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61화 (561/892)

561화. 운산칠자(雲山七子)

그렇게 시간은 어느새 자정이 되었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와중에도 그들 사이에 놓인 찻주전자에서는 여전히 김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내 시선을 운산관을 향해 돌렸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군요.”

진자주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하자 계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시작했어요.”

“아아도 책을 봐야 할 텐데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계연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 아이의 서법에는 이미 제 진수가 얼마간 담겨 있어요.”

그 말에 진자주가 눈썹을 쓱 들어 올리더니, 법력을 운용해 운산관에 있던 손아아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일전에 계 선생님이 글자를 가르쳤다고 듣긴 했지만, 그 정도 수준에 이르렀을 줄이야. 이왕 그런 실력을 지녔다면 <천지묘법>을 읽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른 제자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시험에 더 가까운 것이고, 이를 통과해야 다음 단계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손아아는 곧바로 그 가르침을 익힐 수 있을것이다.

두 사람은 굳이 운산관으로 자리를 옮길 생각은 없었다. 오늘은 운산관에 있어 수행의 도통(道統)을 세우는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그들은 지금 운산관에 있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나중에는 운산관에서도 다른 이들이 이 의식을 관람하도록 허가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만큼은 제선을 비롯한 운산관 제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았다. 설령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는 운산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작은 도전이 될 것이다.

한편 운산관에서는 주전(主殿)의 정문과 측문을 모두 열고서, 안쪽에는 별자리 그림 아래에만 방석 하나를 남긴 상태였다. 별자리 그림 양쪽에는 그림 두 폭이 걸려 있었다. 관주(觀主)인 청송도인과 운산관 제자들은 대전 바깥에 서서 별빛을 받고 있었다.

청송도인 제선은 홀로 가장 앞에 서 있었고, 뒤에는 청연도인 제문을 선두로 하여 회색 담비 두 마리, 나이순으로 선 아이 넷이 서 있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는 열한 살이었고, 가장 어린아이는 일곱 살이었다. 그들이 차례로 서 있는 모습은 일직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약간 산만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그 형태에 특별한 함의가 담긴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을 선으로 차례로 이으면 기이하게도 국자의 형태(북두칠성의 모습)가 되었다.

제문 등과 달리 손아아는 외따로 서 있었다. 하지만 위치로만 보자면 제문보다도 앞쪽이었다. 나이로 봐도 제문이 그녀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손아아는 이 자리에 서기가 무척 겸연쩍었다. 하지만 제선은 그녀가 이 자리에 서도록 고집했다.

그렇게 일곱 사람과 담비 두 마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제선은 고개를 들어 운산관 하늘 위에 뜬 반짝이는 별 무리와 밝은 달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그의 마음속에 무언가가 번쩍하고 스쳐 지나갔다. 제문은 드디어 때가 된 것을 느꼈다.

새로 지은 도포를 입은 청송도인은 천천히 두 손을 앞으로 뻗어 태극음양인(太極陰陽印)을 맺은 뒤 대전 안의 별자리 그림을 향해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그는 손이 땅에 닿은 후에는 양손을 교차하여 절을 올렸고, 다시 태극인을 맺으며 몸을 일으켰다.

“천지와 별을 향해 인사 올립니다!”

그러자 운산관 제자들이 청송도인의 모습을 따라 정중히 절을 올렸다. 담비 두 마리도 무척 그럴듯한 모습으로 예를 올렸다. 청송도인은 이미 손아아에게 도문의 예절을 따를 필요 없다고 말해 두었지만, 그녀는 제자들과 함께 절을 올렸다.

뒤이어 청송도인은 계연의 그림을 향해 도문의 예절대로 절을 올린 뒤 몸을 일으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어르신께 인사 올립니다!”

그러자 그의 뒤에 선 제자들과 담비들이 공손한 태도로 계연의 그림을 향해 절을 올렸다.

청송도인은 다시 진자주의 그림을 향해 절을 올린 뒤 큰 소리로 말했다.

“진 신군(神君)께 인사 올립니다!”

그러자 제선을 비롯한 제자들과 담비들이 다시 한번 절을 올렸다.

“천지묘법을 청합니다!”

이번에는 청송도인과 그 뒤에 선 제자들이 별자리 그림을 향해 함께 장읍례를 올렸다. 제자들은 그를 따라 허리를 숙이며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천지묘법을 청합니다!”

“끼기긱!”

다음 순간, 운산관 대전의 별자리 그림 위의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연하봉 정상에 있던 계연과 진자주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자, 성력(*星力: 별의 힘)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한 갈래, 두 갈래, 세 갈래, 무수히 많은 별빛이었다.

보통 사람은 볼 수 없었지만, 하늘에서 성력이 쏟아지자 마치 무수히 많은 별똥별이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떨어지는 곳은 운산관을 중심으로 한 연하봉 전체였다.

이런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자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온몸을 감싸는 전율을 느꼈다. 이런 장면을 처음 보는 손아아는 물론이고, 이와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던 제문마저 호흡을 멈출 정도였다.

제문은 그동안 <천지묘법>에 담긴 이치에 대해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었고, 심지어는 그 안에 담긴 뜻에 대해 어느 정도 배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천지묘법>을 직접 읽어본 적은 없었으니, 오늘이 그 진정한 가르침을 얻는 첫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연달아 떨어지는 성력은 마치 운산관 주전의 지붕을 통과한 것처럼 대전 안을 환히 밝혔다. 이는 아직 어린 네 명의 제자들조차 또렷하게 볼 수 있을 정도여서, 그들은 감히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행여나 놓칠까 눈을 커다랗게 떴다.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기이한 광경 속에서, 이미 빛을 내뿜고 있던 별자리 그림 안에서 책 두 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천지묘법> 상권과 계연이 가져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천지묘법> 하권이었다.

그 두 권 중 상권만이 쏟아져 내리는 별빛을 받고 있는 방석 위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러자 겉으로는 위엄이 넘쳐 보였지만 내심 긴장하고 있던 청송도인이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살짝 몸을 틀어 손아아를 향해 말했다.

“손 낭자, 먼저 들어가시게!”

“제가…… 네!”

손아아는 원래 차례를 미루고 싶었으나, 이런 때에 관주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른 그의 말에 대답한 뒤, 청송도인을 향해 예를 올리고서 한 걸음씩 운산관 대전을 향해 걸어갔다.

방석 앞에 도착한 손아아는 먼저 그 위에 놓인 서책 한 권을 바라보았다. 책 위에는 은은한 빛이 흐르고 있었는데, 계속 지켜보니 마침내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것은 이제 살짝 누렇게 바랜 고서(古書)처럼 보였고, 겉표지에 적힌 ‘천지화생’ 네 글자는 손아아에게 무척 익숙한 글씨였다.

‘계 선생님께서 쓰신 거구나!’

손아아는 이렇게 생각하며 서책을 집어 든 후 천천히 방석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가볍게 책장을 넘겼다.

우르릉……!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번개가 번쩍하고 스쳐 지나갔다. 뒤이어 대전 안의 풍경과 바깥의 사람들이 멀어지더니, 색채가 휙휙 바뀌며 천지의 변화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청송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계 선생님께서 데려온 아이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제선을 포함한 다른 제자들은 기대와 긴장이 섞인 얼굴로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담비들도 눈썹을 잔뜩 모으고 있었다.

손아아에게 있어서는 마치 한 달이 흐른 듯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채 반 시진(時辰)도 지나지 않은 후였다. 그러자 그녀의 심신(心神)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극한에 다다랐는지 조금씩 아아는 머리가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청송도인은 손아아의 변화를 감지한 듯, 손을 내밀어 소매를 한번 휘둘렀다. 그러자 대전 안의 별빛이 손아아를 훑고 지나가더니, 서책을 읽고 있던 손아아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

“헉……. 으으……!”

손아아는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몸을 일으킨 뒤, 서책을 다시 방석 위에 놓았다. 그리고는 대전을 나와 청송도인에게 예를 올린 뒤 한쪽으로 가서 섰다.

“청연, 가거라.”

“네, 사부님!”

제문은 공손히 예를 올린 뒤 안으로 들어가 책을 읽었고, 대략 반 시진 후에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청송도인은 아직 정식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회색 담비 중 하나를 그가 평상시에 부르던 대로 불렀다.

“대회(大灰), 가거라.”

“찍찍!”

회색 털의 담비는 다른 제자와 마찬가지로 공손히 예를 올리더니, 방석이 놓인 곳으로 다가가 엎드려 책을 읽었다. 하지만 그는 일각(一刻) 정도밖에 버티지 못했다. 그 후로는 운산관 제자들이 차례로 안으로 향했고, 시간은 반각부터 일각까지 각기 달랐다. 하지만 모든 제자가 얼마간 서책의 가르침을 엿볼 수 있었으므로, <천지묘법>을 배우기 위해 요구되는 기준이 조금 높다는 것을 알고 있던 청송도인은 무척 기뻐했다.

연하봉 정상에서는 계연과 청송도인이 법안을 이용해 이 의식을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가장 어린 제자가 책을 보고 나서 다시 원래의 별자리 위치에 가서 서자, 계연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진자주를 향해 말했다.

“일곱 명 전부가 성공할 줄은 몰랐네요.”

진자주가 기다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확실히 예상하지 못한 일이긴 합니다. 이를 보니 제가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3년 전 저 아이들이 운산관에 왔을 때 청송도장이 일곱 명의 제자들에게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그가 점괘를 처음 배우던 때 한번 점을 쳐보니, 자신의 일생에 오직 일곱 명의 제자들만 있을 거라는 결과가 나왔다더군요. 그러면서 그들을 운산칠자(*雲山七子: 운산관 일곱 명의 제자들을 일컬음)라고 칭했습니다.”

“오,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계연이 놀라워하며 이렇게 대답하자 진자주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말입니다!”

계연은 운산관 방향을 바라보며 웃기만 할 뿐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운산칠자? 그야말로 아주 자신만만하고 있어 보이는 듯한 이름이었다!

* * *

그날 밤, 운산관 제자들과 손아아는 정식으로 수행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따져보면 그들이야말로 <천지묘법>을 기초부터 배우게 되는 첫 수행자들인 셈이었다.

운산관 도인들이 수행에 접어든 시각, 예전에 계연과 늙은 용, 진자주가 함께 숨겨 두었던 어떤 수단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별자리 그림의 인도 아래, 운산의 안개 위로 영기를 담은 물결이 보일 듯 말 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에 더해 하늘의 별빛이 이와 호응하자, 이는 마치 운산을 감싸며 흐르는 은하수처럼 보였다.

그래서 운산 높은 곳에서 주위에 펼쳐진 산과 하늘을 바라보면, 사람을 취하게 할 정도의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계연과 진자주를 제외하고, 청송도인을 포함한 운산관 안의 이들은 모두 풍경을 감상할 새도 없이 방석 위에 앉아 함께 수행을 시작했다.

청송도인은 진법의 힘을 빌려와 산 속의 성력(星力)과 영기를 끌어왔고, 손아아를 포함한 여섯 명의 제자와 담비 두 마리는 이를 이용해 수행을 닦기 시작했다.

<천지묘법>에서 가장 관건인 상권은, 사실 수행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고 널리 퍼진 도기결의 방법을 담고 있었다. 다만 <천지묘법>에서는 기(氣)를 모아 의(*意: 의식 세계)를 펼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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