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62화 (562/892)

562화. 약속한 때

계연은 운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다가, 운산관 모든 이들이 깊은 수행 상태에 접어든 것을 보고는 천지묘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소반 위의 찻잔 뚜껑을 들어 찻잔을 덮었다.

‘딩’하고 희미하지만 맑은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계연의 의식 세계가 펼쳐지며 연하봉 전체를 뒤덮었다. 그가 만들어낸 천지와 산, 하천은 운산관 수선자들의 의식 세계 속에서 곧바로 펼쳐지지는 않았다. 수선자들이 관상(*觀想: 우주 만물과 소통하고 하늘과 합일(合一)하기 위해 사물을 마음속으로 형상화하는 도교의 명상법)을 함에 따라 이들의 원신(元神)이 천지를 느끼는 순간 조금씩 이들의 의식 세계 속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계 선생님!”

진자주가 계연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계연이 찻잔을 들어 차를 한입 마신 뒤 나지막이 대답했다.

“이번뿐이에요.”

* * *

운산관의 나날은 빠르게 흘렀다. 최소한 손아아에게는 영안현에서보다 빠르게 느껴졌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운산관의 여느 때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 듯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천지묘법을 수행하는 데에 관건이 되는 기초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천지묘법의 수행 주천(*周天: 천체가 궤도를 따라 한 바퀴 도는 일을 뜻함. 여기서는 인간의 몸을 소우주(小宇宙)라고 치고 단전과 기맥(氣脈)을 따라 기가 흐르는 것을 일컬음)과 다른 수행 문파와의 차이점은 도문(道門)의 논리만이 아니라, 주천의 오묘함에 있었다. 여기서 주천은 하늘의 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의 신체 안 환경을 가리키는 것이다. 정통 선도(仙道)를 닦는 대부분의 선문(仙門)에서는 주천의 오묘함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데, 수행자가 신체 안 법력을 단련할 때 온몸의 기가 경락(*經絡: 몸 안의 경맥과 낙맥)과 규혈(竅穴: 혈 자리와 같은 위치에 같은 이름을 하고 있지만, 규혈은 몸 안에 숨겨져 있음) 등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게 된다. 천지묘법에서는 이를 ‘내주천(內周天)’이라 일컬었다. 당연히 ‘외주천(外周天)’도 있었다.

내주천은 다른 선문들과 같은 개념이었지만, 외주천은 천지의 절기와 때를 일컬었다. 천지묘법에서는 송구영신(*送舊迎新: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음)의 때를 가장 중요한 시기로 여겼다. 그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다면, 새해의 봄기운이 천지의 장막을 거두는 것을 관상(*觀想: 우주 만물과 소통하고 하늘과 합일(合一)하기 위해 사물을 마음속으로 형상화하는 도교의 명상법)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운산관의 새 제자들이 <천지묘법>의 가르침을 완전히 깨우치려면, 제자 본인의 심성이 좋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운산관 도문의 가르침을 3년간 받은 뒤 새해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야 했다.

제자들은 내주천의 궤도를 따라 부지런히 수행을 닦는 동시에, 새해의 순간을 기점으로 하여 춘하추동(春夏秋冬)과 그 사이사이의 각종 절기를 주요점으로 삼아 한 바퀴 순환하는 외주천을 따라 수련을 이어가야 했다.

처음 수행에 발을 들이면, 그 오묘함을 깨닫고 깊이 수행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특히 천지묘법은 천지와 한데 어우러지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데다, 중요한 절기를 따라 수련을 거치다 보면 시간이 날 듯이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해서, 계절은 다시 눈 깜짝할 사이에 추운 겨울이 되었다.

그동안 운산관 도인들은 부지런히 수행을 닦으면서, 도관을 넓히는 계획에 착수했다. 이들은 주전과 그 앞뜰은 그대로 놔두고, 좀 더 바깥으로 건물을 높게 짓기 시작했다.

이들은 계속 제자를 받아들일 계획이었고, 운산관은 선인이 되기 위한 수행을 닦는 도장이니만큼 한번 들어온 제자들은 환속하지 않고 계속 이곳에 머물 것이었다. 운산관의 이념을 따르자면 너무 많은 제자를 받아들이진 않겠지만, 어쨌든 제자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기만 할 예정이었다. 게다가 그중 남녀 간의 구별을 두어야 했고, 제자마다 수행을 닦을 수 있는 독실이 필요했으니 도관에 새 건물을 짓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지금의 운산관은 시정에 나가 일꾼을 고용해올 필요가 없었다. 무전진 토지신을 겸하고 있는 운산의 산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정신(正神)의 지위에 오르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토지신 겸 산신이라 불리는 것이 틀리지는 않았다.

토지를 돌보는 신령의 도움 아래, 청송도인 본인도 어느 정도의 도행이 있어 새 건물을 지어 올리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또한 산 아래에서 방에 꼭 필요한 요와 이불 등을 구해오니, 운산관에 머무는 이들은 모두 한 사람당 하나씩 방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계연과 진자주는 오래된 원락(*院落: 담장에 둘러싸인 뜰을 포함한 건물 전체를 일컬음)에 머물렀으나, 운산관 제자들은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았으므로 유유자적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계연이 홀로 도관의 대전 근처에서 붓을 들고 수리건곤('소매 안의 우주'라는 뜻으로, 건곤납물술을 발전시킨 것)술을 연구하고 있을 때, 눈꽃이 살랑살랑 종이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에 계연은 붓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또 이렇게 1년이 지났구나.”

뒤이어 계연이 도관의 정문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니, 곧이어 귓가에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잠시 후, 등에 광주리를 짊어진 제문이 경쾌한 걸음 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계 선생님, 제가 방해한 건 아니지요?”

“이제 왔구나, 괜찮다.”

제문은 “네” 하고 대답한 후, 광주리를 문가에 내려놓고서 계연에게 다가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계 선생님, 산 아래에 내려갔을 때 들으니, 당금의 재상 겸 태자 태부(*太傅: 태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관직)인 윤재성 대인의 병세가 위독하답니다.”

“위독하다고?”

이에 놀란 계연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마음속으로 자신의 바둑돌과 감응하며 소매 속 손가락을 접어 간단히 점을 쳐 보았다.

‘아닌데.’

윤재성은 위중한 병에 걸리기는커녕 아주 건강했다.

“음, 그 외에 또 들은 말은 없느냐? 더 이야기해보렴.”

“예, 성안의 문인이며 학자들은 모두 윤 공께서 그동안 과거제도의 개혁이나, 박서제(博書制)라는 제도를 추진하려 애썼는데, 내내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말하더군요. 조정에서는 아직도 양측의 논쟁이 격렬하고, 최근 2년 동안은 심지어 윤 공께서 애쓴 얼마간의 성과조차 사라질 위기라고 하였습니다. 윤 공은 이미 65세의 연세로, 오랫동안 조정을 위해 애써온 데다 일련의 일들로 화를 이기지 못하시고 병으로 쓰러지셨다고 합니다…….”

제문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또, 수루부의 지부가 바로 윤 공의 제자가 아닙니까? 그래서 요즘 지부가 무척 조급해하며 사방으로 소문난 명의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강(康) 대인께서 우연히 저를 보시고는, 예전 유괴된 아이들의 부모를 찾아줄 때 저희 사부님의 도움을 받은 것을 떠올리셨는지, 아니면 사부를 기인(奇人)이라고 여기셨는지, 혹 윤 공의 병을 치료할 수 있으시겠냐고 물어왔습니다.”

그의 말에 계연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버젓한 지부 대인이 고작 도사에게 병을 치료할 수 있겠냐고 물은 데에는 예전에 청송도인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아 있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윤재성이 조정의 중신인 만큼, 어의며 온갖 이름난 명의들이 그를 치료하러 보내졌을 텐데, 아마 그들 모두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에 도사에게까지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일 터였다.

“계 선생님, 손 도우의 말에 따르면 선생님과 윤 공께서는 무척 막역한 사이라지요? 윤 공께 가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무척 진지한 제문의 얼굴을 보고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긴 하지, 얼마 후에 도성에 가봐야겠구나. 어차피 이번 일이 없었더라도 곧 떠날 생각이긴 했단다.”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멀리 시선을 돌렸다.

‘윤 훈장님께서는 대체 무슨 꿍꿍이속이지? 황제가 어서 결심을 내리도록 병으로 쓰러진 척하는 건가?’

잠든 척하는 사람을 깨울 수는 없다는 말처럼, 마음먹고 꾀병을 부리는 사람을 치료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의와 온갖 명의들이 그의 병을 고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안 그래도 곧 떠나려 했던 데다가 이런 일까지 생기자, 계연은 다음날 운산관의 도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도인들은 약간의 아쉬움 외에 크게 이별에 대한 슬픔을 느끼지는 않았다. 선도의 오묘함을 깨우친 후로, 마음가짐도 넓어지며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손아아조차 더는 보통의 소녀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수행을 공고히 쌓은 후에는 언제든 영안현에 홀로 갔다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계연은 운산관 이들에게 <묘화천서>를 보여주기로 네 명의 친우들과 약속한 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이후에 누군가 찾아오면 그 책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을 남겼다.

* * *

운산관을 떠난 계연은 곧바로 경기부로 향하지 않았다. 윤재성이 진짜로 병이 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굳이 서두르려 하지 않았다. 속세의 조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들 스스로 해결하도록 놔두면 될 것이다.

이에 계연은 먼저 그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연주(燕州)로 향했다.

연주는 경기부의 동남쪽, 완주의 서남쪽에 자리해, 두 곳 중앙의 약간 아래에 있는 주(州)였다. 또한 통천강 유역에서는 손꼽히는 큰 주이기도 했다.

계연이 연주에 온 것은 예전의 약속 때문이었다. 예전에 설서 선생인 왕립과 신녀(神女)인 장예가 함께 연주로 떠났었는데, 그전에 계연은 백약에게 주어진 26년이 지나면 장예와 함께 백약을 데리러 가기로 약속한 바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곧 그 26년이 끝나가니 장예를 찾아갈 때였다.

26년 전에 주씨 집안 노야(老爺)가 세상을 떠나자, 경기부 성황신은 특별히 백록(*白鹿: 흰 사슴) 요괴에게 그녀의 남편인 주 노야의 음수(陰壽)가 다하여 혼백이 천지로 흩어질 때까지 함께 저승에서 지낼 수 있도록 윤허해 주었었다.

그 당시 백약은 계연이 타고 다니던 선수(仙獸)의 신분으로 저승에 들어올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성황신과 토지신도 사정을 봐주어 백약은 남편과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다 되었으니, 계연도 그곳으로 가서 백약을 데려와야 했다.

연주 장양부(長陽府) 부성은 연주 경내에서 규모가 비교적 큰 축에 속하는 도시였다. 성안에 상주하는 인구만 십여만 명이었고, 통천강에 닿아있어 대정국 수로(水路)에서 중간 거점으로 이용되는 도시였다. 그렇기에 경기부로 향하는 각종 화물과 사치품 대부분이 이곳을 거쳤다. 덕분에 장양부 부성에서도 경기부로 가는 물건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으니 무척 번화한 도시라고 할 수 있었다.

계연은 바둑돌과 감응하며 장양부 부성의 외곽에 내려섰다. 그가 작게 난 길을 따라 대로로 접어드니, 수많은 마차와 행인이 바삐 오가는 장양부 부성이 보였다. 연말이 다가오는 시기였으므로 장양부처럼 큰 도시는 자연히 여느 때보다 인파로 붐비는 상태였다.

계연은 평범한 행인처럼 부성 안으로 들어가는 대로를 따라 인파에 섞였다. 성문이 가까워지자 주위에서 들려오는 여러 가지 소리로 인해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대부분의 소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부두에서 들려왔는데, 그 떠들썩한 분위기는 춘혜부 밖의 부두에 버금갈 정도였다.

이곳에 이르자 계연은 바둑돌과의 감응이 더욱 강해진 것을 느꼈다. 원래 계연은 장예를 먼저 찾아가려 했으나, 여기로 오면서 쳐본 왕립의 상황에 대한 점괘의 결과가 그의 흥미를 끌었기 때문에 왕립을 먼저 찾아가기로 했다. 게다가 장예도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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