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화. 떠들썩한 운산관
한편, 운산관에는 더 이상 청송도인과 청연도인 두 사제만 머물고 있지는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아이들 몇 명을 제자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계연이 운산관에 <천지묘법> 상권을 남기고 떠난 것이 거의 10년 전이었다. 그 10년 동안 청송도인과 청연도인은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성실하게 수행을 닦았고, 도문(道門)에 도움이 될 만한 고서를 정리하기도 했다. 처음 몇 년 동안 그들은 수행의 기초를 공고히 쌓았고, 그렇게 해서 운산관도 점차 굳건히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다만 청송도인은 여전히 옛 취미를 즐겨, 아예 시정에 자리를 펴거나 거리를 걷다가 흥미로운 관상을 지닌 이들을 마주치면 점을 쳐주곤 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차례로 몇몇 아이들을 운산관 제자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계연과 손아아가 구름을 타고 도착하자, 진자주가 이미 연하봉 정상에 올라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멀리서 계연과 한 여인이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커다란 돌 위에 올라서서 그들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계 선생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러자 계연도 구름 위에 선 채로 그에게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진 공!”
손아아도 눈치 빠르게 계연의 뒤를 따라 곧바로 진자주에게 예를 올렸다.
“후배 손아아가 진 공을 뵙습니다!”
그러자 진자주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구름에서 내려서는 두 사람을 찬찬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주 영특한 아이로군요.”
“과찬이세요, 모두 계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
손아아는 그저 겸양의 뜻으로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지만, 이를 들은 진자주는 깜짝 놀라며 계연과 손아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너는 계 선생님의 제자로구나?”
“아직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선생님께 글을 배운 것이 전부입니다…….”
손아아는 원래 곧바로 그렇다고 대답하려 했으나, 계연을 잠깐 바라보고는 딱 잘라 대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에 그녀는 교묘히 즉답을 피하고는 다시 한번 계연의 반응을 몰래 살폈다.
계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운산관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운산관에 생기가 더해졌군요!”
그러자 진자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도관을 계속 이렇게 텅텅 빈 채로 꾸려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야 그나마 조금 모양이 갖춰진 셈이지요. 그럼 이제 함께 내려가시지요.”
“진 공 먼저 가시지요!”
두 사람이 산 아래로 내려가자, 손아아도 숨을 헐떡이며 그들을 뒤따라갔다. 진자주는 산에서 내려가는 동안 계연에게 운산관에 새로 머물게 된 네 명의 아이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가 가장 먼저 설명해준 제자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사정이 숨겨져 있었다. 그 제자는 청송도인이 각종 수단과 속임수를 써서 산으로 데려온 아이였다.
몇 년 전, 연이 닿았던 것인지 청송도인은 병주 어느 시정에서 한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 아이는 심성도 곱고 보면 볼수록 아주 영특하여, 청송도인은 그렇게 몰래 2주 정도 아이를 관찰했다. 그리고는 산에서 내려갈 때마다 아이를 보러 갔는데, 때로는 우연히 마주친 척을 하기도 했고 어딘가에 숨어서 지켜보기도 했다. 그렇게 2년 정도가 지나, 마침내 그는 아이를 제자로 받아들일 마음을 먹었다.
“오, 그래서 그 아이가 가장 먼저 운산관에 오게 된 거군요?”
계연의 물음에 진자주가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아직 이야기가 더 남았습니다. 제선은 그 아이를 제자로 맞고 싶었지만, 그가 받아들인다고 해서 당사자도 받아들이라는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아이의 부모는 제선을 보자마자 당장 쫓아내고 싶어 했습니다. 이제 겨우 일곱 살이 된 아이를 수행을 닦으러 산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하니, 부모들은 당연히 원하지 않았지요. 심지어 부모들은 제선이 점괘를 봐주다가 얻어맞는 장면을 본 적도 있었으니까요…….”
이를 들은 계연은 슬며시 미소 지었고, 뒤따라오던 손아아도 행여나 웃음이 터져 나올까 얼른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녀도 이야기 속의 청송도인이 대단한 고인(高人)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신선이 평범한 사람에게 얻어맞았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하하,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요? 청송도인은 부모들의 거절에도 절대로 굴하지 않고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갖은 수단으로 그들을 설득했지요. 도사가 되어도 혼인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으며, 운산관에서 가서 수행을 닦으면 후에 밥벌이로 쓸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을 배울 수 있다고도 했지요. 게다가 아이는 이미 그를 사부님이라고 부르며 따라다녔으니, 그 집 부모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듣던 계연은 놀라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청송도인처럼 구차하게 매달려서 제자를 얻는 자는 세상천지에 그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들을 설득하면서 선도(仙道)의 묘법 같은 것을 보여주지는 않았나요?”
그의 물음에 진자주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수단을 좀 드러내긴 했다더군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아이의 부모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제선을 무슨 선인(仙人)으로 여기지는 않고, 고작해야 점괘를 보고 액운을 쫓는 법사 정도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그 외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은 명이 아주 고된 편이었다. 청송도인이 첫 번째 제자를 받아들인 그해에, 병주의 수루부에서 꽤 큰 유괴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담당한 이는 수루부의 지부(知府)로, 조정의 재상 중 하나인 윤재성의 가르침을 받은 이였다. 그는 공정하게 사건을 판결한 후, 아이들을 납치한 열 명의 죄인들을 책형(*磔刑: 참수한 후 시체를 찢는 형벌)에 처했다.
사건은 그렇게 해결되었지만, 아직 3, 40명의 아이들이 남아 있어 관아에서는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관아에서 범인들에게 자백을 받아낸 후에도 아이들 대부분은 여전히 집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 마침 근처에 있던 청송도인이 이 사건을 알게 되어, 점괘를 이용해 아이들이 사는 집 주소를 알아내 주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세 아이의 가족들은 알아낼 수가 없어, 결국 그가 아이들을 운산관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운산관에 새로 들인 제자들의 사정을 듣다 보니, 세 사람은 어느새 운산관 바깥에 도착한 상태였다. 그러다 마침 물통을 지고서 물을 길으러 가던 제문과 마주쳤다.
제문은 계연 등이 온 것을 보고서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가 곧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계 선생님, 오셨군요? 이쪽은 누구신가요?”
“후배 손아아가 인사 올립니다. 그저 계 선생님께 몇 년간 서법(書法)을 배운 것이 전부예요.”
손아아가 무척 정중한 태도로 인사하자, 제문도 물통이 달린 멜대를 내려놓고 얼른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저는 제문이라 합니다. 도호(*道號: 도문(道門)에 든 후의 이름)는 청연이라 합니다.”
이렇게 인사한 제문은 다시 계연과 진자주를 향해 공손히 예를 올린 뒤, 그들을 이끌고 운산관으로 향하면서 크게 소리쳤다.
“사부님, 계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제선은 이때 운산관 뜰 한쪽 구석에서 아이들과 회색 담비 두 마리에게 도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양생권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다 제문의 목소리를 듣고는 얼굴에 화색을 띠며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서둘러라, 계 선생님을 뵈러 가야 하니 어서 나를 따라오너라! 그림에 있던 바로 그 어르신이다!”
계연이 운산관 안에 들어서자 청송도인이 네 명의 아이를 데리고 이쪽으로 서둘러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 뒤로는 회색 털의 담비 두 마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계연을 보자마자 사람과 담비 모두 계연을 향해 공손히 예를 올렸다.
“계 선생님께 인사 올립니다!”
“계 어르신을 뵙습니다!”
“계 어르신을 뵙습니다!”
“찍찍!”
인사는 그다지 단정하지 못했고 호칭도 제각각이었지만 무척 떠들썩한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넷이나 들어온 데다가 담비 두 마리도 아주 그럴듯한 제자처럼 행동해서, 운산관 전체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더 생기가 느껴졌다.
* * *
아직 소녀인데다가 학식이 넓고, 독특한 매력을 지닌 손아아는 이틀 만에 운산관 아이들과 아주 친밀해졌다.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대전(大殿) 뒤쪽에 걸린 신성한 그림 두 폭을 보러 가기도 했다.
손아아는 그제야 계 선생님이 여기서 ‘어르신’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 선생님은 ‘신군(神君)’이라 불리는 것을 보니 아주 대단하신 분인 듯했다.
마침 이 아이들은 도문의 가르침과 양생권을 배운 지 딱 3년이 되었기 때문에, 손아아와 마찬가지로 곧 <천지묘법>을 처음으로 읽게 될 예정이었다.
셋째 날 밤, 계연과 진자주는 함께 연하봉 정상에 올라 별과 달을 감상했다.
진자주는 대추꽃 꿀차를 마시며 밝은 달을 감상하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계 선생님, 저는 아직 진정한 계유신은 아니지만, <천지묘법> 상·하권에 더해 음양오행의 이치를 모두 섭렵하는 천서(天書)인 <묘화천서>까지 모두 천지의 조화를 담은 책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이로써 운산관의 뿌리도 충분히 깊고 단단해졌으니, 이보다 인원이 더 늘어나면 운산관에서도 더는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말에 계연도 찻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옳으신 말씀이에요. 또한 선생님과 저는 운산관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도인들이 너무 의지하게 될 거예요.”
“맞습니다, 저도 마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2년 동안, 청송도인이 의혹이 생길 때 제게 와 가르침을 청할 때 빼고는, 저도 그리 얼굴을 비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곳곳을 돌아다니고 별을 관찰하며 영기를 흡수하고 있지요.”
진자주는 자신의 수행이 아직도 충분치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는 전설 속 계유신을 기준으로 삼으면 맞는 말이었지만, 사실 그의 실력은 그리 낮다고 볼 수 없었다.
계연은 계유신이 되기 위해 수행하는 이가 아마도 진자주 한 명뿐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자신의 실력이 충분한지 그렇지 않은지도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진자주가 쌓은 수행은 수행계에서 흔히 일컫는 대로 도행이라는 간단한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일반적인 요마(妖魔)들은 그의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비록 진자주가 곳곳을 돌아다닌다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상 그의 행동반경은 병주에 국한되어 있었고 그조차도 운산 부근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운산관을 일으켜 세워 지금의 선도를 닦는 도문(道門)으로 만들었으니 마음이 쓰이는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자기 자신의 수행에 있어 중요한 바탕이 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계연은 최근 이틀간 진자주와 갖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겪은 세상 곳곳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용시충이 일으킨 변고, 여우 요괴를 산 아래에 가둔 일, 선유대회에 수많은 수선자가 모인 것, 다섯 사람이 함께 오며 곤선승이라는 법보를 제련한 일, 동천을 단단히 걸어 잠근 천기각이 정말로 선유대회에 참석하지 않은 일, 구봉 동천 안에 관한 이야기 등이었다. 진자주는 운산관에 생긴 변화뿐만 아니라 그간의 수행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