가 응접실의 8인용 탁자 앞에 모여 앉았을 때, 분위기는 어째서인지 무척 가라앉아 있었다. 손아아는 아직 입을 열지 않았지만, 손복을 비롯한 그녀의 부모 모두 무슨 까닭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늘 저녁에 모두 식사를 적게 들었지만, 어쩐 일인지 모두 술을 마신 상태였다. 술이라고는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던 손아아와 그녀의 모친은 오늘 두 잔이나 마셨기 때문에 얼굴이 불그스름했다.
그렇게 한참 침묵이 이어지다가 손아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계 선생님이 제게 짐을 싸라고 하셨어요. 내일모레 저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신대요. 이번에 가면 얼마나 걸릴지,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손아아가 다시 입을 다물자 그녀의 가족들은 진작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다시 슬픔이 차올랐다.
“아, 정말 잘된 일이로구나. 그렇지요, 아버지?”
“그래, 그래. 얼마나 좋은 일이냐! 다른 이들은 꿈에서도 얻지 못하는 기회잖느냐!”
“맞습니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얻을 수 없는 기회지요!”
“맞아요, 그러니 기뻐하는 게 맞지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도 아니고요!”
“그래, 그러니 얼굴 찡그리지 말아라. 그러다가 계 선생님이 네가 가기 싫은 거라고 여기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무얼 가져가면 되니? 내가 도와주마!”
그렇게 한 마디씩 주고받는 세 사람은 무척 기쁜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이 무척 노력한 덕분에 그 떠들썩한 모습은 꽤 자연스러웠다.
손복은 그녀가 전쟁터로 떠나는 것도 아니고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손아아는 슬픔을 억누르기가 어려워 측간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두 번이나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