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63화 (563/892)

563화. 설서 선생의 기묘한 처지

계연이 아직 성 바깥에 있던 시각, 날리는 눈발 때문에 하얀 기름종이로 만든 우산을 받쳐 든 흰옷을 입은 여인이 홀로 성안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주위의 떠들썩한 인파와 잘 섞이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그 독특한 맑고 차가운 분위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감히 그녀를 대놓고 쳐다보지 못했다.

관아 근처의 한 주루에 이르렀을 때, 여인은 우산을 접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주루가 가장 붐비는 식사 시간이 되려면 아직 꽤 시간이 남았으므로, 대청 안에 앉은 손님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점소이가 여인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얼른 다가가 맞이했다.

“손님, 몇 분이십니까? 혹시 예약하셨는지요?”

흰옷을 입은 여인은 아무런 표정 없이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미리 주문한 찬합을 받으러 왔어요.”

멀리 있던 주루의 주인장이 그녀를 발견하고는 공손히 인사했다.

“장 소저 오셨군요, 요리는 이미 완성되어 주방에서 데우고 있었습니다. 얼른 가서 가져오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 뒤 근처에 있던 다른 점소이에게 주방으로 가서 찬합을 받아오라 시켰다.

그러자 흰옷을 입은 여인이 주인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가 많네요.”

“아하하,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요!”

여인은 간단히 감사를 표한 뒤 주루 안으로는 들어서지 않고 계속 입구에 서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에 행주를 걸친 점소이가 정교한 모양의 찬합을 들고 서둘러 다가와 그녀를 향해 두 손으로 내밀었다.

“손님, 여기 주문하신 요리입니다.”

“아, 고맙습니다.”

흰옷을 입은 여인은 찬합을 받아들고는 우산을 펴고 주루를 나섰다. 그리고는 눈송이가 흩날리는 거리를 지나 관아를 향해 걸어갔다.

점소이는 그녀가 떠나자마자 자그마한 소리로 다른 점원에게 물었다.

“이(李) 형, 방금 저 여인은 누구인가요? 아주 범상치 않던데요.”

“누구든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보나 마나 돈 좀 있는 집안의 소저겠지!”

찬합을 들고 눈길을 걷는 여인은 바로 장예였다. 그녀가 관아에 가는 이유는 당연히 사건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녀 같은 귀신이 사건을 고발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장예는 관아에서 한쪽 길로 빠진 뒤, 여러 곳의 검문을 통과해 장양부 부성의 감옥 바깥에 도착했다.

감옥 바깥에서 경계를 서던 옥졸은 장예를 보자마자 얼른 다가가 양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장 소저, 또 오셨군요?”

“네, 수고가 많으시네요. 그럼 안내 부탁드려요.”

“예, 예! 안쪽으로 드시지요!”

옥졸은 장예를 데리고 감옥 안으로 향했다. 감옥 안은 더럽고 코를 찌르는 악취로 가득했지만, 장예는 눈썹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낭자, 이런 감옥에는 무슨 일로 왔는가?”

“어이쿠, 저건 찬합이 아닌가? 나도 맛 좀 볼 수 있을까?”

“하하하, 아주 예쁘장한 낭자로군. 감옥 안에 정인이라도 있나 보지?”

“말 좀 해보라고, 젊은 낭자가 차갑기가 짝이 없구먼.”

“하하하하…….”

장예가 지나칠 때마다 죄인들의 방자하고 조롱이 담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옥졸이 칼자루로 양쪽 창살을 두드렸다.

“입 다물어라! 모두 입 다물어! 사는 것이 지겨운 모양이로구나? 한 번만 더 헛소리를 지껄이면 오늘 형제들을 소집해 네놈들 뼈를 다시 맞춰주겠다!”

죄인들은 사실 척 보기만 해도 장예가 대단한 집안의 낭자인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개의치 않고 그녀를 조롱하고 온갖 더러운 말을 내던지며 웃었다. 하지만 옥졸 같은 하급 관리가 한번 경고를 던지자마자 즉시 입을 다물었다. 이래서 염라대왕(장예 혹은 그녀의 집안)은 상대하기 쉽지만, 보잘것없는 귀신(옥졸)은 떨쳐내기가 어렵다(閻王易見, 小鬼難纏: 덕망이 높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이는 굳이 아랫사람을 괴롭히려 하지 않지만, 소인배들이 오히려 사람을 못살게 굴 수 있다는 뜻)는 말이 있는 것이었다.

감옥 깊은 곳에서 길이 갈라지자 옥졸은 왼쪽으로 꺾더니 가장 끝 방을 향해 걸어갔다. 장예가 멀찍이 바라보니 그곳에는 일고여덟 명의 옥졸들이 감방 하나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이를 본 장예가 참지 못하고 우스운 듯이 미소 짓자, 마침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던 옥졸이 깜짝 놀랐다.

“아, 장 소저, 바로 저 앞입니다.”

옥졸은 이렇게 말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그러자 곧이어 왕립의 풍부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말하자면 설씨는 꽤 의로운 자였다오. 왕 원외(*員外: 지방 유력자)가 법사를 청해와 다짜고짜 그 요괴를 처리해달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설씨는 예전에 입은 은혜를 떠올리고는 몰래 강가로 뛰어가 이 소식을…….”

옥졸이 감방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자신의 동료뿐만 아니라, 주위 감방 안의 죄인들도 창살을 붙잡고서 가장 끝방 쪽으로 귀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모두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야기에 빠져, 소동도 부리지 않고 무척 조용하게 있었다.

“간수장, 장 소저가 오셨습니다.”

왕립의 이야기가 옥졸에 의해 뚝 끊기자, 그 앞에 앉아 있던 옥졸들도 번쩍 정신이 든 얼굴로 다가온 옥졸을 바라보았다. 그의 뒤로 흰옷을 입은 여인이 찬합을 들고 따라오고 있었다.

“에이, 흥이 팍 식는군!”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그러자 간수장이 수하들의 등을 툭툭 때리며 말했다.

“쓸데없는 말 말고 어서 일어나라, 일하러 가야지! 너도!”

왕립은 감방 안에 서서 걸상을 들고 떠나는 옥졸들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살펴 가세요, 다음에 벌어질 일이 알고 싶으시면 또 이야기 들으러 오시고요!”

“푸흡……!”

왕립의 말에 장예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얼음처럼 차갑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녹아내린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원래의 냉정하고 초연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왕립은 창살 앞에 달라붙어 그녀가 들고 있던 찬합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오셨군요?”

간수장이 허리춤에서 열쇠를 끌러 왕립의 감방에 걸린 자물쇠를 풀고는, 직접 문을 열어주면서 장예를 향해 말했다.

“장 소저, 들어가시지요.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장예는 간수장을 향해 살짝 무릎을 굽히며 인사하고는, 찬합을 들고서 왕립의 감방 안으로 들어섰다. 간수장과 그녀를 데리고 온 옥졸은 그들이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약간 떨어진 곳으로 가서 섰다.

장예가 감방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왕립은 찬합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두 손을 비비며 물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맛난 것을 사 오셨습니까? 곧 연말인데 저도 제대로 된 것을 먹어볼 수 있겠군요!”

그의 말에 장예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이들은 감옥에 갇히면 정신이 피폐해진다는데, 당신은 오히려 정신이 아주 또렷한 것이 아직 팔팔한 모양이네. 늙어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아도 되겠어!”

“그건 안될 말입니다, 아직 바깥에 알리지 않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데요! 아이, 일단 밥부터 먹고 말씀하시지요. 밥이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방금까지 이야기를 하느라 힘을 많이 써서 배가 고픕니다!”

그러자 장예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쉰 뒤, 찬합을 흙으로 만든 침상 곁에 놓인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층층이 쌓인 찬합을 내려놓자 감방 안에 향긋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꿀꺽……!

왕립이 군침을 꿀꺽 삼켰다. 그뿐만 아니라 맞은편과 옆쪽 감방에서도 향긋한 음식 냄새를 맡고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킬 정도였다.

장예가 찬합을 펼치자 왕립은 더 참지 못하고 젓가락과 밥공기를 들어 올린 뒤 일단 밥부터 먼저 두 입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젓가락으로 고기와 채소 요리를 연이어 입 안으로 넣었다. 왕립은 그렇게 입안이 가득 찬 후에야 음식을 씹기 시작했고, 곧 그의 얼굴에 만족과 행복이 담긴 미소가 퍼져나갔다.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내가 몰래 빼내 줄 수 있다고 말했잖아. 신분만 바꾸면 예전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는데, 뭐 하러 감옥 안에서 이 고생을 하지?”

왕립은 열심히 음식을 씹은 뒤 꿀꺽하고 목뒤로 넘기고는, 숟가락으로 탕을 두 번 떠먹은 다음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안 됩니다, 저는 죄지은 것 없이 떳떳한데 뭐 하러 신분을 바꿔 숨어 살겠습니까? 게다가, 윤 상서께서 남기신 말이 있으니 저들도 저를 어쩌진 못합니다. 내년이면 곧 석방될 텐데 뭐 하러 또 그런 얘길 꺼내십니까?”

왕립은 이렇게 대답한 뒤 다시 밥과 반찬을 잔뜩 입에 쑤셔 넣고 바삐 턱을 움직였다. 설서 선생의 입은 특별히 발달한 모양인지, 이렇게 빠르고 급하게 먹는데도 왕립은 조금도 목이 막히지 않았다.

“오호, 왕 선생은 정말로 기개가 뛰어나시군요. 얻어맞아서 피부가 죄 터진 뒤에 감옥에 갇혔을 때, 소녀를 보고 울고불고하며 어머니를 찾아 대던 게 누구였지요?”

설서 선생은 보통 얼굴 가죽도 두꺼운 편이었으나, 왕립 같은 이야기꾼 계의 고인(高人)이라고 해도 이때는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가 곧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때는 곧 죽기 직전이었으니까…….”

“푸웁! 아하하하하……!”

장예는 이런 왕립의 모습에 배를 움켜잡고 웃어댔다. 다 웃고 난 뒤에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도 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이렇게 제 앞가림을 못하다니! 그러니 여태까지 장가를 못 갔지! 계 선생님이 당신 꼴을 지금 봤으면, 얼마나 우스워하실까!”

그러자 왕립이 열심히 씹던 음식물을 공중에 뱉어내며 대답했다.

“계 선생님이 이 일을 모른다고 어찌 확신하세요? 이건 제게 내리는 시험일 수도 있다고요, 시험! 아시겠어요?”

장예는 날아오는 쌀알을 민첩하게 피한 뒤, 그의 귀를 잡아당기며 다시 얼굴을 식탁 앞으로 되돌렸다.

“밥이나 먹어!”

왕립은 고통을 참으며 이렇게 소리쳤다.

“아아아, 쓰읍……. 살살, 살살 하세요! 저는 범인(凡人)이잖아요, 고모님!”

그러자 장예가 기가 막히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그의 귀에서 손을 놓았다. 왕립은 벌게진 귀를 두어 번 문지른 뒤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이렇게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왕립이 식사를 마치자 장예가 다시 빈 찬합을 들고 감옥을 떠났다. 왕립은 감방 안의 침상 위에 누워, 실의에 빠진 표정으로 문가를 바라보았다.

장예가 떠난 후에도 옥졸들은 그에게 휴식 시간을 주려는 듯 감방 앞에 모여들지 않았다.

한편, 감옥 앞쪽의 옥졸들이 휴식하는 대청 한구석에서는 간수장이 식탁 앞에 앉아 요리를 몇 가지 곁들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장예를 배웅한 뒤 어제 받은 쪽지 한 장을 떠올렸다.

그 위에 적힌 내용은 간단했다. 바로 왕립을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왕립은 곧 형이 만기 되어 석방될 예정이었으니, 그 뜻이 무엇인지 간수장은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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