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화. 구름을 타고 떠나다
한편, 계연의 예상대로 호운은 그 후로 10시진(時辰: 1시진은 2시간) 동안 입정 상태에 들었다가, 다음 날 오후 대추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튼 상태로 두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뜰에 서 있는 계연이었다. 호운이 보아하니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계 선생님,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요? 설마 몇 년이나 지난 것은 아니겠죠?”
호운이 이렇게 물은 데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었다. 구미호가 되었던 그 하루 밤낮이 지난 후, 입정에 접어든 호운에게는 아무런 시간의 흐름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작 한순간이 지난 것 같기도 했고, 기나긴 세월이 지난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눈을 떴을 때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한 그 감각 때문에 대체 얼마나 지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하하, 그럴 리가. 지금은 고작 하루가 지난 오후일 뿐이야. 어떠했느냐?”
그 말에 호운이 남몰래 안도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처럼 두 발로 선 상태로 계연을 향해 예를 올렸다.
“덕분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르침을 많이 얻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계 선생님.”
“이 기회에 얼른 산으로 돌아가 수행을 공고히 하는 것이 좋겠구나. 스스로의 앞날을 닦을 수 있도록 오늘 이 깨달음을 헛되지 않게 하렴. 산으로 돌아가면 수행이 얼마나 길어지든 게을리하지 말고, 노는 데에 열중하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아라.”
“네, 선생님 말씀대로 할게요!”
호운은 그렇게 대답한 뒤 즉시 떠나려다가 다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꼬리를 뒤져 산(山) 자 모양의 옥석을 하나 꺼내 들었다.
“계 선생님, 이 옥석은 제가 만든 붓걸이인데 받아 주시겠어요?”
“오, 아주 잘 만들었구나. 보아하니 원래는 내게 줄 계획이 아니었는데, 고마운 마음이 들어 주는 모양이지?”
계연이 장난스럽게 묻자 호운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저는 그저 선생님이 이런 물건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여러 개를 만들면서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줄곧 선생님께 드리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번에 떠나시면 언제 다시 돌아오실지 모르니 드리는 거예요.”
계연이 가볍게 손짓하자 호운이 들고 있던 옥으로 된 붓걸이가 그의 손바닥으로 날아왔다.
“알았다, 그만 가보렴. 잘 받으마.”
“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호운은 공손히 인사한 뒤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담벼락을 넘어 떠나갔다.
계연은 그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다가 투명하게 반짝이는 옥으로 된 붓걸이로 시선을 돌렸다. 표면을 만져보니 광이 나고 매끄러운 것이 아주 좋은 옥인 듯했다.
열 시진 내내 서 있었던 계연은 방으로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저번처럼 금덩이를 주었어도 기쁘게 받았을 텐데…….”
* * *
셋째 날 아침, 계연은 일찍 일어나 손아아가 거안소각에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동수방 손씨 일가가 사는 집으로 향했다. 그들도 아침 일찍 눈을 뜬 듯, 계연이 도착했을 때는 응접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손씨 일가는 아침 식사를 막 마친 때였기 때문에, 어머니를 도와 그릇과 수저를 정리하던 손아아는 대문 앞에 서 있던 계연을 곧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선생님, 오셨어요?”
손아아의 눈언저리가 붉게 물든 것을 보고, 계연은 그녀가 지난 이틀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고 여러 번 울었음을 알아차렸다. 계연은 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자신에게 안부를 묻는 손씨 일가와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응접실 안에 서책 상자와 우산이 꽂힌 보따리가 놓여 있는 걸 보니 진작에 짐은 다 싼 듯했다.
“이번에 떠나있는 시간이 그리 짧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길지도 않을 거다. 그러니 예전처럼 춘혜부 서원에 가르침을 청하러 가는 거로 생각하렴. 수선자들이라고 해서 속세의 연을 완전히 끊는 것은 아니란다. 자기 부모에게 불효한 이들이 선도를 닦아 선인이 되는 게 가당키나 하겠느냐?”
계연의 우스갯소리에 손아아와 그녀의 가족들이 모두 웃으며 안심한 얼굴로 옳다며 연신 동의했다.
“참, 예전에 아아가 썼던 글들은 잘 보관해 두었다가, 무슨 급한 일이 생기면 가져다가 은자와 교환하셔도 돼요.”
계연이 이렇게 말하자 손복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걸 아까워서 어찌 팔겠습니까? 게다가 저희가 대단한 부호는 아니지만, 집안이 그렇게까지 곤궁하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계연이 손복을 바라보다가 다시 손아아를 쳐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아아야, 짐 가져와라. 이제 가야겠구나.”
“네!”
손아아가 얼른 탁자 앞으로 걸어가자 그녀의 부친이 서책 상자를 들어 그녀의 어깨에 매주었다. 아아의 모친은 그녀의 옷자락을 정리해 주었고, 손복은 보따리와 우산을 손녀에게 건넸다. 손아아를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길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선생님, 저희 어떻게 가나요?”
“아, 참! 그렇지, 계 선생님, 제가 가서 마차를 불러올까요?”
“마침 제가 자주 먼 길을 떠나는 마부를 하나 알고 있는데 불러드릴까요?”
원래 계연은 영안현을 완전히 빠져나올 때까지는 걸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들 가족의 모습을 보고는 생각을 바꿨다. 이렇게 하면 그들은 아아가 떠난 후에도 좀 더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손씨 부자의 제의를 듣고도 계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요, 그냥 가면 됩니다. 아아야, 어서 인사하렴.”
그러자 손아아는 서 있던 자리에서 몇 발짝 물러난 뒤, 서책 상자를 등에 지고서 땅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가족들에게 예를 올렸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모두 건강하세요!”
“아아야, 어서 일어나거라!”
“이런, 옷이 더러워지잖느냐!”
“상자 안에 든 물건이 많으니 각별히 조심하거라.”
“그러니까요, 계 선생님께서 지금 가셔야 한다는데 이리 옷을 더럽히면 닦느라 일정이 늦어지잖니!”
가족들의 반응에 손아아는 가슴 깊이 감동을 느끼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보니 계 선생님은 이미 응접실 바깥으로 나가 있었다.
그때, 계연이 긴 소매를 한번 휘두르자 그의 발밑에 안개구름이 생겨났다.
“아아야, 이리 오렴.”
그 광경에 약간 넋이 나간 아아가 “네” 하고 대답한 뒤 얼른 보따리를 들고 계연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원래는 희미했던 하얀 안개가 즉시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속도로 흰 구름으로 변했다. 그러자 계연과 손아아는 지면에서 3척(약 90cm) 정도의 높이로 둥실 떠올랐다.
이 장면에 구름 위에 서 있던 손아아는 물론이고, 그 아래 그녀의 가족들도 입을 쩍 벌리고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로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계연은 구름 위에 올라선 채 손씨 일가를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다.
“모두 건강하세요, 아아는 잘 지낼 겁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그가 말을 마치자 흰 구름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손씨 일가의 머리 위에 잠시 머물렀다가 한 줄기 흰빛으로 변해 저 멀리 사라졌다.
이 엄청난 광경 때문에 이별에 의한 슬픔과 가족에 대한 걱정은 잠시 뒤로 밀려났고, 그들은 모두 벅차오르는 기쁨과 흥분을 느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손씨 일가만 볼 수 있었을 뿐, 동수방의 다른 이웃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 * *
흰 구름은 순식간에 영안현을 떠나 우규산 상공에 이르렀다. 이에 손아아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크게 소리쳤다.
“선생님, 우리가 날고 있어요! 날고 있다고요! 선생님, 저도 이거 배울 수 있어요? 배우면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선문(仙門)으로 향하는 건가요?”
손아아는 흥분에 휩싸여 연달아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자 그녀가 조금 가라앉은 뒤에야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비거술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니 너도 곧 배우게 될 거란다. 배우면 당연히 할 수 있겠지. 우리가 지금 가는 곳은 병주의 운산인데, 그곳은 선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도문(道門)이라고 할 수 있지.”
평소 그다지 속도를 내지 않던 계연은 둔술(遁術: 다른 물질의 도움을 빌려 숨거나 도망치는 술법. 주로 오행(五行: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의 힘을 빌림)을 펼쳐 흰빛으로 변해 바람을 가르며 날았다. 이는 마치 그들이 한 줄기 번개가 된 듯한 속도였다. 그러니 손아아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평범한 사람은 어떻겠는가?
계연은 구름 위에 가만히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손아아의 눈은 발밑에 펼쳐진 대지와 산천을 바라보다가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바쁘게 움직였다. 이 광활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그녀로 하여금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구천(*九天: 가장 높은 하늘, 또는 하늘을 아홉 방위로 나뉘어 일컫는 말)을 자유로이 노닐며 종적을 찾을 수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구름 위의 선인이구나!’
맨 처음의 두려움이 천천히 가시자 뒤이어 몰려온 것은 강렬한 기대감과 흥분이었다. 반 시진(時辰: 1시간)이 지난 후에야 손아아는 마침내 평정을 되찾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계연을 바라보니, 그는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 같기도 했고 그의 생각이 지금 저 멀리 어딘가를 떠도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계연이 눈을 뜨더니 완벽히 평정을 되찾은 손아아를 향해 물었다.
“묻고 싶은 게 있니?”
그러자 손아아가 웃으며 물었다.
“선생님, 이 세상에는 선인들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나요?”
그녀의 물음에 계연은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즉시 대답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선인은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단다. 그들은 각자의 도장(道場)에서 수행을 닦고, 그것도 이 세상 곳곳에 퍼져 있어 우연히 마주치기란 몹시 어렵지.”
손아아는 계연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럼 선생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인은요? 얼마나 되나요?”
계연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먼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아주 적지.”
“아, 선생님, 저희가 가는 곳이 병주의 운산이라고 하셨죠? 그곳은 아주 이름난 선산(仙山)인가요, 아니면 도장의 이름이 운산인 건가요? 다른 이름이 있나요?”
그녀의 질문에 계연이 웃으며 사실대로 대답해주었다.
“운산 위에 있는 운산관이라는 곳이란다. 유명하지도 않고 아마 선도(仙道)를 닦는 이들 중 그 이름을 들어본 이들도 없을 거야.”
그의 말에 손아아가 눈을 반짝였다. 계연이 말한 유명하지도 이름도 없다는 말에는 전혀 신경도 쓰이지 않는 듯했다.
“그럼 선문 안의 은사(*隱士: 숨어 사는 선비, 은거하는 실력자) 같은 거군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니?”
계연이 반 정도는 호기심에 이렇게 묻자, 손아아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이랑 아주 비슷한 것 같아서요. 유명하지도 않고 누구도 선생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지만, 선생님은 진정한 고인(高人)이시잖아요…….”
이렇게 설명한 손아아는 다시 이렇게 질문했다.
“선생님, 운산관에서 전해지는 책은 아주 대단한 거겠죠?”
그 물음에 계연은 전혀 겸손을 떨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대단하지!”
손아아는 ‘과연’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미소 지었다. 그녀는 계 선생님이 선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대단한 위치에 있는지는 몰랐지만, 계 선생님의 안목이 아주 뛰어나며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정오가 되기 전 그들은 곧 운산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손아아는 멀리 운산을 바라보다가, 광활히 펼쳐진 병주의 평원을 내려다보았다. 간간이 산이 있기는 해도 모두 작아서 멀찍이 보이는 운산이 더욱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