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64화 (564/892)

564화. 피비린내 나는 재앙

간수장이 눈썹을 찡그린 채 어찌해야 할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왕립의 이야기 실력은 확실히 뛰어났다. 그를 감옥에 가둔 1년여의 기간 동안, 장양부 감옥 안은 좀 더 흥미로운 곳으로 변했다. 물론 왕립의 가치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간수장에게 있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었지만, 그보다는 자기에게 실질적으로 떨어지는 은자가 훨씬 중요했다. 즉, 손이 크고 대단한 배경을 지닌 듯한 장 소저 말이다.

‘휴우, 아깝게 됐군. 저 이야기꾼이 죽으면 은자가 들어올 곳이 하나 줄어드는데. 물론 그를 처리해도 만만치 않은 이득을 얻긴 하겠지만.’

이런 명령이 내려왔으니 자신이 받을 몫도 분명 있을 것이었다. 무려 도성의 윤 상서께서 왕립을 위해 남긴 말이 있으니, 왕립을 처리하는 것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위험이 그리 크진 않았다. 자신이 떠올린 방법 대로만 하면 자신과 옥졸들은 호된 질책만 몇 마디 듣고 말 것이었다.

그때 마침 옥졸들이 교대할 시간이 되어, 감옥을 지키던 이들은 식사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되었다. 그들은 간수장을 보고는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간수장, 조금 이따가 왕 선생님의 <역강기(易江記)> 들으러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자 간수장이 술을 한 입 마신 뒤 이렇게 대답했다.

“가야지, 당연히 가야지. 그런데 너희들은 좀 늦었어, 좀 전에 이야기의 하반부를 들었거든.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야 재미있는 법이지. 또 지금 안 들으면 이제 기회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지요, 그래도 아직 시간이 얼마간 남아 있지 않습니까? 이야기 하나를 끝내는 데에 며칠이 걸린다고 치면, 아직 많이 들을 수 있어요. 여기서 들으면 돈도 안 내도 되고, 차도 마음껏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왕 선생은 아는 이야기가 끝도 없으니, 어차피 모두 다 듣지는 못할 겁니다. 게다가 언제나 새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요. 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모양입니다!”

옥졸들은 간수장의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왕립이 형을 채워 석방되는 일을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오후가 되자 입구를 지켜야 하는 옥졸 두 명을 빼고는 모두 걸상을 끌고 와 왕립의 감방 앞에 모여들었다. 낮잠을 자며 재충전을 한 왕립도 마침 정신이 아주 또렷했다.

* * *

장예는 흰 우산을 받쳐 들고서 눈길을 밟으며 주루로 가서 찬합을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가, 앞쪽에서 낯익은 이가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인파 속에 서 있는 계연에게서는 어떤 특별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아,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장예는 멍하니 서 있다가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를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계 선생님!”

계연은 원래부터 장예를 찾아온 것이었으므로, 장예가 자신을 부르자 그녀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감옥으로 가서 왕립을 만났나 보죠?”

“선생님, 이미 다 알고 계시는 건가요?”

그러자 계연이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 근처의 찻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왕립이 감옥에 갇혔다는 것만 알아요, 하지만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니 일단 저기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죠.”

“네!”

장예는 계연의 말에 즉시 동의하며 그의 한 걸음 뒤에 서서 찻집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은 뒤, 장예는 왕립이 감옥에 갇히게 된 경위를 처음부터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문제의 근원은 늙은 거북 오숭의 이야기에 있었다.

왕립은 한 커다란 주루에 이야기하러 갔다가, 그곳의 손님들에게 요란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중에는 그와 같이 설서 선생을 업으로 삼는 이가 있어, 몰래 그의 이야기를 외워두고 있었다. 그는 일찍이 왕립의 유명세를 들어 왔었고, 그를 무척 숭배하고 있었으므로 왕립에게 갖은 아부를 떨었다. 이에 왕립은 그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그는 그 후로 왕립과 좋은 친우가 된 듯 굴었지만 실은 내내 그의 동향을 주시하다가 왕립이 집을 비운 사이에 그의 집에 숨어들어 이야기를 적은 원고를 잔뜩 훔쳐 갔다. 그런데 그 안에 소씨 집안과 늙은 거북에 관한 이야기에 대한 초고가 섞여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도 이야기꾼을 직업으로 삼고 있었기에, 슬쩍 읽기만 하고도 그것이 아주 재미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에 그는 그다지 깊이 생각지 않고 이를 이용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곳 장양부에는 이미 왕립이 있었고 설서 선생을 하는 이들은 체면을 중시했으므로, 그는 도성으로 넘어가 왕립에게서 훔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착실히 명성을 쌓아갔으나, 문제는 소씨 집안에 얽힌 그 이야기를 이용하면서 시작되었다. 왕립은 그 이야기를 쓸 때 시대를 바꾸고 황제의 성인 양씨도 바꿨지만, 소씨의 성씨만은 바꾸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 그 이야기를 찻집에서 들려준 후, 마침내 이를 알게 된 소씨 집안에서는 그를 찾아내려 했다.

그들은 사적으로 사람을 풀어 그를 잡아 왔고, 그 이야기꾼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왕립을 이름을 내뱉었다. 이에 왕립은 장양부에 있다가 연유도 모르고 엄청난 죄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다행히 윤청이 일찍부터 소씨 집안을 탐탁지 않게 여겨 각별하게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이 일을 알게 된 후 즉시 손을 써 소씨 집안이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 덕분에 왕립과 그의 원고를 훔친 이야기꾼은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조정의 관원을 모함하려 했다는 죄목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으므로 왕립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었다.

조정의 권력 투쟁은 언제나 잔혹한 법이었다. 윤청은 처음 얼마간은 뛰어난 부친을 둔 덕분에 어떻게 한자리를 얻게 된 관원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의 수는 많이 줄어들었고, 조정에서 오래 구른 교활한 관리들은 윤씨 집안 부자가 만만치 않은 이들이라는 것을 점차 알아차렸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소씨 집안에서도 결국 이야기꾼들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장예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마치자, 계연은 별다른 말 없이 탁자 위에 놓인 해바라기 씨를 까먹었다.

“참, 계 선생님. 저와 함께 백약 언니를 데리러 가기 위해서 오신 건가요?”

이에 계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제 곧 기한이 다가오니, 맞이하러 가야죠.”

장예가 잠시 주저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혹시 구체적으로 언제인지 아시나요? 왕립이 석방되려면 아직 몇 달은 남아서요…….”

“하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은 충분해요. 왕립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요.”

계연은 이렇게 대답하며 다시 장양부 관아의 감옥을 떠올렸다. 조금 전에 그가 간단히 점괘를 쳐보니, 왕립에게 곧 피비린내 나는 재앙이 닥칠 거라는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한편 두 사람이 찻집으로 들어왔을 때, 계연의 종이학은 이미 날개를 퍼덕이며 관아의 감옥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간 후였다.

종이학은 그동안 속도가 꽤 빨라졌기 때문에, 금방 감옥이 있는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입구에 도착한 종이학은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옥졸 두 명의 머리 위를 빙빙 돌았다.

“하암…….”

그때 옥졸 중 하나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하품이란 것은 때로 아주 전염성이 강해서, 다른 옥졸도 동료가 하품하는 것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따라서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하얀빛 한 줄기가 ‘슈욱!’하고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지나쳐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종이학은 감옥의 천장 위에 붙어서 움직이다가, 순찰하는 옥졸을 마주치면 천장에 딱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종이학은 곧 이 몽둥이를 들고 허리에 칼을 찬 자들이 절대 천장을 올려다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에 종이학은 아주 대담하게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 곧바로 왕립이 갇힌 감방으로 향했다.

종이학은 감옥 천장의 그림자 안에 몸을 숨긴 채, 그가 제일 좋아하는 ‘관찰 활동’을 시작했다. 종이학은 풍부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늘어놓는 왕립과 무척 집중한 듯 때때로 표정이 변하는 옥졸들과 주위의 죄인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때, 다른 이들에 비해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옥졸 하나가 동료들 사이에 앉아 있다가 표정을 미묘하게 달리하며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이를 본 종이학은 즉시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고는, 작은 얼굴을 살짝 기울이며 제 꼬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피이……!

왕립의 목소리에 묻히는 바람에 아주 희미해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종이학은 그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어이쿠! 누가 방귀를 뀐 거야!”

“대체 뭘 먹은 거야…….”

“윽, 구린내……!”

“얼른 흩트려, 흩트려…….”

방귀 뀐 옥졸이 가장 먼저 화를 내며 소리치자, 다른 옥졸들도 저마다 불평하며 냄새를 없애기 위해 손을 펄럭거렸다. 감옥 안에는 원래도 괴이한 냄새가 났지만, 이미 이 안에 들어와 있던 이들은 그 냄새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들은 오히려 이 새로운 냄새를 즉각 알아차렸다. 옥졸들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펄럭이며 냄새를 없앤 뒤, 다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점차 시간이 흘러 왕립의 감방 안에 높이 뚫린 자그마한 창문에서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마침 오늘의 이야기가 끝이 나자, 옥졸들도 모두 제자리로 흩어졌다.

그 후 왕립은 감방 안의 침상 위에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옥졸 하나가 다가오더니 창살을 두어 번 퍽퍽 두드렸다.

“왕 선생, 왕 선생?”

이에 왕립이 깜짝 놀라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간수 형님, 무슨 일입니까?”

“음, 문연루(門宴樓)의 한 점원이 찬합을 보냈소. 장 소저가 낮에 떠나기 전에 왕 선생의 저녁 식사로 주문하고 간 것이라 하더군.”

“오, 그렇군요!”

이렇게 대답하는 왕립의 얼굴에 금방 환한 웃음이 번졌다.

“하하, 왕 선생은 참 복도 많소. 장 소저가 선생에게 이토록 마음을 쓰는 걸 보니, 옆에서 보기만 해도 부럽군!”

그 말에 왕립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장 소저를 넘볼 수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저녁을 배불리 먹지 않았는데 참 잘되었군요!”

옥졸이 감방문을 열어 찬합을 왕립에게 전해준 뒤 안에 놓인 촛대 위에 불을 붙여 주었다.

“그럼 방해하지 않을 테니 천천히 드시오. 다 먹고 나면 다시 와서 받아 가겠소.”

“예, 감사합니다, 형님!”

왕립은 손을 비비며 옥졸이 감방문을 잠그고 떠나길 기다렸다가, 얼른 찬합을 열어 안에 들어있는 음식을 바라보았다.

‘때깔이 장 낭자가 평소에 가져다주는 것보다 훨씬 못한데……. 오, 술도 있군?’

장예는 평소에 그에게 술을 가져다주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에 그는 술을 보고 무척 기뻐하며, 젓가락을 들어 얼른 입에 음식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술병 입구에 입을 대고 바로 마셔버릴 요량으로 술병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술병이 채 입 근처에 닿기도 전에 하얀빛이 번쩍하고 지나갔다.

퍼억!

“쓰읍……!”

왕립은 술병을 들고 있던 손을 다른 손으로 덮으며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져 깨진 술병을 바라보다가 감방 곳곳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훑었다.

‘방금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아이고, 아까워라…….”

곧 왕립은 자신이 순간적으로 경련을 일으킨데다 눈이 침침한 탓이라고 여기며 흘린 술을 아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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